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일본 현지 도쿄 하네다 공항에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몇 분 뒤.
“뭐야, 여기에 묵는다고?”
식구들은 연신 놀라움의 목소리를 터뜨리기 바빴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1박에 50만 원을 호가하는 도쿄 시내의 5성급 호텔.
방문한 인원이 인원이니만큼 방을 하나만 빌린 건 아니다.
합쳐서 3개를 빌렸으니 1박에 150만 원짜리 여정.
‘적당히 고급스럽네.’
건물 바깥부터 주차원들이 줄 서 있다.
로비도 화려하지만, 방 안으로 들어가자 건물 외관과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미친.”
“내가 살면서 이런 곳에 다 자 보네.”
“경치 죽인다…….”
도쿄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품 입지였다.
“진짜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조은솔은 헛것을 봤다는 듯 중얼거렸다.
“알아서 한다길래 어디 가성비 좋은 비즈니스호텔 정도 알아봤겠거니 했는데, 이런 곳을 빌렸다고?”
“네.”
“한영아, 제정신이야? 여기 딱 봐도 엄청 비싸 보이는데.”
“그럭저럭이요.”
“얼마 정도?”
“하루에 백에서 이백 정도 나오나? 아, 빌린 방들 전부 합쳐서요.”
그 순간 조은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얼굴이 르네상스의 대리석 석상처럼 창백해졌다. 혹시 혼절한 거 아닌가 싶은 찰나 그녀가 다급하게 말을 쏟아 냈다.
“한영아, 우리 일정 며칠짜리지?”
“7박이요.”
“……그럼 숙박비로만 천만 원은 깨지겠네?”
“아마도요?”
“한영아.”
그녀는 단전호흡이라도 하듯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들이쉬더니, 내 어깨를 쥐며 말했다.
“환불받자.”
“왜요?”
“잠만 자는데 이건 너무 비싼 것 같아. 지금이라도 싼 곳으로 옮기자. 응?”
“뭐 어때요. 별것도 아닌데요.”
“제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지금 허세를 부릴 때가 아니야! 그 돈이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알아? 한 학기 등록금도 낼 수 있어! 지금 일주일에 일 년 등록금을 태우게 생겼다고!”
격하다.
조은솔은 마치 당장이라도 혼이 증발하려는 듯했다.
평상시 금전적으로 쪼들릴 때가 많다는 그녀다운 태도.
‘방음도 제대로 안 되는 원룸에 산다고 했나.’
듣기로는 옆 방에서 미튜브 보는 소리까지 들린다고 했다.
집에서 기타 연주를 못 하니 동아리에 상주하다시피 했다고 했지.
내가 작업실을 구한 뒤에는 작업실에서 그러고 있고.
‘취업 안 하고 대학원 간 게 신기했지.’
돈이 급한 거 아니었나 싶었다.
그나마 방송이 뜬 뒤로는 수입이 나아져서 투룸으로 이사 갈 궁리를 한다 했나.
이런 반응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호텔 숙박비가 얼마든 실제로 별거 아닌 게 맞기는 했다.
“돈이야 벌면 그만이죠.”
이게 내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방송 잘 되고 있잖아요. 시간 지나면 돈은 알아서 들어와요.”
“모아야지.”
“앞으로도 벌 기회가 많을 거예요. 하지만 식구들끼리 다 같이 여행 올 기회가 또 얼마나 있겠어요. 있을 때 써야죠.”
하지만 돈이라는 게 내가 보기에는 그러했다.
바빠질수록 벌 기회는 많고, 쓸 기회는 별로 없다.
그렇다면 쓸 수 있을 때 쓰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한영아, 우리 대학생이야.”
“누나 이제 대학원생이에요.”
“이 상황에 꼭 반박을 해야만 하겠어?”
조은솔은 비로소 현실 감각이 되돌아왔는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더니, 고희범을 바라보며 말했다.
“희범아, 혹시 한영이 집이 좀 부자야?”
“아뇨, 완전 서민. NPC 수준으로 서민. 저희 부모님과 쌍벽을 이루는 서민.”
“근데 금전 감각이 왜 이래.”
“누나.”
조은솔의 이어진 질문에 고희범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말했다.
“졸부가 다 그렇죠.”
“…….”
엄밀히 말하자면 틀린 말이었다.
나는 졸부가 아니라, 졸부였던 사람이니까.
옛날에는 나 또한 조은솔 못지않게, 아니, 그녀 이상으로 돈에 쪼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원룸이 뭐야, 내 방이 없었는데.’
그렇기에 돈에 집착해 본 적 또한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허무해졌다.
‘소비라는 것도 다 시기가 따로 있는 법이지.’
매일 라면만 먹던 사람이 소고기를 가끔 먹으면 즐거운 법이다.
그 소고기가 한우 투쁠 꽃등심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하지만 한우 투쁠 꽃등심이라고 해서 매일 먹으면 매일 즐거울까.
그럴 리가.
한 보름만 지나도 물려 버린다.
기름이 니글니글해서 싸구려 라면이 그리워질 정도로.
‘요는, 소비를 즐기려면 가장 돈을 못 쓰는 시기에 해야 한다는 거지.’
내가 보기에는 지금이 적기였다.
식구들은 소비 패턴이 대학생 수준으로 고정되어 있다. 아직 돈의 즐거움을 잘 모르겠지.
그렇기에 돈 낭비의 재미를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애초에 마음의 빚을 심어 주려면 지금이 적기였다.
딱히 그런 걸 바라는 건 아니다만.
고희범이 내 어깨 위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누나, 어차피 저희 돈도 아닌데 즐겨요. 망해도 한영이가 망하지 저희가 망하겠어요.”
“희범아, 너도 지분 있어.”
“환불 어디서 받지?”
나는 여전히 놀란 기색을 못 지운 식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충 짐 풀어요. 일단 점심은 장어 한 판 부수고 시작하죠.”
아무튼, 첫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이번 일본 여행은 무려 7박 8일짜리 일정으로 잡았다.
기왕 쉬는 겸 지겨울 때까지 쉬려는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무슨 공연장이 이렇게 많아.”
공연이란 공연은 모조리 섭렵하려는 게 주목적이었다.
홍윤서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중얼거렸다.
“한영아, 아까 그거 봤냐? 길에 한 50미터는 줄 서 있길래 뭔가 봤더니, 그게 다 지하에 작은 라이브 하우스 입장하려는 줄이더라.”
“봤어요.”
“바닥에 공연 홍보 카펫이 깔려 있어!”
시부야를 기점으로 한참이나 뻗어나가는 거리.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골목마다 문화 시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음반 가게부터 시작해 클럽과 라이브 하우스, 전시장, 뮤지컬 극장까지 갖출 수 있는 모든 게 존재했다.
“홍대 상위버전 같다. 진짜 공연 문화 차이가 크긴 크구나.”
성민아는 정신이 어질어질한지 고개를 저었다.
이해한다.
‘옛날에는 진짜 충격적이었지.’
나 또한 처음 왔을 때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이들이 느끼고 있을 감각 그 이상이었다.
그 당시에만 해도 한국의 공연 문화는 막 기틀이 닦이던 시기였다.
60년대 한국의 음악 시장이 어떠했던가.
해외 음악 시장을 따라잡기는커녕, 모방하는 수준조차 버거웠다. 실제로 그대로 모방해 와서 그대로 팔아 치운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고유의 문화가 형성된 게 70년대.
변화가 찾아왔다.
모진 겨울을 견딘 싹이 봄이 되어 결실을 보듯, 질과 양 양면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거두기 시작한 것이었다.
매일같이 새로운 음반 회사가 생겨났다. 와룡과 봉추 같은 뮤지션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 재능을 펼쳤다.
문화다운 문화, 진정한 문화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시기의 한국 음악 시장은 뭐라고 해야 할까.
‘한참 귀여운 수준이었지.’
일본 음악 시장의 발톱 끝에 묻은 먼지조차 못 따라온 상태였다.
시장의 규모는 몇십 분의 일. 녹음 시설부터 음반 제작기술까지 전부 철저하게 뒤처졌다.
당시 한국과 일본의 음악 시장은 아이와 성인의 차이보다도 확연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뭔가 배워 오겠다며 음악 유학을 오는 경우도 많았지.’
나 또한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김진산 사장 말로는 일본에 가면 얻을 수 있는 게 있다고 하여서 억지로 왔던 것.
실제로 얻은 게 있기도 했고.
하지만.
‘이제 여기까지 온 게 신기하네.’
세상이 달라졌다.
30년의 세월은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당당하게 널 말해 봐. Like a rockstar. 불꽃놀이 같은 spotlight. 오늘 밤 너는 세상의 여왕.]역 앞 광장에서 노래를 틀어 놓고 춤을 추는 세 명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노래가 한국어였다.
“저거 스마일리 곡 아닌가?”
홍윤서가 그걸 알아본 듯 말했다.
“스마일리요?”
“여자 아이돌 그룹 있어. 작년에 데뷔했는데, 이번에 신곡 낸 게 멜로 차트 30위 진입했다. 내가 보기에는 내년이면 차트 1위 찍고 1.5티어 입성한다는 데 건다.”
묘하게 빠삭하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형 그러고 보니까 돈 없으시다면서요.”
“응, 그렇지.”
“월급 받으신 거 아이돌 사인회 가려고 CD 막 50장씩…….”
“너도 군대 다녀오면 그렇게 돼.”
안 그럴 것 같은데.
아무튼, 눈앞의 광경은 그의 말대로였다.
한국의 아이돌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추는 여성들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길을 걷다 보면 한류의 영향을 짙게 느낄 수 있었다.
익숙한 아이돌의 음반 광고는 물론, 드라마 포스터까지.
한국인의 얼굴을 보는 게 크게 어렵지 않다.
‘수입하기만 했던 문화에서 이제 수출까지 왔네.’
이제 역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공연 문화를 공부하러 오는 사람도 있다고 했던가.
순간적으로 가슴에 작은 감동이 깃들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이 훤칠한 발전의 한 자리에 내가 서 있다는 게 좋다.
그냥 그런 기분이었다.
‘아직은 아이돌 음악 중심이지만, 언젠가는 다른 장르들도 이렇게 됐으면 좋겠네.’
가능한 한 그 위에 내가 주역으로 서 있으면 좋겠다.
아니, 그렇게 될 것이다.
새로운 미래를 넘보는 찰나였다.
“저거 우리 아냐?”
김예담이 어느 건물의 1층 점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내 눈을 의심했다.
음반 가게, 그 벽면에 걸어 놓은 스크린에서 우리 영상이 송출되고 있었다.
한국에서 촬영했던 유마온 분량이었다.
“진짜네.”
“와, 우리가 일본까지 진출했어?”
“그냥 영상만 가져와다가 틀어 놓은 것 같은데요? 한창 유행했잖아요.”
“그래도 진출은 진출이지.”
“주모! 여기 막걸리 한 사발!”
식구들 또한 이유 모를 감정에 물들어서는 한 마디씩을 중얼거렸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서 편히 못 쉴까 봐 여기에 왔다.
분명 그랬는데, 여기서는 조금이나마 알아봐 준다는 게 기쁘다.
“진짜 진출 많이 했구나. 설마 우리 얼굴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네.”
홍윤서가 중얼거리는데 문득 성민아가 중얼거렸다.
“요즘은 놀랄 일도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그녀가 제일 놀란 눈치였다.
“왜, 요즘 아이돌들은 일본에서 첫 앨범 내면 바로 무도관 공연부터 뛴다잖아요.”
“무도관?”
“몰라?”
“모르니까 알려 줘.”
고희범의 질문에 성민아가 답했다.
“일본에서 메이저의 상징쯤 되는 공연장 있어. 거기에서 공연 성공하면 메이저로 인정받지.”
무도관이라.
옛날에는 꿈도 못 꿨지만, 이제 슬슬 현실로 느껴진다.
나쁘지 않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내년 이맘때쯤에는 무도관에서 공연이나 해 보자.”
“뭐?”
그 순간 성민아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야, 무도관이 쉬운 줄 알아? 그래도 티켓을 최소 5천 장은 팔아야 본전치기할 수 있는 곳인데.”
“딱 적당하네. 5천 명 앞에서 공연하면 할 맛 나겠지?”
“…….”
성민아는 우두커니 서서 나를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진짜 어지간해서는 반박하고 보겠는데, 너는 진짜로 언젠가 할 것 같아서 못 그러겠다.”
“이제 알았어?”
“너 잘났어. 슬슬 공연 시작하겠다. 가자.”
* * *
오늘 하루.
우리는 공연장 세 곳을 돌았다.
쉴 틈 없이 숨 가쁘게 돌아다닌 탓일까, 식구들은 보드게임을 바리바리 싸 온 보람도 없이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쓰러졌다.
채 불도 꺼지지 않은 숙소는 곧 멤버들의 숨소리로 가득 찼다.
“카아아아악! 푸카카카칵!”
홍윤서의 걸쭉한 코골이 소리가 들려온다.
“으으…… 으으으윽…… 으윽…….”
고희범의 고통에 찬 신음도 흐른다.
그리고.
째깍.
시계가 흐르는 소리 또한 울렸다.
깜빡.
눈을 떴다.
‘슬슬 시간 됐다.’
시계를 보자 생각했던 그 시간이 맞았다.
저녁 12시.
내가 하루 종일 기다려 왔던 그 시간이었다.
나는 슬쩍 짐을 챙기고 호텔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건 그들일 뿐.
내 볼일은 끝나지 않았다.
단체 일정이 끝났다. 이제 개인 일정을 소화할 차례다.
‘가게 열었겠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