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방송 촬영 일정까지 시간이 한참 남은 가운데, 내 생활 스케줄이 완전히 바뀌었다.
‘오늘도 내가 제일 먼저 왔군.’
매일 아침을 함재원의 기타 학원에서 시작하는 습관이 잡혔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그의 학원으로 달려간다.
저녁 늦게까지 연습으로 불태우고, 방송할 타이밍에 맞춰서 작업실로 복귀.
이게 내 정해진 루틴이 되었다.
“너는 지치지도 않냐.”
고희범의 질문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은근 재밌던데.”
“그 사람 눈치도 안 보여?”
“볼 눈치가 있어야 보지.”
결론적으로 말해서, 나는 모처럼 느낀 연습의 재미에 푹 빠졌다.
‘후배뻘이 된 게 꼭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군.’
내가 선배였을 때는 그런 게 있었다.
남들과 겹치고 싶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이런저런 면에서 시도하기 버거운 게 있었다. 더욱이 눈치도 보이고.
내 후배가 속주로 일가견을 이루겠다는데, 느긋한 연주를 장기 삼던 내가 모방하면 어떻게 보이겠는가.
그래서 은연중에 못 하던 게 있었는데.
“속주가 이런 맛이었네.”
이제 남들 눈치 볼 게 없어졌다.
선배가 후배를 모방하는 건 조금 부끄럽지만, 후배가 선배 따라가는 건 미덕이니까.
차자작!
지금 연습하는 곡의 제목은 [Libera Me].
함재원이 10년 전에 내놓은 곡인데, 대차게 망했다.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이 곡이야말로 가장 그다운 곡이었다.
속주.
연주의 디테일을 살릴 수 있는 마지노선까지 아슬아슬하게 치고 올라가는 속도감이 이 곡의 최대 매력 포인트.
쉽게 말해서, 손이 저절로 꼬였다.
‘말도 안 되게 어렵네.’
그럼에도 극복하려 붙잡고 있으려니 쑥스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대충 짐작은 했지만, 재원이가 나보다 나은 부분이 많아.’
하기야.
함재원은 적어도 기타 실력만큼은 나와 별 차이가 없었던 사람이다.
그게 20대 초반 무렵이었지.
지금은 30년이 흘렀으니 나보다 뛰어난 게 당연한 일.
그는 새로운 경지로 도약했다.
특히 속주에서.
‘이 연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네티즌들은 그런 그를 두고 한마디씩 던지고는 했다.
[함재원 솔직히 속주를 잘하는 거지, 기타를 잘 치는 건 아니지 않음?] [손만 빠르면 높게 쳐 주는 건 다 옛날 일이지] [3대 기타리스트라고 하지만 솔직히 더 잘 치는 사람이 너무 많음] [뭐든 3대~라고 부르는 문화도 사실 일본에서 온 거거든요] [저놈의 일본 빌런 ㅋㅋㅋㅋㅋ] [저거 레알인데?] [?] [???] [이왜진(이게 왜 진짜의 줄임말)] [ㅇ(알았으니까 잼민이 티 좀 그만 내의 줄임말)] [ㅗ(ㅗ의 줄임말)아무튼, 함재원은 그러했다.
내가 느끼기에 그의 실력은 분명 진일보했다.
하지만 이 세상이 그를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세균이랑 반대네.’
장서균은 시대가 그의 연주를 따라잡았다.
하지만 함재원은 이 세상이 속주를 무시하게 되며 뒤로 밀려나 버린 것.
3대 기타리스트라는 칭호가 무색하게, 최근 10년간 낸 앨범은 전부 평가가 저조하기 짝이 없었다.
완성도가 극에 달했음에도 말이다.
‘은근 불쌍하네.’
실력이 분명 느는데도 대중들의 평가는 오히려 박해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건 나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애초에 그런 일은 겪어 본 적도 없으니까.
“…….”
잡생각에 사로잡히고 나자 어느 순간 손이 멈췄다는 걸 깨달았다.
이럴 때가 아니지.
‘얼른 더 연습하자.’
함재원이 스스로 자기 곡을 만질 생각이 없다고 했으니, 내가 해야지.
그의 스타일에 맞춰서 적당히 다듬어 봐야겠다.
아, 실수.
적당히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 * *
김한영의 학원 테라포밍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만큼 학생들의 태도 또한 변화했다.
“오늘도 오셨네요.”
“내일도 올 겁니다.”
“이따 같이 식사하실래요?”
“맛집이면요.”
점차 김한영과 말을 트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인터넷 유명인이기도 하겠다. 실력이 걸출하기도 하겠다.
막연한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이 잦았다.
하지만.
“여기 어떻게 연주하는 게 좋을까요?”
“흠, 제가 남을 가르칠 실력은 아닌 것 같은데요.”
“느낌만 봐 주세요.”
“그 정도라면야.”
잦은 출석 속에서 끝내 극복해 버린 것.
수강생들과 함께 연습하며 기타를 봐 줄 지경에 이르렀다.
나중에는 직원이 선물을 주기까지.
“목 괜찮아요? 이거 제가 담은 도라지 차인데 목에 좋거든요. 마시면서 하세요.”
“아, 도라지 차 좋죠.”
“잘 드시네요.”
“자주 마셨거든요.”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학원 내에서 김한영의 입지가 급속도로 불어났다.
“김한영이 인성도 좋더라.”
“되게 벽 칠 것 같은데, 말을 나눠 보면 그냥 사차원이라서 그렇지 착해.”
“진짜 신이 불공평하네.”
“점심밥 같이 먹기로 했는데 너도 갈래?”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학원에서 매일 안 쉬고 10시간 이상 상주하는데, 친해지는 사람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더욱이 남의 눈치 따위 전혀 보지 않기에 그러했다.
“선배님, 오늘 저녁에 기타 좀 봐 주실 수 있으세요?”
“…….”
“바쁘시면 어쩔 수 없고.”
그런 태도가 함재원의 눈엣가시처럼 밟혔다.
‘정말로 철면피군.’
함재원은 매번 학원에 와 마주칠 때마다 눈치를 줬는데, 김한영은 늘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오늘은 레슨 가능하시죠?”
“…….”
슬슬 의식 자체를 못 하는 건가 의심스러운 수준.
아니면 알면서도 무시하는 거던가.
어느 쪽이든 그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왜 불편한 거지?’
김한영을 볼 때마다 가슴속 어딘가가 불편했다.
익숙한 느낌.
계속해서 그의 연주를 닮아가는 게 걸릴뿐더러, 자꾸 옛날의 그를 마주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한윤태 그 사람과 사적으로 안다고 했지. 그래서 더 그런 건가.’
슬슬 수강생을 넘어 직원들까지 그를 칭찬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모처럼 강사들과 함께 하는 저녁 회식.
“그분이요.”
딸깍.
부원장은 젓가락을 놀리며 부쩍 밝아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너무 성실한 것 같아요. 매일 와서 저렇게 연습하니까, 다른 수강생들도 불이 붙었는지 더 열심히 연습해 오더라고요.”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듣는 말이었다.
다른 직원이 그의 말에 동의하듯 말했다.
“저도 살면서 저렇게까지 연습하는 사람은 처음 봤네요. 어쩌면 성실한 것도 저 정도면 재능 아닐까요? 원장님도 그러셨으려나.”
“에이, 원장님은 노력보다는 천재 타입이지.”
“아, 원장님은 훨씬 더 대단하셨겠죠?”
“비교도 안 되지. 말 그대로 진짜 천재셨는데.”
직원들이 김한영을 화젯거리 삼아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노력이라.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문득, 알 것도 같았다.
‘옛날의 나를 닮은 건가.’
이상하리만치 노력을 숭상한다는 점.
틱틱대는 말투.
그리고 근래 연습하는 저 연주 스타일까지.
단순히 우연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와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중경대 김한석이라고 자칭한다고 했나.’
생각해 보면 그보다는 김한석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연주에서부터 티가 났다.
겉모습은 함재원, 그의 연주를 모방하고 있지만, 본질은 김한석의 그것에 가까웠다.
김한석에게 연주를 배운 그이기에 확실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이상하리만치 피킹 한 번에 디테일을 들이려고 하지.’
벌써 몇십 년은 지난 일이다.
하지만 사소한 습관부터 말투까지 김한석이 겹쳐 보였다.
연주할 때 남들보다 조금 과하게 숙인 허리부터, 목소리의 뉘앙스까지.
전부 김한석을 빼다 놓은 듯했다.
그래, 함재원, 그가 수십 년을 발버둥을 쳐도 차마 가지지 못했던 것을 모두 가져간 김한석 말이다.
‘그 사람이 부럽네.’
잘 생각해 보면 옛날부터 그러했다.
김한석은 노래부터 기타, 작곡까지 무엇을 하든 대중에게 곧잘 인정받고는 했다.
반면, 그는 기타 하나만 붙잡고서도 발치는 따라갔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속주를 택한 것도 김한석 때문일지 몰랐다.
그와 겹치지 않는 영역에서 잘하고 싶었으니까.
‘이미 너무 옛날 일이지만.’
그러고 보면 이런 생각을 했던 게 또 얼마 만이던가.
의미 없는 일이다.
상념에서 빠져나와 눈앞을 본 순간이었다.
그의 맞은편 강사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게다가 말이죠. 원장님을 굉장히 좋아하나 봐요.”
“나를?”
이건 또 의외의 말이었다.
충분히 벽을 쳤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에서 그런 모습을 보인 거지.
“한국 전체를 쥐잡듯 뒤져도 원장님만 한 기타리스트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함재원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겠지.”
“아니에요. 자기는 김한석 음악을 좋아하지만, 기타리스트로서는 원장님에게서 많이 배웠다고. 자기 기타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고 해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야.”
“에이, 말은 그럴 수 있어도 행동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어느 넉살 좋은 강사가 함박웃음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 학생이요. 여기 오면 거의 원장님 곡만 연습하잖아요. 몇 시간이고 집요할 정도로.”
그랬었나.
생각해 보면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이상할 정도로 그랬다.
“작심삼일이라고 하루 이틀 정도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 쳐도, 원장님 곡은 가뜩이나 어렵잖아요. 어지간한 프로도 힘들 정도로.”
사실이다.
그의 연주라는 게 그렇다.
조금만 따라 하려고 해도 의욕이 박살 나서 금방 접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지.
“그런데 그 학생은 점점 태가 난다니까요. 원장님을 정말 존경하지 않고서야 그렇게라도 하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요?”
그 말을 듣자 예전에 그 학생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잔뜩 화가 난 눈치였지.
그것도 단순히 화가 난 게 아니라, 실망감을 품은 듯했다.
누구에게 실망하였는가.
바로.
[선배님이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저도 그 이야기를 듣고 더 노력했고요.]그에게였다.
‘실망이라.’
기대를 했으니까 실망도 한 거겠지.
대체 얼마나 큰 기대를 했기에 그렇게까지 실망했을까.
그런 실망을 했으면서도 이 학원에 계속 얼굴을 비추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어째서 그런 그를 못 쫓아내고 미적지근하게 방치했는가.
아니.
‘나는 왜 매번 학원에 왔던 거지.’
그 성가신 연주가 학원에서 울려 퍼진다는 걸 알면서 말이다.
마조히스트도 아니고.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였다.
함재원의 숟가락이 허공에서 우뚝 멈추었다.
“원장님?”
그런 그가 의아했는지 부원장이 그의 눈치를 살핀 순간이었다.
“하나만 묻겠는데.”
함재원이 입을 열었다.
“우리 부원장님은, 어려서 기타리스트 누구를 제일 좋아하셨나?”
“아, 저는.”
부원장은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에릭 클랩튼이요.”
“…….”
너무 빠르게 답이 나온 거 아닌가.
그래도 그가 상사인데, 잠깐이라도 고민해 주면 안 되나.
예의상이라도.
하지만 그 솔직한 대답에 함재원은 자기도 모르게 작게 웃고야 말았다.
‘보통은 이러는 게 맞지.’
세상에 잘난 기타리스트가 너무나도 많다.
지미 핸드릭스.
지미 페이지.
제프 백.
스티비 레이 본.
닐 영.
전설이 저 하늘의 별처럼 많아, 감히 세기도 어려울 지경 아닌가.
해외가 아니라 국내만 봐도 마찬가지일 터.
이제 어지간한 속주는 힘자랑 취급 정도나 받는 게 요즘 음악 시장이다.
이런 세상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함재원, 그를 가장 존경하는 기타리스트로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제일 좋아하는 기타리스트가 나 같은 사람이라.’
어지간히 실망스러웠겠군.
톡.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찰나, 함재원은 숟가락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들어갈 테니 천천히 먹고 와.”
“아, 저기.”
부원장이 그를 불렀지만, 함재원은 지체하지 않고 식당을 떠났다.
뒤에 남은 부원장이 넋이 나간 목소리로 읊조렸다.
“밥값…… 원장님이 내기로 하셨는데.”
* * *
‘이건 또 무슨.’
난데없이 원장실로 호출을 받았다.
내 앞에는 여전히 함재원이 팔짱을 낀 채로 앉아 있었다.
‘또 사람 불러 놓고 분위기만 잡네.’
이것도 나쁜 습관인데.
설마 나 떠나고 나서 임대경이랑 친하게 지냈나.
그러다가 안 좋은 물이 든 건가.
할 말 없으면 그냥 보내 주기라도 하라는 생각으로 앞만 바라보는 찰나였다.
“연주가 다 틀렸어.”
함재원이 입을 열었다.
“비슷하게 카피라도 하려는 건 알겠는데, 대충대충 하면 안 되지. 속주라고 해서 피킹마다 볼륨이 그렇게 흔들려서야 쓰겠나?”
“…….”
이 사람 뭐지.
갑자기 불러 놓고 분위기를 잡기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나 싶었는데, 왜 갑자기 잔소리가 튀어나오나.
인상을 찌푸리는데 함재원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처럼 말을 이었다.
“할 거면 제대로 하자고. 틀린 부분을 계속 틀리니까 그걸 듣고 있을 수가 있나. 귀가 간지러워서 원.”
“어떻게 틀렸는지 말을 해 주셔야 고치든 말든 하죠.”
“그걸 꼭 말을 해야 하나?”
“전 이해력이 부족해서 말로만 들으면 몰라요.”
“그러니까 내 말은.”
함재원은 눈가를 찡그리고 부들부들 떨더니, 한쪽 손을 내밀며 말했다.
“기타.”
아.
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월척이군.’
건졌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