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94
94화
김보균.
그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으리라.
수재.
미국 유수의 영상 학교, AFU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 중의 수재이자, 현 스튜디오 누(Gnu)의 공동창업자.
겉으로 보기에는 모자랄 것 없는 그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었다.
‘성장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작은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차차 규모를 키우는 것.
그게 그의 꿈이었다.
그러다가 훗날 자기만의 스튜디오를 꾸려, 언젠가는 한국인 최초로 MTV 비디오 상을 타내는 게 그의 원대한 목표.
실제로 대학을 졸업한 직후만 해도 그의 계획은 꽤 순탄했다.
하지만 그가 한국으로 귀국했던 건, 미국에서 어느 한계를 맞이한 탓이었다.
[이번 프로젝트, 왜 갑자기 폐기된 거죠?] [보균, 이 바닥에서 일하다 보면 이 정도쯤은 비일비재해.] [제가 이 일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아시잖아요.] [성과로 증명하자고.]프로젝트가 통째로 날아갔다.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그가 직면한 현실이기도 하였다.
스타트업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한번 일이 꼬이면 계속 꼬이면서 지옥으로 빠져든다.
이후로도 그 스타트업은 계속해서 꼬이고 또 꼬였고, 처절하게 망해 버렸다.
여기에서 끝났더라면 차라리 나았을 터.
문제는 그 이후 찾아온 두 번째 폭풍이었다.
실패한 스타트업에서 몇 년을 실적 없이 머무른 결과, 커리어가 제대로 꼬여 버린 것.
사실상 백수만도 못한 신세였다.
뒤늦게 이직하려 한들, 그런 그에게 눈독을 들이는 회사란 드물었다.
‘실력만 있으면 어디서든 인정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의 인생이 꼬이는 순간이었다.
그러던 와중 대학 시절 동기, 오중기가 그에게 접근했다.
[보균아, 알지? 너랑 내가 손을 잡으면 뭐든 할 수 있다.]오중기는 그와는 달랐다.
처음부터 좋은 기업에 들어가 좋은 일자리에서 승승장구했지.
어쩌면 그보다 훨씬 합리적인 인물일 수도 있는 일.
[한국으로 가자. 노다지가 있다.]그런 그의 제안에 따라 한국에 돌아왔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좋은 일감만 받으며 첫 단추부터 잘 끼우겠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그게 될 리가 있나.
이래저래 없는 돈만 깎아 먹으며 버티는 나날이었다.
“하이고, 요즘 친구들은 진짜 대단하네.”
그의 동업자, 오중기가 갑자기 공연을 보자며 끌고 왔다.
못마땅하다.
가뜩이나 사업이 안 풀려서 힘든데, 갑자기 숨이나 돌리자니 이게 뭔가.
‘이런 자리는 또 어디서 얻어서.’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중기는 신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야, 노래 잘 부른다. 진짜 상향 평준화가 엄청나다니까. 요즘은 라이브가 다 기본이야.”
좀 너무 들떴군.
평소였다면 의식조차도 하지 않았을 터.
하지만 요즘 상황에는 단순히 기뻐한다는 사실조차 성질을 긁었다.
“중기야, 이럴 시간이 있으면.”
일단 돌아가자고 말하려는 찰나였다.
“어우, 지긋지긋해.”
오중기가 귀를 손가락으로 틀어막더니 말했다.
“보균아, 우리가 일만 하는 사람이냐? 가끔은 머리를 비워 두고 좀 쉬자고. 마지막으로 공연을 보러 온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어차피 일감도 없는데.”
“…….”
너무나도 자유분방한 마인드였다.
잠깐 쉬자는 말.
쉬는 거 나쁘지 않지. 하지만 지금 할 말은 아니지 않나.
도를 넘은 방만함에 마음속으로 짜증이 울컥 솟으려는 순간이었다.
“너랑 나랑 한창 여기저기 싸돌아다닐 때 생각나지 않냐?”
오중기가 웃으며 말했다.
“왜, 있잖아. 어디서 누구 괜찮다는 공연 자리 있으면 밤새 차 끌고 가서 보고 오고 그랬잖아. 식비도 없어서 골골거리면서도, 공연 보는 돈은 안 아끼고.”
그랬지.
분명 그랬지.
옛날에 그렇게 살던 시절이 있기는 했다.
“무대에 누구 처음 올라오면, 그 사람이 뜰지 안 뜰지를 두고 서로 내기하기도 했고. 기억나? 지터버그. 걔들도 신인 때는 우리 동네 클럽에서 공연하고 다녔는데, 지금은 저 하늘로 올라가 버렸잖아.”
은근히 있는 일이었다.
미국의 아티스트들은 동네 클럽에서부터 공연을 시작해, 천천히 명성을 얻다가 메이저 레이블의 눈에 띄어 데뷔하는 루트를 밟는 게 정석.
그들 또한 처음에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꿈을 키웠다.
“우리도 저렇게 되자고, 작은 업체를 키워서 언젠가 세계 최고의 스튜디오로 키워 내자고. 그리고 또 다른 최고를 만들어 보자고 했었지.”
참으로 하잘것없는 옛날이야기다.
이제는 잘 기억도 안 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저 말이 퍽 감상적으로 들려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 시장에 기여해 보자고 했잖아.”
이어진 말에 김보균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랬던 시절도 있었지.”
아마도 눈앞에서 빛을 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리라.
그래.
그의 목표도 저런 것이었다.
반짝이는 빛을 가진 사람들이 찬란한 빛으로 자라날 수 있게끔 돕는 게 그들의 첫 목표 아니었던가.
‘그립네.’
그렇게 옛 생각에 잠긴 순간이었다.
“보균아.”
오중기는 뭔가를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냥 당장 잡히는 일부터 차근차근 도전해 보자. 응?”
그 말을 들은 순간이었다.
‘어쩐지 혓바닥이 길더라니.’
숨이 턱 막혔다.
지금까지 감성팔이를 했던 게, 전부 이 말을 꺼내기 위한 빌드업이었단 말인가.
지긋지긋하다.
벌써 몇 달이나 옥신각신하지 않았나.
하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흔들렸다.
왜냐.
그가 스스로 생각해도 성격 나쁜 그를 챙겨 주는 사람은 오중기 정도인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요즘 너무 신경이 곤두선 걸 수도 있다.’
말마따나 오중기가 그보다는 사업을 잘 알지 않겠나.
그간 너무 콧대가 높았던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이라는 건 있다.
‘인터넷 방송이라.’
방송에 악감정은 없다.
하지만 음악을 음악으로 대하는 사람의 일감을 받고 싶은 게 그의 심정이었다.
이게 그의 마지노선.
지금 저 무대 위에 올라온 뮤지션들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저 빛나는 열정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저런 사람들의 뮤직비디오라면 얼마든지 촬영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한참이나 생각하던 와중이었다.
‘그래, 저 정도면…… 음?’
무대 위로.
한 사람이 올라왔다.
“저 사람은…….”
“쉿.”
오중기가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공연장에서는 조용히.”
“…….”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누구보다 열심히 떠들던 사람께서 무슨.
* * *
‘장관이네.’
내 앞서서 두 팀의 무대가 끝났다.
하나는 신생 아이돌 그룹이고, 하나는 신인 싱어송라이터.
둘 다 실력은 나무랄 것이 없었다.
‘이 정도는 해야 이 시장에서 밥벌이라도 한다는 거지.’
좋다.
역시나 프로 아닐까 봐 훌륭하다.
흔히 대중이 프로들의 실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다.
얼마나 음정을 잘 맞추고, 고음은 잘 올라가고, 안무는 칼 같고 하는 것들.
하지만 프로에게는 또 다른 기준이 있었다.
‘몰입력이 강렬했지.’
현장에서 얼마나 무대를 빨아들이냐였다.
이건 실전에서만 알 수 있는 일.
그 내용물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하지만.
저들의 실력을 고평가함과 동시에 또 다른 확신도 들었다.
‘못 비빌 건 없겠네.’
이제 본격적인 프로들과도 정면에서 겨룰 수 있을 수준까지 컨디션이 회복되었다는 것이었다.
‘손가락이 가벼워.’
그간 다른 장르를 시도했던 덕분인지 몰라도, 조금 더 손가락이 자유로워진 것 같은 기분적인 기분.
길어진 손가락과 새 기타에 완전히 적응한 탓일까, 연주도 더 편하다.
발성도 옛날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고쳐졌다.
이 목소리에 맞는 표현법도 고안해 냈다.
이제 노래만 부르면 될 일.
그리고 여기에서 내가 부를 노래 또한 정해 왔으니,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겠지.
“아, 아.”
마이크의 상태를 간단하게 확인해 봤다.
선을 타고 넘어간 목소리가 앰프를 통해 부풀어 올랐다.
‘이 정도 느낌.’
내 몸과 이곳 현장의 간격을 확인했다.
“아, 아. 부르르르.”
이건 본격적으로 소리를 내기 전에 목의 컨디션을 점검하는 기법.
부끄럽군.
하지만 장영민 원장에게 신신당부를 들었다.
[하면 무조건 낫습니다. 알면서도 안 하면 바보입니다.]하나둘씩 쏠리는 관객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유감이다.
그렇게 몇 마디 더 내놓아 조율을 마칠 무렵.
나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신인 가수 김한영이라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방송인보다는 가수로서 서기로 했다.
특별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그런 기분이라서.
부를 노래는 며칠 전부터 부랴부랴 준비해 왔다.
“지터버그의 innocent world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지터버그.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명이었지만, 뮤직비디오가 대박을 치면서 한순간에 유명해진 밴드였다.
뮤비 내용이 뭐였더라.
남의 결혼식장에 찾아가서 축가를 불러 주는 컨셉이었나.
아닌가, 이건 다른 밴드였나.
‘캘리포니아 해안선 대장정을 컨셉으로 찍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쪽이든, 지터버그라는 밴드는 파격적인 뮤직비디오로 인기를 끈 밴드였다.
이래저래 재밌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뮤직비디오란 어디까지나 사람을 끌어들일 출구일 뿐.
그들을 잡아 두는 건 음악의 힘이었으리라.
나는 그 음악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Here’s my heart, you will never get this before I die. I’m not talking about the words, but the meanings.”
사람의 마음은 그 어떤 경우에도 자유로운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가사.
어떻게 보면 요즘 현대인들에게 유독 와닿는 곡일지도 몰랐다.
“I need a place to stay, not a place to live. Give me communicate, not negotiate.”
솔직히 나는 팝송을 많이 부르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음악에는 언어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옛 클래식에 가사가 있어서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던가.
어떠한 음악이든 그 안에 있는 힘을 믿으면, 나 또한 그 힘을 다룰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감동을 담자. 마지막 한 방울까지. 꽉꽉 눌러 담는 거야.’
중요한 건 표현이었다.
지금의 내 목소리는 이런 곡을 부르기에 몹시 적당했다.
위로받는 목소리.
마찬가지로 기타에도 힘을 담을 수 있기 마련이었다.
‘사람을 위로하는 터치.’
내가 이렇게 생각할 뿐, 관객에게는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각자 다른 해석을 품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런 사람은 그냥 그렇게 느끼면 그만이리라.
사람마다 감동이 다르기에 음악이기 때문.
“Let’s make our own story. Our own story, not anyone else. We are all the main characters of life. Sometimes we fall down because we are human. then just shake it off and get up. there is always misery before glory comes. That’s life.”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 순간만큼은, 바깥에 어떤 일이 있든 내게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산처럼 쌓인 부도, 명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음악.
음악만이 내게 주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음악을 좋아했나 보다.
음악에 몰두하는 순간에는 이 세상의 모든 걸 잊을 수 있으니.
그렇게 잠시 뒤.
연주를 마칠 무렵이었다.
스륵.
나는 이마 위에 비처럼 흘러내리는 땀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즐겁게 보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한 순간 깨달았다.
“아.”
이거 방송 아니지.
이 사실을 가까스로 눈치챈 순간 무대에서 푸흐흡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홍윤서였다.
그를 시작으로 웃음이 번져 나갔다.
‘시급 깎는다. 꼭 깎는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