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세상에는 참 다양한 종류의 공연장이 존재한다.
소수가 모여 즐기기 위한 공연장이 있는가 하면, 본격적으로 돈을 끌어모으기 위한 대규모 공연장.
면적은 좁더라도 최상의 소리를 즐길 수 있게끔 돈을 쏟아부은 공연장.
어느 부호가 버려진 체육 시설을 사들여서 개조한 공연장까지.
공연장이란 관객의 수요만큼 존재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가끔은 자질구레한 사연을 넘어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연장이 될 때도 있는 법이다.
공원.
폐공장.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길.
내 주된 무대는 노상이었다.
길바닥에 싸구려 의자를 깔고 앉아 모자 하나를 내려놓고는, 즉석에서 손이 가는 대로 이런저런 곡을 연주하고는 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지나치기 위한 공간이, 내게는 공연장이었다.
그랬던 내게 공연장이란 어디든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관객이 있다면 곡을 연주할 뿐.
그런 내가 지금 향한 곳은.
‘오래간만이네.’
가장 길거리에 가까운 공연장이었다.
고상하기 짝이 없는 건물.
그 지하로 통하는 길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남아 있었다니.’
30년이 지났음에도 건재하다.
가게가 남아 있다는 사실 정도야 인터넷에서 몇 번이고 확인했다. 하지만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 믿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야, 이 가게는 제대로 된 공연장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곳이었으니까.
저벅, 저벅.
계단을 타고 내려가자 곧 낯익은 간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XAVIER]라이브 하우스, 자비에르.
겉보기에는 특별한 것도 없는 일개 라이브 하우스 주제에 무려 반세기 가까이 생존한 공간이었다.
‘그립다.’
이 공간에 자주 들락날락했던 건 아니다.
일본에 몇 번 방문했다고는 하나, 내 주 무대는 한국이었으니까.
하지만 공간에는 음악이 깃든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그 순간 음악을 들었다면 추억으로 변모한다.
음악은 곧 기억이었다.
자비에르라는 철자를 보자 곧 내 머릿속에도 음악이 들려왔다.
이 공간에서 들었던 음악들.
나는 그것을 잠시 음미하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끼익.
내부는 고급스럽기 짝이 없다.
대리석을 아낌없이 이용한 바닥에 천장에는 샹들리에까지 달려 있다. 조명은 은은한 주황빛이 아늑하기까지 했다.
고급 호텔의 바(Bar)를 연상시키는 실내.
그런 이 공간이 특별한 이유는 저쪽 벽 끝자리에 있었다.
디링, 딩, 타다닥!
벽 한쪽에 마련된 무대에서 곡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실력이 좀 있네.’
헐렁한 카디건을 걸치고 예수 머리를 기른 남자가 기타 하나를 연주하고 있다.
손이 가는 대로 편하게 치는 듯한 모습에서 무게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공연이라기보다는 노는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놀고 있었다.
“한 잔 시키셔야 합니다.”
우두커니 서 있으려니 가게 직원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이 순간 어떤 대답을 할지 고민해 봤다.
‘주문이라.’
사실 굳이 할 필요는 없다.
자릿값을 마실 것으로 지불하거나, 아니면 연주로 대신하거나.
이 가게의 규칙이었다.
‘어떻게 할까.’
바로 연주할까.
아니면 조금 더 지켜볼까.
원래는 가게 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도 손님이 남아 진상을 부려, 연주라도 해 보라고 시켰던 게 전통이 됐다고 했나.
가게 주인한테 들었던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규칙은 있다.
그냥 연주하는 정도로는 모자라다.
곡을 연주한 뒤, 그 실력을 인정받을 필요가 있었다.
누구에게?
뮤지션이 실력을 달리 누구에게 인정받겠는가.
심사위원은 이 자리에 있는 관객들이었다.
시부야의 늦은 밤, 라이브 하우스 자비에르 심야 타임에 구태여 찾아와 공연을 들을 정도로 깊게 고인 관객들.
그들이야말로 최고의 심사위원이라 불러 마땅했다.
“감사합니다.”
한창 연주하던 예수 머리 기타리스트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박수 소리가 빗방울처럼 잔잔하게 쏟아졌다.
이어서 그들이 각자 손에 든 팻말을 들어 올렸다.
좋아요.
저 예수 머리 연주가 마음에 들었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저 사람은 합격이네.’
실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저 사람은 오늘 이 자리에 머무를 자격을 받았으며, 앞으로도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으리라.
“손님.”
“아, 네.”
생각에 빠진 사이 직원이 내 대답을 재촉했다.
“잠깐 보느라요.”
일본어를 할 줄은 알지만, 어디까지나 할 줄 안다는 수준이지 원활하지는 않다.
알아듣고 답하는 정도.
짧게 대답하려니 직원은 대충 예상했다는 듯 말했다.
“1잔을 주문해 주셔야 합니다.”
“알았어요.”
당분간은 분위기를 좀 더 살펴야겠다.
만에 하나 실력이 모자라서 입장권을 못 얻지는 않겠다만, 그래도 처음부터 눈에 띄고 싶지는 않다.
“콜라 하나요.”
기왕 얻은 휴가 아닌가.
느긋하게 구경하면서 소재나 더 얻어 가고 싶었다.
‘옛말에 바닥을 찾아봐라 500원 한 푼 나오나 라는 말이 있지만, 여기라면 황금조차도 주울 수 있지.’
자비에르는 자유롭다.
아무 음악이나 편할 대로 굴러 나온다.
하물며 고객들의 솔직한 평가하에 질까지 일정 수준 이상 지켜진다.
‘인풋을 쌓기에 이만한 환경이 또 있을까.’
양과 질 모두 신곡 제작에 적합하다.
물론, 누군가는 인풋이 필요한 거라면 차트만 둘러보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차트 상위권에 올라갈수록 곡의 방향은 어느 방향으로 굳어지기 마련.
독창성이 줄어드는 부분이 있었다.
그게 꼭 나쁜 건 아니다만, 나는 조금 다른 걸 바란다.
그렇기에 앞으로 일주일.
나는 매일 밤 이곳, 자비에르에서 느긋하게 머무르며 소재를 구해 볼 생각이었다.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직원이 음료를 내려놓고 떠나갔다.
쪼옥.
모처럼 마신 탄산이 목구멍에 찐득하게 달라붙자, 나는 작은 죄악감마저 느꼈다.
‘오래간만에 마시네.’
원래 노래를 부르기 전에 탄산은 금물인데, 배가 더부룩해질뿐더러 음료에 들어간 카페인이 목의 컨디션을 망치기 때문.
그렇기에 나는 탄산을 가능한 한 안 마시려 노력했다.
오늘 내가 콜라를 마셨다는 건, 오늘 하루는 쉬겠다고 휴업 팻말을 내건 것과도 같았다.
‘자, 그럼 느긋하게 시간이나 때워 볼까.’
챙겨 온 노트를 꺼낸 순간이었다.
“거짓말.”
누군가의 놀란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무슨 일 있나 싶어 옆을 돌아보자, 그곳에는 한 남자가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 예수 머리였다.
그가 입이 쩍 벌어진 채로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김한영 맞지요잉?”
“…….”
한국어였다.
그것도 꽤 걸쭉한.
* * *
“그러니까.”
예수 머리가 마치 연예인이라도 본 양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김상은 여기에 수련을 하러 오셨다. 그 말이죠?”
“아니, 수련이 아니라.”
“시장 탐방이군요! 오우와!”
“…….”
부담스럽다.
예수 머리를 하다 못 해 예수처럼 생긴 사람이 방정을 떠니까 부담스럽다.
나는 김상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러하다.
모른 척하고 싶다.
‘이름이 윤국도라고 했나.’
국적은 일본인이지만, 부모님 한 분이 한국인으로서 한인 2세라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음악에 인생을 바치겠다며 다짜고짜 도쿄에 올라온 다혈질.
하지만 아직 앨범 1장도 못 낸 아마추어라나.
‘실력은 나름 있는 것 같던데, 자기한테 맞는 곡을 아직 못 찾았나 보군.’
윤국도는 큰 덩치와 걸걸한 외모와는 달리, 성격만 보면 고희범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물론, 나를 대하는 태도는 정반대지만.
그가 부담스러우리만치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세상에, 설마 이렇게 운이 좋을 줄이야. 전 지금 믿기지 않거든요. 이렇게 운이 좋아도 되는 건가?”
“왜요?”
“제 우상을 만났기 때문이죠.”
우상, 설마 그거 나 말하는 건가.
게슴츠레 바라보는데 윤국도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데뷔했을 때부터 곡 내신 거 다 찾아봤습니다! 진짜 미치는 줄 알았는데. 워후. 최근에 유앤 마이 온라인.”
“온라인이 아니라 온에어.”
“네! 온에어 그거! 거기 나온 것도 봤는데, 그 영상을 제가 몇백 번을 돌려서 봤는지 알아요?”
알겠냐.
당연히 모르지.
내가 반응을 하든 말든 윤국도는 제멋대로 말을 이어 나갔다.
“이 바닥이 테크니션은 많지만, 아티스트는 잘 없잖아요. 그런데 제가 김상 곡을 듣자마자 딱 느꼈지 뭡니까. 이 사람은 아티스트다. 곡에서 영혼이 느껴진다. 사람의 영혼을 울린다. 아, 이거다. 이게 내가 바라고 있던 그 스타일이다.”
뭘 좀 아는 사람이군.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점차 사람이 마음에 들려고 한다.
또 뭐시기 블라블라 말하는 걸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와중, 나는 슬쩍 물었다.
“김한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최고죠!”
“합격.”
“네?”
“합격이에요. 우리 친구 하죠.”
“친구요? 제가 김상이랑 친구?”
“딱 보니까 제가 더 어릴 것 같은데요. 그래도 친구 하죠.”
“키야아아…….”
윤국도는 흡사 신을 영접한 신도처럼 고개를 젖혔다.
예수 머리 한 사람이 이러니까 좀 이상하기는 한데, 아무튼.
“김상, 여기는 어떻게 아시고 오신 겁니까? 여기 현지인 매니아 중에서도 아는 사람이 드문 곳인데.”
“옛날에 김한석이 여기 왔었대요.”
“크, 선대의 흔적을 따라 음악 수행을 왔다 그거군요.”
그렇게 몇 번 잡담을 나누던 와중이었다.
“사실 김상 라이브 보려고 한국 갈까 돈 모으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일본에서, 그것도 도쿄 한복판에서 이렇게 만나게 됐으니 안 기쁠 수가 있겠습니까.”
“뭐, 저도 뵙게 돼서 좀 기쁘네요.”
“후우.”
윤국도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그럼 오늘 밤 제가 김상 무대를 볼 수 있는 걸까요?”
한 번쯤 나올 것 같은 말이었다.
곡을 들려달라는 그런 요구. 팬이 가수에게 가장 기대하는 그것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네요.”
나는 그의 기대를 배반하며 말했다.
“이번에는 일하러 왔다기보다는, 반쯤 놀러 온 거라서요. 이거요. 작곡 노트.”
“음표가 없는데요?”
“보통 감상만 적어 놔요. 제가 어떤 걸 느꼈나, 어떤 음악을 하고 싶나.”
내 작곡 노트의 특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음표를 적는다면, 나는 음상(音像)을 적을 때가 많았다.
“역시 천재는 다르네…….”
그가 신줏단지라도 모시듯 내 노트를 들고 중얼거리는 사이 나는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쉬러 온 거니까 될 수 있으면 주위에 말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요. 조용한 게 좋아서.”
“으, 좀 아쉽네요.”
그가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매몰차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프로다.
음악을 못 들려준다고 남에게 부채의식을 가지면 끝이 없었다.
‘그래도 더 달라붙으면 피곤하겠는데.’
이곳은 좁은 공간이다.
여차하면 입막음으로 한 곡이나 연주해 주고 끝내야겠다 싶은 찰나였다.
“그럼 뭐 어쩔 수 없죠. 편히 쉬었다 가세요.”
“…….”
너무 사뿐한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뭐지, 이 사람.
몇 번은 더 조를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야 말았다.
‘안 아쉬운가?’
노래 한 곡쯤 뽑아 달라고 따져도 되는 거 아닌가.
지나치게 포기가 빠른데.
“괜찮아요?”
말을 꺼낸 내가 다 의아해져서 물어본 순간이었다.
그는 손으로 따봉을 그리더니 말했다.
“제 우상이 그걸로 행복하다면 OK입니다. 후후.”
“…….”
사람 성격 참 좋다.
오히려 이러면 좀 그런데.
이럴 때는 질척질척하게 늘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아, 뭐지.
뭔가, 뭔가, 뭔가가 뭔가다.
아예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따가 노래방이라도 같이 갈까.
나도 모를 기분에 빠진 순간이었다.
“사카모토.”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이어서 윤국도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누구? 지인?”
일본어였다.
말을 꺼낸 사람의 얼굴은 취한 듯 살짝 붉었는데, 치열이 고르지 않았다.
윤국도의 일본식 이름이 사카모토인가 하는 순간이었다.
“아, 이쪽은. 김상이라는 사람인데…….”
윤국도는 뭐라 말하려 하더니, 내가 정체를 최대한 숨기고 있다는 걸 눈치챈 듯 순간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닫고는 말했다.
“음악, 음악 하는 사람이야. 우리처럼.”
“김상? 그럼 한국인인가?”
그 말에 남자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뭘 또 훔치러 오셨나?”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