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너 음악 개 못해.”
그렇게 말을 던진, 아니, 쏘아 낸 순간이었다.
“…….”
성민아의 표정이 굳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굳었다기보다는 경직됐다.
마치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것처럼.
유령이라도 봤다는 것처럼.
더군다나 그 유령이 수천만 년 전의 유령이어서, 백악기 후세 코냐크절의 티라노사우루스가 지나갔다는 것처럼.
성민아는 순간적인 코마 상태에 빠져 있다가 말했다.
“야, 너 지금 뭐라고.”
“음악 개 못한다고. 가끔 보면 노래를 부를 때 듣는 사람을 생각이나 하면서 부르는 건지 모르겠더라.”
그녀가 재차 경직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빠르게 풀려났다.
성민아가 동공을 크게 뜨더니 말했다.
“이 미친 새…….”
먹힌다.
“잠깐 기다려 봐.”
나는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며 식구들에게 말했다.
“저랑 민아랑 잠깐만 대기실 좀 따로 쓸게요. 죄송하지만 나가 있어 주세요.”
“어? 우리 나가라고?”
“민망하잖아요.”
식구들이 머뭇거렸다.
아무래도 충격에 빠진 건 성민아 외에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나는 문을 닫고 나가려는 조은솔에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참, 은솔이 누나, 한마디만 할게요.”
“응, 해 봐.”
나는 그녀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누나는 처음 봤을 때부터 늘 잘했으니까 평소대로만 하세요.”
그 말에 조은솔이 웃으며 답했다.
“누가 보면 내가 네 후배인 줄 알겠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민아 잘 챙겨 주고.”
마지막 한마디를 말하는 그녀의 눈길이 살짝 오묘했다.
뭐라 반박할까 했지만.
중요한 무대 뛰러 가는 사람이니까 한 번만 참아 줬다.
* * *
“…….”
사람 많네.
조은솔이 무대 위에 선 뒤 한 감상은 이 정도였다.
많다.
그녀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많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더라.’
조은솔.
올해로 석사과정 1년 차에 돌입한 24살 대학원생, 그녀에게는 어려서부터 남들과 다른 특징이 하나 있었다.
바로.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재밌었지.’
그것도 주로 젊은 청춘이 등장하는 시트콤을 좋아했다.
사랑이나 청춘이나 낭만이나 그런 걸 이야기하는 것들 말이다.
한국, 미국, 영국, 일본까지 캠퍼스와 관련된 작품이라면 전부 찾아보았다.
[은솔이는 이게 그렇게 재밌어?] [네!]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았다.
듣고만 있어도 웃음이 떠올랐다.
그런 그녀가 점차 캠퍼스 라이프를 동경하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대학교 가면 멋진 캠퍼스 생활을 즐겨야지.’
기타를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시트콤에 나오는 청춘들은 언제나 옆구리에 통기타 한 대를 끼고 있었으니까.
쌀쌀한 가을날, 모래 위에 모닥불을 피우고 기타를 연주하는 그런 장면이 그녀의 가슴속에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녀의 상상처럼 녹록지 않았다.
[부어라! 마셔라!]대학교 동아리란 생각보다 더 술과 연애에 집중한 곳이었다.
신입회원은 연애 문제를 일으키고는 한 학기조차 못 채우고 관둘 때가 잦았다.
[대학교 가면 놀려고 했는데, 스펙 쌓느라고 더 바빠…….] [친구는 아빠 소개로 인턴 쉽게 붙었다던데.] [남 이야기해서 뭐 하겠냐. 패티나 뒤집어야지.]로망은 무슨.
건조한 학교생활을 이어나가기조차 쉽지 않았다.
부모님이 등록금은 도와주셨지만, 나머지 학자금은 그녀의 몫.
그녀는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억울하지는 않았다.
그저 남들이 부러울 뿐.
돈을 아끼려다 보니 방음조차 잘 안 되는 원룸에서 살았으며, 장학금을 유지하려면 필사적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은 시트콤과 달랐다.
콘크리트 벽 위에 자란 잡초처럼 건조한 삶.
그런 환경에서도 그녀가 참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나도 언젠가는 내 로망을 찾겠지.’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는 그림으로 그린 듯 즐거운 캠퍼스 라이프가 오리라는 기대감이었다.
물론,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야, 조은솔, 너는 너무 깐깐하다니까. 좀 더 즐겨.]처음부터 이성 문제에 집중했던 김상혁이 동아리를 망쳤으며.
[나 군대 가지롱~ 에베베~ 야, 우냐? 우냐?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우는 아이에겐 산타할아버지가~]그나마 믿을 만했던 홍윤서가 군대로 훌쩍 떠나 버렸다.
초토화된 대학 생활.
이제 학년도 찼겠다. 취업 활동이니 뭐니 바쁘게 살 일밖에 없겠구나.
결국에는 내 캠퍼스 라이프도 남들과 같았구나.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었지.’
과거를 되새기던 조은솔의 입에 미소가 스며들었다.
[……어때요?]성민아가 들어왔다.
매사에 어색한 그녀지만, 적어도 음악에는 진지한 신입생이었다.
끝이 아니었다.
[이상한 애가 말을 걸었어요. 자기가 기타 칠 줄 안다는데, 아무리 봐도 못 치는 것 같아요. 기본적인 용어도 모르던데.]김한영이 들어왔다.
그렇게 그녀의 뒤늦은 캠퍼스 라이프가 찾아왔다.
너무 늦게.
‘그래도 이게 얼마야.’
최근 들어 행복했다.
마치 이 세상에 천국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이런 느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동아리 문제도 없고, 돈 문제도 없고, 취업…… 문제는 아직 남아 있지만, 그래도 생각해 볼 만하고.’
즐거운 삶이다.
앞으로도 쭈욱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
가능하다면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
마침내 그녀는 어린 시절 눈에 담았던 청춘 드라마, 그 세상 속 등장인물이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아, 아.”
마이크를 붙잡고 가볍게 발음을 중얼거려 보았다.
기분 좋은 울림이 퍼져 나갔다.
눈을 뜨고 앞을 보자, 거대한 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의 눈이 들어왔다.
멋지다.
이번에는 뒤를 돌아보자, 이번 곡을 위해 준비한 도우미가 그녀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작하자. 하나, 둘, 셋.’
그녀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 뒤 입을 열었다.
“귀뚜라미 지저귀는 밤, 우리 함께 불렀던 포크송을 잊지 않을게요.”
김한영이 만들어 준 곡이었다.
이 곡 하나를 만들기 위해, 김한영은 가사를 먼저 고민했다고 했다.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곡을 부르고 싶은지 대화를 나눴다.
왜 음악을 하고 싶냐는 질문도.
‘처음에는 이야기하는 게 부끄러웠지.’
TV 드라마 속 인물처럼 살아가고 싶다고 어떻게 말을 하겠는가.
하지만 김한영은 웃지 않고 들어 주었다.
[좋은 동기네요.]그저, 그녀의 생각에 공감했다.
“별을 헤매는 하늘, 칠판에 잘못 칠한 색깔도 우리 가슴속 점 하나로 소중히 둥지를 틀어.”
그렇게 만든 곡이다.
그녀의 낭만을 한 곡의 노래로 벼려 냈다.
“오늘이 지나면 흔한 내일이 오겠지만, 어제가 된 오늘이 내 안에 녹아 일상을 반짝이게 해요.”
꾸밈없이 순수한 목소리.
단정한 기타 연주.
조은솔에게는 노래든 기타든 특별한 기교라고 할 것이 없었다.
“까맣게 내려앉았던 땅거미도 새빨갛게 반짝이던 촛불도, 나를 위해 연주했던 기타도 내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인 걸 당신은 알까요.”
그저 음정과 박자를 준수하며, 한 음 한 음을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짚어 낼 뿐.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이 곡은, 그렇게 부를 때 가장 잘 들리게끔 만들어진 곡이니까.
‘기교가 부족하다면, 기교를 뺐을 때 살릴 수 있는 곡을 부르면 그만이지.’
김한영의 안배가 빛을 발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아 지새우지 못했던 밤도, 낡은 팻말과 흔들리는 블루스도. 모두 함께 나누고 싶어.”
그렇게 조은솔이 노래를 부르는 사이.
그녀의 머리카락 위로 흐르는 조명이 점차 섬세하게 나뉘기 시작했다.
[와] [예쁘다]흡사 빛의 커튼.
그 사이로 푸른 입자가 난반사하는 모닥불처럼 잔잔하게 반짝였다.
배영수 교수의 장기, 조명 연출이었다.
하얀 색감이 조은솔의 연주를 한층 더 감성적으로 물들여 주었다.
감성이 쏟아진다.
연출의 힘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
그사이.
[저건 누구임?]한 명의 안무가가 춤을 추었다.
이번 무대의 도우미.
조은솔의 노래에 맞춰 반주하듯, 그가 부드러운 춤을 이어 나갔다.
[개잘추네] [춤선이 되게 부드럽다]한 명의 노래와 한 명의 춤.
특별한 연출이라기에는 소박하다.
하지만 조은솔의 노래는 그런 소박함 속에서 한층 더 깊어졌다.
“우리가 이 시간을 함께 웃었다면 차란- 퉁기는 기타 소리도 언제까지고 네 곁에 흐를 거야.”
소박한 기대.
그것이 조은솔이라는 한 사람의 정체성이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아니 ㅋㅋㅋㅋㅋ 춤 진짜 잘 추네] [대체 누구냐고 ㅋㅋㅋㅋ] [노래를 온몸으로 표현하네 ㅋㅋㅋㅋ] [이게 예…… 술?] [아이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그 뒤를 받쳐 주는 안무가가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배영수 교수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남자.
그 또한 업계의 내로라할 달인이니.
“즐거웠던 하루를 타임머신에 담아, 우리 내일 다시…… 만나요.”
이내 곡이 끝났다.
스르륵.
흘러내린 기타 스트랩과 함께 그녀의 목소리도 흘러내렸다.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내 잔잔한 박수 소리도 흘러내렸다.
* * *
김수경.
조은솔의 무대가 끝날 무렵, 그녀는 이화의 무대를 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정도면 이화 언니가 이겨.’
보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생각보다 잘하기는 해.’
하지만 이화가 이긴다.
그녀는 김수경과 숲 뮤직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데뷔했다.
그렇기에 이화의 실력이라면 그녀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보지 않더라도 당장 눈앞에 선명하게 그릴 수 있을 만큼.
‘애초에 아직 빛을 못 봐서 그렇지, 유리 그 편애받는 애보다 이화 언니가 훨씬 나아.’
김수경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지 않아도 되는 무대를 볼 시간에, 대기실로 가서 조금이라도 더 연습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당장 다음이 그녀의 차례니까.
더욱이 상대가 그 성민아니까.
생각만 해도 가증스러운 그녀를 떠올리자, 김수경의 이마에 저절로 주름이 졌다.
‘가식적인 년.’
악감정이 없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당당하게 밝힐 수 있다.
마음에 안 든다고.
그러니까 오늘, 만인의 앞에서 제대로 격차를 보여 줄 생각이었다. 망신살 뻗치게 해 줄 생각이었다.
뚜벅뚜벅.
그러기 위해 대기실로 향하는 와중이었다.
“……어?”
대기실로 가는 길목.
또 다른 대기실의 앞.
그러니까, 싱어송라이터 김한영의 대기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요란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마는 듯 울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갑자기 호기심이 들었다.
남의 대기실을 훔쳐보는 취미는 없지만, 호기심을 담아 두는 건 적성이 아니다.
김수경은 혹여 사람이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고는, 은근슬쩍 대기실 문 앞으로 가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이내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대체 뭐야.’
대기실 안에서 상상치도 못한 대화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솔직히 너도 알잖아. 네가 남들보다 한참 못하다는 거. 초등학생도 되는 걸 너만 못 한다는 거.] [……야, 아무리 그래도 너 말이 좀.] [또 반박하게? 진짜로? 네가 이것밖에 안 돼?] [윽…….]두 사람이 말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목소리로 추측하건대 아마 김한영과 성민아.
[우리 선은 지키자.] [선보다 음정을 먼저 지켰어야지.]그 둘이 무대가 시작되기까지 얼마나 남았다고 격렬한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거 내가 지금 잘못 듣고 있는 건가?’
우두커니 서서 엿듣기를 잠시.
그녀의 얼굴에 이내 차가운 경멸이 깃든 표정이 돌아왔다.
‘컨디션과 멘탈 관리에 최선을 기울여도 모자랄 시기에, 같은 멤버들끼리 말다툼을 벌이고 있어?’
이래서 아마추어는 안 된다.
멘탈 관리 또한 프로의 덕목이라는 걸 이렇게까지 모르다니.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을 일으킨다고 한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다.
극히 미묘한 감정의 변화조차 얼마나 거대한 변화를 야기하기 마련.
오죽하면 활동 시기에는 연애를 아예 안 한다는 가수조차 있었다.
행복에 취하든, 불행에 메마르든 그 감정의 변화가 한 뮤지션의 성질을 뿌리까지 뒤집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오죽하면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천재 가수, 박완규도 신혼 당시 행복에 빠져 곡 녹음이 힘들었다고 하지 않나.
그래.
감정이란 한 뮤지션의 근본마저 뒤흔드는 무기다.
알앤비 가수로서 이 사실을 절절히 아는 김수경이기에 마음속으로 실망했다.
‘성민아, 역시, 너는 거기까지야. 딱 거기가 네 자리지. 어울려.’
그녀는 흥미가 식는 걸 느끼며 발걸음을 옮겼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