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옥상에서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고 부르는 거 조금 고전적인데.’
하지만 이 정도 고전이 딱 좋다.
나는 옥상에서 코끝으로 스치는 밤공기를 잠시 맡다가, 임선우를 마주하며 물었다.
“오늘 못 온다고 하지 않았나?”
잠시 정적이 이어졌다.
임선우는 눈을 깜빡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말 그대로였다.
그는 오늘의 일정에 못 온다고 미리 내게 알렸었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다.
‘YTG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지’
말 그대로 임선우는 얼마 전부터 YTG에서 연습생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데뷔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바빠진 탓인지 동아리에도 발을 끊었지.
사실, 오늘 동아리 무대에 온다는 것도 직전까지 이야기를 못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난입하다니.
또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사람을 부르기까지.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나는 잠시 임선우가 입을 열기를 보았다.
하지만 내 기억에 의하면 그는 원래부터 말이 짧았다.
그렇기에 잠시 기다리다가 화두를 던졌다.
“연습생 숙소에 들어갔다고 했지? 회사에서 도보 1분 거리라고 했나. 나와도 되는 거 맞아?”
나도 모르게 따지듯 말이 나왔는데, 임선우는 큰 감흥이 없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몰래 나왔어.”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너무나도 태연한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회사에 들키면 큰일 나겠네.”
“비밀이야. 쫓겨날 수도 있어.”
임선우가 한쪽 손가락을 입술 위로 올리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건 우스운 말이었다.
왜냐.
“이미 방송에 다 나와서 비밀 아닐걸. 동시 시청자 만 명 넘겼는데.”
오늘 방송을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
영상을 업로드하면 그 조회 수 또한 적어도 몇십만을 넘길 게 확실했다.
“……아.”
그는 길게 생각을 안 했는지 충격받은 표정을 짓기를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들켰으면 어쩔 수 없고.”
심히 적당한 대답에 나도 모르게 웃고야 말았다.
은근히 사람이 엉성하다.
처음 봤을 때는 음악밖에 모르고 사는가 하면, 막 나가는 법도 체득한 모양.
“그래도 말은 하고 오지. 자리라도 하나 마련해 뒀을 텐데.”
대충 웃어넘기려니 임선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회사에서 이제 핸드폰 대화 내용도 다 확인해서.”
“엄격하네.”
“그래도 오기 전에 공약 영상에 댓글 달고 왔어.”
“정말로? 못 본 것 같은데.”
“오늘 저녁에 출발하면서 댓글 달았어. 김한영이 혜화역에서 공연하면 나도 가서 곡 하나 연주한다고.”
“…….”
우리 친구.
공약 신청 기간은 확인 안 했구나.
이 타이밍에 굳이 지적하기도 어중간해서 나는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그거, 네 아이디어인 거 나중에 사람들이 알면 난리 나겠다.”
“예능에서 풀 이야깃거리 하나 늘어난 거지.”
이야기가 대충 비슷하게 흘러갔다.
탁 트인 옥상이라는 공간 탓인지, 아니면 오늘 있었던 일 때문인지 이야기가 되는 대로 막 흘러나왔다.
임선우라는 사람 자체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겉보기에는 무미건조하면서도, 실제로는 지극히 감정적이지 않나.
“그동안 바로 데뷔할 생각 없다면서. 왜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어? 너희 아버지가 데뷔하래?”
“응.”
“네가 하고 싶어서 받아들인 거고?”
“반반. 그동안 내가 데뷔를 안 했던 건 그러니까.”
임선우는 핸드폰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말했다.
“아버지 말로는 음악에도 경험이 필요하다고 하셨어. 어려서부터 음악만 한 사람들은 나중에 한계가 온다고…… 그래서 준비가 다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게 마침 이번이었나 봐.”
아버지가 데뷔 시기를 고르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왜 하필 요즘일까.
우리 채널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자그맣게 호기심이 생겼다.
하지만 이것 또한 깊게 따지고 들기는 그랬다.
어떤 질문을 던지든 그의 아버지가 골랐다는 대답으로 이어질 테니까.
그렇기에 나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제 곧 연예인 되겠다.”
“늦어도 내년 초에는 곡 하나 내게 하려 하시더라. 학교도 그만 다니래.”
“과감하네.”
그렇게 떠들기를 한참이었다.
임선우는 입을 여닫기를 반복하더니 말했다.
“이제 동아리에 놀러 오기도 힘들 거야.”
“왜?”
“우리 소속사는 연습생 때부터 24시간 감시가 기본이거든. 스케줄 외에 돌발행동 하나라도 하면 바로 벌점이야.”
“대표 아들이어도?”
“이사 아들 누구는 몰래 클럽 놀러 갔다가 들켜서 데뷔 조에서 쫓겨났다더라.”
이 말은 조금 우스운 말이었다.
“너도 오늘 나온 거 들키면 큰일 나는 거 아닌가?”
“그런가? 쫓겨나면 YTG 말고 다른 곳에서 데뷔하면 그만이지.”
“…….”
아, 이렇게 빠져나가시겠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조금 헷갈리네.’
평소의 그답게 말투 자체가 건조해서 속내를 알기 쉽지 않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내 경험상 이런 식으로 안 하던 농담까지 던져 가며 말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속내란 이런 것이었다.
‘아쉽나 보네.’
아쉬움이었다.
이제 그는 팅에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YTG의 연습생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그게 아쉬운 거겠지.
집중해야만 간신히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아쉬움이 그의 목소리에 녹아 있었다.
‘그럴 시기가 됐구나.’
나도 그가 방송에서 떠난다는 게 아쉽기야 하다.
하지만 어차피 정해진 일이라면 굳이 붙잡을 필요는 없다.
그럴 자격도 없을 테고.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있었다.
“나중에 뜨면 듀엣으로 곡이나 하나 내자.”
곡이나 하나 내자는 정도였다.
나는 내가 말을 꺼내 놓고도 어쩐지 우스워져서 말했다.
“나도 연예인 친구 덕 좀 보자.”
“…….”
그 말에 임선우는 아무런 말도 없이 우두커니 있더니 말했다.
“곡은 한영이, 네가 쓰고?”
“싱어송라이터잖아. 내 곡은 직접 쓰는 게 편해. 운 좋은 줄 알아. 내 곡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흔한 줄 아나.”
그 순간이었다.
임선우는 흔치 않게 피식 웃더니 말했다.
“그래, 그럴 수 있으면 좋겠네.”
어쩐지 그의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조금이나마 가신 느낌이 들었다.
작은 즐거움과 기대감이 느껴졌다.
우선은 이 정도면 된다.
말이라도 꺼내 보기를 잘했다고 생각한 와중인데, 임선우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말했다.
“그럼 나중에 보자.”
“벌써 가게?”
“숙소 오래 비우면 큰일 나.”
“그렇네. 1층까지는 바래다줄게.”
나눌 이야기는 대충 다 나눴겠다.
옥상에서 나가려 계단 앞으로 간 순간이었다.
뚜벅뚜벅.
계단 문 안쪽에서 누군가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순간적으로 작게 긴장이 돌았다.
밖에 나온 거 들키면 안 된다고 했지.
설마 누구 따라왔나.
매니저라거나.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배드엔딩을 떠올린 찰나였다.
끼익.
녹슨 옥상 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한 사람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외쳤다.
“야, 니들은 왜 따로 놀아. 단체생활이 장난이야?”
홍윤서였다.
그가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재차 말했다.
“자기 축하해 주려고 온 거면 노력을 해야지, 사람이…… 정이 없어…….”
그리고는 자리에서 스르륵 넘어졌다.
붙잡아 줄 틈도 없이.
벽에 몸을 기댄 채로 움찔거리더니 그대로 잠든 모습을 보고 있기를 잠시.
“푸훕.”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이 사람은 팅에서 영원히 데리고 있을 것 같네.’
* * *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도 끝났다.
“이거 영상 올라가면 무조건 대박이다.”
고희범은 유례없이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었다.
“김한영 길거리 버스킹에 유리 난입? 혜화역 앞에서 펼쳐진 역대급 라이브? 제목 뭐라고 하지? 나 혼자 천재 버스커?”
너무 들떴다.
영상을 올리면 올리는 족족 대박이 터지니 일할 맛이 나는 모양.
“언제쯤 올라올까?”
“3일 안에 완성해 볼게.”
“무리하는 거 아니지?”
“에이, 이거는 내가 안 만지면 혀에 가시가 나서 못 버틴다.”
고희범은 양 손가락을 교차해 뚜두둑 꺾더니 말했다.
“야, 너야말로 좀 쉬고 와라. 이번 라이브 준비한다고 고생도 많았을 텐데.”
“뭐 하고 쉬냐.”
“그런 것까지 말해 줘야 하냐?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놈이.”
그렇게 해서.
나는 예상치 못하게 며칠간의 휴가를 얻었다.
어쩐지 일을 할 마음이 안 든다.
동아리에서 고정 멤버 한 명이 난데없이 떠나 버린 탓일까.
‘이거 묘하게 허전하네.’
은근히 아쉬운 이 기분.
하지만 인생 지사 내리막길 있으면 오르막길도 있다고, 직후 동아리에 한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나, 취직 안 하려고.”
조은솔의 깜짝 고백이었다.
“취직 안 한다고요?”
이번에는 나도 좀 놀라서 되묻는데, 그녀는 홀가분해진 목소리로 답했다.
“여기저기 면접도 많이 다니고 시험도 준비하고 면접 코앞까지 가기도 하고 그랬는데, 계속 그런 생각이 들더라.”
“…….”
“내가 그쪽 일을 10년 뒤에도 하고 있을 수 있을까.”
어지간하면 10년은 채우지 않을까.
이 누나가 단체 생활을 못 하는 성격도 아니고.
나도 모르게 의구심을 품은 참인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일을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그런 일이 아닐 것 같은 느낌 있지. 눈앞이 깜깜하니 막막한 그런 기분이 들더라.”
“그래서 취업을 안 하신다고요?”
“응, 대신 생각한 게 있는데.”
그녀는 어딘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대학원에 가려고.”
“…….”
나는 순간적으로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체험을 했다.
왜냐.
‘대학원만큼은 죽어도 안 간다고 하지 않았나?’
평소 그녀가 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영아, 대학원은 인간이 아니라 교수 직속 노예래.] [교수들이 밥 사 준다고 하면 도망가.] [대학원 간 선배들이 그러는데, 첫 1년은 보람차고 2년부터 후회되고 3년부터는 돌아갈 길이 없어서 한다더라. 4년 채우잖아? 관두고 싶어도 교수님이 그런데. 이 세상에 척척박사는 있어도 척척석사는 없는데, 박사는 따야 하지 않겠냐고.]평소 입버릇처럼 대학원 농담을 던지던 그녀다.
그런데 제 발로 들어가겠다고 한다.
“……준비하기에 조금 늦은 건 아니죠?”
“아직 안 늦었어. 평소에 밥 자주 사 주시던 교수님이 계시는데, 연구실에 올 생각 없냐고 물어보시더라.”
순간적으로 이마에 혈압이 얼큰하게 솟았다.
이 누나야.
밥 사 준다고 부르면 그게 교수님들 미끼라면서.
나한테는 누차 경고했으면서 본인이 홀랑 낚였는가.
심히 심경이 복잡하다.
‘이러다가 대학원에 가는 건가.’
하지만 그녀의 눈은 더없이 맑은 게 사실.
평소 어깨를 짓누르던 고민이 사라져서 그런지, 여름 분수처럼 시원한 분위기가 그녀의 주위를 감돌고 있었다.
‘하긴, 자기 인생 알아서 사는 거지.’
내가 남 인생에 너무 간섭할 건 없다.
어차피 늦은 것 같은데 응원이라도 하려는 순간이었다.
“사실, 너 보고 생각을 많이 했어.”
조은솔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하고 싶은 일만 계속했잖아.”
“…….”
“난 진짜 학부 4년 다니면서 너 같은 애는 처음 본다. 그런데 보고 있으려니까 부럽더라. 그래서 나도 본받아 봤어.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그녀가 대학원을 선택한 이유 그 중심에 내가 존재했다는 것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번 일만큼은 나도 뭐라고 할 말을 잃었다.
‘고작 후배 하나가 반년 동안 멋대로 날뛴 걸 보고 4학년이 취업을 포기했다고?’
어처구니가 없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본인이 좋다는 데 말릴 근거도 없지.
보아라, 얼마나 뿌듯해하는가.
더 짜증이 나는 건, 어째서인지 내 가슴 속에서도 일말의 뿌듯함이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진정해라.
왜 그러냐 자꾸.
지인이 내 말을 듣고 진로 결정한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런 일은 원래 많았잖아.
나 때문에 뮤지션 됐다는 사람 널렸잖아.
그런데 왜 여기에 동요하고 그래.
‘요즘 너무 인정을 못 받고 살았나?’
기뻐할 일이 따로 있지.
한창 나 자신과 싸우고 있는 와중인데, 조은솔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밥 한번 살게.”
“……비싼 거요.”
“그래, 이 앞에 대왕 연어초밥집 생겼다더라.”
그렇게 그녀의 진로는 결정되었다.
어느덧 학교에서는 이제 남들의 시선이 너무 당연해졌으며, 예상치 못한 제안을 해 오는 사람도 잦았다.
학교 행사에 힘을 보태 달라는 대충 그런 이야기들.
그렇게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초겨울의 한기가 가까워졌고.
[중경대 김한영 버스킹 레전드 갱신]가을 동안 심어 둔 곡식을 추수할 시기가 돌아왔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