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며칠 뒤.
아침 햇살이 한창 비추는 시간.
끼익.
고요하기 짝이 없는 JCTV의 예능국 국장 사무실에 한 사람이 들어섰다.
건들건들한 발걸음.
그 발걸음이 의미하는 건 분명했다.
‘배 째라.’
배를 쨀 각오가 된 사람이기에 보일 수 있는 발걸음이었다.
JCTV의 예능국 국장, 박찬성 국장은 그 발걸음을 보고는 한층 더 지끈거려 오는 머리를 억누르며 말했다.
“우리 정지승 PD야.”
그 말에 배 째라는 자세가 완연한 남자, 정 PD가 입을 열었다.
“네.”
“너, 아까 한 말 진심이야?”
“그것이 그렇습니다.”
“후우.”
너무나도 당당하다.
누가 봐도, 옆집 사돈이 봐도 배를 쨀 각오가 완성된 사람의 목소리였다.
모범적이다.
저 목소리를 들으면 길에서 처음 본 사람이라도 기꺼이 메스를 손에 쥐여 주리라.
그렇기에 박찬성 예능국장은 치솟는 혈압을 감당하기 위해 더 깊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우선은 이야기라도 들어 보자.’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입술을 지끈 물고는 말했다.
“우리 정 PD가 일을 잘하지.”
“감사합니다.”
“망해도 평균. 잘하면 대박. 나는 솔직히 정 PD가 우리 방송국의 미래를 짊어져 왔고, 앞으로도 짊어질 인재라고 생각해.”
“감사합니다.”
“하지만 말이야.”
그 순간 박찬성 국장의 목소리의 굵기가 달라졌다.
“인재는 인간 재해여야지, 산업 재해여서는 안 되는 거 아닐까?”
심상치 않은 말.
순간 정 PD의 이마에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임마! 정 PD!”
박찬성 국장은 그 찰나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며 외쳤다.
“외부인한테 편집 권한을 생으로 가져다 바쳐? 네가 제정신이야!”
고함을 넘어선 무언가.
평소 방송국 전체에 명성이 자자한 그의 사자후가 내리꽂혔다.
하지만 이 정도는 각오한 일.
정 PD는 박찬성 국장의 사자후 못지않게 유명한 철면피를 단단하게 붙들며 말했다.
“생으로 준 거 아닙니다. 그냥 참관하고 조언하는 고문 정도입니다.”
“아이고, 우리 정 PD야. 우리 일 잘하는 정 PD야. 넌 지금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니? 방송국이 무슨 애들 견학 오라고 있는 곳이야?”
박찬성 국장은 이제 숨길 생각도 없다는 듯 삿대질해 대며 말했다.
“그래, 신인한테 이걸 허락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어디 기획사, 어디 정치인, 어디 고객사. 온갖 곳에서 다 자기들도 편집에 다리 하나 놔 달라고 난리이지 않겠니?”
“……그건 거절하면.”
“거절은 네가 그 신인한테 해야 했던 거고.”
“이미 약속했습니다.”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거야.”
아주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다.
긴 전투가 예상되는 상황, 정 PD는 승부수를 던질 타이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형님.”
이윽고 그가 억울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형님도 몰래 허락한 적 있지 않습니까.”
“내가 언제 임.”
“그 제가 10년 졸라서 데려온 가수 공연 성사됐을 때, 그거 조건이 편집 권한 통으로 넘기는 거였잖아요. 그건 괜찮았어요?”
“…….”
사실이었다.
편집권은 방송국의 독점적인 권한이 맞다.
하지만 이게 어째서인지 ‘급할 때’면 협상 테이블에 올라간다는 게 아는 사람들만의 비밀이기도 하였다.
“뭐가 비밀입니까. 아는 사람은 다 알 겁니다. 우리 옆집 사는 철수도 알걸요?”
즉, 내로남불이 아니냐는 말이었다.
‘이 자식이 아픈 구석을.’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국장이라는 지위는 꼭 논리에 기댈 필요가 없는 자리이기도 했다.
“지승아, 너 지금 나랑 기싸움하니?”
“사실이 그렇잖습니까. 기싸움이요? 필요하면 해야죠. 형님이 저 처음 입사했을 때 그렇게 가르치셨잖습니까. PD보다 위에 있는 사람은 시청자밖에 없다고.”
“…….”
태극권의 달인이 이 자리에 강림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더 첩첩산중이다.
박찬성 국장은 순간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멱살을 잡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다.
‘이놈은 나랑 서로 아는 비밀이 너무 많아.’
서로 꿀릴 게 많다.
정 PD와 그는 입사 이래, 업무 내적으로 외적으로 너무 가까이 지내 버렸다.
무엇보다도 정 PD가 협박 좀 한다고 물러설 사람이 아니었다.
대놓고 안 된다면 비밀로 저지를 사람 아닌가.
저놈의 욕심.
저 1년에 1번쯤 발작하는 욕심 때문에 몰래 진행한 일이 한둘이었나.
‘그래, 어차피 몰래 하겠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어떻게든 시야에 두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박찬성 국장은 길고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지승아, 문제 생기면 어떻게 책임질래?”
“시청률로 증명하겠습니다.”
“증명이 아니라, 책임을 물었잖아.”
“음.”
여기가 승부처다.
이 사실을 직감한 정 PD는 짧은 시간이 흐른 뒤 입을 열었다.
“옷 벗겠습니다.”
“…….”
참으로 쓸데없는 일에 옷 벗겠다는 말이 나온다.
진심인가.
고작 신인 때문에 저런 말이 나온다는 게 말이 되는가.
‘대체 그깟 신인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자존심을 내세우지?’
하지만 정 PD라는 게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자존심 싸움으로 가면, 정말로 물러설 곳이 많은 것처럼 말하는 사람.
그게 사실이기도 하였다.
지난번에 다른 방송국에서 연봉 몇십 배로 스카웃 왔다고 자랑하지 않았나.
‘잠깐, 설마 이 자식, 은근슬쩍 옷 벗으려고 판 짜는 거 아니야?’
그게 아니고서야 이 상황이 말이 안 되는데.
박찬성 국장은 진심으로 정 PD가 블러핑을 치고 있는지 가늠하기를 잠시.
“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가 봐. 가.”
“감사합니다. 형님.”
* * *
결과적으로 말해서, 방송 출연 제안 자체는 받아들였다.
하지만 내 심경은 썩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이렇게 또 과거의 인연이 하나 연결되다니.’
업계가 진짜 좁긴 좁구나.
함재원이라.
함재원, 이름만 생각해도 속이 턱턱 막히는 그를 말하자면, 그는 천재병에 걸린 사람이었다.
[연습은 안 해요.]그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대사였다.
함재원은 평소 재수 없을 만큼 자기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을 품었으며, 주위에서 띄워 주는 걸 즐겼다.
하지만 그래서 그가 진짜 천재였는가.
하면, 그건 반은 사실이면서도 나머지 반은 아니었다.
[형, 내가 나보다 많이 연습하는 사람은 형밖에 못 본 것 같아.]함재원이 내게 한 말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는 나와 근접한 수준으로 연습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음악에 대한 열정도 못지않았지.
하지만 성격이 더러운 게 심각해서 싸울 때도 많았다.
‘아, 갑자기 떠올리니까 다시 짜증 나네.’
잠깐 추억 회상 좀 하나 했더니, 금방 짜증이 치솟았다.
하지만 가라앉혔다.
나는 프로니까.
들숨, 날숨.
아침에 먹은 마그네슘과 라마즈 호흡의 힘을 빌려 멘탈을 다스리고 있으려니 고희범이 입을 열었다.
“한영아, 나는 네가 진짜 부럽다. 어떻게 함재원이랑 같이 방송에 나오냐.”
그렇다.
우리는 지금 함재원과 방송 관련해서 상의를 나누러, 건대에 있는 그의 연습실로 가는 길.
어쩌다 보니 동행한 고희범은 계속 들뜬 눈치였다.
“그런 사람이랑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천재잖아. 한국 3대 기타리스트!”
성민아까지 합류했다.
그녀 또한 함재원이라는 이름에 관심이 남다른 것 같은데, 하긴, 지난번 합숙 때도 함재원에 관심을 비추기는 했지.
애초에 이들이 어디 동아리 소속이었던가.
기타 동아리 팅이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기타 실력으로 손꼽힌다는 함재원은, 이들에게 있어서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천재는 좀 다르겠지?”
“카리스마가 넘쳐서 막 기절하는 거 아니야?”
“학교에서 교수도 한다잖아. 의외로 사람이 좋을 수도 있어.”
두 사람은 그렇게 함재원이라는 거물을 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 바쁜 모양.
하지만 실상을 아는 나로서는 할 수 있는 말이 하나밖에 없었다.
유감.
그의 성격은 실로 유감스럽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 함재원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들은 말이 있는데.”
나는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한윤태 사장님이 그러는데, 그 사람, 그렇게 성격 좋은 사람 아니래.”
그 순간이었다.
“풋.”
성민아가 작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그 사장님은 세상 온갖 가수들을 다 아는 척하시잖아.”
응.
다 아는 게 맞으니까.
한윤태가 무명 가수로 끝나서 그렇지, 한창때는 그래도 유망한 신인 소리 들었다.
유망한 수준에서 그쳐서 문제지.
고희범까지 웃더니 말했다.
“한영아, 부러우면 그냥 부럽다고 말해. 하늘 위에는 하늘이 있다고. 기타 시작한 지 1년도 안 됐으면서 대선배를 깎아내려서야 되겠냐.”
아니야.
내가 선배야.
나는 하늘로 고개를 들고 지그시 눈을 감아 보았다.
‘윤태야, 너는 어떻게 이걸 참고 살았냐.’
옛날 썰을 풀어도 믿어 주는 사람도 별로 없던데 얼마나 속이 답답했을까.
그의 노고를 되새기고 있는 와중이었다.
“여긴가?”
“여기 맞나 본데?”
어느 건물에 다다랐다.
함재원 기타 스쿨.
함재원이 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실용음악 학원이었다.
‘많이 낡았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지으며 건물의 그늘 속으로 발을 뻗었다.
* * *
그렇게 함재원 기타 스쿨 원장실에 들어서고 잠시.
딱.
딱.
딱.
딱.
“어, 반가워.”
내 눈앞의 사람.
함재원이 손톱을 깎으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학생이 이번에 나랑 같이 팀을 짜기로 한 그 친구 맞지?”
“네.”
“방송 좀 봤는데 실물 보니까 더 어려 보이네.”
글쎄, 내 기준에는 댁이 늙은 거로 느껴진다만.
오래간만에 본 함재원은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 달라도 조금 심하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뭔가 쪘는데.’
많이 쪘다.
천재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잘생긴 외모로 팬들을 잔뜩 끌고 다녔던 그답지 않게, 날렵했던 얼굴에 넉살 좋은 턱 살이 붙었다.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해진 체형이 그의 나이를 말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외모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정말 눈에 걸리는 건 따로 있었다.
“방송 보니까 실력은 있는 것 같던데. 그럭저럭 노력 많이 했을 거야.”
함재원.
그의 근본 하나가 바뀌었다.
“들어 봤는데 연주에서 아직 고칠 곳이 많아. 하지만 그건 나이치고 그렇다는 것뿐이지. 충분히 괜찮아.”
사람이 부드러워졌다.
그것도 그냥 부드러워진 게 아니라, 나긋나긋하게 느껴질 정도로.
‘뭐지? 이게 가능한가?’
혼란스럽다.
함재원, 그 싸가지가 이렇게까지 성격이 바뀌었다니.
차마 상상치 못한 광경에, 나는 함정 카드 3장을 마주한 듀얼리스트처럼 혼란 상태에 빠졌다.
‘왜 얘만 변했지?’
다시 만난 한윤태는 한윤태였으며, 장서균은 장서균이었다.
임대경도 임대경이었지.
남들은 다 안 바뀌었는데, 지만 바뀌었다.
“대단해.”
“…….”
차라리 욕을 들으면 들었지, 친절하게 대해지니까 오히려 어색하다.
함재원이 말을 이었다.
“학생들은 인터넷 방송으로 음악을 시작했다지? 현명해, 요즘 시대에 잘 맞춘 방법이야. 꼭 기획사를 통할 필요는 없지.”
그렇게 말하지 마.
겁나 어색해.
오히려 면전에 대고 욕하는 게 차라리 나아.
하지만 식구들은 저런 칭찬 몇 마디에 헤벌쭉해진 모양.
하다못해 성민아도 얼굴에 뿌듯한 기색이 완연했다.
나는 혹시 모르는 마음에 질러 보았다.
“제 나이 때 김한석처럼 하고 싶었어요.”
“김한석이도 학생을 봤으면 자랑스러워했을 거야.”
틀렸다.
너무 완만하게 넘겨 버렸다.
함재원은 눈매가 가라앉은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그래서, 이번 방송은 어떤 식으로 진행하자고?”
그래.
일은 해야지.
사람이 변한 건 변한 거고, 그걸 트집을 잡을 필요는 없으리라.
그보다는 일이 먼저였다.
“작곡 방송이에요.”
나는 그의 앞에 추출해 온 종이를 늘어놓으며 말했다.
종이 다발.
그 안에는 이번 방송의 핵심이 될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악보?”
“네, 악보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제작진에게 이야기를 미리 들으셨을 것 같은데, 곡은 미리 만들어 두고 방송에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렇다.
작곡을 굳이 방송 중 즉석에서 할 필요는 없다.
엔터테인먼트는 엔터테인먼트.
시청자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사전 준비는 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함재원은 의아한 듯 물었다.
“작곡 방송이라면, 아무래도 즉석에서 하는 게 낫지 않나?”
“맞아요. 즉석에서 해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미리 준비해 가면 분명 더 낫지 않을까 싶어요.”
내가 생각하기에 뮤지션의 가장 큰 역할은 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그렇다면 좋은 곡을 만들어 제공하는 게 맞았다.
애초에 즉석에서 만든다고 운에 기대는 건 자만이라는 게 내 생각.
“제 나름대로 곡을 몇 개 준비해 봤어요. 방송 콘셉트에 맞춰서요.”
“아이고,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 왔어?”
“열심히 하고 싶었어요.”
이번 곡은 그와 나의 하모니가 될 터.
함재원은 분명히 말해 재수 없지만, 그 실력만큼은 진짜다.
그렇기에 더더욱 만전을 기하고 싶었다.
이런 재밌는 일이 앞으로 또 얼마나 있을지 모르니까.
“기왕 선배님과 내는 곡이니 퀄리티는 최대한 끌어올리고 싶어요. 함께 상의하면서 수정할 부분을 수정해 봐요.”
“시간도 부족했을 텐데 꼼꼼하네.”
함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다.
다급한 일정이지만, 그만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 왔다.
“합주도 가능한 한 최대한 많이 하고요. 시간이 촉박하지만 그래도 많이 연습하면 어떻게든 될 거예요.”
“크게 어려울 건 없겠네.”
악보만 봐도 아는 걸까.
함재원은 대충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학생 덕분에 나도 이번 방송은 쉽게 진행할 수 있겠어. 좋아, 이 악보 그대로 가도 되겠네.”
옛날에는 그 깐깐했던 사람이 이제는 빠르게도 인정하는구나.
하지만.
이때만 해도 나는 그의 의도를 잘못 알고 있었다.
다음 순간.
함재원의 입에서는 나올 리가 없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합주는 어디 보자, 응, 방송 전날에 한 번 만나서 적당히 합만 맞춰 보면 되겠다.”
적당히라는 말이었다.
함재원.
그가 변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안 좋은 방향으로.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