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본격적으로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깊게 고려해 둔 것이 있었다.
‘평균으로 따지면 우리가 발리겠지.’
팅이 실력 승부에서 우세를 점하기는 어려우리라는 것이었다.
나 빼고.
아무튼, 한예원은 근본적으로 엘리트 집단이다.
잘하지.
어떤 식으로든 정면에서 맞부딪친다면 밀리리라.
“한영아, 긴장하고 있니? 표정이 너무 딱딱하다.”
조은솔이 웃는 얼굴로 말을 걸어 왔다.
아무래도 기색이 역력했나 보다.
“그냥 안 하던 거 하려니까 어려울 것 같아서 그래요.”
“저기, 한영아.”
그녀가 다시금 웃더니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네가 실수해도, 우리가 잘하면 그만이야.”
그렇게 말하는 조은솔의 표정이 다정했다.
내게 기운을 주려는 듯했다.
성민아도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맞아. 네가 그러는 거 안 어울려. 그냥 평소대로만 해.”
“…….”
이 사람들, 대체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거야.
설마 내가, 내가 밀릴까 봐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그거 아닌데.’
나는 당신들이 질까 봐 걱정하고 있는 건데.
오해하면 안 되는데.
내가 왜 지난 몇 주 동안 눈에 실핏줄이 터지도록 잠도 못 자고 준비했는데.
‘좀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지난 2주일.
나는 김예담과 공요한이 가진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서 저쪽의 동향을 살폈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악을 하는지.
습관은 무엇인지.
그 모든 걸 샅샅이 준비하고 또 대비했다.
오늘은 그간의 성과를 확인할 뿐이다.
‘실력으로 정면에서 맞부딪치는 건 나 하나로 족해.’
식구들에게는 조금 다른 걸 요구할 생각이었다.
제대로 해낼 때의 일이겠지만.
“시작이다.”
곧 한예원 측 여학생 한 명이 무대 위에 올라왔다.
조은솔의 경쟁자가 될 학생이었다.
땅딸막한 덩치에 캐쥬얼하게 차려입은 여학생. 그녀가 마이크를 손에 쥐고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 히사시부리.”
“…….”
뭘까, 이 느낌.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고희범의 냄새가 난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오늘 자리를 만들어 준 모든 분께 고맙고요. 또, 뭐냐. 곧 배틀 프론티어 신작 발매하거든요? 저 그거 재밌게 하고 있는데.”
잠시 의식의 흐름이 이어질 무렵,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냥 노래 먼저 부를게요.”
어딘가 기대감이 낮아졌다.
아무래도 언행에 장난기가 있던 탓일까. 같은 과의 장난스러운 동기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든 순간.
“저주받은 나의 사랑아.”
마녀와도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역시.’
고혹적이다.
목소리의 텐션이 극히 탄탄하여, 귓가를 드릴로 후비는 것만 같다.
나는 이 발성의 정체를 알았다.
뮤지컬 발성.
벨팅을 기반으로, 감정 표현과 발음의 또렷함을 극도로 강조한 창법이었다.
‘괜히 뮤지컬을 선곡한 게 아니네.’
저쪽 여학생의 노래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압도적인 몰입감.
뮤지컬답게 눈빛과 손끝 연기에서도 엄청난 강점을 보인다.
그것이 가창력과 합쳐져 관객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그댈 만날 때마다 마음에 흉터를 덧대야 해. 비극 속 주홍 글씨처럼. 내 노래는 한탄, 내 노래는 곡절, 내 노래는 신음.”
강렬하다.
하지만.
‘딱 예상했던 만큼 부르네.’
정확히 내가 기대했던 수준의 노래였다.
“노래 끄-읕!”
마무리는 시작과 마찬가지로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처음의 그것과는 감상이 달라졌다.
일찍이 노래를 시작한 순간 무대 위에 강림했던 마녀를 본 탓일까.
[실화냐?]관객들의 입에서 열렬한 환호성이 쏟아졌다.
나는 그 목소리의 파도를 뒤로하고, 고개를 돌려 조은솔을 바라봤다.
그녀는 고개를 아래를 향한 채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기죽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뮤지컬이 제아무리 사람 홀리기 좋다고는 하나, 사람에 따라서 곡을 즐기는 방식은 다르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곧 긴장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 내 노래는 곡절…… 내 노래는 신음.”
조은솔은 혼자 작게 중얼거리며 복습하고 있었다.
코앞까지 와서 복습하다니.
그녀답게 성실하다.
“한영아, 다녀올게.”
잠시 뒤.
그녀의 차례가 시작되었고.
그 반응은.
[뭐지?] [분명 저쪽이 더 잘 부르는 것 같은데, 이쪽이 더 듣기 좋음] [야 너두?]역시나,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 * *
무대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바로.
[잘 부르는데?] [아니, 잘 부르기는 잘 부르는데.] [어딘가 듣기 편하다.]조은솔의 곡이 예상외로 고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
[되게 산뜻해] [목소리가 물방울처럼 가볍게 끊어지는 느낌? 나 이런 거 좋아하거든요.] [음색 좋다. 감미로워] [은소리 누나 내 여자친구 해 주세요] [ㄴ 못 됐다 잘한 사람한테 왜 벌을 주려고 하냐] [너어는 정말 나쁜 사람이다]조은솔의 노래 앞에 한예원 측 여학생이 점차 굳어 갔다.
저쪽도 프로라면 본능적으로 알 수밖에 없겠지. 관객들이 어느 쪽 곡에 더 집중하고 있는지 말이다.
‘어금니 부러지겠네.’
원인은 이러했다.
‘고생한 보람이 있어.’
철저하게 경쟁자에 맞춰 편곡했다.
실력이 아닌, 곡의 싸움을 이끌어 갈 수 있게끔 곡을 만져 놓았다.
“라라, 라. 이런 내가 미워요.”
조은솔의 곡은 제작 단계부터 편곡까지 철저하게 그녀에게만 맞췄다.
마치 맞춤 정장처럼.
그냥 적당히 다듬은 게 아니다.
[같은 곡 맞음?]편곡 단계에서 가사 빼고 다 엎었다.
아예 다른 곡을 창조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뮤지컬로 시작된 곡을, 조은솔의 특기인 서정적인 포크송으로 고쳐 냈다.
곡의 DNA부터 뜯어고쳤다.
[생각보다 팅이 안 밀린다?] [ㄹㅇ 발릴 줄 알았는데 안 발림]가창력의 격차가 아니다.
이건 곡의 격차다.
꼭 가창력을 자랑해야 좋은 곡이 되는 건 아니다. 폴킴만 해도 그렇지 않나.
그렇게 아주 높지도 않고, 그렇게 아주 기교를 부리는 것도 아니다.
좋은 멜로디와 고른 호흡.
그리고 지난 1년간 성실하게 다듬어 온 발성 정도면 충분했다.
물론, 조은솔이라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우리 계속 엮이겠지요. 만나서는 안 됐을 우리가 만나 더러워진 걸까요.”
가사와는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솔직하다.
너무 솔직해 기교가 없고, 꾸밈이 없다. 꾸미려고 하지 않는다.
기교를 부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은솔이 누나가 이런 거 잘하지.’
그게 그녀의 장점이었다.
듣는 이에게도 솔직하게 다가온다.
평소 그녀의 겉과 속이 같은 성격처럼, 그녀의 노래 또한 솔직했다.
요령이 없다. 그렇기에 요령을 부리지 않는다.
어느새 그게 그녀의 힘이 되었다.
앞서 뮤지컬 발성으로 한껏 피로해진 관중들의 귀를, 조은솔의 꾸밈없는 목소리가 치유해 주었다.
[귀가 편하다] [ㄹㅇㅋㅋ]그렇다.
조은솔의 노래 속에는 힐링이 담겨 있었다.
“감사합니다.”
어느새 곡을 마친 조은솔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자신감 있는 표정.
조은솔은 이어서 잔잔한 환호를 뒤로하고 자리로 돌아오더니.
“……나 실수 안 했지?”
한순간에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크게 긴장했던 모양.
“완벽했어요.”
“진짜?”
“네, 진짜로.”
“다행이다…….”
디테일로 따져 보면 지적할 곳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오늘은 넘어가기로 했다.
이내 조은솔의 예상외의 분투를 넘어선 채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민아야, 응원할게.”
“고마워요. 언니, 그런데 김한영, 너는 응원 안 해?”
“안 해도 잘할 것 같아서.”
성민아의 차례였다.
앞서 조은솔이 후공으로 불렀으니, 이번에는 그녀가 선공.
하지만.
“대학교에 가면 멋진 남자친구 생긴대. 학교 선생님 말씀만 믿고 열심히 공부했더니 나 속은 걸까. 이제 스펙 쌓고 알바 다니느라 눈코 뜰 새가 없어.”
성민아의 곡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쪽은 조은솔과는 반대로, 아예 이쪽에서 곡을 제작해서 넘겼다.
‘고생 좀 했지.’
저쪽에서 어떻게 따라 하든, 곡 설계 차원에서부터 결코 맛을 살릴 수 없게끔 비틀어 놓았다.
처절하리만치 성민아에게 맞춰서.
‘죽을 맛일 거다.’
상대 쪽 보컬의 특징은 전부 숙지해 두었다.
근래 들어 유행하는 로우 파이 팝송 위주로 불렀고, 그쪽 감성을 살려 왔다고 했지.
성민아는 정반대다.
그녀의 취향은 철저하게 국산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내수용 보컬.
그게 성민아의 특징이었고 이 둘을 극한으로 대비시킨 결과.
“……생각보다 저쪽 실력이 막 튀진 않는 것 같다?”
지옥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뭔가 곡이 어색해.”
고희범이 상대 쪽 노래를 듣더니, 자기 말마따나 어색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예담이 누나한테 저쪽 자료를 받았어. 어떤 식으로 노래를 부르는지, 어떤 노래를 좋아하고, 성격은 어떤지. 그 모든 걸 조사해서 다듬었지. 사실상 곡 자체를 새로 만들었거든. 모르긴 몰라도,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은 것처럼 불편할걸.”
“사람이 못됐다.”
“시끄러.”
버겁겠지.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알 바가 아니다.
뭘 거기까지 신경 쓰겠나.
애초에 저쪽도 자기네 스타일로 열심히 고쳤으면 됐을 것을, 탱자탱자 놀다가 저렇게 된 것 아닌가.
‘어디 우리 시청자님들 평가도 좀 볼까.’
라는 생각으로 채팅창을 본 순간, 나는 인상을 구기고 말았다.
[성민아 소화력 오지네] [내 노래는 내 노래, 네 노래도 내 노래]아니다.
성민아의 소화력이 특별히 좋다기보다는, 내가 설계를 잘한 거다.
그렇게 어느덧 두 명의 차례가 끝났다.
이제 내 앞으로 마지막 한 명.
“……어어.”
한여름.
그가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발걸음으로 무대 위에 올랐다.
[새로 팅에 온 멤버임?] [귀엽다] [풋풋한 것 좀 봐!]오늘은 그의 데뷔 무대.
[실수하는 거 아님?]그 결과는.
딱히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지.’
발렸다.
그것도 투표수에서 상대측이 3배라는 압도적인 격차를 드러내면서 따돌렸다.
부정할 수 없는 수준의 격차였다.
‘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연습량을 늘리는 수밖에.’
한여름의 단점, 그건 라이브에서 몹시 약하다는 것이었다.
“형…… 저 실수 많이 했죠.”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한여름의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떨렸다.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그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예상했어.”
“…….”
그의 턱이 밑으로 떨어지려는 찰나, 나는 말을 덧붙였다.
“넌 무대를 별로 경험해 본 적도 없잖아. 이 정도면 잘했지. 꼴랑 2주일 준비한 무대니까 당장은 이 정도면 충분해.”
당연한 일이다.
무대라는 건 타고난 게 아닌 이상, 누구나 경험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는 것.
잘하면 좋고, 못 하면 당연한 거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정도였다.
“이번 무대도 다 마음의 양식으로 삼아. 처음에는 다 그래. 연습한 거 10분의 1도 못 살리는 게 정상이야. 남들이라고 안 그랬을까. 그러다가 시간 좀 쌓이면 그때부터가 진짜지.”
“형.”
한여름의 표정에 묘한 빛이 서렸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게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얘, 왜 이러지.
뭐 잘못 먹었나.
나는 뒷걸음질을 치며 말했다.
“오늘 무대 마치고 작업실 가서 새벽까지 연습하고 가자.”
“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다시 기운이 생긴 것 같다.
나는 그를 멀리하며 말했다.
“나 이제 집중한다.”
마지막 차례다.
다름 아닌, 내 차례가 왔다.
대장전이다.
* * *
무대 위.
“찹싸알~떡!”
한 남자가 구수하게 목소리를 뽑았다.
타고난 미성에서 비롯된 높은 톤이 인상적인 남자.
“진상 프로듀서이자 보컬리스트이자 천재 뮤지션, 진상진이 왔어요.”
진상진이었다.
피부 색깔만 봐도 살짝 탄 것이 구수한 구석이 있다. 사람 좋은 얼굴은 농사꾼 아니면 사기꾼을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음악인의 삶을 택했다.
그가 선공이었다.
[드디어 김한영 나오나? 드디어 김한영 나오나? 드디어 김한영 나오나? 드디어 김한영 나오나? 드디어 김한영 나오나?] [한예음에서 마지막으로 나왔으면 천재 중의 천재 아님?] [ㄴ한예음에서 와일드카드로 쓸 정도면 그냥 프로라고 봐도 됨] [한예음이 아니라 한예원] [일기토 킷타wwwwwwwwwww] [야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되냐 ㅋㅋ] [기만영 부캐 장례식인데 긴장되지ㅋㅋㅋ 발리기 5분 전임 지금] [대장끼리 대결이 진짜지] [막판 뒤집기 가나?]시청자들의 평가도 유례없이 달아오른 상황.
진상…… 진이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제가 뭘 부를 거냐면요. 이 곡 모르는 분 없죠? 요즘 가장 잘나가는 발라드, [그날의 너는 아름다웠다]입니다.”
앞서 전해 들었던 선곡이었다.
그날의 너는 아름다웠다.
나 또한 들어 보았다.
‘전형적인 요즘 스타일 발라드곡이었지.’
상업적인 코드를 잔뜩 때려 박았다.
알기 쉬운 멜로디부터 시작해, 후반에 길게 나오는 고음 하이라이트가 특히 매력적인 곡.
특히나 후반 가성 파트는 미튜브에서 [그너아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유행하기도 했지.
‘쉬운 곡은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극히 어려운 곡.
가창력을 자랑하는 곡에 가까웠다. 일반인들은 아예 손도 못 댈 곡.
조금이라도 발성이 어설프면 소음 공해가 된다. 노래방에서 부른다면 굴욕이 될 곡.
라이브에서는 더 어렵겠지.
그럼에도 진상진이 왜 이 곡을 선택했는가.
그 이유라면 굳이 물어보지 않더라도 뻔히 알 것도 같았다.
“요즘 봄 날씨가 선선하잖아요. 썸녀랑 피크닉을 가서 꽃구경하면서 김밥 한 점, 맥주 한 잔, 그런 거 좋잖아요. 여러분한테도 그런 꽃향기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저건 거짓말이다.
그보다는, 더 노골적인 이유가 있었겠지.
‘나를 순수하게 실력으로 눌러 보겠다. 이건가.’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