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91
91화
사람에게는 뭐라고 해야 할까.
그런 로망이 있다.
생각보다 큰 의미가 없는 일을, 쓸데없이 멋있게 할 때 로망을 느낀다.
[눈 감고 3점 골] [친구 생일파티를 크게 열어줘 보았다] [고등학교 수업 중에 테러리스트가 침범해서 간지나게 쓰러뜨림]일명 병X 같은데 멋있다.
이것 또한 인터넷 방송에서는 아주 좋은 콘텐츠인데, 이 방면에서 김한영이 가져온 신작이 또 새로운 경지였다.
[대학교 과제를 열심히 함]그냥 그런 영상이었다.
[과제를 해 보려고 하는데요. 그냥 하면 재미없잖아요. 저는 전설이 될 겁니다. 방금 막 메가 무비에서 연락이 왔거든요? 이걸 과제로 제출할 겁니다. 어때요. 재밌겠죠.]단순한 대학교 과제.
그걸 100만 미튜버와의 협업으로 때워 버리겠다는 말.
큰 의미는 없는 일이었다.
굳이 열심히 할 이유도 없는 일.
누구나 한 번쯤 생각은 해 보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사람은 없는 일이었다.
어떤 정신 헤까닥 하는 사람이 할까.
[지금부터 발표하러 갈 겁니다.]김한영이 했다.
[저 미친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학교 과제였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가 존나 열심히 한다 싶었더니 대학교 과제 ㅋㅋㅋㅋㅋㅋ] [학교 과제로 이런 프로젝트를 벌이는 놈이 어딨어 ㅋㅋㅋㅋㅋㅋ]시청자들의 반응이라는 게 폭발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발표 퀄리티 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중경대에 똘갱이가 산다] [형, 약을 먹은 거야? 아니면 먹어야 할 약을 안 먹은 거야?] [저, 저, 저, 무친놈. 끝까지 기만질하는 것 좀 봐] [진짜 기만영은 전설이다…….]불과 10분이 안 되는 영상.
하지만 근래 한창 물이 오른 김한영의 영상이기에 조회 수 오르는 속도는 말이 안 나올 수준이었다.
[조회 수: 79만]근래 빵빵 터졌던 대박 작품들에 비해서는 미약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김한영이 이제 막 30만을 달성한 미튜버라는 것.
가진 몸집에 비하면 이미 압도적인 수치였다.
그렇게 마지막은.
[아 참, 조만간 저희가 또 재미있는 프로젝트 하나 해 볼까 하는데요. 이것도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차기작 콘텐츠 예고와 함께 끝나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치지직-.
화면에 노이즈가 끼더니, 어느 영상이 나타났다.
[채널 테슬라 합류를 발표합니다.]김한영이 채널 테슬라에 합류했다는 메시지.
하지만.
[ㅋㅋ 언제 말하나 했다] [포브스 선정 가장 안 놀라운 일 1위]이제 와서 놀라기에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기는 했다.
* * *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마칠 무렵.
우리는 새로운 제안을 몇 개 받았다.
[무림고등학교 다음 에피소드 촬영 일정을 잡았습니다!]그중 하나는 무림고등학교 1편의 속편.
1편이 대박이니 2편도 어지간하면 히트가 분명한 콘텐츠.
메가 무비 측은 흔치 않은 대박에 몸이 달은 눈치였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에 못지않은 제안이 여럿 이어졌다.
“확실히 몸값이 뛰기는 엄청 뛰었네.”
“그러게, 30만쯤 되니까 다르기는 다르다.”
비즈니스 관련 문의가 여럿 쏟아졌다.
[인트로 제작 관련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합방 생각 없으신가요?] [수익을 보장합니다. 정빙연유의 주식 방송에 함께…….] [이번 주말에 있을 공연에.] [(주) 한솔 악기입니다. 마케팅 관련해서 연락 드립니다.]쏟아졌다.
펑펑 쏟아졌다.
그야 10만 미튜버 시절에도 제안이 오기야 했지.
하지만 이제 양과 질 양면에서 예전과는 차원이 달라졌다.
덩치 큰 미튜버는 물론이고.
[(필독요망) 문연일보입니다. 인터뷰 문의드립니다.]아예 신문사에서까지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는 게 놀라울 따름.
이게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선택하는 입장이 됐네.’
우리가 갑의 위치에 올라섰다는 말이었다.
예전이었다면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고희범이 기뻐 날뛰었을 일감들.
“예아! 예아! 예이에아!”
지금도 기뻐 날뛰는구먼.
아무튼, 전체적으로 몸값이 많이 뛰었다.
나는 턱을 긁다가 중얼거렸다.
“흠, 채널 테슬라 측으로 문의가 들어갈 줄 알았는데 여기로 오네.”
“어차피 같이 일을 안 하면 우리가 다 먹는 조건이니까 상관없지 않나?”
“그것도 그래. 하지만 채널 테슬라가 일을 잘하기는 하니까 굳이 따로 굴릴 필요는 없지.”
“진짜 일 잘하더라.”
괜히 자신만만했던 게 아니라는 정도는 알겠다.
홍보력부터 편집 인력의 수준까지 장난이 아니었지.
‘이제 채널 테슬라 없이 일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하기 어려워.’
몹시 만족스럽다.
말이 길었는데, 전체적으로 우리로서는 흔치 않게 꽤 좋은 포지션에 올랐다는 게 좋은 점.
식구들도 한껏 들뜬 눈치였다.
“여기 장어 식당에서 먹방 한 번 찍어 달라는데?”
조은솔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게임 광도도 있다. 1시간짜리 영상 두 편만 찍어 주면…… 이야…… 광고비를 몇백씩 준대. 이건 꼭 해야겠다.”
“애니메이션 리뷰도 있네.”
고희범과 홍윤서도 마찬가지.
각자 선택의 즐거움에 푹 빠진 눈치였다.
“세미나 참방 요청도 있다.”
정의선도 물론.
구체적인 페이부터 상품 제공까지 갖은 보수가 걸렸다.
협상하기에 따라서는 더 뭔가를 챙길 수도 있겠지.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저 조건들을 사이에 두고 고민하는 식구들의 표정에는 그간 본 적 없는 무언가가 걸려 있었다.
‘나쁠 건 없지만.’
이대로 괜찮은 걸까.
그렇게 일감을 한참이나 고르기를 한참, 나는 생각을 굳히고는 입을 열었다.
“다 거절하죠.”
그 순간이었다.
“…….”
“…….”
한순간 작업실에 적막이 찾아왔다.
그러기를 잠시.
“……거절? 왜?”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고희범이었다.
“야, 이걸 왜 거절을 해.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건수인데.”
“큰 거야 나도 알지.”
“이거 하나 처리하는데 하루면 되겠다. 그럼 몇백 준다잖아. 왜 안 해.”
내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였다.
당황했다기보다는, 아예 내 심리를 모르겠다는 눈치.
하지만 이에 대해서 내가 할 대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아직 때가 아니야.”
시기가 아직 일렀다.
그런데 홍윤서가 황당하다는 듯 표정을 구기더니 말했다.
“때는 목욕탕 가서 벗기는 거고.”
“흠, 제가 그래도 사장인데 그런 표현은 조금.”
“언제는 사장이 아니라 동업자로 봐 달라며.”
“흠.”
논리적으로 타당하군.
이래서 부하 직원으로 학연을 들이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조은솔이 입을 열었다.
“한영이한테도 뭔가 생각이 있겠지. 한영아, 일단 설명이나 해 줄래?”
“음, 짧게 말씀을 드리자면요.”
나는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아직은 이미지를 볼 시기라서요.”
이게 내가 생각하는 핵심이었다.
“이미지?”
“네, 저희 방송의 이미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봤는데, 아직 상업적으로 나설 시기가 아니라는 판단이 섰어요.”
이게 중요했다.
지금, 우리는 한창 네티즌들 사이에서 떡상픽이 된 상황.
이를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네티즌이 저희한테 가진 인식은 크게 셋이에요. 희범아, 숫자 좀 세 줘.”
“하나.”
“대학생들이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송이고요.”
“둘.”
“여태껏 보컬 광고 하나 빼고는 상업성을 철저하게 배재해 왔어요.”
“그랬나?”
“상대적으로요.”
나는 주위를 환기하고는 말을 이었다.
“저희 방송에는 근본이 있어요. 돈보다는 음악 그 자체를 본다는 근본이.”
모노가 나를 볼 때마다 강조한 말이었다.
초심을 잃지 말라고.
상업성을 드러내는 순간, 시청자들은 위화감을 그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감지한다고 말하였다.
‘저 단계에서 성장동력을 잃고 추락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라고 했지.’
모노가 이미지에 유독 집착하는 건, 저런 선례를 봤기 때문이리라.
물론,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기왕 일감을 고른다면 장기적으로 우리 브랜드 가치를 올려 줄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게 맞아요. 희범아.”
“셋.”
“그리고 세 번째로…….”
그 순간이었다.
“…….”
뭐였더라.
뭐라고 할 말이 있었는데, 까먹어 버렸다.
나는 보이지 않는 오리의 발버둥을 치기를 잠시, 적당히 포기하고는 말했다.
“따로 하고 싶은 일감이 있어요.”
그냥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자.
“뮤비 찍으려고요.”
뮤직비디오였다.
박정화 교수님께서 제안했던 일.
그간 고민의 시간을 보내며 다른 일감들과 무게를 재 봤는데, 아무래도 이쪽에 눈길이 갔다.
“뮤비?”
“네.”
“그것도 돈이 되나?”
“솔직히 이걸 찍는다고 해서 당장 저희한테 큰 액수가 떨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이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지.
나는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며 말했다.
“하지만 이건 투자예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투자. 음악인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어요.”
요즘 나 자신도 헷갈릴 때가 많은데, 내 본질은 방송보다는 음악에 있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이미 일정 수입이 된다면, 이 시점에서 충분하다.
나머지는 음악에 쏟아붓는다.
그래.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당장 돈이 벌리지 않는 건 미안한데, 이해해 주세요.”
할 수 있는 일을 마친 순간이었다.
“진짜 사람이 소나무야.”
성민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입을 열었다.
“실용음악과 애들도 저러지는 못할 것 같은데.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돈 욕심 없이 한결같을 수 있을까.”
“그게 소나무니까.”
“꾸준해. 참.”
“그게 소나무니까.”
“대단하네.”
“그게 소나무니까.”
“……일 절 이 절 삼 절 했으면 됐으니까, 이제 그만 하자.”
어느새 피식 웃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백 보 전진을 위해서 한 걸음만 후퇴해 보죠.”
* * *
한번 결정을 내리자 행동은 순식간이었다.
“안녕하세요!”
박정화 교수님이 소개해 주신 영상 제작 스튜디오, 스튜디오 누(gnu).
그곳의 사장이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이야, 선생님께서 소개해 주신다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요. 설마 이렇게 젊은 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 사람도 장난 아니게 젊은 것 같은데.
내 눈으로 보이는 그는 잘 쳐 줘야 30대 중반이나 됐을까 싶은 사람이었다.
‘박정화 교수님 조언을 듣고 해외에서 공부하고 왔다고 했나.’
오중기 사장.
듣기로는 미국의 명문 영화 학교 출신이라고 했다.
근래 한국의 음악 문화가 발전했다는 걸 보고, 자리를 잡으러 돌아왔다고 했지.
단순히 흔한 신생 기업의 사장일 줄 알았는데, 내막을 알고 나자 그는 훨씬 더 무서운 사람이었다.
[선타운 프로덕션이라는 미국 회사에서 차기 감독으로 꼽혔던 사람이야.]선타운 프로덕션.
미국에서도 굴지의 제작사들과 협업하는 영상 기업이었다.
오중기 회장은 그곳에서도 촉망받는 인재였고, 높은 자리로 올라갈 게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케이팝의 가능성을 보고 국내로 복귀했다나.
‘자존심이 엄청날 것 같은데.’
엘리트 중의 엘리트 아닌가.
박정화 교수님이 평범한 스타트업 소개했던 것에 비하면 근본부터가 남달랐다.
아니, 오히려 감탄했다.
이곳이 아닌 다른 일감을 선택했더라면 분명 후회했겠다 싶을 수준.
[갸꿀!]머릿속으로 고희범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교감이다.
다만, 마음속에 걸리는 게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순간이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저희가 막 대형 엔터에 소속되어 있고, 아예 음악으로 올인하고 그런 건 아닌데.”
“전혀 상관없습니다!”
오중기 감독은 주먹을 불끈 쥐더니 말했다.
“저희 입장에서는 이쪽이 더 큰 기회거든요.”
“더 큰 기회요?”
범상치 않은 말에 되물으려니 그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돌만 1년에 50팀이 넘게 데뷔하는 세상입니다. 밴드는 하루에 5팀이 데뷔하고, 랩퍼는 아예 셀 수도 없습니다. 이럴 때는 오히려 미튜버라는 확고한 캐릭터성을 가진 분이 더 나을 수 있지요!”
긍정적이다.
이에 마음속으로 작은 안도가 찾아왔다.
‘마냥 억지로 떠맡은 건 아니구나.’
내심 그런 생각이 있었다.
박정화 교수님이 직접 추천해서 억지로 받아들인 게 아닐까.
은사님의 추천이라면 거절하기도 어려우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입장에서도 조금 곤란할 수 있었겠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려야죠. 오늘은 함께 아이디어를 팍팍 짜내 봅시다.”
이야기가 부드럽게 흘러간다.
하지만 일말의 아쉬움이 남았다.
‘이상하게 빌런이 없네.’
빌런이 없다.
왜, 이런 촬영장에는 빌런이 하나 정도씩은 있다고 하지 않았나.
왜 이렇게 좋은 사람밖에 없지.
이상한데.
‘아니, 분명 좋은 일이야. 세상에 좋은 사람이 많으면 좋은 거지.’
하지만 묘하게 섭섭하다.
그렇게 나도 모를 나 자신의 기시감과 몸부림을 치며 이야기를 나누기를 한참.
뚜루루.
오중기 사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 전화가 와서 조금만 있다가 다시 대화를 나눠도 괜찮겠습니까?”
그렇게 그의 사정으로 짧은 휴식 시간을 얻었을 때였다.
“그냥 완만하게 흘러갈 것 같네.”
“그러게.”
“어쩌다가 이렇게 됐대. 너무 사고가 없는데.”
“좋은 일 아니야?”
“좋은 일이지.”
고희범과 적당히 대화나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왜 네 멋대로 정하냐니까!”
사무실 한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화가 난 목소리가.
“마케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그 교수님이라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이기는 하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얼마나 감사한 분인데.”
“너한테는 은사님이겠지. 하지만 나한테는 아니잖아.”
오.
싸움이라도 일어났나 보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