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98
98화
갑작스럽게 등장한 사람.
멋들어진 트렌치코트를 걸친 젊은 남자였다.
그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이 또라이 자식, 말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게 어디에 있냐.”
여기서 또라이 자식이란 말하는 대상이 명확했다.
디마.
그냥 무덤덤한 표정으로 정면만 응시하고 있는 그가 주체였다.
“왜 대답이 없어. 자기가 용건 있다고 불러내 놓고서는.”
“…….”
“하이고, 네가 애냐? 애야?”
이 남자는 잔소리를 퍼붓고, 디마는 말없이 한쪽 귀로 흘리는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그러기를 한참.
“그건 그렇고.”
드디어 내게 과녁이 돌아왔다.
다음으로 무슨 말을 할까 가슴이 두근거리는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
“김한영 맞죠?”
오.
나를 아는가 보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나는 그의 말에 속으로 작은 기쁨을 느끼고 말았다.
‘이제 나를 아는 사람이 슬슬 나온다.’
하기야.
방송 콘텐츠가 연달아 성공하며 이제 슬슬 구독자도 기세가 올랐다.
40만을 넘겼지.
이제 인터넷 방송 기준으로 중견을 넘어 대기업의 문턱을 오르고 있는 상황.
“네, 제가 싱어송라이터 김한영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살갑게 대답한 순간이었다.
“저희 동생 때문에 고생이 많네요.”
“네, 동생분이 참…… 네?”
잠깐, 지금 뭐라고 했지.
“동생이요?”
“예.”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디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답했다.
“요한이요.”
* * *
잠시 뒤.
우리는 자리를 변경했다.
“앉으세요.”
“네.”
“…….”
그리고 눈을 마주치며 신경전을 벌이기를 잠시.
나는 조금 전 그에게 받은 명함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생각했다.
‘교수라.’
그렇다.
눈앞 남자의 신분은 한예원 음향제작과에 소속된 교수, 공석호.
그는 디마, 그러니까 공요한의 친형 되는 사람이었다.
참으로 뜻밖에 알게 된 일이었다.
‘나이가 많아 봐야 30대 초반 정도 될 것 같은데, 벌써 교수라.’
그것도 한국예술원의 교수라면 사실상 끝판왕이라고 봐도 될 수준 아닐까.
엄청나게 유능한가 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공석호와 디마의 사이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너는 오래간만에 형 봤는데 인사도 안 하냐.”
“…….”
“어우, 답답해.”
어쩌다 보니 둘 사이에 끼어 버렸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시방석에 앉았다는 것도 아니었고.
‘출생의 비밀 좋고.’
즐겁다.
어차피 내 일도 아니겠다.
근래 무료하던 참에 시간 보내기 좋은 일이 생겼다 싶다.
“우리 동생 때문에 고생이 많죠?”
“네.”
잘 아시는군.
“그럴 만도 해요. 요한이가 말주변이 너무 안 좋아서.”
그가 낄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장난기가 가득하다.
디마가 말주변이 없어서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 타입이라면, 이 사람은 반대로 딱 봐도 친구 많을 것 같은 타입.
외모부터 옷차림까지 화려했다.
여기에 커리어까지 합쳐지니 ‘나 잘났습니다’ 하고 과시하는 것만 같은 느낌.
“방송 보고 저희 동생 이름이 적혀 있는 거 보고 놀랐거든요. 주위에서 네 동생이 방송 시작한 거 아냐면서 어찌나 저한테 말을 많이 하는지.”
실제로도 그러했다.
굳이 말하자면 사람이 버터 같다고나 할까.
그런 공석호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사회성이 떨어지니, 그쪽 분들한테 폐는 안 끼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제가 걱정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그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눈에 들어오는 기류가 하나 있었다.
‘이거 좀 일방적인데.’
형제 관계치고는 공석호가 일방적으로 동생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
암묵적으로 합의를 본 게 아니다.
한쪽이 말을 쏟아 내고, 다른 한 명은 흘리기만 하는 눈치였다.
“요한이 너 임마, 2학기 되자마자 선배랑 싸웠다면서? 그쪽이 네 작업물에 참견했다고. 그래서 학교 안 나왔냐?”
“…….”
무슨 말이 쏟아지든 디마는 그냥 조용히 입만 꾹 닫고 있을 뿐.
그가 원래부터 차가울 정도로 과묵한 건 알았지만, 이건 또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주위에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어도 얌전히 좀 넘겨 보라고 몇 번을 말해. 임마, 아버지께서 너 때문에 나한테 계속 주의 주시더라. 동생 좀 챙기라고.”
공석호 교수의 걱정 아닌 걱정을 듣고 있기를 한참.
나는 결론을 내렸다.
‘밥맛이네.’
공석호는 그런 사람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타인인 내 앞에서도 자기 가족을 거침없이 헐뜯는 그런 사람.
내가 듣고 있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 건가.
버터 맛인 줄 알았더니 밥맛이었다.
“너 뭐, 요즘 또 쓸데없는 일 하고 다닌다며. 학점은 어쩌고.”
“…….”
“릴 테이프? 데크? 마이크? 아주 가지가지 한다. 너 요즘 아날로그 레코딩 알아보냐? 왜 굳이?”
지금, 디마는 아날로그 레코딩에 필요한 장비를 받기 위해 그를 찾아온 상황.
하지만 공석호는 그런 그를 나무라기 바빴다.
“아직 디지털 레코딩도 제대로 못 하면서 아날로그는 너무 이르지 않아? 그런 건 기본기라도 제대로 뗀 다음에 건드리든지 해야지. 너 임마, 그거 허세야.”
이 말은 조언이 아니다.
권위를 앞세워 찍어 누르기 위한 폭언일 뿐.
이제 이 둘이 정상적인 형제 관계가 맞긴 한 건지 의심이 들 지경에 다다랐다.
하물며 디마도 신기했다.
왜 저런 심한 말을 입 닫고 듣고만 있는가.
‘견딜 만한가?’
나였다면 화를 내도 120bpm으로 냈을 것 같은데.
분위기가 어느새 차가워졌다.
하지만 공석호는 의식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신경 쓰지 않는 건지 일방적인 말을 쏟아 냈다.
“야, 이게 다 너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새겨들어. 이런 말 해 주는 것도 나밖에 없다.”
그렇겠지.
원래 잔소리라는 게 아무나 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일방적인 말을 쏟아 내기를 한참.
공석호는 코웃음을 치더니, 디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 장비 필요하다고 했지? 네 부탁 못 들어줄 거야 없지. 가족이니까. 하지만 맨입으로는 안 돼. 조건이 있다.”
이제 차갑게 식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그 싸구려 작업실, 다음 달에 방 빼.”
“……!”
그 순간 디마의 얼굴에 동요가 찾아왔다.
공석호는 그게 또 못내 즐거운지 저열한 미소를 띠운 얼굴로 말했다.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시는지 알아? 임마, 그런 곳에 지내니까 사람 머리에 곰팡이가 피는 거야. 괜히 우울해지고. 비관적으로 변하고.”
특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 작업실, 내가 봐도 시설이 안 좋기는 했지.
비좁은 데다가 낡았다.
왜 거기에 박혀 지내는가 했더니 이런 사정이 있었을 줄이야.
‘가출 청소년, 아니, 가출 성인이었군.’
의외의 사실을 깨달아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공석호가 말을 이었다.
“나도 이러기는 싫은데, 형 된 도리가 있잖아. 동생이 그런 월세방에 사는 걸 두고 볼 수 있겠어? 그만하면 됐으니까 집으로 돌아와.”
그래.
가족이니까 저런 말을 하는 거겠지.
남이라면 안 할 말인데, 가족이니까 더 쉽게 할 수 있겠지.
더군다나 상대가 자기보다 10살 이상 어린 동생이라면 더 그럴 테고.
하지만.
“그쪽도 말이에요. 말 안 듣는 애랑 어울린다고 괜히 피곤하게 배려할 거 없어요. 아니다 싶을 때는 아니라고 하세요.”
나는 그의 가족이 아니다.
“아뇨.”
그렇기에.
내가 그의 잔소리를 듣고 있어 줘야 할 이유라고는 하등 없었다.
“요한이 겁나 유능한데요.”
“…….”
잠시 연구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특히 공석호 교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차마 내가 그의 말을 정면에서 반박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눈치.
하지만 내 알 바는 아니다.
그쪽이 내 눈치를 안 보고 할 말을 했듯,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뿐.
“솔직히 말하다 보면 서로 혼잣말하는 기분이기는 해요. 이걸 집단적 독백이라고 하나.”
“아, 그렇죠? 이게 요한이가 옛날부터.”
공석호가 다시금 할 말을 쏟아 내려는 찰나였다.
“그래도.”
나는 그의 말을 깊게 새겨들을 생각이 없기에 마저 할 말을 이었다.
“답답한 건 사실인데, 사실 그게 저한테 크게 중요한 건 아니라서요.”
“예?”
“일을 잘해요. 답장도 빠릿빠릿하고. 고집은 있지만, 뭐.”
나는 디마를 한 번 바라보고는 말했다.
“창작자라면 그 정도 고집은 있어야죠.”
이게 내 생각이었다.
“덕분에 요즘 작업물 퀄리티가 엄청나게 올랐어요. 이번에 낼 신곡도 기깔나게 다듬어 준다고 했고.”
내 눈에 비친 디마는 유능했다.
말이 적다고는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호감이었다.
‘사람이 꼭 말이 많아야 하나.’
필요한 말만 하면 된다.
말주변이 적다면, 적은 대로 살아가면 그만이다.
반면, 이 사람은 묘하게 짜증이 솟았다.
남의 앞에서 자기 동생 기를 못 세워 줄지언정, 깎아내리고 있다니.
정상적인 가족이라고 보기 민망하지 않나.
‘같은 잔소리라면 한윤태처럼 해야지.’
물론, 그가 내 형제라니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지만 말이다.
나는 공석호 교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요한이 작업실도 자주 가 봤는데, 나름대로 적응되니까 아늑하고 좋더라고요.”
“…….”
비좁은 거 사실이다.
낡은 거 사실이다.
사람 우울해지기 딱 좋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공간마저도 집에 돌아가는 것보다는 낫다면, 그 집이라는 곳은 얼마나 끔찍한 공간이겠나.
‘마음이 넓으면 작업실은 조금 좁아도 돼.’
그렇게 시작해야지.
그게 제맛이지.
나는 그런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말했다.
“말씀 다 끝났나요?”
“예?”
“저희가 지금 조금 바빠서요. 일하러 온 거라.”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덧붙였다.
“그럼 나중에 또 뵐게요.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렇게 미련 없이 공석호의 연구실을 떠나 나오는 길.
디마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장비 빌려야 되는데요.”
“장비요?”
무슨 말이지.
“아날로그 레코딩에 필요한 장비. 그거 빌리려고 온 거예요. 애초에 저희 형도 제가 부른 거라서.”
“아.”
그렇지.
아날로그 레코딩에 필요한 장비가 필요해서 디마가 불렀다고 했지.
어쩐지 학교 가기 싫어하더라니.
하긴, 나라도 저런 친형이 교수라면 좀 짜증 나겠다.
‘하지만 기왕 자리 박차고 나온 걸 다시 돌아가기도 조금 그렇고.’
나는 그냥 홧김에 말했다.
“돈 주고 사죠.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 * *
그렇게 몇십 분 뒤.
나는 디마가 굳이 부담스러운 친형을 찾아가면서까지 장비를 구걸하려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AKAS AX-10P 릴 데크 판매합니다.] [상태 좋습니다.방송국에서 사용하던 걸 들여와서 보관했습니다.
녹음, 재생, 앰프, 마이크 기능까지 전 기능 전부 전문가의 검수하에 확인 마쳤습니다.]
조금이라도 괜찮다 싶은 물건은 장비 가격이 좀 셌다.
그것도 많이.
[양도가: 1,700,000]더불어서 릴 테이프의 가격까지도.
[10인치 공릴 4개 팝니다] [민트급입니다. 현재 이만한 퀄리티는 국내 어디에서도 못 구하리라고 장담합니다.] [양도가: 장당 120,000]릴 테이프 1장에 30분 남짓밖에 못 사용하니 자칫하면 쓰다 버리기를 반복해야 하는데, 그게 장당 12만 원을 호가했다.
그래.
사실 가격 자체는 그럴 수 있다.
이제 [싱어송라이터 김한영] 채널의 벌이가 저런 걸 겁낼 수준은 아니니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 죄송하지만 지난주에 팔렸습니다.]모조리 다 나갔다는 것.
매물이 없다.
릴 테이프뿐만 아니라, 저 시대에 사용했던 장비들은 무엇이든 시장 어딜 찾아봐도 완벽하게 씨가 말랐다.
최근 3년 동안 올라온 글을 전부 뒤적였지만, 말 그대로 매물이 없었다.
간혹 있는 건 전문가용 장비 수준이 안 된다.
그나마 가진 곳들은 웃돈을 준다고 해도 안 파는 수준.
‘이게 말이 되나?’
뭐지.
왜 매물이 없지.
이렇게까지 매물을 찾기 어려운 거였나.
“해외 쇼핑몰에 매물이 있기는 한데.”
디마가 중얼거렸다.
“주문하면 최소 2주 뒤에 온대. 어쩌면 저기도 물건만 올려놨을 가능성도 있고.”
안 돼.
2주일 뒤면 너무 늦어.
스튜디오 누 사장들이 아무리 인내심이 탄탄하다고 해도, 2주일이면 한국인에게 너무나도 긴 시간이야.
‘내가 실수한 건가?’
문득 공석호 교수가 떠올랐다.
‘그 사람, 이런 장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했지.’
지금이라도 가서 사과해 볼까.
아니지.
그건 안 될 일이지.
멋있게 선 긋고 나왔는데, 지금 다시 돌아가서 손을 비비면 내가 뭐가 되나.
그렇게 고민하던 참이었다.
‘아날로그, 아날로그, 아날로그.’
이걸 취급하는 곳이 어디 없을까.
김이철 사장님한테 연락해 보면 조금 알아봐 주지 않을까.
혹시 모르니까 문의라도 해 보자.
삑삑삑.
[어, 무슨 일이야. 되게 오래간만이네.]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릴 테이프? 그거 아직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나? 있다고 해도 돈을 얼마를 줘도 안 팔걸? 얼마 꼴랑 벌자고 그렇게 내줄 수는 없잖아. 차라리 가지고 죽지.]이쪽도 답이 없군.
지나치게 희소하다는 게 문제가 되었다.
그냥 2주일을 손가락만 빨면서 기다려야 하나.
반쯤 체념한 순간이었다.
김이철 사장이 뭔가를 떠올린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너희들 그거 있지 않나?]김이철 사장이 뭔가 떠오른 듯 말했다.
[너 그 뭐야, 플러그인에 자주 간다면서.]플러그인.
옛 음악 시장의 모습을 그대로 보관한 타임머신.
그곳의 이름이 난데없이 튀어나왔다.
혹시 윤태한테 부탁해 보라는 말인가 싶은데, 김이철 사장의 입에서 나온 건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거기 많이 걸려 있잖아. 인테리어 용품으로.]–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