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그렇게 일단락이 났다.
[그냥 내친김에 계약서도 써 둘까요] [계약서요?] [양식 준비해 뒀거든요. 갈수록 게스트가 늘어나니까 주먹구구식으로 할 수가 없어서. 아, 참. 이건 손 과장님한테 상의하는 게 먼저겠다.]이승현에게 내 방송에 출연하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건넨 직후.
그는 갑작스레 의욕을 되찾았다.
“아, 저 사인도 해 주세요! 친구들한테 자랑하려면 필요해서.”
“사진도 찍죠.”
“……딸꾹.”
쉽네.
숲 뮤직에서 키운 유망주이니 어쩌니 해도 아직 어린애란 말인가.
잠시 뒤.
자기 팀을 향해 돌아가는 이승현의 모습은 처음 왔을 때의 그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발걸음이 당당해졌다.
가슴 속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승부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그런 게 아니라, 관객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목표.
이 둘은 얼핏 같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남이 준 목표와 자기 스스로 정한 목표가 같을 수는 없으니.’
결국, 무슨 일이든 정신 상태가 중요한 법이다.
가수라면 더더욱.
성민아가 그러했듯, 같은 실력의 뮤지션이라 해도 그날의 컨디션 하나에 하늘부터 땅까지 갈리는 법이니.
물론, 나는 그런 거 없다.
애초에 컨디션 신경 쓸 환경에서 음악을 했던 것도 아니니까.
‘그건 그렇고 좀 그렇네.’
두렵다.
내 방송이 두렵다.
당장이라도 무대에서 도망갈 것만 같았던 사람조차 제 발로 복귀시키다니.
방송의 위력…… 이거 너무 잘 먹히지 않나.
‘출연 좀 시켜 주겠다고 약속했기로서니, 저렇게까지 좋아할 줄이야.’
그래도 저쪽도 예비 연예인 아닌가.
내 방송은 대체 무엇이 되려고 한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대기업의 상징, 100만 미튜버가 머지않았다.
100만쯤 되면 어지간한 연예인보다도 낫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인데, 내친김에 진짜배기 연예인들을 대거 초청하면 어떨까.
‘이렇게 점점 몸집을 키우다 보면, 나중에는 아무나 초청해도 좋아라 올 것 같은데. 함재원이나 유리나 선우나 일단 부르면 오기는 올 것 같고.’
그렇게 점점 키우다가 팅이라는 한 글자 아래 유력한 사람들을 전부 묶어 버린다면, 그때는 또 어떻게 될까.
또 하나의 플랫폼으로 묶어 버린다면 어떨까.
생각이 이어진다.
계속해서 발상이 뻗어 나갔다.
‘나쁘지 않겠는데.’
일단, 사람을 모으자.
몸집을 점차 불리는 거다.
처음에는 내 발로 뛰어야겠지.
하지만 나중에는 신청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리라.
선순환의 시작이다.
좋다.
의욕이 생겼다.
그렇게 다음으로 뻗어나갈 목표를 되새기는 참이었다.
“한영아, 조금 다시 봤다.”
조은솔이 내 어깨를 툭 치더니 말했다.
“나는 네가 귀찮아서 대충 넘기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그렇게 애를 설득할 줄은 몰랐잖아. 은근 정이 있네. 네가 보기에도 걔가 안쓰럽기는 했나 보다.”
“…….”
아닌데.
안쓰럽다기보다는, 쫓아내고 싶었지.
그냥 우연히 저쪽 이득과 내 이득을 함께 챙길 방향이 같았을 뿐이다.
“그런 게 아니라.”
뭐라고 반박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러게요?”
정의선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확실히 제가 아는 김한영이라면 도망치지 마! 맞서 싸워! 라면서 꼰대질을 내뱉을 것 같은데. 상대가 어린애라고 봐준 건가?”
“내가 무슨 꼰대질이야.”
반박하려니 홍윤서가 입을 열었다.
“의선이가 뭘 모르네. 야, 김한영은 그런 캐릭터가 아니야.”
“그럼요?”
“얘는 자기 이득을 챙긴 거야. 자기 방송에 출연시켜서 돈 벌려고 빌드업 쌓았다는데 은솔이 다음 달 월세를 건다.”
정답이다.
그런데 조은솔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야, 홍윤서, 내 월세를 왜 네가 걸어. 그리고 그건 너무 나갔다. 한영이가 무슨 애를 등쳐먹어.”
“그런가? 내가 너무했나?”
“잘했을 때는 잘했다고 칭찬 좀 해 주자. 세상을 자꾸 삐딱하게 보고 그래. 얘 얼굴 좀 봐. 불쾌한 표정 안 보여?”
“아.”
미안한데 원래 표정이 이렇다.
그냥 흥미로워서 지켜보고 있었던 게 그렇게 보였나 싶은데, 홍윤서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한영, 내가 미안하다. 두 번 다시 그러지 않을게. 하지만 너한테도 잘못 있는 거 알지?”
더 들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이러했다.
‘그러고 보니까 이번 방송 끝나면 김진산 사장도 본격적으로 찾아봐야겠네.’
한국에서 1위 정도를 달성하면 찾아보기로 했다.
머지않은 것 같다.
지금의 삶에서 벗어날 순간도.
“여름아, 슬슬 나갈 준비해라.”
“네…… 네!”
얘는 뭔데 벌써 땀범벅이야.
* * *
한여름.
그는 식은땀이 흘렀다.
마음속으로 주룩주룩 흘렀다.
‘후후, 후후후, 후후.’
아까 대기실까지 들어왔던 어린 학생 있었지.
신입생인 그보다도 더 어렸다.
그런 사람이 일찍 프로 활동을 시작했고, 오늘은 아예 겁이 나서 도망치려고 했단 말이지.
‘이해한다. 백번 이해한다. 너랑 나는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아.’
차라리 그 길로 도망쳐 줬더라면 차라리 나았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럼 내 무대도 스킵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한여름, 그 또한 무대가 두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낯설다.
이승현과 그의 차이점이라면 단 하나, 자기 실력 객관화가 지나치게 안 되어 있다는 것 정도일까.
모든 초보자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근본적으로 자기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 남의 실력도 잘 모른다.
그렇기에 구체적으로 겁을 먹을 것도 없었다.
물론, 가끔가다가 우매함의 골짜기 정상에 올라 자기가 잘난 줄 아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한여름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한계까지 고조된 긴장감이 어느 방점에 달하거든.
투둑…….
‘아, 됐어. 긴장하는 것도 지쳤어…….’
뚜두둑!
‘에라이, 모르겠다!’
역으로 풀어지는 사람이었다.
‘지면 뭐 어때.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는 거지. 아이씨, 몰라. 대충 가는 대로 살아.’
지금, 그의 마음가짐은 지금 놀라우리만큼 편안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초연해졌다.
역사책을 보면 단두대에 오른 사람들이 갑자기 당당해질 때가 있다고 하는데, 그 또한 정신적으로 같은 상태였다.
일시적인 각성 상태.
‘와, 사람 많아.’
지금의 그에게 1,000명의 관중은 시선이 아닌 광경이 되었다.
숨을 고르며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고 있자, 이내 저 멀리 관객석 너머에서 한 남자가 신호를 보냈다.
슬슬 시작하라는 말.
흘끗 돌아본 등 뒤에서는 반투명한 커튼 뒤로 그림자가 비치고 있었다.
좋다.
시작해 보자.
차랑.
한여름의 손에서 나온 기타 반주가 피아노 소리와 맞물리기를 잠시.
“가끔 멍하니 복도를 걷다 보면 생각하네.”
한여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어. 그저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살아왔네.”
스무 살을 주제로 한 곡이었다.
매사에 어리둥절한 그를 두고 김한영이 적당히 가사를 던져 주었다.
“세상살이가 어쩌고저쩌고 나는 하나도 모르겠어. 어제까지 문제집만 붙잡고 살았는데, 오늘부터는 어른이니까 내 인생에 책임을 져야 한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린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의 장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음색 자체가 타고났다는 것.
떨림이 디테일이 된다.
부족한 실력 따위는 음색이 알아서 메꿔 준다.
아니, 그렇게 되게끔 김한영이 곡을 설계했다.
“집값이 오른대. 나는 아직 월세도 힘든데. 취업이 안 된대. 나는 알바 구하기도 힘든데. 연애가 힘들대. 나는…….”
순간 반주가 끊겼다.
한여름의 노래도, 손도 멈추기를 잠시.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말했다.
“부끄러운데 이것까지 다 말해? 그냥 대충 알아들어.”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여름은 얼굴에 열이 도는 걸 느끼며 말을 이었다.
“스무 살, 이십 대 한창 수수께끼. 흔들릴 나이. 아스팔트 위 남겨진 어린아이.”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머릿속에서 생각이 지워졌다.
솔직히 모르겠다. 노래를 잘 부르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는 노래를 구체적으로 생각하면서 부르기보다는, 그저 머리를 비운 채 몸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연습.
김한영과 지나칠 정도로 쌓은 연습이 그의 몸을 자동으로 움직이게 해 주었다.
[저거 뭐야?] [저런 연출도 되네]어둡게 꺼진 무대.
무대 뒤로 놓인 반투명 커튼.
그 뒤로 그림자와 이미지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오로지 흰색과 검은색만 존재한다.
흑백 영상.
제작비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신, 그 대가로 노가다가 필요한 연출이다.
여기에 배영수 교수의 안배가 녹아 있었다.
살짝 얼버무린 티가 나는 연출이지만, 그게 역으로 곡의 분위기를 살려 주었다.
초보자라도 긴장하지 않고 곡에만 집중할 수 있는 건 덤.
“좁은 내 앞마당에도 볕들 날이 올까?”
멘탈을 놓고 마음이 가는 대로 부르기를 한참.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자.
‘아.’
박수 소리가 쏟아지고 있었다.
‘실수 안 했구나.’
뒤늦게 긴장감이 몰려오며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렇게 그의 무대가 끝났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바로 다음 차례.
이승현의 무대가 시작되었을 때.
“언덕길도 함께 굴러떨어지면 그리 무섭지는 않다고.”
한여름은 작게나마 김한영이 기대했던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꼭 정교할 필요는 없구나.’
이승현의 무대.
그건 바로, 지금 자신의 무대처럼.
부족한 실력을 감정 원툴로 밀어 버리는 솔직함의 무대였다.
‘근데 얘도 어설프네.’
서로가 같다.
한여름은 어쩐지 말도 섞지 않은 이승현과 친해진 기분이 되었다.
‘나중에 같이 연습하면 좋겠다.’
* * *
결과는 이렇게 되었다.
[한여름 득표수: 688표] [이승현 득표수: 312표]압도적인 승리.
소란스러웠던 것이 무색하게, 한여름이 약 2배 차이로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한여름은 마냥 기뻐만 할 수는 없는 눈치.
오히려 깊은 상념에 빠진 모양인데, 나는 그 모습이 조금이나마 기뻤다.
‘그래도 느끼는 게 있나 보네.’
이번 무대를 통해 한여름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게 있었다.
가수의 본질 같은 것.
채팅창만 봐도 반응을 알 수 있을 듯했다.
[느낌은 있었는데 아슬아슬하더라] [ㅇㅇ 마지막에 실수한 것도 그렇고] [나중에 다듬어지면 또 모르겠다] [잘한 건 한여름] [걘 신입이라는데 진짜 잘하더라] [그런데 이승현 걔 느낌 좀 있지 않았음?] [나중에는 잘할 듯]한여름이 잘해서 이긴 게 맞다.
하지만 그 뒤에는 이승현의 미숙했던 무대 또한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이승현의 무대 영상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느꼈던 생각이 있었다.
바로, 불안정하다는 것이었다.
정교함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투박함.
하지만 그의 노래에는 그런 불안정함을 한참 뒤엎는 감정선이 존재했다.
‘저런 애들이 나중에 약점을 극복하면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기도 하니까.’
음악이라는 게 꼭 기교로 정해지는 건 아니라는 걸 알려 주고 싶었다.
꼭 깔끔할 필요는 없다고.
엄밀히 말해서, 한여름의 재능은 뛰어나다.
프로 중에서도 100명 중 1명 수준은 된다고 해도 좋겠지.
하지만 1,000명 중 1명꼴로 등장하는 재능 또한 흔한 법이다.
상위권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오히려 어느 영역에 도달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
‘기본기보다는 느낌에 충실해지지.’
느낌이 곧 노래가 된다.
한여름에게 그런 사람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을 알려 주고 싶었다.
재능을 어떤 식으로 다뤄야 하는지.
순수하게 재능이 끝내주는 사람을 마주하게 함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음원으로는 알 수 없다. 라이브로 접할 때만 알 수 있다.
이겼는데도 진 것 같으리라.
‘저게 다 양식이 되겠지.’
못 삼키면 독이고.
삼키면 약이다.
나는 그 정도의 생각으로 한여름에게 말했다.
“열심히 해야겠지?”
“네.”
“잘하자.”
최종 3승 1패.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아직 전투가 남았다.
자잘한 승패 따위 한 번에 뒤엎을 수 있는 큰 전투가 남았다.
‘이제 대충 준비도 끝났겠다.’
출전할 시기가 됐다.
판돈으로 따지자면 이번이 가장 크겠지.
“아- 아-.”
나는 가볍게 목을 풀고는.
대기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소란스러운 객석의 소리.
암전된 시야를 더듬어 리허설 때 몇 번이고 오른 무대에 발을 딛는다.
삐걱.
그렇게 내가 어렴풋이 어둠 속에서 실루엣을 보인 순간,
“…….”
정적. 아주 잠깐의 정적 뒤에 터질 듯한 함성이 무대를 뒤흔들었다.
“와아아아아!”
“김한영 아니야? 딱 체형이 김한영인데?”
“야야! 김한영김한영! 김한영 나옴!”
“여기!!! 여기 봐 줘!!!”
“꺄악! 끼야아아악!”
거대한 진동이 고막이 아닌 온몸을 통해 전달되었다.
손에 잡힐 듯한 떨림.
“…….”
나는 입장하길 멈추고 잠시 객석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피식 웃고 말았다.
‘이제 이 정도는 되네.’
새로운 삶의 나, 김한영은 어느새 김한석의 발목 복숭아뼈 언저리까지는 다다른 것 같다.
이제 슬슬.
무릎으로 갈 때가 왔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