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96
96화
행사도 대충 마쳤겠다.
거기에서 더 볼 일은 없다.
우리는 슬쩍 행사장을 빠져나와 인근의 카페로 향했다.
‘사람이 많네.’
묘하게 사람이 많다.
나나 고희범, 그리고 스튜디오의 두 사장이야 뭐 업무 관계자니까 그렇다 치자.
하지만 나머지 식구들은 얼떨결에 따라온 모양새.
‘돌려보낼까?’
고민하기를 잠시.
행동에 옮겼다가는 홍윤서가 두고두고 꼬투리를 잡을 것 같아 포기했다.
[아이고, 아이고, 이제 나이 먹었다고 대접도 안 해 주네. 아이고 내 팔자야. 내가 잘못이지. 나이 많으면 빠져야 하는데, 앞에서 어슬렁거린 내가 잘못이야. 하지만 한영아…… 너도 잘못 있는 거 알지?]보지 않아도 그의 꼬장이 머릿속에서 4K 화질로 재생되었다.
실제로도 조금 전부터 그의 표정에서는 이상하리만치 혼이 빠져 있었다.
‘오늘은 몸이 안 좋으신가 보네.’
걱정이다.
얼른 끝내고 돌아가야지.
그렇게 서로 개 보듯 닭 보듯 눈치만 살피는 분위기가 한창이나 이어졌다.
‘이러면 재미없는데.’
어쩔 수 없지.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 생각이 없다면, 내가 선수를 치는 수밖에.
“흠흠.”
나는 헛기침을 뱉고는 물었다.
“오늘 저희 공연 어땠어요?”
본론을 시작해 보자.
* * *
본론을 꺼냈다.
오늘 공연을 준비한 이유가 무엇인가.
단순히 잘하는 정도를 넘어, 한 사람의 선입견을 부숴 버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따로 말할 거 있겠습니까.”
오중기 사장은 이 분위기가 힘겨웠는지, 기다렸다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최고였습니다!”
“음.”
“제가 한국에서 본 공연 중에서 단연 손에 꼽을 수준이었습니다.”
“음음.”
“오늘 공연하신 분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고요. 훌륭했습니다. 방송이 잘 나가는 데는 전부 이유가 있군요.”
그렇게까지나.
모든 말에 립서비스가 가득하다.
물론, 나도 일정 부분 동의하는 바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의 의견이었다.
“…….”
또 다른 사장.
김보균이었다.
‘다시 봐도 인상 깐깐하네.’
임대범과는 다른 의미에서 얼굴이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그쪽이 딱 봐도 과묵한 타입이라면, 이쪽은 세상에 불만이 많아 보이는 타입.
하지만 오늘 무대는 그를 위해 특별 제작했다.
‘자, 어떤 불만을 들려줄 테냐.’
속으로 대비한 순간이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예, 훌륭한 무대였습니다.”
너무나도 편안한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국어국문학과생답지 않게 영문을 잃었다.
‘뭐지?’
왜 불만이 아니지.
캐릭터가 안 맞는데.
임대경이라면 이 한 번 갈고 돌아섰을 텐데.
‘이렇게까지 시원스레 인정한다고?’
왜 꼬투리를 안 잡지.
묘한 기시감을 느끼고 있는 참인데 그가 말을 이었다.
김보균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질문이라.
어쩐지 너무 무탈하다 했다.
본능적으로 지금부터 할 말이 본선이라는 걸 느끼는 찰나, 그가 말했다.
“이렇게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째서 기획사로 가지 않고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지요?”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아, 역시.’
뭐라고 해야 할까.
그의 태도에서 임대경과 캐릭터가 묘하게 겹친다고 느꼈는데, 질문도 겹쳤다.
왜 하필 인터넷 방송이냐는 말.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대답해 볼 생각이었다.
‘왜 인터넷 방송이냐라.’
이건 그간 나 자신도 의문을 품었던 일이다.
임대경 앞에서는 잘난 듯이 대답했지만, 나 자신도 조금이나마 찜찜한 부분이 남았지.
하지만 이제 그것이 내 안에 나름대로 갈무리가 되어, 온전한 대답 하나가 도출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대답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게 더 재밌을 것 같아서요.”
재미였다.
“재미?”
“네.”
김보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저도 이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왜 일반적인 방법을 버리고 인터넷 방송을 선택했는가.
때로는 괜한 길을 가는 건가.
멀리 돌아가는 거 아닌가.
동아리 식구들에게 책임감이라도 느껴서 내 팔자를 내가 꼰 건 아닌가.
갖은 고민에 빠져 잠을 설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내 나름의 정답을 찾을 수 있었다.
“기획사에서 하는 게 여러모로 낫지 않았겠습니까? 보아하니 기획사와 연이 없는 것도 아닌 것 같던데.”
“사실, 기회가 있기는 했죠.”
나는 그의 말을 인정하고는 말했다.
“그쪽에서 시작했더라도 이래저래 좋은 일은 많았을 것 같아요. 실력 있는 동기들과 데뷔를 두고 경쟁하는 것도 좋고. 또 요즘 스타 작곡가들은 다 회사랑 거의 전속으로 일한다잖아요? 그런 사람들이랑 동업하는 것도 좋고.”
이래저래 기획사에서 시작하는 것도 꽤 좋았겠지.
그렇게 시작해서 뜰 자신 또한 있었고.
하지만 내가 정말로 푹 빠진 건 다른 데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이 제일 재밌더라고요.”
다시 한번 돌아와서, 재미였다.
“그런…….”
김보겸이 놀란 눈을 뜬 사이 나는 할 말을 이었다.
“친한 사람들이랑 편하게 음악하고, 어떤 음악을 하든 제 마음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일전, 임대경을 만났을 때 나는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 이유가 자유라고 말했었다.
기획사의 간섭 없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게 좋다고.
하지만 조금 더 깊게 들어가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게 더 재밌어요.”
세 번째로 반복해서, 다시 한번 재미였다.
‘기획사랑 손잡고 같이 음악 하는 건 이미 해 봤어.’
해 본 걸 다시 해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본질적으로 내가 음악을 할 때 즐겁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 행동이란 지극히 흥미 본위의 충동에 쏠린 것이었다.
‘꼭 효율성을 중시했더라면 식구들이랑 오래 갈 필요도 없었겠지.’
엄밀히 말해서 식구들을 챙긴 건 내 변덕이었다.
본격적으로 원맨쇼를 했다면 더 자유로운 음악 생활을 영위했겠지.
하지만 그렇게 고민하던 끝에 깨달았다.
‘그렇게 한들 내가 즐거울까?’
내가 음악을 즐길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불과 반년 사이에 식구들과 나는 조금 과하게 가까워졌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들이 없는 음악 생활이라는 게 상상하기도 뻐근했다.
“같이 기타 치다가 저녁에 자빠져서 잠들고, 여행도 다녀오고. 조금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게 너무 재밌었어요.”
친했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건 한 번이면 충분하다.
내가 학습능력을 갖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인 이상…… 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인 이상, 같은 일을 두 번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지금 생활이 너무 재밌는데, 나중에 너희들이랑 멀어지면 이걸 버려야 하잖아.]조은솔의 말이었다.
너무 솔직해서 다소 거리감이 느껴졌지만, 이제는 그 말을 나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본격적으로 다른 일을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인터넷 방송이 재밌어요.”
네 번째,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미였다.
어쩌다 보니 다소 자기 고백에 가까운 말이 조금 길게 늘어졌다.
그동안 회의실의 식구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 눈치만 살피는 모습이었다.
오직 고희범만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진짜로?’
라는 생각이 뻔히 읽혔다.
그렇게 다시 정적이 찾아오기를 잠시.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옛날 생각나지 않아?”
오중기 사장이었다.
그가 평소처럼 웃음기를 머금은 표정으로 김보균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균아, 우리 학교 다닐 때도 비슷한 이야기한 적 있었잖아. 왜 굳이 뮤직비디오 쪽으로 가냐고. 메이저 영화사나 인하우스 제작사를 노리면 훨씬 나을 텐데, 왜 하필 이쪽으로 왜 가냐고.”
“음, 뮤직비디오 쪽은 많이 레드오션인가 봐요?”
고희범의 질문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죠. 겉으로 보이기는 화려해도 내실은 조금 모자라요. 사실, 굳이 이쪽을 전문으로 할 이유가 별로 없죠. 징검다리라고 해야 하나. 설령 뮤직비디오로 커리어를 시작하더라도 끝낸 영화 쪽으로 이직할 때가 많아요. 저는 반대였지만.”
그렇구나.
뮤직비디오라는 게 그렇게 전망이 창창하지는 않군.
잡지식이 하나 늘었다.
아무튼, 오중기 사장은 헛기침을 뱉더니 마저 말을 이었다.
“아까 부르신 거 지터버그 곡이죠?”
“아, 네. 우연히도 그쪽 곡이 마음에 들어서.”
사실은 그쪽에서 이 곡을 좋아했다고 나한테 말해서.
“그러게요. 우연히 마음이 맞았네요.”
그는 모르쇠 하듯 피식 웃더니 김보균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중기야, 너도 학교 옆 클럽에서 지터버그 음악 들으면서 말했었잖아. 이 길로 가야 더 재밌을 것 같다고.”
“…….”
“사실, 재미 하나 때문에 가시밭길로 간다는 게 말도 안 되잖아. 그래서 나는 뮤직비디오 전문 업체라는 걸 진지하게 생각한 네가 외계인처럼 보였다. 그런데 나도 네 말 듣다 보니까 재밌어 보이더라.”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이 사람들도 사실상 우리랑 크게 다를 게 없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재밌어서 이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구나.’
작은 생각에 사로잡힌 찰나였다.
“그러게.”
김보균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일이 더 재밌겠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우리가 설득에 성공했다는 것.
이유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김보균이 나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죄송하지만 다시 연락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오늘은 생각할 게 조금 있어서. 아, 가수님 영상 촬영에 관한 겁니다.”
“아, 네.”
“예,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은 제가 일이 있어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옥신각신할 거라고 기대했던 것치고는 싱거우리만치 시원하게.
물론.
그 뒤에는 방향 없는 악의가 따라왔다.
“자, 모두 박수.”
홍윤서가 외쳤다.
“주목! 자! 오늘 저녁밥은 김한영이 쏜다고 한다.”
“제가요?”
뭐라는 거지.
물론, 회식을 하자고는 했지만 그걸 내가 쏜다고 한 적은 없는데.
당황한 순간 홍윤서가 재차 말했다.
“한영아, 오늘 네 작업실에서 네가 밥 살 건데 너도 올래?”
“…….”
나한테 악감정 있나.
* * *
며칠 뒤.
우리는 비로소 제대로 된 뮤직비디오 제작 회의에 처음으로 들어섰다.
스튜디오 누 사무실이 아니라 우리 작업실에서.
“저쪽에서 어떤 곡으로 촬영할지 대강이라도 정해 달라고 하는데, 결정했지?”
고희범이 내게 물었다.
어떤 곡을 뮤직비디오로 촬영할 것인가.
어떻게 보면 물어볼 타이밍이 늦어도 너무 늦어 버린 말이었다.
‘참 오래도 걸렸지.’
내 몸이 정상적인 선까지 오를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또한, 이번 업무 관련해서 스튜디오 내부 분위기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이제 드디어 확신이 섰다.
“항해를 불러 보려고.”
항해라는 곡이었다.
항해.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그 이름.
‘이 곡을 드디어 꺼내게 되는구나.’
이 곡은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곡이었다.
하지만.
“항해? 그게 뭔데?”
팅 식구들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어리둥절한 고희범의 말에 성민아가 더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항해를 몰라?”
“유명한 노래인가?”
“곡 자체가 유명하다기보다는, 유명한 사람이 불렀지.”
“그게 누군데.”
고희범은 이 곡의 제목은커녕 존재조차 모르는 눈치.
나머지 식구들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마찬가지인 눈치였다.
즉, 이 안에서는 성민아만 아는 모양.
그러기를 잠시.
“……하여간.”
성민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말했다.
“김한석이 불렀잖아.”
“김한석이?”
“어, 네 번째 앨범에 수록됐잖아.”
그렇다.
이 곡은 내가 죽은 뒤에야 발매한 앨범, [9]에 수록된 곡이었다.
“1절 미완성 버전으로.”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