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이번 촬영을 시작하기에 앞서 몇 가지 지장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본격적인 촬영 일정이 잡히기 전에 대기 기간이 길었다는 것.
무슨 사정이라도 있었던 걸까.
가일정만 두루뭉술하게 잡힌 채 무기한 연기되었다.
[죄송하지만 섭외 관련해서 난항을 조금 겪고 있어서 조금만 더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정 PD가 마지못해 전해 준 말이었다.
기약 없이 묶어만 두는 게 미안하지만, 그래도 기다려 달라는 말.
‘보통 저러다가 일정이 일방적으로 취소될 때도 많다고 했지.’
채널 테슬라가 전해 준 말이었다.
방송국 일정은 상대가 A급 출연진이 아니고서야, 그때그때 사정 따라 변동될 때가 많다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기분이 나빴는가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나 때도 이런 경우야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애초에 테슬라를 통해 계약서를 써 뒀을뿐더러, 방영일은 잡혀 있으니 방송 진행에 큰 문제는 없을 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확실히 선생님 파트 연주는 선생님이 잘 아시네요.”
함재원과 호흡을 맞출 시간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훌륭합니다.”
“자네, 지금 나 칭찬하나?”
“존경입니다.”
그만큼 함께 곡을 다듬고 내 실력을 끌어올릴 시간도 갖춰졌다.
‘연습 시간을 오래 못 가질까 봐 걱정이었는데 잘됐네.’
그리도 바랐던 합주 기간이 생겨났다.
“오늘은 먼저 와 계셨네요.”
“약속이 캔슬돼서.”
함재원 그에게도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막상 연습을 시작하자 상당히 협조적으로 돌변했다.
기분 탓일지 모르겠지만, 살도 점차 빠지는 것 같다.
능글능글하던 태도는 거의 사라졌다. 그 대신 내 기억 속의 그 재수 없는 태도가 대체했다.
하지만 괜찮다.
‘이래야 함재원이지.’
재수 없지만, 오히려 이 면모가 더 자연스럽기에 내게는 더 편했다.
“박자에 집중하라고 몇 번을 말했지?”
“…….”
“내가 맞춰 주길 기대하지 말고, 그쪽에서 먼저 내 소리를 귀에 담으란 말이야.”
생각해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하다.
옛날에는 분명 내가 잔소리하는 입장이었는데, 이게 역전됐네.
이걸 청출어람이라고 하나.
기뻐해야 할 일인데, 왜 기쁘지가 않을까.
‘곧 따라잡는다.’
괜히 호승심이 끌어오를 뿐.
그렇게 연습의 시간을 가지기를 한참.
알찬 시간은 일찍 지난다고 시간은 부쩍 흘러.
[일정 나왔다고 합니다! 조만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테슬라에게서 좋은 소식이 날아왔다.
그리고.
“이 정도면 부끄럽지는 않겠네.”
마침 그에 맞물려 우리의 신곡도 그 윤곽이 완성되었다.
“겨우 부끄럽지 않은 정도예요?”
“30년은 멀었지.”
묘하게 숫자가 구체적이네.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마지막으로 오픈 테스트 한번 하죠.”
* * *
본격적인 방송 촬영을 불과 일주일 무렵 남긴 날.
나는 모처럼 팅의 식구들을 함재원 기타 스쿨로 불러 모았다.
발표회 겸 학원 세미나를 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요즘 한영이가 매일 어디 가나 했더니 이런 곳에 왔구나. 나는 또 어디 연애라도 하고 다니는 줄…… 아! 왜 때려!”
분위기가 썩 장난스러웠다.
“의선아, 믿음이 부족했구나.”
“상식적으로 네가 출근을 잘 안 하니까…… 아! 또 왜!”
“원래 사장은 출근하는 거 아니야.”
“언제는 사장 아니라 동업자라면서.”
“흠.”
맞는 말이다.
‘윤서 형이랑 붙어 다니다 보니까 논리가 하루하루 느는군.’
근묵자흑이라더니 옛 어른들 말에 틀린 거 하나도 없다.
아무튼, 식구들은 그간 내가 어디에 오갔는지 궁금했던 걸까.
학원을 두고 자기들끼리 감상을 나누기 바빴다.
“진짜 놀라움이다. 촬영 빠지고 뭐 하러 다니나 했더니, 진짜로 기타학원 다니고 있었어?”
“나는 얘 요즘 현자 타임 와서 쉬나 싶었다니까.”
낯선 눈치.
하지만 그런 그들을 반겨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성민아 실물이다.”
“대박.”
학원 수강생들이었다.
그들이 일관되게 팬이 되어서 그들을 반긴 것.
“저 사진 좀 찍어 주실 수 있으세요?”
“한영이요?”
“아뇨, 편집자님이요!”
눈빛부터가 다르다.
겪어 본 적 없는 호의가 밀려오는데, 그 급진적인 모습에 식구들이 당황해서 쭈뼛거렸다.
“제, 제가요?”
“네.”
“왜요?”
“안 되나요?”
“아니, 그건 아닌데.”
이는 떨어져서 보면 우습게는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 우리 방송 팬들이다.’
내가 이래 봬도 기타 좀 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썩 유명한 사람 아닌가.
더군다나 여기에서 그간 피 터지게 굴렀다.
수강생들은 전원 내 방송을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자연스레 내 방송의 팬이 된 것이었다.
“여기로 모이시오. 내 팬들이어.”
당당한 건 홍윤서 뿐.
그는 자기 팬미팅이라도 온 것처럼 수상할 정도로 당당했다.
“차례대로 줄을 서시오. 홍 씨 가의 장남, 어디로 가지 않습니다.”
자애로운 표정으로 팔을 벌릴 뿐.
‘뭐지?’
저 사람은 부담감이라는 게 없나.
심지어 저래도 방송에서는 그를 찾는 시청자들이 은근히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
[윤서단 모여라] [오늘의 윤서 크리틱 32점] [-윤-] [포브스 선정 세상에서 제일 도움 안 되는 게스트 1위]기묘하다.
어찌 되었든, 팬심은 팬심이고 대화를 나누면 금방 친해지는 법.
식구들과 학원 사람들이 친해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우와, 그거 진짜였어요?”
나를 이야깃거리 삼아 대화가 통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1년도 안 돼서 저렇게 치는 거예요?”
“네.”
조은솔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제가 한영이 동아리 처음 왔을 때 면접을 봤거든요. 그래서 잘 알아요. 처음 동아리 왔을 때는 저렇게 못 쳤어요. 활동 시작하고 갑자기 팍 는 거지.”
“……인간이 아니네요.”
“우리 한영이가 대단하기는 하죠. 저희 팅 역사 반세기 만에 최고 아웃풋이에요.”
조은솔은 이상하리만치 내게 자부심을 느끼는 눈치였고.
“웩, 맨날 기만. 저래놓고 지 실력 부족하다고 그런다니까요.”
고희범은 모르겠다.
“자기는 한참 멀었다나 뭐라나.”
“방송 밖에서도 그래요? 그게 컨셉이 아니었다고요?”
“당연하죠. 진짜, 으, 시청자들이야 방송만 보니까 잘 모르지. 저희는 맨날 붙어 있거든요? 저 말을 토템처럼 매일 들어 줘야 하는데, 진짜 하루하루가 홀리몰리다.”
“와…….”
“옆에서 보면 정이 뚝떨이거든요?”
놀랍다.
내가 바로 옆에서 듣고 있는데 저런 말을 할 용기가 어디서 나는지 놀랍다.
“희범아.”
“왜?”
“할 말이 있는데.”
나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월급을 30% 삭감하고 턴을 마친다.”
“사장님, 제가 인간 부스러기였습니다.”
“빠른 인정 좋아. 15%만 삭감.”
“구와악.”
당장 분위기는 그러했다.
여차하면 우리 방송 게스트로 이 학원 사람들을 동원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
그걸 은근히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고.
‘남의 영업장에서 영업하기에는 염치가 없어서 삼갔지만.’
슬쩍 함재원을 바라봤는데, 그의 손이 허공의 줄을 두드리고 있었다.
에어 기타.
존재하지 않는 기타를 연주하는 기법이었다.
무대를 시작하기 직전에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에어 기타를 치는 모양.
‘성실해졌네.’
나는 이유 모르게 자라나는 뿌듯함을 느끼다가 입을 열었다.
“자, 슬슬 시작할게요.”
그렇게 함재원과 함께 준비한 합주를 선보이기를 몇 분.
고희범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거 시청자들이 들으면 난리 나겠다.”
저 말.
저거야말로 내가 기다렸던 그 말이었다.
“실력 진짜 많이 늘었네.”
“한영이가 그래도 속주만큼은 못 할 줄 알았는데. 세상이 진짜 불공평해.”
“또 발전했어?”
“더러워.”
즐겁다.
나를 더 칭찬하라.
“그럼 다음 곡 시작할게요.”
그래.
그렇게 모든 게 잘 풀리는 줄만 알았다.
행사가 끝나고 정리한 뒤 떠나려는 때.
불청객 한 명이 학원 안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이구.”
흰색 머리카락을 꽁지머리로 묶은 중년.
그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손님이 많으시네.”
* * *
식구들은 먼저 회식 자리로 떠났다.
그리고 학원 원장실.
이곳에 난데없이 세 사람이 모였는데, 무겁기 짝이 없는 분위기가 눅진하게 감돌아 영 찝찝했다.
이 분위기를 만든 범인이 누군지는 딱 봐도 알 것 같았다.
‘이 사람, 정체가 뭐지?’
조금 전에 온 불청객.
흰 머리카락의 중년이 여유로운 자세로 의자에 앉아서 콧노래를 불었다.
“흠흐흠, 흐흐흐흠.”
그런데 놀라운 건 함재원의 태도였다.
그는, 어딘가 불편하다 못해 얼굴이 썩어들어 있었다.
함재원.
평소 그 자신감에 가득 찬 함재원이 눈앞 남자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이었다.
‘이 뭐.’
그렇게 마냥 대치 상태가 이어지는 와중이었다.
“여긴 무슨 일로 왔어?”
함재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산에 들어갔다고 했나?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안 나올 거라고 말했던 게 어제만 같은데, 여기에 서 있는 걸 보니 심경에 변화라도 있으셨나?”
“사람이 다 살다 보면 이유가 생기는 법이지.”
“그러니까 왜 왔냐고 묻잖아.”
“사람이 옛날 친구를 찾아오는데, 따로 이유가 필요한가?”
“대답이나 해.”
“오래간만에 본 친구한테 차갑게 굴기는. 그래도 우리 한때는 잘 맞았잖아.”
불청객 중년은 피식 웃더니 말했다.
“너 방송 나온다며?”
“…….”
“JCTV에서 하는 거. 유&마이 온에어.”
그 단어가 나온 순간 함재원의 얼굴에 혈색이 차게 식었다.
그는 인상을 재차 일그러뜨리더니 말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게 됐긴.”
그 순간이었다.
불청객은 누런 치열이 드러날 정도로 웃더니 말했다.
“내가 나가는 방송이라서 알았다. PD가 말해 주더라. 같은 방송에 나올 동지끼리 인사라도 나누자고 들렀다.”
그 대답에 함재원의 표정이 더더욱 찌그러지는 동시에 나도 눈을 크게 떴다.
이 사람, 설마 우리랑 같은 방송에 나올 예정이란 말인가.
음악 하는 사람이었구나.
정체가 누구길래.
“올 거면 말이라도 하지.”
“그러면 반겨 주게?”
“오지 말라고 했겠지. 왜 말없이 왔어?”
“후후, 네가 오지 말라고 할까 봐 그랬지.”
“…….”
말하는 것만 봐도 알겠다.
서로 사이가 좋지는 않은 것 같군.
그런데 불청객은 이번에는 내게 시선을 돌리더니 말했다.
“딱 보니까 이쪽이 너랑 같이 등장하는 친구인가 보지? 그 김한영인가 하는.”
“알면서 뭘 물어.”
“에이,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어서 그랬지. 반가워요. 우리 잘생긴 친구. 아까 노래하는 거 슬쩍 들어 보니까 실력이 아주 대단하던데.”
그가 내게로 윙크를 던졌다.
순간적으로 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 충동이 솟아올랐다.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불쾌하다.
능글능글한 게 마치 뱀이나 지네를 보는 것만 같은 느낌.
얼마 전까지의 함재원이 안 맞는 옷을 입은 것만 같았다면, 눈앞의 불청객은 이게 천성인 듯했다.
“왜 말이 없나.”
그가 되묻기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희 선생님께서 워낙 잘 가르쳐 주신 덕이죠. 기본기부터 탄탄하게.”
“선생님?”
그 말에 남자가 작게 굳었다.
그러고는 함재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그래, 네가 선생이기는 하지. 그런데 설마 학생이랑 같이 방송에 나가? 아, 설마 그건가? 내 후임?”
후임이라니.
무슨 대타 말이지.
좀처럼 이유를 모를 말에 함재원이 얼굴이 눈에 보일 만큼 일그러진 순간이었다.
“영차, 분위기를 보니까 내가 별로 안 반가운 모양이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말했다.
“에헤이, 좋은 마음으로 온 사람을 계속 그런 눈으로 보니까 불편해서 오래 있겠나. 쓰읍, 어차피 조만간 다시 볼 텐데, 그럼 몸 건강히 잘 지내자고.”
그대로 끝이었다.
불청객은 이미 목적을 다 했다는 듯 끝으로 훌훌 떠나갔다.
뭔가 대화를 나눈 것 같지도 않은데, 정말로 얼굴 한 번 보는 게 목적이었다는 건가.
‘이상하네.’
조금 전 대화를 보고 내가 나눈 감상은 이러했다.
옛날 친구 얼굴을 보러 왔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조롱.
사람을 조롱하고 비웃으러 온 것에 가까웠다.
대체 왜.
서로가 불편할 걸 알면서 일부러 찾아오는 저의가 무엇이란 말인가.
나도 모르게 생각에 빠진 참이었다.
“저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지?”
함재원이 입을 열었다.
“……네.”
관심법이라도 쓴 것처럼 맞췄다.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인 순간이었다.
“저놈은 말이야, 옛날에 나랑 듀오 했던 놈이야.”
의외의 말이었다.
왜냐.
내가 알기로 함재원은 단 한 번도 남들과 팀을 꾸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