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
1화
이런 말이 있다.
‘뮤지션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음악을 기억하는 이상, 뮤지션은 죽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마치 캠프파이어와도 같았다.
하룻밤 활활 타오르는 장작에 불과할지언정, 그 추억만큼은 모두의 기억 속에 새겨져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러니 준비된 뮤지션들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그리 두려워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애초에 오래 살 생각은 없었다지만, 이건 조금 갑작스럽지 않나.
‘이렇게 죽는 건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 같은데 중간에 기억이 끊겨 잘 기억도 안 난다.
몸에 힘이 한 줌도 없는 게 나무토막이 된 것만 같았다. 두껍게 감긴 눈꺼풀은 힘을 줘 밀어내려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오직 청각.
청각만이 주변 상황을 내게 알려 주었다.
“한석이 형!”
“형, 형, 눈 좀 떠 봐요!”
“한석아…… 한석아…… 네가 이렇게 가면 나는 어쩌라고…….”
사방에서 내 이름이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들은 하나같이 슬픔에 잠겨 있어 듣고 있기가 괴로웠다.
‘좀 웃지.’
마지막 순간은 웃으면서 가고 싶었는데.
날 위해서 울어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기쁘면서도 섭섭하다.
‘생각보다 알찬 삶을 보냈구나.’
목소리만 들어도 누가 누군지 훤했다.
저들과 보냈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재원이, 너는 기타 습관 언제쯤 고칠래.’
‘윤태야, 술 좀 끊어라.’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말을 천천히 속으로 되뇌었다.
우여곡절이 가득했지만 하나같이 내 인생의 보석이라 불려 마땅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직감이 왔다.
‘내 삶은 곧 끝난다.’
뮤지션으로서 주어진 사명을 훌륭히 끝마치고, 이제 이 세상에 역사로서 기록될 순간만이 남은 것이다.
다행히도 할 만큼은 했다.
차트란 차트에는 죄다 이름을 올려 봤다.
올해의 음반이니, 전문가 선정 100대 음반이니 하는 것들에도 내 이름을 빼곡히 채워 넣었다.
다른 건 몰라도 한국의 음악 역사를 통틀어 20대에 나보다 잘 나갔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석이…… 한석이! 이렇게 가면 안 돼! 네 신곡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우리 사장님 목소리가 귓가에 징징 울렸다.
평소에는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흘릴 것 같았던 사람이 지금은 눈물이라도 흘리고 있는지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돈 좀 벌어 보겠다고 날 그렇게 굴리더니, 쌤통이다.’
내가 생각해도 웃기다.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보면 좋은 사람이었다.
‘갚을 만큼은 갚아 줬으니, 나한테 미련은 가지지 마십쇼. 그래도 뭐, 밑바닥만 구르던 내게서 가능성을 발견해 줘서 고마웠습니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내게 가족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원래 고아였는데, 평생 일만 바라보고 치열하게 살아왔던 탓일까. 가족이나 연인이라고 부를 사람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들처럼 화끈하게 연애라도 해 보는 건데.’
그렇다고 억울하지는 않다.
뭐든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이니.
그건 그렇고, 슬슬 몸이 차갑게 식어가는 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내게 주어진 시간도 이제 끝인가 보다.
‘나, 이렇게 간다.’
최후를 직감하자 도리어 마음이 편해졌다.
나 인간 김한석, 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미련은 없었다.
아니, 딱 하나 있었다.
‘아직 못 들은 음악이 많은데.’
그렇다.
못 들은 음악이 좀 많았다.
미래의 음악들은 얼마나 듣기 좋을까.
이 시장은 앞으로 얼마나 발전할까.
실력 있는 신인들은 또 얼마나 많이 튀어나올까.
나도 그 세상을 누려 보고 싶은데.
‘……이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내 음악도 낡은 음악이 되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슬슬 정신이 흐려졌다.
영혼이라는 게 내 정수리에서 슬금슬금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아.
이제 정말로 끝이구나.
잘 있어라, 세상아.
* * *
김한석.
27세에 하늘로 돌아가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한국 음악사에 길이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
“고인의 추모를 위한 행렬이 끊이질 않습니다. 현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TV 뉴스에서 김한석을 애도하는 보도가 연일 올라왔다.
살아생전 김한석과 말 한마디라도 섞어봤던 사람들은 모두 인터뷰를 남겼다.
“한석이 형은 언제나 당당한 사람이었어요. 평생 못 잊을 거예요.”
“제가 힘들 때 도와주셨어요.”
“이제 김한석의 노래를 못 들을 게 아쉽네요. 지금까지 힘들 때면 언제나 김한석의 노래를 들으면서 힘냈었는데.”
“그렇게 갈 친구가 아니었어.”
그렇게 떠난 김한석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그 친구, 정말 음악만 했어.”
누구나 인정하는 톱스타였으면서도 생전 부끄러울 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버는 돈은 족족 후배들에게 뿌렸다.
더 힘든 사람을 위해 기꺼이 내밀 줄 알았다.
김한석에게 기부를 받은 단체들은 공동으로 추모를 올렸다.
[김한석 재단 설립.]마치 음악만을 위해 살아갔다는 듯, 그가 죽으며 남긴 거라고는 앨범 세 장이 전부였다.
그 세 장은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선]의 10위 안에서 세 자리를 차지했다.
실로 어마어마한 업적.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10년 후 진행한 명반 100선에서는 오히려 앨범 하나를 더 순위에 올렸다.
앨범의 제목은 [9].
여태껏 시도하지 않은 장르의 미공개곡을 묶어 발매한 유작 앨범이었다.
다소 실험적이었기에 기존 앨범 세 장 만큼은 아니지만,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던 김한석에 대한 반응은 대중과 평단 양쪽에서 모두 폭발적이었다.
뮤지션은 죽어서도 죽지 않는다고 하였던가.
실제로 김한석이 죽은 뒤에도 그의 이름은 죽을 줄을 몰랐다.
“김한석 없이 한국 음악사를 논할 수는 없죠.”
“예, 한국의 음악인이라면 누구나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한석은 언어의 마술사였어요. 통기타를 든 시인이었고, 한국 음악의 대부였죠. 제 젊은 시절을 그와 함께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이 깃들어 있었어요. 그보다 인간을 잘 노래하는 사람은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김한석.
그의 이름 세 글자는 시간이 흐르며 점차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되었다.
[전설의 가수 : 김한석.] [설 특집 다큐멘터리 : 김한석 포에버.]TV에서는 그의 음악을 재편곡해서 부르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그의 감정표현 기법은 전문가들에 의해 철저하게 분석되어 보컬의 교과서처럼 알려졌다.
“우리는 김한석을 기억할 겁니다.”
그가 생전 바랐듯, 그는 죽어서도 죽은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그렇게 몇십 년의 시간이 흘렀다.
* * *
“…….”
이게 무슨 일이래.
진짜 영문을 모르겠다.
‘나 죽은 거 아니었나?’
분명히 눈이 흐릿하고 막 정수리에서 영혼이 빠져나가고.
생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남들이 죽을 때 겪는다는 증상은 다 겪었는데…….
왜 살아 있지?
왜 팔다리가 멀쩡히 움직이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눈을 뜨고 거울을 보자, 다소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몇 번 눈을 깜빡거려보자 거울 속 남자가 내 동작을 따라 했다.
네가 나 맞았구나.
“하하…….”
어처구니가 없어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다가 달력을 확인해 보았다.
그 자리에는.
[2021]무려 내가 사망한 뒤로부터 30년이나 지난 날짜가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환장하겠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