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숲 뮤직 본사.
건물 복도 옆에 설치된 회의실.
“한영 씨.”
내 눈앞의 사람 한 명.
보편적인 기준에서 말하자면 상당히 예쁜 외모라고 말할 수 있을 여성이 싱글벙글 웃었다.
매력적인 마스크다. 이만한 얼굴이라면 운동복만 입고 다녀도 과에서 여신 자리는 따놓은 거겠지.
하지만 그녀의 진짜 매력은 따로 있었다.
“우리요.”
목소리였다.
그녀의 별명처럼 숲속 요정이 속삭이는 것만 같은 목소리.
일반인 기준으로 조금만 정신을 놓는다면 바로 빨려들 것만 같은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그동안 너무 안 봤죠? 저, 한영 씨 많이 보고 싶었는데. 다시 보기로 약속도 했는데 섭섭해라.”
마치 자그맣게 원망하는 듯한 말이 새초롬하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저 말을 듣자마자 죄책감에 사로잡혀 허둥지둥하겠지.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바빠서요.”
“…….”
“일에 연습에 시간이 없어서.”
내 말에 내 눈앞의 여성, 유리가 고운 미간을 작게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요. 다 바쁘죠. 그래도 저 만날 시간은 있잖아요.”
“왜요?”
“저니까요.”
그녀가 당당하게 가슴을 두드렸다.
“그거 알아요? 저한테 만나자고 하는 사람은 많아도, 제가 먼저 만나자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거든요?”
얼핏 거만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유리가 말한다면 근거가 생긴다.
얼굴 천재 배우, 정우성이 자기가 잘생겼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래도 그럴듯했던 외모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또 다른 걸 보니, 겉모습에 어지간히 공을 들인 모양이다
옆을 돌아보니 고희범의 얼굴은 헤벌쭉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내 감상은 뭐라고 하면 좋을까.
‘무슨 상관이지?’
심드렁했다.
이 사람, 얼마 전에 봤을 때만 해도 사람이 괜찮아 보였는데 근래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안 어울리는 짓을 하네.
눈을 왜 저렇게 떠.
지금, 우리가 무슨 소개팅이라도 온 줄 아나.
‘우습군.’
미안하지만 내 눈은 높다.
저보다 예쁜 외모라면 매일 보고 살았다.
음악을 더 잘하는 사람도 자주 봤다. 거울만 봐도 있었다.
그렇기에 말할 수 있었다.
“식사는 나중에 하고, 일단은 시간 없으니까 일 이야기로 넘어가죠.”
일 이야기나 하자고.
내 말에 유리가 불만이라도 있다는 듯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푸흐흐흐흐.”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유리야, 그러니까 안 어울리는 짓 하지 말라니까.”
손 과장이었다.
유리의 매니저이자, 훗날 숲 뮤직의 임원이 될 게 확실시되는 남자.
그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한영 씨 말이 맞아. 우리 지금 일하러 온 거야. 오글거리니까 그만해라.”
“오글거린다뇨. 담당 연예인한테 말이 왜 그래요.”
“담당이니까 그러지. 그러니까 누가 안 하던 짓 하래? 어딜 잘나가는 척을.”
“저 잘나가는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잘나가거든요.”
“으, 소름. 유리야, 너 그거 진짜 안 어울린다. 앞으로 방송에서도 하지 마. 안티 붙겠다.”
“와, 말넘심.”
장난이었나 보다.
어쩐지 익숙하지가 않더라니.
손 과장은 유리와 티격태격하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 친구가 요즘 일본 진출하더니 이상한 버릇이 들어 왔어요. 한영 씨가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세요.”
“네.”
“잠시만요. 지금 저 무슨 애 취급하세요?”
유리가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하며 다리를 꼬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른스러운 척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손 과장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가방을 뒤적이더니 말했다.
“오늘은 다름이 아니라, 전에 말씀드린 프로젝트 건 때문에 모셨습니다.”
드디어 본론이 나왔다.
그렇다.
오늘 우리가 자리를 가진 이유는 단 하나.
“먼저, 개요부터 설명하겠습니다.”
테슬라와 숲 뮤직의 업무 제휴, 그 첫 단추를 끼우기 위해서였다.
“네온은 조만간 산하 회사들을 합병해 네온 엔터테인먼트를 출범할 예정입니다. 여기까지는 강도수 사장님께 들으셨나요?”
“그렇죠.”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현재 뒤에서 이야기는 대강 끝난 상태로 본격적인 발표만 하면 되는 상황인데. 아무래도 구색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곧 화기애애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합병을 앞두고 대중에게 신호를 주기 위함이라니.
양 회사의 협업을 통해 더 큰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한다더니 하는 것들.
하지만 나는 그의 어깨너머, 유리 벽에 비친 사무실을 잠시 훔쳐보며 생각했다.
‘강도수 사장님이 말한 그대로네.’
이들이 지금 하는 말은 그가 앞서 일러 주었던 그대로였다.
[표면상으로는 단순 프로젝트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실제 목적은 다를 겁니다.] [실제 목적이라면?] [아마 이번 일의 성패에 따라 앞으로의 합병 과정이 많이 달라질 겁니다.]이번 프로젝트의 진짜 의미였다.
[숲 뮤직은 이미 자리를 잡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이지요. 하지만 테슬라는 상대적으로 신생 집단. 제가 네온 측 인사라면, 과연 어느 쪽이 진정 가능성이 있을지 확인해 보고 싶었을 겁니다.]내가 예상했던 바와도 비슷했다.
‘아직은 채널 테슬라가 숲 뮤직에 얹혀 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흔히 기업 간의 합병이라고 하면 동등한 관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떻게든 내부에서 우열이 갈리기 마련.
네온 엔터테인먼트가 나온다고 한들, 거기에서 주도권을 누가 쥐게 될지는 까 봐야 할 일이었다.
모기업 네온이 정하리라.
‘어쩌면 지금 이 자리는 화기애애하게 보일 뿐, 양 기업의 시험대일지도 모르지.’
우리가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동시다발적으로 다른 소속 미튜버, 연예인들의 검증이 일어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주도권을 가져간다면, 네온 엔터테인먼트 측에서도 우리에게 힘을 실어 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주도권 경쟁은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니, 기왕 한다면 주도권을 가지고 이겨야 합니다. 물론 제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느 컨텐츠든 이겨서 나쁠 거 없잖아요?]동의한다.
강도수 사장, 당신의 말마따나 이번 자리는 이겨야 하는 자리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평소 하던 대로 해 주시면 됩니다.”
손 과장이 나긋나긋 웃는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그가 마냥 좋은 사람으로만은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노련한 기업인으로 보일 뿐.
‘기싸움이군.’
싸움이라, 좋다.
굳이 피할 생각은 없다.
“감사합니다.”
한참이나 말없이 듣고만 있다가 영업용 미소를 얼굴에 띄우자, 손 과장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럼 일단은.”
“마침 저희가 이번 프로젝트로 딱 좋은 컨텐츠를 하나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나는 고희범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가 태블릿 PC를 꺼내더니, 익숙한 파워포인트 파일을 준비했다는 듯 불러왔다.
나는 그것을 두 사람에게 보이며 말했다.
“경쟁전입니다.”
* * *
권 이사.
네온 본사의 핵심 인재이자, 이번 네온 엔터테인먼트 합병의 책임을 진 인재.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역시, 모르겠다 싶으면 일단 붙여 놓고 보는 게 최고라니까.”
어딘가 책임감이 없다 못해 훌훌 날아갈 것만 같은 말에 그의 부하 직원, 박 팀장이 물었다.
“그러다가 문제 생기면 어쩌죠?”
“설명해 봐.”
“뭐, 원래 자회사들끼리 주도권 싸움 가지는 게 흔한 일이지 않습니까. 특히 서로 성향이 다르면 같은 회사가 된 다음에도 사내벤처같이 서로 다른 회사처럼 굴러가기도 하고.”
“그럴 수도 있겠지. 숲이랑 테슬라는 서로 종자가 너무 다르니까.”
“기조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그냥 본사 주도로 합병하는 게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일말의 우려가 깃든 말에 권 이사가 박 팀장을 곁눈질로 훑었다.
‘박 팀장이 자회사 인수 과정을 여러 번 지켜봤다고 했나.’
그의 말이 크게 틀린 건 아니다.
합병 과정에서 서로 경쟁사처럼 남는 경우도 많지 않았나.
겉에 붙은 딱지만 같을 뿐, 실제로는 남남인 것.
그래서야 시너지는 기대하기 어렵다.
네온 엔터테인먼트라는 집단 자체가 허울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숲 뮤직 입장에서도 그림이 좋지 않고요. 그쪽에 제 친구 말로는, 테슬라와 합친다는 사실 자체를 불쾌해하는 사람도 좀 있다고 하더랍니다.”
더군다나 두 기업의 성향이 크게 다르니 더더욱 그러했다.
‘아예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지.’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권 이사도 생각이 있었다.
“어차피 다 경쟁이야.”
“예?”
“네온 엔터가 됐든 뭐가 됐든, 이쪽은 장기적으로 보자면 내부 경쟁으로 굴러가게 될 거야.”
어차피 경쟁할 일이라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다 그럴 생각이야. 네온 자체가 그런 곳이지. 대표가 미국물을 먹고 와서 그런가. 자유 경쟁을 너무 좋아해. 도태되는 곳은 숨만 붙여 주는 거고, 승자한테 모든 걸 몰아 주겠지.”
“잠시만요. 그럼 밀리는 쪽이 너무 불쌍하지 않습니까.”
“허, 박 팀장.”
그 말에 권 이사가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이걸 남일 말하듯 하고 있네.”
“예?”
“지금까지 내 말을 어디로 들었어? 네온 자체가 그런 기업이라고. 이건 당장 우리한테도 적용되는 말이야. 우리도 실적만 떨어지면 당장 내일이라도 좌천될 수 있다니까? 경영지원팀 오 이사 일 몰라? 그 사람이 갑자기 피트니스 쪽으로 좌천된 이유가 뭘 것 같아?”
“…….”
박 팀장의 이마에 식은땀이 주룩 스쳐 지나갔다.
“뭐, 다 경쟁이야. 이건 회사 관계를 떠나서, 네온인 이상 내부에 소속된 모든 사람이 서로 경쟁을 하게 될 거야.”
“……무섭네요.”
“한 기업 내부에서 두 집단이 겨룬다고? 아니지, 내가 생각하는 네온은 조금 달라. 네온이 만드는 엔터테인먼트라면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권 이사가 담배를 눌러 뜨며 말했다.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 받아먹으려고 회사 하나에서 수십 개의 집단이 서로 이빨을 들이미는 형태가 될 거다.”
“…….”
박 팀장이 멍하니 입을 열었다.
내부에서 무한 경쟁이라니.
너무 가혹하지 않나.
하지만 지금까지 네온이 해 온 것을 생각해 보면, 특별히 신빙성이 없는 추측도 아니었다.
네온은 경쟁을 너무나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해 왔다.
철저히 그 승자에게만 모든 자원을 몰아 줄 뿐.
당장 산증인이 눈앞의 사람 아닌가.
30대에 불과한 젊은 나이에 실적 하나로 이사 자리까지 올라왔다.
법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실적이 전부인 회사, 그게 네온이었다.
“테슬라랑 숲 뮤직이 전부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니야. 앞으로도 틈만 나면 자회사를 늘리고, 합병하려 들겠지.”
“그럼…….”
“숲 뮤직에 이번 일을 불쾌해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럼 다른 일자리 찾아보셔야지.”
“하지만.”
“박 팀장, 이 친구야. 그깟 회사 간판보다는, 개개인의 능력이 중요할 거란 말이야. 김한영이라고 했나? 그 친구가 요즘 잘나간다고? 그럼 그 친구가 대가리를 먹겠지. 원래 A급 100명보다는 S급 1명이 더 나아.”
쏟아지듯 나온 말에 박 팀장은 숨을 죽이고 있기를 잠시.
마침내 호흡을 다스리고는 말했다.
“지금 하시는 이런 말씀이요. 다른 사람이 들으면 큰일 나겠네요.”
“내가 그래서 박 팀장을 좋아해.”
“…….”
* * *
“이런 겁니다.”
팅 식구 전원이 머리를 굴려서 만든 프로젝트 제안서.
그걸 가감 없이 털어놓았을 무렵이었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할지, 참.”
손 과장이 흔들리는 시선으로 중얼거렸다.
“한영 씨는 승부를 좋아하시네요.”
“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대중들도 좋아하고요.”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