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회의가 끝났다.
“그럼 멀리까지 와 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좋은 시간, 좋은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아니요. 저희야말로 많이 배웠습니다. 회사가 넓고 깔끔한 게, 역시 잘 나가는 회사는 다르네요.”
“하하,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손 과장은 너털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그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건 저희도 마지막으로 위에다가 보고를 올려야 하는 일이라서요.”
“얼마나 걸릴까요?”
“금방 소식을 드릴 수 있을 겁니다. 한영 씨가 생각해 주신 기획이 매력적이니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이건 한영 씨가 주도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만족감이 긴장감과 함께 깃들어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내 기획에서 위험성을 느꼈지만, 그만큼 매력도 함께 느낀 모양.
그는 빙그레 웃더니 말했다.
“대중은 경쟁을 좋아한다라. 확실히 그 말이 맞습니다. 저도 잘 기억해 두겠습니다.”
“분위기 타서 한 말인데 그렇게까지야.”
둘러대려는 참인데 갑자기 유리가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이번에도 식사 같이 못 해요?”
“저녁에 식구들이랑 약속 있어서요.”
“우우, 나만 매일 차여.”
그녀가 볼을 부풀렸다.
흉측하다.
치우고 싶은 충동에 안면근육이 꿈틀거리려니 손 과장이 그녀의 등을 찰싹 두드렸다.
“아! 왜 때려요! 맨날 폭력이야!”
“누가 들으면 진짜 맨날 때리는 줄 알겠다. 그리고 너도 그만 밖에 싸돌아다녀. 매일 뭐 먹으니까 슬슬 뺨에 올라온다.”
“……전 그런 모습도 어울리거든요? 팬카페에서 그러는데 저는 자다 깨서 부은 얼굴도 귀엽대요.”
“하이고, 그 사람들은 네가 얼굴에 김칫국물을 발라도 귀엽다고 할 거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 보면 오늘부터 매일 연습만 해도 모자라겠더구먼.”
둘은 언제 얌전했냐는 듯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내 눈에도 신선하게 비쳤다.
‘가수와 매니저 사이에는 이런 관계도 있다는 거겠지.’
털털한 삼촌과 말 안 듣는 조카를 보는 듯한 관계. 사회인이라기에는 서로 지나치게 무게감이 없다.
하지만 그래서 별로인가.
아니다.
오히려 내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콤비로 비쳤다.
“매니저님이 자꾸 저한테만 뭐라고 하니까 한영 씨가 이상하게 보시잖아요.”
아니다.
그냥 이 사람 행동이 이상해서 이상하게 보고 있던 거다.
“응, 너 이상한 거 맞아.”
전적으로 동의한다.
“매니저님, 저도 연예인인데 이미지 관리 좀 도와주시죠.”
“알아서 하세요.”
옆을 돌아보니 고희범의 볼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있는데, 유리는 뒤늦게 헛기침을 뱉더니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다음에는 꼭 밥 먹는 거예요. 꼭.”
“시간 나면요.”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매니저님. 들으셨죠?”
“네? 저요?”
“한영 씨 매니저님이면 또 있나요?”
고희범이었다.
유리의 말에 고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데 그녀가 누차 강조하듯 말했다.
“그럼 꼭이에요.”
숲 뮤직과의 첫 미팅은 그러했다.
진지한 비즈니스라기보다는, 조금 방정맞은 미팅.
돌아가는 길,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대화를 대충대충 넘겼던 건 딱히 우리를 방심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게 본성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 * *
작업실로 돌아올 무렵, 그곳에는 이미 식구들이 몰려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거 뭐예요?”
“족발.”
“언제 시켰어요?”
홍윤서가 손에 쥔 다리 하나를 우물우물 씹더니 말했다.
“너한테도 문자 했잖아. 너희 작업실에서 네 돈으로 밥 먹을 건데, 너도 오고 싶으면 오라고.”
“…….”
자를까.
아니야, 참아, 내 안의 이데아.
나는 플라톤의 명언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리고는 자리에 앉아 젓가락을 들고 말했다.
“미팅 끝냈고, 기획도 다 끝났어요. 아마 원래 계획대로 갈 것 같대요.”
“아, 그거?”
그 말에 조은솔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천하제일 노래자랑대회 그거?”
“네, 그거.”
나는 고기 한 점을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숲 뮤직과 단체 승부가 될 거예요.”
그렇다.
이번 기획은 단체전이었다.
싱어송라이터 김한영과 숲 뮤직이 둘로 갈라져, 각자 다섯 명씩 뮤지션을 동원한다.
그리고 승부를 겨루는 것.
이번 승부란 시작부터 철저하게 경쟁이었다.
또한, 단체전이었다.
“채널 테슬라와 숲 뮤직의 합동 프로젝트로 이만한 게 또 없겠죠.”
강도수 사장의 말에 따르자면, 이번 프로젝트의 진짜 목적은 우리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시간을 좀 아껴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좋다.
기꺼이 어울려 주겠다.
그런 생각으로 짜낸 기획이었다.
단체로 겨뤄 보자는 것.
“그…… 한영아. 그걸 저기서 들어 주겠다 했다고?”
그런데 성민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가를 꿈틀거리며 물었다.
“왜?”
“아니, 왜기는 왜야.”
그녀는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다 떠나서 보자. 네가 숲 뮤직에 가서 그쪽 중견 뮤지션을 다섯 명이나 내놓으라고 요구했다는 거잖아?”
“그렇지.”
“그걸 또 저기서는 들어 주겠다고 했고?”
“일단은.”
“……다 미쳤어.”
그녀는 양손에 얼굴을 파묻더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제안을 진지하게 하는 사람이나, 그걸 또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회사나.”
“왜.”
“상식적으로 말이 돼? 덩치 차이가 있는데?”
성민아는 아무래도 이번 제안이 성사되기 어려우리라고 생각했던 모양.
아무래도 싱어송라이터 김한영은 숲 뮤직에 비해 턱없이 작은 집단이니.
고희범이 혀를 차더니 말했다.
“너, 자존감이 약하구나.”
“……너한테만큼은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성민아가 볼멘 목소리로 항의했지만, 내가 보기에 이번만큼은 고희범의 말이 옳았다.
“둘 다 이야기 이상한 곳으로 빠지지 말고.”
나는 슬쩍 다리를 하나 더 집어 먹으며 말했다.
“그런 이유로,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조합을 다섯 만들어야 해요. 상대가 누구든 어떤 프로젝트든 어쨌든 이겨서 나쁠 건 없으니까.”
어떻게 보면 이것이야말로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김한영 채널과 유리의 경쟁이 아니다.
김한영 채널과 숲 뮤직의 경쟁이다.
그만큼 더 주목을 가져갈 수밖에 없을 터. 소소하지만 큰 차이였다.
“우선, 제 이름 걸고 하는 프로젝트니까 전 나가야겠죠.”
내 말에 식구들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다음으로 두 사람을 집었다.
“누나는 참가해 줬으면 좋겠어요.”
“나도?”
대답한 건 조은솔이었다.
그녀는 얼핏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이제 대학원 때문에 바쁠 텐데…….”
“하려면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전에 해야죠. 음악으로 이루고 싶은 거 많으셨잖아요. 이번에 한풀이하세요.”
“…….”
내 말에 그녀는 잠시 반응 없이 가만히 있었다.
나는 몇 마디 더 부추겨 보기로 했다.
“누나 빠지면 제가 팬들한테 혼나요.”
잠시 뒤.
그녀는 뭔가 결심했다는 듯 말했다.
“열심히 할게.”
“그래 주면 좋고요.”
조은솔의 실력은 탁월하다.
기본기만 따지자면 프로에 못지않다. 그녀에게 내 작곡이 얹어진다면, 어지간한 프로라고 해도 상대해 볼 만하겠지.
“다음은 성민아.”
“나?”
“왜, 싫어? 그럼 빠져도 되고.”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참가해.”
지나갔다.
이다음은 누구로 해야 할까.
그것 또한 정해져 있었다.
“윤서 형. 그리고 마지막은.”
“야, 내 의견은 묻지도 않지.”
“형도 제 의견 안 묻고 족발 시켰잖아요.”
“아니, 예담이 누님도 있잖아.”
“문자로 물어봤는데 그때 학회 출장 때문에 해외 나갈 일 있어서 바쁘데요. 유럽에 전통 음악 뭐가 있다나.”
조합이 완성되어 간다.
나는 모처럼 즐거운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남은 멤버를 바라봤다.
‘희범이는 빠지겠다고 했지.’
그가 참가한다면 거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본인이 싫다고 했다.
“의선아, 너는?”
“나는 내년에.”
정의선도 자발적으로 빠졌다.
그렇다면 일단 식구들의 의사는 전부 확인한 셈.
다섯 자리 중 넷이 채워졌다.
“뭐, 서두를 필요 없으니까 남은 자리 하나는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뽑아 보죠.”
이건 따로 생각해 둔 게 있었다.
* * *
대충 당분간의 스케줄이 정리됐다.
한예원 측과 약속한 컨텐츠를 촬영한 뒤, 그 기세를 이어서 숲 뮤직과 겨룬다.
‘숨 고를 틈도 없겠네.’
하지만 딱 좋다.
사람은 스테인리스 팬과도 같아서, 적당히 가열해 줘야 잘 드는 법이니까.
그렇게 본격적인 프로젝트 시동을 코앞에 둔 귀중한 시기.
우리는 갑자기 딴 길로 샜다.
“와, 벌써 개강이야.”
“진짜 시간 더럽게 빠르다.”
개강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개강이 본론은 아니고,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따로 있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올해 신입생 중에는 물건 하나 정도 나왔으면 좋겠는데.”
팅 신입생을 모집하는 것이었다.
전력 확충.
쓸 만한 사람을 한 명쯤은 발굴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김한영 채널에서 뽑아 보고, 정 안 되면 테슬라에 사람 하나 달라고 해야겠다.’
대안은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부인을 잔뜩 끌어들이자면, 우리 방송의 색채가 냉장고에 한 달 묵힌 잎채소처럼 죽을 수도 있겠지.
그렇게 되지 않게끔 조금만 더 미뤄 볼 생각이었다.
‘일단은 여기서부터다.’
신입생 환영회.
3월 개강 직후 찾아오는 이벤트.
이번 환영회를 위해 우리는 작은 채비를 갖췄다.
“많이도 오네. 이게 다 신입생이란 말이지?”
“한영아, 너 때문에 중경대 입학한 사람도 있다더라.”
바로 학교 중앙의 야외잔디밭 공연장을 통째로 빌린 것이었다.
“이만하면 신입생 환영회 규모라고 보기도 어렵겠다. 다른 동아리는 많아야 몇십 명 온다는데, 우린 그 몇십 배야. 거의 콘서트장인데?”
손에 카메라를 쥔 고희범이 안 믿긴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의 말마따나 잔디밭 주위로 사람이 분주하다 못해 흰개미 집처럼 와글거렸다.
사람의 벽.
그게 주위를 빼곡하게 꽉 채워 버리니, 아예 건물에 올라가서 창문 너머로 보는 사람마저도 속출했다.
홍윤서는 그게 못마땅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팅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김한영 보려고 온 사람이 더 많은 거 같다만.”
“그럼 뭐 어때.”
“아니, 우리 학교 학생 아닌 것 같은 사람도 많은데 무슨 김한영 단콘이야?”
“한영이 단콘이면 뭐가 어때서. 아주 배가 불렀네. 불렀어.”
반면 조은솔은 기쁜 거로는 부족해 감동한 목소리로 말했다.
“작년 이맘때쯤만 해도 팅이 진짜 망하는 건가 했는데.”
“…….”
아, 그렇지.
팅 여기 작년에는 망할 뻔했지.
1년을 너무 바쁘게 보냈던 바람에 그만 까먹고 있었다.
“나는 진짜 이 광경이 믿기질 않거든? 그때는 신입생 환영회 여니까 20명쯤 왔는데, 걔 중에 딱 한 명 가입하더라.”
“누구요?”
“우리 민아.”
많이 기쁘셨구나.
어쩐지 감싸고 돌더라니.
성민아가 슬그머니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걸 마지막으로, 나는 고개를 돌려 관중들을 바라봤다.
‘이 중에서 실력 있는 사람 한 명만 나왔으면 좋겠는데.’
숲 뮤직과의 경쟁에도 내세울 만큼 실력 있는 사람이 한 명은 있었으면 좋겠는데.
중경대가 음대도 아니고, 프로 씬에서도 먹힐 사람이 대뜸 나타날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만 말이다.
‘뭐, 없으면 어쩔 수 없고.’
한국인은 노래의 민족이니까 운 좋으면 비전공자 중에서도 한 명쯤은 나올지도 모르지.
하현우라던가 하현우라거나 하현우 같은.
나는 그 정도의 마인드로 무대 위에 올랐다.
그리고.
“김한영이다!”
“와!”
“김한영! 기만! 기만 보여 줘요!”
“미쳤다!”
“자랑스러운 21학번 김한영!”
흡사 광기에 물든 관중들을 마주하며 말했다.
“볼품없는 제 노래를 들으러 이렇게 많이 와 주셨네요.”
고희범이 써 준 각본 그대로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와아아아아아!”
“역시 김한영이야!”
“기! 만! 기! 만!”
“…….”
“형! 더 해 주세요!”
이 사람들, 괜찮은 거 맞나?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