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대기실.
성민아를 대상으로 특별 케어가 진행되기를 한참.
“…….”
“…….”
그녀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본인 딴에는 최대한 억누르는 듯하지만, 불가능했다.
누가 말을 걸면 당장이라도 악에 받쳐 멱살을 붙잡을 것만 같은 얼굴.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효과가 상상 이상인데.’
격한 감정을 유도한 게 맞기는 하다.
성민아라는 사람이 평소 못 냈던 감정을 표출할 수 있게끔 유도했지.
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반응할 줄은 몰랐는데.’
슬슬 위험할 것 같다.
나는 눈을 한차례 감았다가 뜬 뒤 물었다.
“괜찮아?”
“…….”
대답이 없다.
이를 꽉 문 채 어깨가 움찔움찔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마음이 엿보일 뿐.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되물어 보았다.
“많이 화났어?”
“…….”
대답이 없다.
여전히 없다.
‘내가 너무 심했나?’
그녀가 대답하지 않는 이유가 그냥 화가 나서일까.
그럴 리가.
어떤 말을 하든 내가 화경의 원리로 되받아치니, 자기보호 체계로 들어서 버린 것이었다.
‘이 정도면 더 뭐라고 해 봐야 의미도 없겠네.’
충분하다.
그보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 봤다.
슬슬 시간이 됐다. 저쪽 무대도 끝났을 시간이.
이쪽 일에 집중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무대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지금 무대의 결과도 함께 확인했는데.
“후우.”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조은솔: 397표] [이화: 603표]미묘한 차이로 조은솔의 패배였다.
‘역시.’
내심 이렇게 되리라고 짐작하고 있기는 했다.
조은솔의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녀의 실력은 명백히 훌륭했다.
나보다는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바로 그다음이겠지.
일반인이면서 거의 독학으로 어지간한 전공자들보다 나은 영역까지 왔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단지.
상대 쪽 ‘이화’라는 이름의 가수가 지나치게 훌륭했다.
그뿐이었다.
‘아마 실력으로만 따지면 저 중에서도 유리와 함께 투탑이겠지.’
몇몇 이유로 흥행은 갈리겠지만, 실력 자체는 취향 차이라고 불러도 좋을 터.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일이었다.
실제로 시청자들도 조은솔의 분투를 두고 고평가하고 있지 않나.
[은솔이 누나 잘했어요!!!!] [나는 조은솔이 더 취향이었는데 왜 졌대?] [사실상 이긴 거 아님?] [아 진짜 아쉽다. 조금만 더 잘했으면 됐는데.] [졌지만 잘 싸웠다.]모두가 안다.
조은솔은 최선을 다했고, 좋은 무대를 만들어 주었다.
문제는 그녀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였다.
‘책임감이 강해서 혼자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을 텐데.’
내가 위로해 줘야겠지.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이었다.
끼익.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
“아.”
“붕권.”
“뭐래요.”
정상인보다 헛소리의 빈도가 지극히 높은 남자, 홍윤서였다.
그런 그의 뒤로 한 명의 사람이 다소곳하게 서 있었다.
조은솔이었다.
“한영아.”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말했다.
“졌다.”
“봤어요.”
“그런데 민아랑 그거 아직도 안 끝났어?”
“지금 막 끝나긴 했는데요.”
“흠, 그래? 그런데 한영이 너, 나한테 할 말 있지 않아?”
“할 말이요?”
“그래, 아무런 말이나 해 봐.”
마치 농담을 던지는 것만 같은 목소리.
하지만 자포자기했다거나, 아쉬워하는 목소리와는 거리가 있었다.
후련한 목소리였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에, 결과가 어찌 되었든 만족한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에서 어떠한 안심마저 느끼며 말했다.
“후회 없이 잘했죠?”
잠시 뒤.
조은솔이 웃더니 말했다.
“후회가 어떻게 없어?”
“네?”
“배가 아파서 아쉬워 죽겠지. 아, 몇십 표만 더 받으면 됐는데.”
툴툴거리는 그녀의 눈가에 웃음이 가볍게 번졌다.
“저쪽 이화라는 사람 말이야. 진짜 잘하긴 잘하더라. 음원보다 라이브가 훨씬 나은 것 같아. 하필 내 다음 차례가 그런 사람이라니, 나는 운도 나쁘지.”
조은솔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농담조로 하는 말이지만, 작게나마 아쉬움이 묻은 목소리.
그녀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슬쩍 덧붙였다.
“그쪽이 더 낫긴 했나 봐.”
이번이 본론이다.
나는 내 타이밍이 왔다는 걸 직감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낫고 말고가 어딨어요. 397명은 누나가 더 잘했다잖아요. 그럼 취향 문제지. 누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잖아요. 그럼 결과는 딱히 안 중요해요.”
“…….”
조은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면 그건 좀 껄끄럽죠. 여지를 남긴 거니까 미련도 남고요. 못다 먹은 수육 한 점처럼. 하지만 최선을 다해 봤는데 안 되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죠. 다 그래요. 우리가 마이클 잭슨을 당장 못 이겼다고 분해할 필요는 없잖아요. 앞으로 이겨야지 하고 다짐하면 그만이지.”
매사가 그렇다.
타고난 환경이 다르고, 누려 왔던 게 다르다.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난 천재가 재능을 못 살려 단순 노동자로 연명하고 있다고 한들, 그것을 깔봐야 하는가.
그보다 잘살고 있다고 하여서 자부심을 느껴야 하는가.
아니지.
누구나 자기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을 했을 뿐이다.
음악 또한 같다.
그렇기에 지나치게 우월감을 느낄 필요도, 지나치게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정 아쉬우면 나중에 이기세요.”
그렇게 순전히 내 경험에서 비롯된 위로를 던진 순간이었다.
조은솔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한영아,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까 되게 이상하다.”
“…….”
“혹시 어디 아파?”
아프냐니.
평소에 나를 어떤 사람으로 봤기에.
반박하려는데, 그 순간 홍윤서가 양팔로 자기 몸을 감싸 안더니 말했다.
“소오름, 너 김한영 아니지.”
“아, 형까지 왜 그래요.”
“네가 그런 말을 해? 제정신이야? 난 인정할 수 없어. 김한영의 몸에서 물러가라 이 망령아! 이노오오오옴! 썩 꺼지지 못할까!”
“좀, 저 진지하거든요.”
“나도 진지해.”
헛소리다.
하지만 이번에는 약빨이 잘 들었다.
그가 몇 마디나 했다고,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빠르게 회복된 것이었다.
“크크크.”
조은솔은 마침내 작게 웃음마저 터뜨리더니, 눈가의 물기를 닦아 내며 말했다.
“그래도 진 게 아쉽기는 해. 내 복수는 우리 후배님께서 해 주겠지?”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시선은 성민아를 향해 있었다.
하지만.
“……민아야?”
성민아는 아직 분노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그녀는 여전히 혼자 씩씩거리면서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심각하게 불쾌한 눈초리로.
“민아야.”
“네.”
“내 복수 해 줄 거지?”
“네.”
그녀가 아직도 분을 못 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뺨이라도 한 대 때리고 올게요.”
“……민아야, 되게 안심이 되긴 하는데, 그건 좀 너무 나간 것 같다.”
* * *
모든 준비가 끝났다.
‘대기실이 한적하네.’
조은솔은 홍윤서와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잠시 바깥으로 나갔다.
성민아는 김수경의 무대를 관객석에서 직접 두 눈으로 봐야겠다며 나가 버렸다.
남은 건 고희범과 한여름뿐.
‘와.’
한여름이 다소곳하게 앉아서 김한영을 흘끔흘끔 바라봤다.
‘너무 태연해.’
그의 눈에 비친 김한영은 보면 볼수록 정상이 아니었다.
동아리에 들어왔을 때부터 좀 이상하다는 걸 느끼기는 했지만, 오늘은 유독 더했다.
감정의 기복이 잘 없다고 해야 하나.
‘남들은 다 공연 때문에 긴장하고 그러는데, 한영이 형은 그러는 게 전혀 없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과는 달랐다.
오히려, 전쟁터의 노련한 전사처럼 감정을 잘 갈무리하는 느낌이었다.
반면, 지금 무대 위에 오른 사람은 달랐다.
김수경.
그녀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들려왔다.
[Kyla! Kyla! though your old, dirty, ugly. You are still a warrior angel.]R&B 음악 특유의 짙은 소울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탄탄한 발성을 기반으로 흡사 스피커를 터뜨려 버릴 것만 같은 성량.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가 눌리는 것 같은 음악이었다.
‘굉장해.’
한여름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저만한 뮤지션과 같은 무대 위에 선다는 건 얼마나 무서운 일일까.
순간마다 전의가 폭풍 앞의 모래성처럼 사라져 간다.
그런데 김한영은 그걸 두고.
“저거 저렇게 하는 거 아닌데.”
태연하게 훈수를 뱉고 있었다.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는 듯 다리를 꼬고 하품까지 해 가면서.
“뭔 또 멍멍이 소리를 하고 있어.”
그런 그를 두고 고희범이 짜증을 냈다.
“딱 들어만 봐도 잘하는구먼. 야, 너보다 잘하는 거 아니야?”
“그건 네가 잘 몰라서 그렇게 들리는 거시구연.”
김한영은 피식 웃더니 말했다.
“잘 들어 봐. 필요 이상으로 감정이 격양돼 있잖아.”
“그런가? 듣기만 좋은데?”
“원곡도 많이 들어 봤는데, 저거 저렇게 부르는 곡 아니야. 오히려 적당히 절제할 때 맛이 살지.”
“R&B는 감정표현으로 유명한 장르잖아.”
“R&B라고 무조건 터뜨리기만 하는 음악은 아니야. 리듬 앤 블루스. 그 이름처럼 완급조절이 있어야지. 강약약중강약강, 그런데 저건 너무 흥분해서 강강강중강강이잖아.”
태연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여름은 이해하지 못할 말이었다.
어떻게 저 무대를 보면서 지적을 할 수 있을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영이 형이 아마추어 수준이 아닌 건 알았어. 하지만 저쪽은 진짜 말도 안 되는 실력자 같은데.’
거듭 말하지만, 이해가 안 된다.
고희범 또한 이해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인지 반박했다.
“라이브라고 조절한 게 아니라? 경연용 편곡이 따로 있다면서.”
“그럼 그 편곡한 사람이 무능하다고 봐야겠지. 원곡의 맛을 다 죽여 버렸잖아.”
“너 잘났다.”
“당연하지.”
“무친놈…… 무친놈…….”
“돈안지유돈(豚眼只有豚) 불안지유불(佛眼只有佛).”
“무슨 말인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김한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차라리 저쪽이 태연하게 불렀더라면 또 모르겠는데, 이대로면 결과는 뻔할걸.”
“나는 네 헛소리를 모르겠다.”
고희범은 몰랐다.
물론, 한여름도 몰랐다.
도당체 김한영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응, 그냥 생각을 포기하자.’
알아서 하겠지.
너무 생각이 많은 것도 문제 아닐까.
‘잘 생각해…… 가 아니라, 기억을 더듬어 보면 처음 동아리 들어왔을 때부터 그랬잖아.’
동아리에서 연습량 무식했던 건 이해가 됐나.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그냥 하자.
하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건 있었다.
‘오늘 형이 부르겠다고 했던 그 곡, 평소랑은 스타일이 달라도 좀 많이 다르던데…… 이렇게 평온해도 되나?’
김한영의 신곡이었다.
평소 그의 방송이라면 전부 챙겨 봤기에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하는 그지만, 이번 신곡만큼은 정말 의외였다.
곡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좋았다. 늘 그렇듯 좋았다.
하지만 너무 비밀스러웠다.
방송에도 노출되지 않게끔 철저히 숨기는 듯했고.
굳이 그랬던 이유가 뭘까. 시청자들에게 숨기는 게 없는 그답지 않다.
‘이유라도 살짝 물어볼까.’
여기까지 사고가 닿을 무렵.
“아, 끝났다.”
김수경의 무대가 끝이 났다.
관객들의 열렬한 박수와 함께.
무대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그녀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후련함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다음 차례가 당도했다.
“민아 누나 올라왔네요.”
그런데.
‘……뭐가 불편하신가?’
성민아의 얼굴은 김수경의 그것과는 정반대였다.
* * *
쿵, 쿵, 쿵, 쿵.
심장이 계속해서 뛴다.
쿵, 쿵, 쿵, 쿵.
아무리 가라앉히려고 해도, 심장에 엔진을 하나 얹은 것처럼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왜 이렇게 화가 나지.’
이유라면 뻔하다.
김한영, 그 뺀질뺀질한 놈이 한 말들 탓이었다.
‘내가 음악을 못 한다고? 자꾸 거리를 둬? 가식적이야?’
무대 위에 서기까지 10분은 넘고, 20분은 안 넘는 시간.
그녀는 김한영의 폭언을 계속해서 감내해야 했다.
케어라는 목적하에 말이다.
안 들어 주고 끊어도 됐을 일이다.
하지만 옛날에 그녀가 김한영을 먼저 한 대 쳤으니, 너도 한 방 맞으라는 주장에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아, 짜증 나.’
짜증이 슬금슬금 오른다.
음악을 할 때는 언제나 침착하게 부르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된다.
머리가 화끈화끈하다.
김한영이 했던 말들이 워낙 가슴속에 밟히다 보니, 아까 김수경이 어떻게 음악을 했나 신경조차 안 쓰였다.
그저, 한 가지 생각만이 들었다.
‘두고 봐.’
보여 주겠다.
김한영이 했던 말이 전부 틀렸다는 걸.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그거 분명 다 진심이었다.
적어도 성민아는 그렇게 느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실력으로 증명해 보이겠다.
‘얼른.’
성대가 근질근질하기까지 한 찰나.
뒤로 작게 피아노 반주가 울렸고, 그녀는 해방감마저 느끼며 입을 열었다.
“달콤한 얼굴과 비열한 목소리로 뱀처럼 속삭이는 네 심장에 못을 박는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