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92
92화
자기들끼리 싸운다.
그것도 꽤 격하게 싸운다.
이게 누군가의 시선에는 썩 거북한 상황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달랐다.
‘이거지.’
옛 우리 자랑스러운 조상님들은 대대손손 불 구경과 싸움 구경을 최고로 치셨다지.
나 또한 그 피를 이었다.
더군다나 스튜디오에서 작품 제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트러블이라니.
이거야말로 현장의 묘미 아니겠나.
아님 말고.
그렇게 엿듣기를 한참.
“손님들도 계시는데 목소리가 너무 크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
“아, 나도 지긋지긋하다.”
저 둘의 말싸움은 결론 없이 끝이 났다.
“야, 한영아, 나온다.”
“쉿.”
우리도 타이밍을 재고 슬슬 사무실 벽에서 발을 뺄 무렵이었다.
방 안에서 인상이 굳은 남자 한 명이 문을 열고 나왔다.
끼익.
“…….”
“…….”
그와 눈이 마주쳤다.
‘감독 잘하게 생겼네.’
덥수룩한 머리카락과 수염.
그 위로 야구 모자를 쓴 남자였다.
얼굴만 봐도 나 고집불통이요-하고 과시하는 듯한 남자.
그는 우리를 흘긋 보더니.
“흥!”
코웃음을 치고 이내 뚜벅뚜벅 걸어갔다.
아하.
우리를 좀 싫어하시는구나.
간만에 본 빌런다운 빌런에 감탄하는데 고희범이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한영아, 나 조금 관상이라는 걸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잠시 뒤.
휴식 시간이 끝나고 오중기 사장과 다시 마주했을 때였다.
그의 안색은 다소 파리하게 시들어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네.”
“하하, 어서 말씀 마저 마치고 식사나 하러 가시지요.”
앞서 있었던 일을 애써 무마하는 듯한 눈치.
자기들끼리 있었던 다툼을 외부인에게 알릴 생각이 없는 거겠지.
이해한다.
고객을 앞에 두고 잡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만큼 아둔한 일은 없으니까.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궁금하다.’
이미 내 가슴 한쪽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 사람들이 왜 싸웠나 그게 궁금하다.
테슬라가 네온의 투자를 받았고 뭐고 그런 것보다, 당장 눈앞 신생 기업의 내부 싸움이 더 궁금했다.
‘이게 드라마지.’
자세히는 몰라도 우리랑 엮인 일 같은데, 동업자로서 알 권리가 있지 않겠나.
나는 그런 생각으로 물었다.
“저기, 아까 그 사람은 누구예요?”
“……아.”
“조금 전에 문에서 나간 사람이요. 야구 모자 쓰신 분.”
그 말에 오중기 사장이 움찔하더니 말했다.
“그 친구 이름은 김보균이라고 하는데, 저희 스튜디오의 공동 창립자입니다.”
“공동 창립자요?”
“스튜디오 누는 저 혼자서 차린 회사가 아니거든요.”
“역사가 있군요.”
“대학 시절 마음이 맞았던 친구와 손을 잡고 함께 설립했습니다. 원래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무렵 함께 공연을 구경하며 다니다가 의기투합한 사이지요.”
“흠.”
“굉장히 유능한 친구입니다. 어쩌면 저보다도 훨씬 더.”
그는 싱긋 웃음을 짓더니 화제를 넘기려는 듯했다.
하지만 안 될 일이다.
무마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내 호기심은 꺼지지 않았다.
“혹시 싸우셨나요?”
“……!”
그 말에 오중기 사장이 눈을 크게 떴다.
동시에, 고희범도 경악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왜.
왜 사람을 그런 눈으로 보나.
“밖에서 들려서 우연히 들었어요.”
이걸 왜 숨겨.
* * *
잠시 뒤.
오중기 사장이 한숨을 내쉬더니 물었다.
“음, 어디서부터 들으셨나요?”
“대강 전부 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교수님이 어떻고, 마케팅이 어떻고 하는 부분까지 들었어요.”
“……이거 참 죄송하게 됐군요. 좋은 이야기가 아닌데 들리게 했다니요.”
그 나름대로 곤란한 눈치.
하지만 내게 죄송하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내 가슴은 곧 진실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더없는 활기를 띠고 있으니까.
그렇게 잠시 뒤, 그가 체념한 눈치로 입을 열었다.
“어차피 곧 알게 될 일이었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됐다.
오중기 사장이 말을 이었다.
“사실, 아까 그 친구는 이번 일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요?”
“조금 더 고급진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급지다라.
우리 일감은 고급지지 않다는 건가.
하지만 조금 전 그와 나눴던 대화를 고려하거든, 이 말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었다.
“큰 엔터 쪽 일감을 맡고 싶은 모양이네요.”
“그렇습니다.”
오중기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어차피 같은 일감인데 무슨 위아래가 있겠습니다마는, 저 친구는 그렇지 않다는 거지요.”
“흠, 다른 큰 엔터와는 일이 잘 안 풀렸나 보네요.”
“……그것도 맞습니다.”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시장에는 뮤지션이 많지만, 명성 있는 스튜디오도 그만큼 많거든요. 클라이언트들은 보수적입니다. 실적이 증명된 곳에 처음부터 맡기고 싶어 하지요.”
“다 바쁜가 보네요.”
“예, 어지간한 대형 스튜디오는 스케줄 문제로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그냥 기다리고 말지 라는 생각입니다.”
문득, 오중기 사장이 박정화 교수에게 선을 놓아 달라 부탁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야심 차게 귀국해서 스튜디오를 차렸지만, 일감이 안 들어왔나 보군.’
미국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겠다, 한국으로 오거든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바닥은 신생 업체에 일감을 바로 안겨 줄 만큼 곳간이 넉넉하지 않았겠지.
“이러다가 몇 달을 내리 쉬었습니다.”
오래 쉬셨구나.
“그래도 대형 엔터가 아니라도 신인 아티스트도 많지 않나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아까 그 친구 고집이 상당히 강해서 말입니다.”
오중기 사장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저야 필요하면 어떤 일이든 어떻겠냐는 생각입니다만, 아까 그 친구는 조금만 더 찾아보면 바라는 일감이 들어오지 않겠냐면서 다소 완강히 벽을 세우더군요.”
“그럼 저희와 작업하기로 하셨던 건.”
“예, 면목 없습니다만, 독단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일단 일감을 받아 놓으면 억지로라도 받아들이지 않겠나 생각했습니다. 더욱이 요즘 한영 님의 방송이 상당히 잘 풀렸던 것도 있고 말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시나리오를 세워 뒀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참 뭐라고 해야 할까.
무슨 심각한 일인 줄 알았더니, 실상을 알자 우습기 짝이 없었다.
‘둘 다 문제네.’
내가 보기에는 눈앞의 오중기 사장이나, 아까 그 공동 대표나 비슷한 사람이었다.
‘확실한 비전 없이 일단 업체를 차리고 본 거나, 가진 형편에 비해 쓸데없이 눈만 높은 거나 그게 그거지.’
동업자의 확실한 동의 없이 일감을 받고 본 것도 그러하다.
무슨 어린 자식을 청학동 서당에 가둬 두면 사람 된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내가 보기에는 어느 쪽 일 처리든 전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김진산 사장님이 살아 계셨더라면 혈압 올라서 돌아가셨겠네.’
아니지.
아직 안 돌아가셨지.
유감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죽은 사람이 된 김진산 사장님을 부활시켜 드리고는 말을 열었다.
“그럼 저희 촬영은 없는 일이 된 건가요?”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그렇게 신용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중기 사장은 단언하듯 답했다.
“저 혼자서 진행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 작품은 진행할 겁니다.”
이건 다행이다.
그나마 아예 책임감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마음속에 작은 의문이 남았다.
‘혼자서도 진행할 수 있는 건가.’
이 스튜디오가 공동 체재라고 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다.
“그럼 아까 그분은 이 스튜디오에서 하시는 일이…….”
“예, 그 친구도 물론 유능합니다. 어쩌면 저보다도 훨씬 더. 애초에 저 친구와 저는 서로 특기 분야가 달랐으니까요.”
그렇게 말하기를 잠시.
오중기 사장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친구도 저희 작업물을 보거든 생각을 고쳐먹을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희망을 안 버리셨군.
일단 자기 안에 이상론을 세우고는, 저지르고 본다는 게 전형적인 중소기업 창업자다운 발상이었다.
‘너무 긍정적으로 일을 하는 거 아닌가.’
일감 하나 잘 팔았다고 고집을 꺾을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저렇게 꽉 막혀 있지도 않았겠지.
물론, 나야 이 회사가 반으로 갈라지든 쪼개지든 가루가 되든 상관없다.
하지만 내 작업물은 별개의 이야기였다.
기왕 뮤비를 찍기로 결정했다면, 잘 찍어야 하지 않겠나.
‘아까 그 사람, 일을 잘한다고 했지?’
스튜디오 하나에 2인 감독 체재를 꾸린 데는 다 이유가 있을 터.
나는 이 부분에 주의를 기울이며 물었다.
“두 분은 보통 공동으로 작업하실 때 어떤 식으로 진행하셨나요?”
“음,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그는 설명하려는 듯 입을 열더니 이내 다시 다물었다.
고작해야 대학생 1학년들 앞에서 좀 너무 떠들었다는 걸 눈치챈 모양.
‘아니지, 멈추면 안 돼. 더 떠들어야지.’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궁금해서요.”
“아, 예, 알겠습니다.”
그는 스스로 석연치 않은 듯하면서도, 이왕 풀어놓은 이야기라는 듯 말을 이었다.
“보통 제가 큰 얼개를 잡으면 저 친구가 디테일을 다듬는 방식이었습니다.”
“디테일이요?”
“대학생 시절부터 한 번 파고들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친구였거든요. 대신 디테일에 집착하다가 큰 그림을 놓칠 때가 많았습니다. 반면, 저는 전체적인 그림은 그려도 디테일은 자주 놓쳤고요.”
그 순간이었다.
“서로 약점을 보완해 준 거네요. 저희처럼.”
“예, 예? 예. 그렇습니다.”
난데없이 끼어든 고희범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 친구와 저 둘이 손을 합치면 천하무적이라도 될 줄 알았습니다만, 첫 단추부터 이렇게 되었으니 면목이 없습니다. 괜히 다른 스튜디오에서는 1인 감독 체제를 고수하는 게 아니더군요.”
그렇다고 하신다.
상당한 회의감에 찬 목소리.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본론 하나에만 집중했다.
‘어찌 됐든 둘이서 함께 작업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단 말이지?’
그렇다면 알겠다.
그냥 진행해도 되겠다만, 더 잘할 수 있다는데 굳이 하책을 택할 필요는 없지.
내가 생각하기에 이번 난제를 해결할 방법은 따로 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보통 이럴 때 어떻게 했더라.’
홍윤서가 추천해 준 소설 속 주인공들의 해결 방식이 있었다.
그게 무엇이냐.
어떠한 꼬인 상황이라도 실력 행사로 해결하는 것.
‘그래, 나도 그렇게 해 보자.’
떠오르는 방법이 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같이 공연 하나 보러 오실래요?”
“예?”
“두 분이 같이요.”
내 말에 오중기 사장이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물었다.
“공연이라면.”
“조만간 저희 공연이 있거든요. 혹시 모르잖아요. 저희 공연을 보면 생각이 달라지실지도.”
“그건.”
고민하는 목소리.
나는 재촉하듯 말했다.
“두 분은 원래 같이 공연을 보러 다니는 사이라고 하셨죠?”
“예, 그렇습니다만.”
“마지막으로 공연을 보신 게 얼마나 됐죠?”
“그게 부끄럽습니다만.”
오중기 사장은 헛기침을 뱉더니 말했다.
“귀국한 뒤로는 회사 운영에 정신이 없어서 자리를 비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렇죠?”
자주 있는 일이었다.
음악이 좋아서 이 업종에 개업했는데, 막상 일을 시작한 뒤에는 음악을 멀리하게 되는 일.
나는 웃으며 말했다.
“굳이 일 때문이 아니라도 좋으니까, 머리도 식히실 겸 한번 구경하러 오세요. 조만간 공연이 있거든요.”
“시간이…….”
“업무라고 생각해 주세요. 아직은 기획 단계이기도 하고, 제 무대를 보면 어떤 영감을 받으실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인터넷 방송이랑은 또 많이 다를 거예요.”
여기까지가 내 생각.
어차피 내 뮤비를 찍을 일 아닌가.
그렇다면 굳이 설득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쪽이 내 무대를 라이브로 한 번쯤은 봐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역시 공연은 라이브지.’
내 말에 오지환 사장은 반은 납득한 듯, 나머지 반은 체념한 듯 말했다.
“그럼 일정은.”
“한창 스케줄을 잡는 와중이라 조만간 다시 연락드릴게요. 아, 참.”
나는 말을 끝내려다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두 분, 어떤 음악을 많이 들으셨는지도 알려 주세요.”
* * *
그렇게 첫 미팅은 끝났다.
“으으, 피곤하다.”
대강 이야기를 마치고 스튜디오를 빠져나오는 길.
고희범은 미심쩍은 눈치로 내게 말했다.
“야, 진짜야? 조만간 공연 있다는 거?”
“아, 그거?”
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당연히 뻥이지.”
“…….”
그 말에 고희범의 이마가 구겨졌다.
이럴 때는 그 말을 하자.
“내가 너랑 상의도 없이 단독으로 일을 진행할 리가 있나.”
“……!”
구겨졌던 이마가 도로 원상복구 됐다.
쉽다.
나는 속으로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
“돌아가서 바로 준비 시작하자.”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