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87
87화
곡이 결정되었다.
방송에서 2번째로 불렀던 곡 [에일리언]이 그 주인공이 되었다.
이 골치 아픈 곡을 두고 내 머릿속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원래는 임시로 만든 곡이었는데.’
애초에 버림패로 쓸 생각이었으니 제대로 만들지도 않았다.
방송에서 깔았던 비트는 인터넷 창작 사이트에서 2만 원을 주고 구매한 것.
제대로 쓰려면 처음부터 구조부터 다시 짤 필요성이 있었다.
즉, 작곡의 시간이 왔다.
‘결국, 이 순간이 왔구나.’
나는 참담한 심경에 눈을 꾹 감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내게는 현시대의 뮤지션들과 비교해서 크나큰 약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한영아, 너 기계친데 어쩌냐.”
기계에 약하다는 것.
요즘 작곡하는 사람치고 기계에 약한 사람이 있을까.
절대 없다.
홍윤서는 이 순간이 못내 기쁜지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며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그동안은 통기타 한 대로 해 먹었으니까 편했겠지. 하지만 이제 어림도 없다. 이거야.”
“…….”
“드디어 네 밑천을 보는구나.”
분하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예로부터 내가 만들었던 곡들에는 특징이 하나 있었다.
바로, 통기타와 보컬만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기껏해야 리듬 악기 하나가 뒤에 깔리는 수준.
‘하지만 이제 이걸로는 부족하겠지.’
일렉 기타를 다룰 생각이라면 본격적인 밴드 사운드를 파고들어야 한다.
또한, 현대 작곡가들처럼 작곡 프로그램도 복잡하게 다뤄야겠지.
어쩌지.
이걸 진짜로 공부해서 끝내야 하나.
나한테 주어진 시간이 몇 주 안 남았는데, 그 안에 머리가 깨지도록 고생해 봐야 하나.
그렇게 한창 고민하는 찰나였다.
“왜 그렇게 고민해.”
김예담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굳이 작곡을 혼자서 할 필요는 없잖아.”
“도와줄 사람을 찾아서 맡기라고요?”
“응.”
내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요즘 작곡을 혼자 다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어. 인디 신인도 작곡가 두셋 달고 공동 작업하는 경우가 널렸는데.”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요즘은 워낙 작곡이라는 게 복잡해진 바람에, 곡 하나를 내더라도 뮤지션 여럿과 협업하는 게 기본이 되었다.
왜, 송 캠프라고 있지 않나.
곡 하나가 완성될 때까지 작곡가들이 팀을 이루는 거.
“음, 그럼 누구한테 도와달라고 해야 하죠. 잘 모르겠는데.”
맡길 만한 사람이 주위에 있나 고민하는 참이었다.
“모르기는.”
김예담은 배시시 웃더니 말했다.
“있잖아. 평소에 같이 작업하는 사람.”
“그게 누구…….”
이해 못 할 말에 되물으려는 순간이었다.
“아.”
떠올랐다.
내 바로 옆에 유능한 프로듀서가 있다는 것을.
* * *
모처럼 방문한 초소형 단칸방.
내 앞에서 한 깡마른 남자가 턱을 괸 채 시큰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요즘 딱 믹싱 일만 하는 엔지니어가 얼마나 있다고.”
내 전속 엔지니어. Dim.A.
디마.
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요새는 하나만 해서는 못 먹고 살아요. 이것저것 다 해야지. 애초에 저도 프로듀서 겸업으로 준비하고 있는 거 몰랐어요?”
살짝 따지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이제 알았죠.”
그렇다.
디마, 그야말로 공동 작곡가로서 나를 보조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이걸 몰랐네.’
평소 믹싱과 마스터링 같은 음향 업무만 맡기다 보니, 그가 작곡 방면으로도 인재일 거라는 생각을 아예 안 했다.
“앞으로는 말씀 주세요. 그럼 시간 별로 없으니까 바로 시작하죠.”
그는 애초에 깊게 따질 생각은 없었는지 곧 컴퓨터로 파일을 불러왔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재생시킨 순간이었다.
“음?”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깜빡였다.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번개가 파직파직 튀는 것처럼 격정적인 곡.
듣고 있으면 내 피가 저절로 끓어오르는 것같이 강렬한 곡이었다.
그런데 이게.
‘내 곡이잖아.’
내가 만든 2번 곡 [에일리언]이었다.
하지만 달랐다.
무엇이 다른가 하면, 그 배경으로 이미 충실한 MR이 깔려 있다는 게 달랐다.
‘뭐지?’
만들라고 한 적 없는데, 언제 만들었지.
놀란 참인데 디마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간이 남아서 취미 삼아 샘플을 만들어 놨어요. 개인적으로 공부할 겸.”
응, 그렇구나.
취미로 만드셨구나.
그런데 보통 쓰지도 않을 샘플을 만들어 두고 보는 사람이 잘 없는데 말입니다.
‘이 사람, 매일 과로하는 거 아니었나?’
나 또한 과로라면 꽤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 사람도 만만찮은 수준이었다.
그러고 보면 평소에도 작업물을 보내면 거의 당일치기, 늦어도 다음 날까지는 보냈었지.
그러면서 이런 일까지 겸사겸사해 뒀다는 건가.
‘성실하네. 조금 과할 정도로.’
은근히 놀란 참인데, 디마가 말을 이었다.
“어때요?”
“아, 괜찮네요.”
“그럼 우선은 이 작업물을 기준으로 생각해 두시고, 다음 곡 체크해 보죠.”
“다음 곡이요?”
우리가 만들기로 한 게 또 따로 있었나.
아니면 내가 놓친 게 있나.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마비된 순간이었다.
“샘플을 몇 개 더 만들어 뒀거든요.”
“……아.”
하나만 만든 게 아니셨구나.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 둔 샘플이 전부 평균 이상의 퀄리티였다.
“일단 지금까지 들었던 곡 중에 마음에 들었던 멜로디를 정리해서, 그걸 기반으로 다듬어 보면 될 것 같네요.”
“음.”
“감상도 좋고, 연주로 들려주셔도 좋고. 뭐든 의견은 편하게 말해 줘요. 제가 거기에 맞출 테니까.”
그렇게 본격적인 작업 프로세스에 맞춰 진행하는데, 어딘가 기분이 이상하다.
비슷한 광경을 어딘가에서 본 것만 같다고나 할까.
데자뷰.
옛날에 본 광경이 현재와 겹치는 것만 같은 기시감.
이게 내 뇌리에 감돌기를 잠시.
나는 깨달았다.
‘내가 하는 짓 아닌가?’
생각나는 대로 샘플 여럿 쟁여 두고 살다가, 필요할 때 주구장창 꺼내는 거.
그렇다.
여기에 나 같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나는 기묘한 위화감을 느끼면서 기타를 꺼내 들었다.
“멜로디는 다 생각해 왔어요.”
“들려주세요.”
나는 곧 연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조금 전과 같은 상황이 한 차례 더 일어났다.
“많네요?”
“생각나는 게 많아서.”
“차라리 녹음해서 오시지.”
“머릿속으로 가지고 있는 게 더 편해서요. 그러다가 까먹으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
“흠.”
디마는 곧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잠깐 다른 생각 좀 했다고 까먹을 멜로디는, 어차피 큰 가치도 없는 멜로디겠지요.”
극단적인 말이지만 나도 일부 동의한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같은 상황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이쪽은.”
“샘플을 미리 준비해 뒀습니다.”
누가 더 많은 샘플을 내놓느냐를 두고 전쟁이 일어났다.
차이점이라면 단 하나뿐.
내가 머리에 담아 둔다면, 그는 컴퓨터에 담아 둔다는 정도였다.
묘하게 비슷하다.
마치 전공만 다른 도플갱어를 보는 듯한 느낌.
‘잠깐만, 그렇다는 말은.’
순간적으로 불안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에이 설마.
이렇게까지 하겠어.
나는 나 자신으로서도 의심하면서도 일단 입밖으로 꺼내 보았다.
“저기, 제가 지난 방송에서 1번 곡이랑 3번 곡도 연주했잖아요.”
“그랬죠.”
아닐 거다.
사람이 그럴 수는 없지.
사람이라면 여기까지 할 수는 없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물었다.
“혹시, 그것도 샘플 좀 만들어 두셨나요?”
“…….”
그 순간 디마가 모니터에서 고개를 돌리더니,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러게요.
어떻게 알았을까요.
유감이다.
* * *
그렇게 본격적인 일이 시작되기를 반나절.
1차 러프믹스(밑그림)가 나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벌써 꽤 들을 만해졌네.’
나 자신으로서도 믿기지 않을 집중력과 속도감.
그냥 뚝딱 조립만 했다고나 할까.
“굉장히 빠르게 끝났네요.”
적어도 며칠은 걸릴 줄 알았는데.
놀라서 중얼거린 말에 이에 대해 디마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한영 씨나 저나 머릿속에 온전한 설계도가 들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오래 안 걸리는 게 오히려 당연해요.”
자신감에 가득 찬 말.
아니, 자신감이라는 의식조차 안 하는 목소리였다.
그래서 피부에 소름이 올라왔다.
‘이 말투는 대체 뭐지.’
분명 어디서 들어 본 것 같다.
잘 모르겠는데, 어딘가 익숙한다.
어딘가.
나는 머리에 현기증이 도는 걸 느끼며 말했다.
“많이 고칠 줄 알았는데요.”
“고치고 또 고치는 건 어느 작업물이 나을지 구체적인 확신이 없을 때 일이죠. 물론 일류 프로듀서 중에도 매번 고민하면서 작업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맞아요. 하지만 보통은 아니에요.”
아하.
남들이 작업 하나에도 오래 걸리는 건, 그 사람들 머릿속에 확실한 이미지가 없기에 그렇다는 건가.
저런 말을 쉽게도 말하는구나 싶다.
‘디마 이 사람, 어쩌면 기만질을 즐기는 거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이었다.
‘……아니지. 아닐 거야.’
나는 어쩐지 자승자박을 시도한 것 같아 생각을 멈추었다.
위험한 순간까지 딱 한 걸음이었다.
어찌 되었든 작업물이 숨 가쁠 만큼 빠르게 진행된 건 사실.
한숨 돌렸다.
하지만 작곡은 이게 끝이 아니다.
“샘플도 완성했겠다. 세션 구해서 녹음만 하면 되겠네요.”
샘플은 샘플일 뿐.
제대로 진행하려면 앞으로 할 일이 산더미로 남았다.
아무래도 악기를 녹음해야 하니까 이것도 또 시간이 걸릴까 싶어 물은 참이었다.
디마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세션은 없어도 돼요.”
“네?”
무슨 말인가 하는 찰나였다.
“실제 악기가 더 나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가상 악기도 나쁘지 않아요. 생으로 녹음하면 연주자의 컨디션이나 기복이나 다루기 어려울 수 있잖아요. 소통 문제도 있겠고. 하지만 가상 악기는 그런 게 없이 일정해요. 다룰 줄만 알면 실제 악기에 모자랄 게 없죠.”
당연하다는 듯 줄줄 흘러나온 말.
특별히 와닿지는 않았다.
가상 악기라는 게 실제 악기보다 낫다는 게 내 상식으로는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간단하게 예시를 보여 드리자면.”
나는 곧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하.”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모르고 들었다면 가상 악기라는 것도 몰랐겠네.’
소프트웨어로 만든 가상 악기.
샘플 상태로 들었을 때는 적당한 위화감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위에 믹싱을 끼얹자, 말도 안 되는 변화가 나타났다.
마치 점토에 생명을 넣은 피그말리온의 기적을 보는 듯했다.
“보셨죠?”
디마가 보란 듯이 말했다.
“가상 악기라고 해서 꼭 나쁜 게 아니에요. 그래미에서 수상한 프로듀서 중에서도 가상 악기를 아예 안 쓰는 사람은 또 없어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흐르며 장르 음악 자체의 발전이 생겨났듯, 작곡 과정 또한 완전히 변화했다는 걸.
여기까지 사고가 닿았을 때 김예담의 말 또한 기억이 났다.
‘여러 길을 가 봐야 발전할 수 있다고 했나.’
그 말이 옳다.
나 또한 환경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이번 작업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우물 속에 갇혀서 지낼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었다.
나 자신이 우물 속 개구리라는 걸 자각했기에 비로소 바깥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기 때문.
‘많이 배우고 익혀야겠다.’
배우자.
이 세상의 경쟁자들이 어떻게 음악을 하는지 제대로 배우자.
기계에 약하다는 건 변명에 불과하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저한테도 가르쳐 주세요.”
“뭘요?”
“작곡이요.”
내 눈앞의 사람은 분명 신인이고 후배겠지.
하지만 프로로서 나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선배로서 모시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게 프로니까.’
그렇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 순간.
디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을 한참 넘어선 것이었다.
“당분간 비율 2% 더 주시면요.”
응.
프로 맞네.
잘하는 건 돈을 받아야 프로지.
* * *
이틀 뒤.
완전한 작업물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를 맥스 무비 측에 보냈을 무렵, 돌아온 피드백은 썩 들을 만한 것이었다.
[이번 작품.]정셰프가 이모티콘과 함께 말했다.
[제 최고 히트작이 될 것 같습니다.]–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