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2
12화
‘와, 이걸 이렇게 만나네.’
내 눈에 비친 이상혁은 이상적인 대학생처럼 보였다.
잘생긴 얼굴에 인간관계도 꽤 괜찮다고 들었다. 성적도 좋아서 장학금도 휩쓴다지. 여기에 음악 실력도 꽤 괜찮다.
개인적으로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다.
문제는 그가 우리 동아리에서 여자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
‘너만 아니었으면 기타로 고민할 일도 없었을 텐데.’
물론, 큰형님 덕분에 해결이 되긴 했다.
하지만 잠깐이나마 내 혈압 상승에 영향을 줬다는 부분이 거슬렸다.
또 지금 조은솔과 그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경전도 한몫했다.
“은솔아, 여기서 또 보네.”
“그러게, 지난번 버스킹이 끝나고 얼마 만이지?”
“한 달 정도 지났나?”
“에이, 이제 보름이다. 동아리에 신입들은 좀 왔고?”
“너무 많아서 좀 힘들다.”
두 사람은 화기애애한 목소리로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다.
사장님은 그 모습을 보고는 두 사람이 서로 친한 사이라고 생각한 걸까.
연신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같은 학교라서 혹시 했는데 서로 친한 사이가 맞았군요.”
아닌데요.
아는 사이가 맞긴 한데, 친한 사이는 절대 아닌데요.
“상혁 학생, 아까 말했던 사람이 이 학생입니다. 음악 방송을 시작할까 고민하고 있답니다.”
“방송이요?”
이상혁의 눈썹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게 꿈틀거렸다.
사장님은 그게 안 보였는지, 아니면 보였는데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지 말을 이었다.
“같은 학교에 기타 치는 것도 같으면 죽이 좀 맞겠죠? 학생 방송에서 게스트로 써 보는 건 어떻습니까? 거기서 반응을 보고 결정하려 하는데.”
그 순간이었다.
“아하…….”
이상혁은 뭔가 알아챘다는 듯 내게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제 방송 내용에 따라서 이 친구가 여기서 계약할지 안 할지가 결정되는 거네요.”
“그렇죠.”
“음, 알겠습니다.”
그는 상쾌한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제가 또 충분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예, 학생만 믿습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왜냐.
어차피 이런 학생이 생각할 건 거기서 거기니까.
‘자기가 뭔가 꼼수를 생각해 봐야, 나를 칼로 찌르겠어, 아니면 차로 치기를 하겠어?’
최악의 상황으로 가정해 봐야 방송에서 맥이는 정도다.
그리 무섭지 않았다.
* * *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방송을 시작한 이상혁이 유쾌하게 외쳤다.
“이-하!”
무슨 서부극 카우보이를 상징하는 그것과도 같은 멘트였다.
그런데 채팅창은 이내 그의 말을 따라하는 채팅으로 가득 찼다.
[이하!(이상혁 하이라는 뜻)] [이-하!] [이하동문] [상혁이 오늘도 멋있다!] [코디 누가 해줌? 여친?]역시 외모 이야기가 조금 많다.
허우대만 보면 몹시 그럴듯하기 때문일까, 이상혁의 주 시청자는 여성이 많은 모양이었다.
놀라운 건, 단순히 인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후원이 자잘하게 터졌다는 사실이었다.
‘시청자 수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생각보다 화력이 좋네.’
구독자가 5천 명 정도에 시청자는 고작 백 명도 안 되는 방인데, 인사 한마디 했다고 파워챗(미튜브의 후원 기능, 후원자의 닉네임과 메시지를 크게 띄워준다)이 벌써 5천 원이 넘게 들어왔다.
그렇게 방송의 분위기를 익히고 있으려니, 곧 시청자들의 관심은 자연히 내게 향했다.
[쟤는 누구임?] [게스트?] [어리다.] [쟤도 기타 들고 있네.] [귀엽다!]반응이 좋다.
이상혁은 그 말에 시원스레 웃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분은 오늘 방송을 빛내줄 게스트이자 제 모교의 후배! 김한영이라고 합니다! 한영아, 와서 자기소개 해.”
방송 앞이라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반말이 나왔다.
하기야, 같은 학교 후배라는데 존댓말을 하면서 딱딱하게 굴면 그게 더 이상하기는 하지.
방송이니만큼 적당히 살가운 게 낫다.
‘그럼 나도 비슷하게 나가 볼까.’
나는 고희범의 추천으로 봤던 방송들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들! 저희 위대한 이상혁 선배님과 같은 학교이자, 옆집 동아리의 유망주, 김한영이라고 합니다! 김-하!”
“……!”
이상혁이 슬쩍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긴장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어림도 없지.
나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오늘 방송은 저한테도 상당히 중요한 방송입니다. 게스트가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오늘이 제 첫 방송 데뷔하는 날이거든요. 그렇죠? 선배님.”
“어? 응. 그렇지. 그런데…….”
“보셨죠? 지금 이 순간이 제 첫 방송입니다. 그런데 이게 또 그냥 방송이 아닙니다. 저희 선배님께서 절 위해 미션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아마 악기 연주가 될 것 같은데, 맞나요?”
“…….”
“여기서 반응이 좋으면 제가 데뷔할 수 있게 도와주신다고 하네요! 저희 선배님에게 박수 부탁드립니다! 박수!”
이상혁은 이제 아예 표정 관리를 실패하기 직전의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게 썩 노골적이라 나는 속으로 피식 웃음을 지었다.
‘뭘 시키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그냥 가만히 당할 필요는 없겠지.’
깜짝 방송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방송 내용이라면 몰라도, 적당한 흐름 정도는 내 힘으로도 조절할 수 있다.
지금이 그 순간이었다.
이 방송이 내 음악 방송 데뷔와 연관되어 있으며, 또 음악 미션을 시키리라는 걸 확정지은 것.
‘어림도 없다.’
나는 이 방송을 준비하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투입된 셈이니 당연한 일인데, 이건 이상혁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내가 투입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터.
[와, 오늘 무슨 미션 있는 날임?] [후배 발랄한 거 봐 ㅋㅋㅋㅋㅋ] [방송 처음 맞아?] [상혁아 얼른 방송 진행해라.] [음악 미션이라니까 더 기대되네.]시청자들의 호응이 따라오자 이상혁은 얼굴을 작게 꿈틀거리더니 말했다.
“네, 우리 후배님 말이 맞습니다. 오늘은 제가 또 특별한 미션을 하나 준비해 왔어요. 그게 뭐냐. 바로 시청자님들이 정해 준 음악을 귀카피 하기 미션입니다!”
그 말에 시청자들이 물음표를 던졌다.
[귀카피?] [듣고 따라 하는 거 말인가?] [지난번 방송에서도 비슷한 거 했던 것 같음.]그들의 반응이 한순간에 뜨거워졌다.
이상혁은 기대했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귀카피가 뭐냐, 멜로디를 듣고 그 선율을 기타로 그대로 따라 하는 건데요. 이게 또 연주자의 기억력이나 기타 테크닉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물건이 될 수도 있거든요.”
나는 이 말을 들은 순간 이상혁이 뭘 생각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렇군. 날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나?’
흔히 초보 기타리스트들이 잘 못 하는 게 있다.
바로 귀카피다.
귀카피란 다른 곡의 멜로디를 듣고 핵심을 잡아내 기타로 연주하는 행위인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청감이 고도로 단련된 귀가 필요했다.
그리고 기타리스트의 청감은 후천적인 경험과 훈련으로 향상되는 경우가 많았다.
‘듣고도 제대로 된 멜로디를 못 집어내는 경우가 많지.’
여기에 또 문제가 무엇이냐.
시청자들은 방송인이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 이상으로 고생하는 것도 좋아한다.
기왕 귀카피가 미션인 이상 어려운 곡을 던질 게 분명했다.
기타를 연주한 지 얼마 안 됐을 내가 제대로 소화하기 힘들 그럴 곡을 말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이상혁은 내가 속주를 못 하리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지난 버스킹 때도 매우 느릿느릿 조용한 곡을 연주했다. 이상혁의 깔끔하고 정교한 연주와는 정반대로 말이다.
그러니 그는 날 제대로 저격한 셈이었다.
‘초보자한테 귀카피라니. 이거 참 악독한 짓을 하네.’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고수들은 한 소절을 듣고 즉각 소화하다 못해 재해석까지 넣는 기예를 선보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초보들은 악보 한 장을 붙잡고 하루 종일 씨름을 하는 게 보통.
요컨대, 이상혁은 지금 노골적으로 날 망신시킬 생각인 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조은솔의 표정은 당혹감으로 젖어 있었다.
‘저러다가 울겠네.’
반면, 고희범은 아는 게 없어서 그런지 흥미진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넌 나중에 다시 보자.’
다음으로 나는 이상혁을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유감이다.’
얼굴에 자신감이 만연하다.
어지간한 초심자, 아니, 중급자가 상대였다면 제대로 놀림거리로 만들 수 있었을 터.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선배님!”
나는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시청자분이 골라 주신 음악을 듣고 귀카피를 하면 되는 걸까요?”
“응, 맞아.”
이상혁도 환한 웃음으로 보답해 주었다.
‘그래, 지금 많이 웃어둬라.’
잠시 뒤.
이상혁은 시청자들에게 선포하듯 말했다.
“지금부터 파워챗으로 음악을 선곡해 주시면, 제가 그중에서 한 곡을 미션곡으로 선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둘이서 번갈아 가면서 한 번씩 연주하겠습니다.”
그 말이 나온 순간이었다.
[5000원 후원!] [소유미: Life in a day – Better days 연주해 주세요!]오.
처음부터 바로 나왔다.
하지만 이상혁은 바로 선택하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렸다.
[참여방법: 캐시의 Day, Day, Day!] [이응세: 봄바람!!! 봄바람!!!]그렇게 한참 이런저런 선곡이 쏟아지던 참이었다.
[친절한언덕: 캐논 변주곡!]이상혁은 드디어 이 곡이 마음에 들었는지 말했다.
“네, 캐논 변주곡으로 하겠습니다!”
너무나도 시원스레 떨어진 대답이었다.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할까.
좀 너무 시원했던 감이 있었다.
‘캐논 변주곡? 이거 그거 아닌가?’
들어본 적 있었다.
캐논 자체는 원래부터 유명하지만, 기타를 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캐논 변주곡이라면 더 찾아볼 것도 없었다.
‘설마 [이지투]가 연주한 캐논 변주곡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어느 한국인 기타리스트가 연주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버전이 있었다.
기타 솔로에 큰 관심이 없는 일반인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캐논, 그게 이것이었다.
‘희범이가 추천해 줘서 들었던 게 여기서 나왔네.’
그런데 이게 결코 쉬운 곡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굉장히 어려운 곡.
무엇보다도 애초에 일렉 기타로 연주하는 곡이다 보니, 어쿠스틱 기타로는 소화하기 버거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혁은 아무런 부담도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바로 모범적인 연주 영상을 시청자 여러분들과 함께 다 같이 한번 보겠습니다.”
곧 내가 아는 그 캐논 변주곡이 방송에서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시.
이상혁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내가 먼저 시작할게.”
그의 표정에는 이미 승리감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태연히 말했다.
“한 수 배우겠습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