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93
93화
이번 축제의 테마가 잡혔다.
쾅.
나는 책상 위에 콜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한 사람의 사고관 자체를 바꿔 버릴 정도로 강력한 공연. 그게 이번 공연의 목적이야.”
“…….”
내 말에 한윤태가 눈을 깜빡거렸다.
반응이 썩 미적지근하다.
이는 내가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기에 재차 말했다.
“아이돌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막상 아이돌들 공연 한 번 보면 팬이 될 때가 많다잖아? 편견을 부수려면 역시 음악으로 고막을 부숴 버리는 게 최고지.”
“흐음.”
여전히 심드렁하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내 말을 진지하게 안 듣고 있군.’
한 귀로 흘리는 표정이었다.
이럴 때 써먹기 좋은 특효약이 있지.
머릿속으로 한윤태의 흑역사를 뒤적이려니 곧 그럴듯한 게 하나 떠올랐다.
“네가 트로트 개무시하다가 김두영 옹 만나러 가서 대가리 깨졌던 것처럼…….”
“야, 야!”
그 말에 한윤태의 얼굴에 보랏빛이 돌았다.
그러더니 허겁지겁 외쳤다.
“그래서 찾아가서 사과했잖아! 손 싹싹 빌고!”
“그렇지? 아무튼, 음악에 강하게 박힌 선입견을 바꾸기에는 라이브 공연만 한 게 없다는 거지.”
“끄응, 의견 자체는 동의해.”
한윤태는 골치가 아픈 듯 머리를 긁적거리기를 잠시.
마침내 올바른 정신을 되찾았는지 말했다.
“하지만 네가 말하는 그 사람은 잣대가 어지간한 프로급 이상으로 높다는 거잖아.”
“나도 프로급이야.”
“누가 그걸 모른다디? 중요한 건, 네가 그 사람의 사고를 바꾸고 싶다면 그만큼 비교 대상도 잘 설정해야 한다는 거야.”
“비교 대상?”
“그래, 대형 엔터 수준의 뮤지션이 아니라면 껄끄러워한다며. 그렇다면 그런 수준의 뮤지션 앞에서 당당하게 실력을 과시해야지.”
퍽 그럴듯한 말이다.
하지만 내가 예상하고 왔던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너를 찾아왔잖아.”
나는 씨익 웃고는 말했다.
“어지간한 유명 스타 수준 인지도에 실력도 좋은 뮤지션이랑 연줄 좀 놓아 달라고. 같이 공연하게.”
“…….”
그 말에 한윤태의 눈이 가로로 길게 좁아졌다.
나는 저 표정의 뜻을 알았다.
‘이게 뭔 개소리야.’
대충 이런 뜻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한윤태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말했다.
“나한테 그런 인맥이 어디에 있겠냐.”
“왜 없어.”
“찾아보면 있기야 있겠지. 하지만 내가 지금 공연을 안 하고 산 지 얼마나 됐는데, 이 시점에 찾아가서 손을 비비라고? 우리 신인 좀 게스트로 끼워 달라고?”
“안 될까?”
“안 되지! 임마!”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지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냐.”
“갑자기 찾아와서는 되도 않는 부탁을 하니까 그렇지. 맡겨 뒀냐?”
그는 말을 몇 마디나 했다고 속이 타는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탁자 위에 탕 놓으며 말했다.
“애초에 그렇게까지 네가 그 사람한테 맡겨야 할 이유가 있냐? 솔직히 네가 그렇게까지 구질구질하게 물고 늘어지는 성격은 아니잖아. 뭔가 꽂히기라도 했어?”
내 행동이 그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답하자면.
“어.”
있었다.
나는 가슴 속으로 묘한 두근거림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공동 창업자의 이름이 김보균이라고 했나. 그 사람 포트폴리오를 다 봤거든. 그런데 그게 썩 괜찮더라.”
“얼마나 대단했길래.”
“대단하다기보다는.”
나는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나랑 맞을 것 같더라.”
그런 느낌이 있었다.
마땅히 엄청나게 특출나지는 않다.
업계 일류 스튜디오 수준의 완성도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포트폴리오에서는, 나랑 서로 윈윈할 수 있을 것 같은 끌림이 느껴졌다.
‘상당히 감각적이었지.’
단순히 금전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직감의 문제.
그리고 예로부터 내 직감이란 것은 썩 잘 맞는 편이었다.
아니다.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말하자면, 서로 파장이 맞고 말고의 문제도 아니었다.
‘하고 싶다.’
이게 진짜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해야 하는 것이었다.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안 하면 시간 지나서 무조건 한 번쯤은 후회할 거야.”
“고작 그런 이유로?”
“나한테는 이런 이유가 제일 중요해.”
“……어휴.”
한윤태는 할 말을 잃은 듯 마냥 웃기만 하더니 말했다.
“그래, 널 누가 말리겠냐. 딱 너답다. 짜식아.”
“잘 아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 어려울 것 같다. 나도 이제 늙었어. 옛날처럼 아무 곳이나 찾아가서 손 비비기가 쉽지가 않아.”
작은 회한이 묻은 말이었다.
한윤태, 그 또한 어느덧 50을 한참 넘어서 60에 접어드는 나이.
‘현실적으로 뮤지션으로서는 전성기를 지나도 두 자릿수로 지났겠지.’
갑작스레 공연에 자리 하나 꽂아 달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듯했다.
“옛날처럼 라이브 무대가 흔하던 시기라면 차라리 모르겠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거든.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진짜 어렵겠다. 시간이라도 충분하면 모르겠는데, 당장 필요하다며? 그럼 어렵지.”
아무래도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안 되는 눈치.
그렇다면 더 강요하기 어려운 노릇이기도 했다.
‘어쩌지. 그냥 적당한 공연에 초대해야 하나?’
그건 효과가 조금 약할 것 같은데.
임팩트 있는 한 방이 필요하다.
그래서 고민하던 참이었다.
띠링.
가게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한윤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이야, 오늘도 들리셨어?”
문 앞에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렸습니다. 사장님 커피가 그리워서요.”
“이 사람은 거짓말을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하네.”
“흐흐, 이해해 주십시오. 이거 선물입니다.”
“아이고, 또?”
어느새 시끌벅적해진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와중이었다.
“아.”
있었다.
이 상황에 협조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내게도 있었다.
* * *
며칠 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느 남자가 구세주라도 본 눈길로 내게 인사했다.
편안한 활동복을 입은 채로 얼굴에 꽃처럼 싱글벙글 웃음 가득한 남자, 그가 재차 말했다.
“방송 늘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메가 무비랑 같이 촬영하신 거. 이야, 엄청나던데요?”
어쩐지 접대 말투인 그의 정체는 바로 모 레이블의 과장, 손 과장.
내가 소개를 받은 곳의 직원이었다.
그가 주먹을 불끈 쥐며 각오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 사장님에게 감사 인사라도 드려야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코앞에 답이 있는데 헤매고 있었네.’
며칠 전.
플러그인에서 한윤태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와중이었다.
한 남자가 가게 안으로 난입하듯 등장했다.
그 정체가 바로.
[한영 님도 같이 계셨네요.]채널 테슬라의 강도수 사장이었다.
[어쩌다가 여기에.] [요즘 종종 들립니다. 사무실이 가까워서요.]그렇다.
플러그인이나 테슬라 사무실이나 둘 다 홍대 도보 거리.
영업 겸사겸사 단골이 된 듯했다.
[아하, 그런 사정이 있으셨다면 저희한테 미리 말씀을 주셨다면 좋았을 텐데요!]이게 이쪽 레이블로 소개를 받은 연유였다.
채널 테슬라는 사실상 네온의 자회사에 가까운데, 그들과 마찬가지로 네온의 투자를 받은 레이블에 나를 소개해 준 것.
[마침 다행입니다! 저희도 급한 참이었는데, 이렇게 시기가 맞아서 천만다행이군요.]테슬라가 중간에 끼자마자 일사천리, 아니, 하이패스로 일이 진행됐다.
이게 참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렇지, 내가 먼저 테슬라에 소개를 부탁해도 되는 일이었지.’
뭐라고 해야 할까.
그동안 테슬라에서 먼저 던져 주는 일감만 먹다 보니까, 내 쪽에서 일감을 달라고 말할 생각을 못 했다고나 할까.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테슬라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일이 뭔가.
기존의 MCN을 훨씬 뛰어넘는 인재 네트워크 아닌가.
단순 인터넷 방송을 넘어 현실의 연예계까지도 발을 걸친 그 인맥 말이다.
어쩌다 보니 그걸 이용할 생각을 거의 안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앞으로는 종종 이용해야겠어.’
나는 내심 좋은 MCN과 계약했다는 걸 느끼며 입을 열었다.
“비록 오늘은 대타로 왔지만, 오늘 공연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갑작스럽게 펑크가 나서 어쩌나 싶었는데 믿음직한 분이 와서 너무 좋네요.”
손 과장이 재차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오늘은 저희 쪽도 신인이 오르는 무대이니 함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역시나 환한 웃음.
이쪽 업계 영업직은 이런 웃음이 기본 장착인가 보다.
‘대타라.’
말 그대로, 이번에 나는 어느 행사의 대타로 참가했다.
모 지역 축제의 저녁 무대.
특별 게스트로 요청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쪽이 갑작스러운 성대 문제로 못 오게 됐다나.
그래서 나를 대타로 초청한 것.
‘일단 일은 잘 풀린 것도 같은데.’
내가 소개받은 업체, 숲 뮤직은 업계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곳이다.
비록 YTG 같은 초대형 기획사라고 볼 수는 없지만, 알짜배기 뮤지션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허리가 튼실하다고나 할까.
이 정도라면 실력을 비교할 대성으로서 크게 모자라지 않을 터.
하지만 내 가슴속에는 작은 긴장 또한 있었다.
‘어쨌든 오늘 마주할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현역 프로란 말이지.’
오늘, 나는 진정한 업계의 프로들을 마주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 실력에는 자신이 있다.
하지만 여태 내가 상대했던 사람들이란 거의 다 아마추어에 가깝지 않았나.
그나마 강유미가 프로지만, 너무 오래 쉬었지.
그러하니 요즘 시대의 진짜배기 프로들은 부담스러운 게 당연.
‘아, 몰라.’
이 사람들도 나를 프로라고 생각했으니까 불렀겠지.
방송은 이미 프로고, 음원도 냈다.
근래 공식적으로 프로가 됐으니 불렀겠지.
일단은 무대 위에 서고 볼 일이다.
불과 며칠 사이에 준비한 무대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긴장만 가득한 건 또 아니었다.
‘또 시험대에 올랐네.’
신인 시절이 떠올랐다.
그 당시 내게 모든 무대는 시험대 아니었나.
나라는 사람을 바라보는 그 모든 시선을 보기 좋게 꺾어 주는 하루하루.
그런 시대를 살아왔던 게 나였다.
근래 들어서는 방송이 궤도에 오르면서 고생할 일이 잘 없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다시 돌아왔다.
어째서인지 모를 두근거림에 가만히 서 있는데, 홍윤서가 입을 열었다.
“크, 드디어 내가 유리 무대를 직관하는 날이 오는구나.”
좀 많이 신난 눈치.
유리는 오늘 무대에 오를 예정인 아이돌 가수의 이름인데, 홍윤서는 그녀의 무대를 볼 생각에 기뻐 날뛸 지경이었다.
“원래 아이돌 좋아했어요?”
평소에는 안 들었던 것 같은데.
의구심이 들어 물어보려니, 그는 너무나도 강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영아, 잘 기억해 둬. 군대 다녀온 한국 남자 중에 아이돌 안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아니, 왜 없어.
있을 수도 있지.
게슴츠레 바라보려니, 그는 재차 말했다.
“나는 네가 정말 부끄럽다. 어떻게 유리를 모르냐?”
“알아야 돼요?”
“요즘 신인 중에 가장 크게 뜬 게 유리인데 쯔쯔, 하여간 지가 복 받은 줄도 몰라요.”
“…….”
이건 또 무슨 말이래.
“먼저 뮤직비디오 찍자는 업체도 나오고, 공연하고 싶다니까 대뜸 기획사랑 연결이 되고. 하필 그렇게 같이 무대 오르는 게 유리고. 말도 안 나온다. 네가 무슨 신의 아들이냐? 운은 진짜.”
운도 다 내게 실력이 있기 때문에 따라오는 거 아닐까.
반박하려는데 성민아가 눈을 좁게 뜨더니 한심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운이 어딨어요? 운도 다 실력이지.”
와.
네가 모처럼 마음에 드는 말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겠죠. 하루 이틀이에요? 기만하는 거.”
야 이.
사장이 되고 위엄이 붙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가 편해졌나 보다.
은근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어딘가 가슴 한쪽 구석이 간질간질한 게 썩 나쁜 기분이 아니라 내버려 두기로 했다.
‘오늘만 봐준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독하다, 독해. 이래도 화를 안 내?”
고희범이 옆구리를 찔렀다.
이건 선 넘었지.
“시급 50% 삭감.”
그 순간이었다.
고희범은 굳은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마스터, 저 무뢰한들을 사장님의 충실한 검, 저 고희범이 무찌르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이야.”
놀랍다.
태세 전환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드립을 치기 위해서라면 자기 체면 따위는 먼지보다도 가벼운 것이라는 저 마음가짐.
유감이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 웃고는 말했다.
“얼른 무대나 준비하자.”
이번 무대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내게 기념비적인 무대가 될 터.
잘해야겠다.
그냥 잘하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 잘해야겠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