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혜화역 마로니에 공원.
김한영 공약 버스킹에 갑작스럽게 어느 소란스러운 무리가 난입했다.
그 무리의 정체는 바로.
“얼쑤!”
장구 부대.
아니, 국악 부대라고 불러 마땅한 것이었다.
덩기더덕, 덩기더덕.
끼이익-.
장구를 필두로 피리와 아쟁, 가야금, 해금까지 총 여섯 개의 국악 악기가 정교한 사운드를 얽어냈다.
[???] [???????] [저게 뭐인 데스?]시청자들은 혼란에 빠지기를 잠시.
[국악 난입 뭐냐고 ㅋㅋㅋㅋㅋㅋㅋ]이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ㄹㅇ 개뜬금없네 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건지 1도 모르겠다 ㅋㅋㅋㅋㅋ] [아 좋긴 좋은데, 분명 좋은데, 이게 뭐야 ㅋㅋㅋ] [현장에 직관하러 갈 걸 ㅋㅋㅋㅋ] [몰래카메라임?]그냥 난입만 했다면 이상하기만 했겠지.
하지만 저들의 실력은 혼란을 가볍게 덮을 정도였다.
그 멜로디의 정체는 아리랑.
[멜로디가 엄청 세련됐네] [ㄹㅇ 요즘 음악 느낌이다] [한국인의 본능이 깨어나는 음악이다] [아 ㅋㅋㅋㅋ 주모! 막걸리 가져와!]잘한다.
뭔가 지나치게 잘한다.
단순히 돌발 이벤트라고 보기에는 무대가 조금 지나치게 정교한 와중, 그 사이에서 유독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는 여성이 한 명 있었다.
[저거 김예담 아님?]김예담이었다.
팅의 명예 멤버이자, 자기 아버지 악기를 세상이 널리 알리는 걸 인생의 목표로 삼은 아티스트.
그녀가 개량 한복을 입은 채 정체가 불분명한 악기를 뜯었다.
끼이잉-.
하지만 그 소리 만큼은 일품.
긴 손가락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혼을 흔드는 연주가 이어지기를 잠시.
[아]누군가가 깨달았다는 듯 외쳤다.
[설마 김예담이 저거 공약 건 사람 아님?]코난이 등장했다.
김예담이 공약을 건 당사자 아닌가 하는 추측이었다.
그 말이 기폭제였다.
이내 온갖 추측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럼 처음부터 짜고친 건가?] [ㄹㅇ 장구 있자너] [장구 외에도 뭐가 좀 많지 않음?] [아무튼, 장구 있으니 된 거 아님?]의심이 많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눈앞의 연주는 훌륭하다.
잠깐 자잘한 생각 따위는 집어치우고 즐기는 데만 집중해도 모자랄 정도로, 저 연주의 퀄리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프로.
명실상부하게 프로의 그것이니까.
“아, 좋다!”
그렇게 불과 몇 분짜리 짧은 악곡이 끝났을 무렵이었다.
“안녕하세요. 한예원 크로스오버 국악 밴드 육도입니다.”
이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 * *
육도.
국악을 베이스로 현대 음악과 접목시킨 국악 크로스오버 모임이었다.
“아, 아.”
나는 무대 위 마이크를 쥐며 그들을 다시 돌아보았다.
‘너무 늦지 않게 왔네.’
그렇다.
이들을 불러온 건 내가 맞았다.
혜화역 공연 일정을 발표하기도 전부터 이들과 사전 협의를 걸쳤다.
언제 난입해서, 언제 공연해 줄 것까지도.
그렇다면 과연 이들이 이번 공약을 건 당사자들일까.
정답을 말하자면.
“안타깝지만, 공약을 건 오늘의 주인공은 현장에 오지 않으셨습니다.”
그것 또한 아니었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관객들을 씁쓸한 눈으로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 공연은 공약의 공약이 컨셉트였습니다. 제가 무대를 열되, 거기에 시청자분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것. 그게 오늘 공연이 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실패했다.
공약 댓글을 단 그 수많은 사람 중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이게 지금의 현실이었다.
‘한 명이라도 왔으면 재밌었을 것 같은데,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막 드라마틱하진 않네.’
그렇기에 육도 또한 공약을 건 당사자들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내 요청을 받아 이곳으로 왔을 뿐.
‘하지만 뭐, 어쩔 수 있나.’
수습해야지.
관객들이 안 올 가능성 정도는 얼마든지 생각했다.
하지만 공연의 퀄리티를 챙기는 건 그와 별개의 일이지 않나.
관객들은 어찌 되었든, 큰 기대감을 품고 내 무대를 보러 찾아와 주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권리가 있었다.
포만감을 누릴 권리가.
“이번 공연을 열기 전, 저는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그게 지금부터 내가 할 말이었다.
“이번 공약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제 공연의 모든 관객이라면 누구든 최고의 경험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
이건 공약과는 상관없는 일.
일단 사람을 모아 뒀다면, 기꺼이 발을 옮겨 준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을 공연을 선보이는 것.
이게 프로의 최선이었다.
“여러분에게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경험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공약을 조작할까 생각도 했다.
정의선의 제안이었다.
하지만 이건 들켰을 때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래서 고민하는 사이 또 다른 생각에 다다랐다.
‘조작하되, 바로 밝히면 되는 거 아닌가?’
바로 이것이었다.
안 밝히니까 조작이지, 밝히면 조작이 아니다.
관객들은 적어도 정체를 밝히기 전까지는 저들을 공약의 결과물로 알고 기쁨과 즐거움을 느꼈겠지.
아니더라도 훌륭한 공연에서 즐거움을 느꼈으면 그만.
운에 기대는 건 우연이다.
하지만 내가 준비하거든 필연이 된다.
‘마침 위치도 좋았어.’
여기는 혜화역.
한국예술원 학생들의 둥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아니, 혜화역 자체가 한국예술원과 함께 성장했다고 말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러니 인력을 조달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한국예술원 육도였습니다. 뜨거운 성원 부탁드립니다.”
이내 어리둥절한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오늘의 공연은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여러분께 특별한 경험을 드리기 위해 특별한 게스트를 섭외했습니다.”
아직 한 명 남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무대 위로 한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 뚜벅뚜벅 구둣발로 올라왔다.
이번에 온 사람의 정체는 바로.
“안녕하세요. 유리가 왔어요.”
유리.
근래 들어 한국 음악계 신인 중 최정상이라 불려 마땅한 그녀였다.
유리가 등장한 순간이었다.
“미친.”
“진짜로 유리야?”
“유리다.”
“와, 나 지금 소름.”
“사진 찍었어?”
관객들의 반응 자체가 완전히 뒤집혔다.
역시.
이해는 하면서도 쓴웃음이 나온다.
‘50만이어도 아직 메이저 가수의 인지도에는 못 미친다 그건가.’
유리는 근래 가장 뜬 신인 가수.
반응의 질이 달랐다.
하긴, 반년 만에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대단하지.
그렇다고 뭐 급 차이를 느꼈다 그런 건 아니고, 얼른 따라잡아야겠다.
[????] [내가 지금 뭘 보는 거지?] [누나가 여기서 왜 나와?]시청자들 또한 놀란 목소리로 채팅창을 덮기 시작했다.
[아니, 김한영 대체 어디까지 본 거야] [유리를 어케 섭외했냐?] [아니 유 ㅋㅋㅋㅋㅋㅋ 리 ㅋㅋㅋㅋㅋ] [유리는 어쩔 수 없지 ㅋㅋㅋㅋㅋ] [공약이고 뭐고 유리 모셔왔으면 다 한 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떤가.
놀랐는가.
내가 저만큼 되는 유명인을 대뜸 섭외했다는 게 놀라운가.
걱정하지 마라.
‘나도 놀랐다.’
나도 은근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이번 행사에 섭외한 건 어디까지나 80%는 운이라고 봐도 무방한 일이었다.
‘운이 좋군.’
지난번에 테슬라 소개로 공연 땜빵을 갔을 때, 저들과 같은 무대에 선 적이 있었다.
나한테 식사를 하자고 제안하기까지 했었지.
하지만 현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사정 탓에 거절했다.
[죄송하지만 다음에 같이 하시죠.] [네? 네. 그럼 언제쯤.] [일정 보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당분간은 연습이 바빠서.]그때 일이 떠올라서 내친김에 찔러 봤다.
그런데 그게 통해 버린 것.
[지난번에 저희 공연 도와주셨으니까, 이번에는 제가 도와드릴게요! 상부상조니까요!]그 결과물이 이것.
‘나쁘지 않군.’
공약은 명백히 말해서 실패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실패했다고 한들, 내가 불러 놓은 시청자들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지 않나.
이미 시청자가 8천이 넘는다.
이들이 투자한 시간이 김빠지는 결과로 끝나지 않게끔 노력할 뿐.
“그럼 무대 다시 시작할게요.”
그렇게 본격적인 공연을 시작하려는 찰나였다.
저벅.
관객들 사이.
그 사이에서 누군가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
“…….”
임선우였다.
‘네가 여기서 왜 나와.’
나는 심히 복잡한 심경에 잠겼다.
왜냐.
‘연습생 생활 시작한 거 아니었나.’
그가 팅에서 종적을 감춘 지 시간이 좀 흘렀기 때문이었다.
* * *
공연이 끝났다.
개인적으로 총평하자면, 다사다난했지만 그 끝에는 썩 삼삼한 맛이 있었다.
[재밌었다 ㅋㅋㅋㅋㅋ]시청자들의 반응 또한 약간의 아쉬움과 후련함을 남겼다.
[다음에 또 비슷한 거 했으면] [유리도 그냥 방송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시키면 안 됨?] [ㄹㅇㅋㅋ] [국악도 들을 만하더라] [윤서는 중간부터 왜 갑자기 무대 위에서 삼겹살 구운 거] [윤서라면 그냥 지가 먹고 싶어서 구웠을 킹능성도 있다] [고건 맞지] [근데 ㄹㅇ 왜 1명도 안 왔냐 ㅋㅋ 조금 너무 실망했다.]설마 공약 건 사람이 한 명도 안 나올 줄이야.
나도 교훈 하나를 배웠다.
그렇게 행사가 끝난 뒤 장소를 이동해 예약제 식당.
“자, 오늘 모두 고생 많으셨고, 축하하는 의미에서 제가 삽니다. 편하게들 먹고 마시고 놀아요. 교류하고.”
본격적인 뒤풀이가 시작됐는데.
“김한영 이놈은 말이죠.”
홍윤서가 반쯤 취한 얼굴에 잔뜩 열이 오른 목소리로 외쳤다.
“지가 복 받은 줄도 모른다니까요?”
“그러니까요!”
그 말에 유리가 더욱 거센 목소리로 회답했다.
“제가 먼저 밥 먹자고 했는데 거절했다니까요? 이 사람 대체 뭐예요?”
“저는 딱히 거절한 적 없는데.”
“나중에 밥 먹자면서요.”
“네, 그랬죠.”
그게 왜.
서로 간에 합의했잖아.
딱히 문제 될 게 있나 싶은데, 유리가 물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외쳤다.
“그게 거절이에요. 이 업계에 제가 만나자고 하면 거절할 사람이 많은 줄 알아요?”
“…….”
자기애 보소.
“주위에 말했더니 믿지도 않던데요?”
“네.”
“사과하세요.”
“생각해 보고요.”
“한영아, 이쯤 되면 그냥 사과 좀 해 주면 안 되냐.”
“형, 그것도 봐서요.”
“이, 이, 이.”
아무튼, 유리의 성격은 생각보다 괄괄했다.
무대 위의 요정이라니, 청초한 분위기로 이미지 메이킹을 했으면서 무대 뒤에서는 이러하다.
더욱이 주량마저도 그러했다.
“……유리 씨, 너무 마시시는 것 같은데, 매니저님이 안 말려요?”
“오늘은 허락받은 날이에요.”
굉장히 서민적이다.
동아리에 싹싹한 후배 한 명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팬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기뻐하면서도 섭섭해할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다.
‘성격 좋네.’
신인 중에는 어설프게 연예인병 걸려서 턱이 빳빳한 사람이 한둘이었나.
자기들은 선택받은 사람이니 남들과는 다르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도 많았지.
‘차트 2위까지 찍어 봤다고 했나.’
유리는 잠깐이나마 싱글 음원 차트 2위를 찍어 본 유망주.
그녀의 태도는 썩 개운한 구석이 있었다.
한창 되는 대로 분위기를 풀기를 한참.
“집중!”
조은솔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박수를 치더니 말했다.
“오늘은 모두를 위해 고생해 준 한영이를 위해 건배하자.”
아, 건배 타이밍이 왔다.
평소 조은솔은 동아리 부장답게 이런 이벤트를 주도하고는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그녀가 씨익 웃더니 나를 가리키더니 말했다.
“자, 한영아, 네가 사장이니까 건배사 하나 올려 보자.”
“……제가요?”
갑자기 나한테 과녁이 돌아왔다.
나는 술도 안 마시는데.
멀뚱멀뚱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냥 은솔이 누나가 사장하면 안 돼요?”
“기타 반납하면 사장 자리도 받아 줄게.”
“흠, 그건 조금.”
아직은 한참 남았지.
내가 팅에 남아 있는 이상, 인정할 만한 사람이 오기 전까지는 안 돌려줄 거다.
유감이다.
나는 콜라가 담긴 음료수 잔을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잠시.
머릿속으로 몇 가지 단어를 조합한 뒤 입을 열었다.
“유비무환이라고 했습니다. 미리 대비해 두면 통수를 맞아도 조금 덜 아픕니다.”
“…….”
“유감입니다.”
이만하면 훈화는 했겠다.
이어서 마음속으로 정해 둔 건배사를 올리려는 한마디 하려는 찰나였다.
“자, 유감입니다!”
“유감입니다!”
“유감입니다!”
“유감!”
자기들끼리 멋대로 건배를 올려 버렸다.
“…….”
멋진 건배사를 준비해 뒀는데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누나.”
“많이 먹어.”
“네.”
모르겠다.
좀 얼버무린 느낌이기는 한데,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렇게 한창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와중이었다.
위잉.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다.
‘아.’
왔구나.
나는 그걸 보고는 잠시 심호흡을 내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희범에게 말했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야, 바로 와. 상주가 자리 비우는 거 아니다.”
“장례식도 아니고 무슨 상주야.”
“얼른 안 오면 장례식 될걸.”
그렇게 그의 흔한 헛소리를 뒤로하고 자리를 비우고 뒷문으로 나와.
뚜벅뚜벅.
건물의 옥상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곳에 사람 한 명이 먼저 올라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곳이 다 있네.”
임선우였다.
무대에는 왔으면서, 파티 자리에는 빠진 그가 옥상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인 뒤 입을 열었다.
“오래간만이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