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비디오 아트라면…….”
배영수 교수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백남준 같은 건가? 막 TV 모니터로 탑 세우고, 로봇 만들고, 인공위성 만들고 하는 그거.”
“제가 봤던 것도 비슷해요.”
“뭐, 무대 장치로 나쁘지는 않겠다만.”
그는 어깨를 으쓱하면서도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지 턱을 긁적였다.
“듣자 하니 그 무대까지 일정이 얼마 남지도 않았다면서? 시간이 한 달도 안 남았다고 했나?”
“네, 저쪽에서 일정을 앞당기려는 게 있어요. 내부 사정 때문에.”
정확히 말하자면, 네온 측에서 일정을 당기고 싶어 해서지만 말이다.
“흠, 그럼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리는 소품은 좀 곤란할 수도 있겠는데. 아무래도 무대 연출이라는 게 허공에서 뿅 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라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거든. 예산은 쓰면 쓰는 거지만, 시간은 어쩔 수가 없잖아?”
돌려서 말하지만, 비디오 아트라는 키워드에 부정적이라는 의견을 비추는 것.
물론, 나는 이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었다.
“지금부터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 걸 가져와서 활용해 보는 건 어떨까 해서요.”
“만들어진 거라면……?”
“얼마 전에 받아 온 명함인데.”
나는 지난 며칠간 안주머니에 줄곧 담겨 있었던 그 명함을 꺼내며 말했다.
“안재명이라는 사람이에요.”
“안재명, 안재명, 안재명.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인데. 그런 이름의 거장이 있었나?”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에게 말했다.
“신인이거든요.”
정확히 말하자면, 신입생이거든요.
* * *
일단 무엇을 할지 결정했다면, 행동은 빠를수록 좋다.
내가 처음으로 한 일은 바로, 그에게 다짜고짜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저기 혹시 안재명 씨 맞으신가요?”
[죄송한데 수업 중이라.]“전 김한영이라고 하는데요.”
[안 그래도 지금 막 끝난 것 같았어요.]“잘됐네요. 혹시 오늘 일정 있으세요?”
[저녁에는 보통 작업실에만 있어서 프리하기는 한데요.]“그럼 만나서 이야기하실까요?”
[장소는 어디서……?]“지금 학교에 와 있어요.”
그리고 바로 미팅.
“…….”
안재명은 아무런 말도 없이,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동화 속 유니콘 혹은 용을 바라보는 듯한 눈길.
나를 유명 인사 보듯 하는 시선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지만, 이쪽은 그게 더 과했다.
“저, 저, 저.”
“말씀 편히 하세요.”
“네, 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살았다니.
이건 또 의아한 말이었다. 내가 그에게 뭔가 해 준 게 있었던가.
이어질 말이 궁금한 참인데 그가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 한영 씨가 제 작품으로 공연을 해 주셨잖아요.”
“그랬죠.”
“마침 그거 때문에 업체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때 그 작품을 소장하고 싶다고.”
“아, 그러시구나. 축하드립니다.”
……라고 축하 인사를 전한 찰나였다.
잠깐, 지금 뭐라고.
“소장한다고요?”
잘못 들었나 싶어서 한 말에, 그는 거세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네! 덕분에 완전히 로또 당첨됐어요.”
“잠시만요, 그, 공감각 작품 말씀하시는 거 맞죠?”
“정확하게 보셨네요. 그거 만든다고 있는 돈 없는 돈 전부 털었는데, 한영 씨 덕분에 본전 회수하고 이번 학비 등록금까지 마련하게 생겼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진한 기쁨과 희망이 퍼져 있었다.
“아예 저한테 다른 거 더 만들 거면, 미리 연락 부탁한다고 하더라고요. 선투자를 진행하고 싶다고도 하셨고. 하하, 학교에서도 난리가 아니었어요.”
“…….”
“후, 전부 한영 씨 덕분이라고밖에 말씀을 못 드리겠어요. 그거 하나하나 만드는 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
아하.
그렇구나.
내가 채가기 전에, 다른 업체에서 재빠르게 침을 발라 놨다 이거지.
꽤 후한 조건으로.
‘그건 안 될 일이지.’
상황이 바뀌었다.
자세히는 모르겠다만, 배영수 교수 말에 따르면 그런 작품 하나 만드는 데 몇 달은 기본으로 걸렸을 거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남는 재고도 별로 없을 터.
“저기, 재명 씨.”
“네?”
“아직 팔린 거 아니죠?”
“협상 단계이기는 한데요. 주위에서 제안이 왔다고 바로 팔라고는 하지 말라고 해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은 해 뒀지만요.”
아직 저쪽 손에 완전히 넘어간 건 아니란 말이었다.
“그래요? 잘됐네요.”
나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더블.”
“네?”
“더블이요.”
안재명의 얼굴에 무슨 말이냐는 듯한 빛이 번졌다.
나는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두 배로 드릴 테니까, 그냥 저한테 넘기세요. 아직 넘어간 거 아니라면서요.”
“…….”
안재명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 사람, 지금 나한테 간을 보는 건가.
싫지 않다.
예술가라면 간 정도는 볼 줄 알아야지.
“아, 욕심이 좀 있으시네. 그렇죠. 욕심은 필요하지. 세 배 드릴까요?”
이것도 거절하면 조금 그런데.
안재명은 멍한 표정으로 말없이 앉아만 있더니, 화들짝 놀라더니 말했다.
“잠시만요. 지금 한영 씨가 제 걸 사 가시겠다고요?”
“네, 필요해서요.”
“단순 소장용으로?”
“그런 건 아니고, 무대에 쓸 수 있을까 해서 그런데요. 소품으로 활용하고 싶어서.”
“…….”
그는 한순간 정신이 혼미해졌다는 듯 손을 들어서는 자기 뺨을 탁 쳤다.
자해가 취미인가.
예술가 중에는 정신 이상한 사람이 많다니까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왜 그러세요?”
“아뇨, 지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가 않아서. 잠시만요. 저 이 모든 상황을 냉철하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눈이 핑핑 돌아간다.
이상하게 굴리지 말고, 그냥 바로 본론으로 가지 뭘 이런데.
“알았어요. 다섯 배, 이 이상은.”
말을 자르려는 찰나였다.
안재명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공짜로 넘겨 드릴게요.”
“네?”
이번에는 내 머리가 마비됐다.
그사이 안재명이 머릿속으로 모든 계산을 마친 사람처럼 막힘없이 말을 쏟아 냈다.
“소품으로 필요한 거면 꼭 구매해 가실 필요는 없는 거죠? 그럼 그냥 공짜로 빌려 드릴게요.”
“…… 저야 딱히 나쁠 건 없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적은 돈은 아닐 텐데.”
“괜찮은 정도가 아니죠. 이거 완전 횡재한 건데.”
잠시 뒤.
안재명은 심호흡을 몇 번이나 내쉬더니, 그것만으로는 모자란 듯 혼자서 이리저리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말했다.
“아니에요. 공짜로 협찬해 드리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이건 제가 부탁드리는 겁니다.”
“어떤 조건이죠?”
“후우.”
그는 한숨을 깊게 내쉬더니 말했다.
“제 다른 작품들도 다 가져가세요. 그리고 무대에서 사용해 주실 것. 최소 2회 이상, 그게 제가 제 작품을 드리는 조건입니다.”
그 순간 나는 안재명이 노리는 바를 깨달았다.
아, 이 사람.
내 무대를 이용해서 자기 몸값을 올릴 생각을 하고 있구나.
겉으로는 내게 감탄하는 척하면서, 찰나의 순간 협상가로 돌아선 것이었다.
나쁜 생각은 아니다.
‘목돈 얼마보다 더 먼 곳을 보고 있네.’
무작정 퍼 주기보다는, 자기 값어치를 알고는 있다는 거니까.
하지만 한 가지가 궁금하다.
만약 이 계산이 전제부터 뒤틀린다면, 그가 어떤 반응이 보일지가 궁금하다.
나는 어쩐지 이 상황이 썩 유쾌해져서 물었다.
“제가 거절하면요?”
“그러신다면 저는…… 저는…….”
그는 몇 번 말을 어물거리더니,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울 겁니다.”
이야.
운다고 하신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잘 안 서는데, 미술하는 사람들은 다 이런가.
뒤가 없이 행동하네.
나는 옆자리에 앉은 고희범을 한번 바라본 뒤 말했다.
“알았어요. 조금만 타협해 보죠.”
* * *
극적인 타결이 진행됐다.
결과적으로는 이렇게 되었다.
서로의 조건을 반반 섞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굳이 작품을 구매할 필요가 없는데 왜 구매했는가 하면, 안재명의 노림수처럼 미래를 볼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작품 하나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가치가 오르겠지.’
그 정도의 생각.
고희범은 그런 나를 두고 의외라는 눈치였다.
“네가 예술품 소장에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딱히.”
“돈 벌려고 그러는 거 맞지? 그 사람이 나중에 유명해지면 되팔아서 차익을 챙기려고. 아니면 사회에 기부한다는 명목으로 세금 혜택을 받으려고.”
고희범치고는 꽤 그럴듯한 추측이었다.
하지만 좀 한심하다.
“너는 나를 대체 뭘로 보냐.”
“4K 120프레임으로. 3D 입체 안경 끼고.”
“되도 않는 소리는 하지도 말고,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야.”
나는 한 템포 쉬었다가 말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건데, 그 사람이 나중에 시간 지나면 좀 유명해질 수도 있겠더라고. 되게 실없어 보이는데 머리 회전도 빠른 것 같고. 뜰 확률이 좀 보여.”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
“그때가 되면 방송에서 약을 팔 거야.”
“…….”
“내가 키웠다고, 내가 발굴했다고.”
이게 이유였다.
돈이야 벌면 버는 것이고, 못 벌면 못 버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깃거리는 어디 가서 돈을 주고 사기 어렵다. 그렇기에 미리 떡밥을 뿌려 둔 것이었다.
“그랬다가 안 뜨면?”
“투자 실패. 손실로 기록. 반면교사 삼아 김한영 타워 1층에 걸어 둘 것.”
“지랄 났다.”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사이, 미리 알아봐 두었던 장소가 슬슬 눈에 들어왔다.
4층짜리 건물의 4층.
그곳 창가에 온통 암막 커튼이 둘러 있었다.
‘어디 둘러나 볼까.’
내가 안재명에게 걸었던 조건이 하나 더 있다.
그가 만들어 뒀던 작품들을 무대 소품으로 협찬받는 건 좋은데, 그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 볼 생각이 없냐고.
그 결과를 지금부터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바로 이곳, 배영수 교수의 작업실에서.
“교수님, 저 왔어요.”
나는 문을 열고 인사하며 들어선 순간이었다.
“한영이, 한영이, 너 대체 뭐야?”
배영수 교수는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손에 든 작업물을 내던지며 내게 말했다.
“걔, 감각이 있다.”
여기에서 걔란 안씨 가문의 재명을 일컫는 것이었다.
둘러보니까 아직 출근은 안 한 모양.
나는 편하게 말할 생각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감각 있죠. 작품도 잘 만들고.”
“아니, 그쪽도 그쪽인데 그거 말고.”
배영수 교수는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연출 쪽으로 감각이 있어. 오히려 이쪽이 더 낫다.”
“연출이요?”
“응, 뭘 찰떡같이 말하면 딱풀처럼 알아들어. 흐음, 그 학생 아직 1학년이라고 했지? 아예 우리 과로 편입해 보라고 할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데.”
그렇게 말하는 배영수 교수의 눈에서는 어떤 욕심이 번들거렸다.
나는 어쩐지 안재명이 조금 안쓰러워졌다.
‘이거 은솔이 누나 테크 같은데.’
* * *
본격적으로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무대 관련해서는 전적으로 배영수 교수가 전담하였다.
여기에서 무대란, 단순히 세트 제작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의상부터 시작해 무대 장치, 음향 장치, 조명, 각본까지 그가 연출 총감독으로서 전체를 총괄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배영수 교수는 정도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
들어가는 예산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슬슬 돈 좀 쌓이나 싶었더니, 이렇게 탈탈 털려 버리네.’
퀄리티만 챙겨 달라고 부탁했던 결과, 수천에 달하는 금액이 한꺼번에 통장에서 나가 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학생인데.
설마 이렇게까지 눈치를 안 보고 막 진행할 줄이야.
“그 교수님도 적당히라는 걸 잘 모르시나 보다.”
조은솔이 배를 붙잡고 웃었다.
“우리 공연 길어야 30분 정도 걸리는데 1분마다 얼마가 들어가는 거야.”
“그래도 그나마 이게 싸게 먹힌 것 같아요. 연출진 몸값을 고려했으면 더 들어갔을 텐데.”
배영수 교수의 특징이었다.
그는 제작비를 아낄 수 있으면 아끼는 타입이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또 얼마든지 쓰는 사람이기도 하였다.
이 모순이 합쳐진 결과.
그의 기획은 퀄리티 대비 제작비 자체로 따져 보면 가성비가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낮춘 제작비조차도 어마어마해서 문제지.
억 단위 기획을 기본으로 하는 사람이다.
그나마 싸게 해 준 것.
‘뭐, 차라리 이게 낫다.’
내 예산 고려한다고 아끼느라 퀄리티를 못 뽑으면, 그게 더 손해다.
짧은 일정에 어떻게든 맞추느라 고생이 말이 아니겠지.
“비싸.”
기껏 외면하고 있었던 걸 홍윤서가 다시 일깨워 주었다.
하지만 나는 조상님의 지혜로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말했다.
“공연 티저 영상 올라갔겠다.”
슬슬 시청자들 반응 확인할 순간이 왔다.
확인하려 마우스를 딸깍거리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슬슬 떡상할 타이밍이 온 것 같네.’
본능적인 직감이었다.
한번 떠 본 사람으로서의 직감.
슬슬, 로켓 발사할 때가 왔다는 직감.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