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최근 세계에서 가장 유행하는 미디어 산업이라고 하면 무엇이 있을까.
VR?
아직은 멀었다.
메타버스?
그건 너무 뜬 소리다.
이런저런 말이 나오겠지만, 상업적인 성과에 집중한다면 어렵지 않게 꼽을 수 있으리라.
OTT.
흔히 말하는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였다.
넷플레이가 대박을 터뜨리고 불과 몇 년 만에 세계 미디어 시장의 핵으로 부상하며, 콧방귀 좀 뀐다는 미디어 기업이라면 어느 하나 OTT에 뛰어드는 세상이다.
미국에서만 이미 OTT 대기업이 10개를 넘을 지경.
하지만 그중에는 최근 곤란을 겪고 있는 기업 또한 존재했다.
‘아무래도 쉽지 않단 말이지.’
I+, 아이플러스가 그러한 회사였다.
“으.”
아이플러스의 영업부장, 김 부장이 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으려니, 함께 온 부하 직원 최 대리가 입을 열었다.
“부장님, 오늘 만난다는 그 사람.”
“응, 미튜버. 김한영.”
“과연 저희 회사랑 계약을 할까요?”
“글쎄다.”
그렇다.
오늘 이들은 김한영과의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이 자리에 방문했다.
최 대리의 질문에 김 부장은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노력은 해 봐야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미팅 자리에 나온 것까지는 좋다만, 과연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할 수 있을까.
확신이 없는 참인데 최 대리도 긴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후, 그래도 이번에 성공하면 당장 막힌 건 뚫는 거네요.”
그 말대로다.
아이플러스는 막혀 있었다.
무엇이 막혀 있는가 하면, 컨텐츠의 벽에 막혀 있었다.
본격적으로 OTT 사업 진출을 선언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컨텐츠 확보에 큰 난항을 겪고 있었다.
[넷플레이 2025년까지 독점 컨텐츠 2,000 작품 확보 선언!] [뭐 하러 밖에 나가? 극장에 안 가도 돼!] [IP가 미래다] [김구 선생님, 보고 계십니까?]컨텐츠를 두고 전쟁이 일어났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엿보이거든 어떻게든 자기네 울타리 안에 가두려고 한다.
아무런 결과물이 없다고 해도, 일단 선점하고 본다.
바야흐로 전 세계가 컨텐츠 확보 전쟁에 들어선 와중에 아이플러스는 후발주자였다.
[넷플레이에서 이미 찾아와서 제작비 500억을 불렀다는데요?] [다즈에서 앞으로 5년 동안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대요.] [인수 제안까지 했다네요.]앞서 선발주자들이 컨텐츠를 공격적으로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진짜 치사한 놈들 많아. 좀 공정하게 겨룰 것이지, 일단 돈부터 던지고 본다니까. 뭐든 다 돈이면 되는 줄 알아요.’
김 부장은 그렇게 몇 달째 빈번히 헛걸음을 반복하는 와중이었다.
그나마 김한영과 어떻게든 접선 자리를 마련한 게 기적이라고 봐도 좋을 지경.
‘이미 다른 곳에서 선 제안을 받아도 몇 번을 받았을 것 같은데.’
자신은 없다.
이번 김한영의 콘텐츠를 노리는 것이, 그들뿐만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기 때문.
한영 아카데미.
오디션으로 사람을 끌어모아 음원을 내게 만들겠다는 포맷인데, 듣자마자 직감이 왔다.
이건 돈이 된다는 직감이.
‘하지만 우리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테고, 아마 다른 회사들도 진즉 컨택을 던졌겠지.’
컨텐츠에서 조금이라도 달콤한 냄새가 풍기면 사방에서 혈안이 되어 달려드는 세상이다.
요즘 한창 핫한 김한영이라면 말할 것도 없으리라.
“김한영 하나만 잡으면 반은 먹고 들어가는 거야.”
“그러게요. 자체 콘텐츠를 그렇게 열심히 만드는 사람도 없죠.”
자체 콘텐츠를 쉴새 없이 제작한다는 게 그러했다.
같은 100만 미튜버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생산자로서의 격이 달랐다.
하물며 배경부터가 다르지 않나.
“뒤에서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같이 출장을 나온 최 대리가 마른 침을 삼키는데, 김 부장이 말을 가로챘다.
“그거?”
“네,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김한영은 처음부터 3대 엔터에서 손을 잡고 괴물 신인으로 작정하고 기른 거래요.”
최근 널리 퍼진 소문이었다.
하지만 단적으로 말해서, 헛소리였다.
“아주 어딜 가나 다 그 말이야.”
그 어떠한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 말에 김 부장은 짧게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그거 아마 사실일 거야.”
“역시…….”
그렇다.
최 대리뿐만 아니라 김 부장마저도 저 말을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김 부장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는 사람은 다 알잖아. 따로 숨길 것도 없지.”
그야 처음부터 끝까지 루머니까 숨길 필요가 없는 게 당연했다.
놀랍다.
한낱 찌라시에 불과했던 한 미튜버의 음모론에 살이 붙고 또 붙더니, 끝내 그 누구보다도 정보에 민감한 대기업 영업 사원들마저도 속이는 데 도달했다.
가히 루머의 새 역사를 쓴다고 봐도 좋을 지경.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김 부장은 주위를 살펴보더니, 목소리를 죽이며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대학교 동창 중에 연예부 기자로 일하고 있는 놈이 하나 있거든?”
“기자요?”
“그래, 걔가 업계 사정에 진짜 밝은 놈인데, 평소에 뭐 일어나기 몇 달 전에 다 알려 줘. 전번 마약 사건도 그랬고. 그런데 걔가 최근에 김한영을 조사했단 말이지.”
“설마.”
“걔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최 대리가 숨을 죽이며 귀를 기울인 순간 김 부장이 말했다.
“아무것도 없었대.”
“……!”
“그래, 공자든 맹자든 털면 하나는 나와야 한단 말이지. 그런데 김한영, 걔는 아무것도 없어. 먼지 한 톨 없이 백지처럼, 그냥 깔끔해. 어디 기획사 건물에 들락날락한 것도 없고, 주위에 엮인 사람도 없지. 특별히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없고. 수상하지 않아?”
수상할 거 없다.
애초에 활동을 안 했으니, 기록도 없는 게 당연한 법.
하지만 이미 김한영이 누구라고 결론을 지어 놓고, 듣기 좋은 단서만 쫓는 이들에게 사소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확증 편향의 오류.
쉽게 말해서,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말이었다.
“이 정도로 행적을 말끔하게 지운 이유가 뭘까? 응? 냄새가 풍기잖아.”
풍기지 않는다.
없는 냄새를 어떻게 맡나.
하지만 우주에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법이고, 없는 냄새도 믿고 맡으려고 노력하면 그런 기분이 든다.
그렇기에 짙은 음모의 향기를 맡은 최 대리가 충격에 빠져 입술을 자근자근 씹더니 말했다.
“……그래도 일단 미팅에 나온다는 건 아직 계약은 안 되어 있다는 거겠죠?”
“모르지. 끝의 끝까지 가서도 바람맞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잖아.”
“답답하네요.”
“나도 그런다. 아, 진짜, 김한영, 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
그렇게 두 사람이 미궁에 빠진 기분으로, 이번 미팅이 쉽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하며 하소연을 뱉는 와중이었다.
“아.”
어느 남자 셋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의 표정이 굉장히 뚱했다.
아니, 뚱하다 못해 카리스마가 넘쳤다.
‘역시, 유명한 사람은 분위기부터 다르군.’
김한영이었다.
현재 한국 미디어계의 떠오르는 핵.
그의 등장에 아이플러스의 두 사람이 긴장에 사로잡히고, 카페 안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련의 충격을 머금은 순간.
김한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카페는 왜 테이블이 동그랗지.’
그는 예로부터 둥근 테이블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지 그뿐이었다.
* * *
김한영.
그는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아, 마음에 안 든다.’
먼 옛날부터 둥근 테이블이라는 것을 싫어하다 못해, 작은 억하심정마저 품었다.
어정쩡한 높이에, 어정쩡한 넓이가 보고만 있어도 속이 느글거렸다.
밥을 먹어도 불편하다.
업무를 봐도 불편하다.
엎드려서 졸려도 해도 겨드랑이가 허전하다.
미관은 어떨지 모르나, 둥근 테이블이라는 것은 무엇을 하든 불편한 물건이었다.
하물며 사각 테이블이라는 완벽한 상위호환이 존재하기까지.
‘사람을 고문하려고 이런 물건을 만들었나?’
이 카페는 다시는 안 온다.
김한영의 마음속에는 그런 생각뿐이었다.
그런 결심을 하고 있으려니, 건너편에 앉은 남정네 두 사람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하하, 날씨가 참 좋죠?”
“그렇네요. 하늘도 파랗고. 곧 겨울이 오려고 그러나.”
김 부장과 최 대리였다.
둘은 마치 켕기는 구석이라도 있는 사람들처럼 말을 계속해서 더듬었다.
사람을 불러 놓고는, 자기들이 죄수라도 됐다는 듯 몸을 가만히 둘 줄을 몰라 했다.
그게 김한영의 눈에는 거듭 이상하게 느껴졌다.
‘화장실 가고 싶어서 저러나?’
이상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영업하라고 보내다니.
‘회사 이름이 아이플러스라고 했나.’
설명을 보냈다.
근래 들어 OTT 사업에 진출하며, 본격적으로 확장을 준비하고 있는 업체라고 했다.
전반적인 서비스의 질은 괜찮지만, 오리지널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지.
그 약점을 메꾸기 위해 연락했다는 게 김한영의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노리는 건 독점화겠지.’
이번 한영 아카데미를 독점으로 유통할 권리를 달라는 거 아닐까.
그의 생각은 90퍼센트 이상 적중했다.
미리 결론을 내려 두었으니, 마음도 편할 수밖에.
김한영은 어느새 제삼자가 된 기분으로 편안하게 이 자리를 즐겼다.
‘이렇게 미팅 자리에서 우위에 서 보는 건 오래간만이긴 하네.’
김한석 시절에는 어느 정도 뜬 뒤에는 언제나 상대가 저자세였다.
대기업 회장 정도나 목이 뻣뻣했지.
하물며 김한영은 남에게 고개 숙이는 법을 태생적으로 교육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김한영으로서 살게 된 뒤, 좀처럼 남과 그렇게 마주할 일이 잘 없었다.
‘신선하네.’
그렇기에 이 자리가 오히려 재밌어졌다.
지금이라면 요구하는 게 너무 과하지만 않으면 뭐든 적당히 들어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아니, 들어 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고 싶은 기분이니까.
‘그럼 나는 뭘 부탁해 볼까.’
그렇게 느긋하게 기다리는 한편, 김 부장은 죽을 맛이었다.
‘이 사람, 무겁다.’
김한영이라는 사람이 무거웠다.
미팅 자리에서는 어찌 됐든 비즈니스를 위해서라도 숙여 주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김한영에게는 그런 면모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허세를 부리면 모르겠는데.’
그런 사람이었다면 차라리 빈 구석이 보여서 구워삶을 수 있을 텐데, 김한영은 그런 부류조차도 아니었다.
그저 한없이 느긋할 뿐.
생각지도 않게 편안한 자세가 김 부장에게 한층 더 압박으로 다가왔다.
‘꿀릴 게 없다는 건가.’
소문이 사실이다.
김한영에게는 뒷배가 존재한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간만 볼 수는 없었다.
김 부장은 마음의 눈을 질끈 감고는, 힐끔 김한영의 눈치를 살핀 뒤 말했다.
“한영 가수님의 이번 콘텐츠, 한영 아카데미를 저희 독점 콘텐츠로 모시고 싶습니다.”
본론을 던졌다.
하지만 김한영에게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
더 말해 보라는 듯 평화롭기만 했다.
‘양보하지 않겠다는 건가.’
김 부장은 입술을 질끈 무고는 거듭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시청자분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저희가 다른 대안을 준비했습니다! 해외 유통을 저희 아이플러스가 전담할 수 있게끔 양해를 해 주셨으면…….”
그렇게 말하며 김한영을 다시금 바라본 찰나.
김 부장은 거듭 벽을 마주했다.
‘변화가 없다.’
김한영에게는 여전히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흡사 모아이 석상을 보는 듯했다.
혹은 제주도 섭지코지의 돌하르방을 보는 듯했다.
흥미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흥미 이전에 감정의 변화 자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완성도 높은 포커페이스라니.’
흡사 벽을 마주한 것만 같은 기분.
김 부장은 직감했다.
이쪽은 어설프게 패를 숨겨도 될 상대가 아니었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서 협상한다는 건가.’
일류 협상가들이나 간신히 다다른다는 그 경지. 그 위에서 기껏 해 봐야 스물한 살이나 될 법한 청년이 춤을 추고 있었다.
쉽지 않다.
패를 아끼기만 해서는 휘둘릴 뿐이다.
결국, 김 부장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양보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던 선마저 벗어던지고는 말했다.
“단 3일! 3일만 저희 아이플러스에서 선공개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비로소 김한영의 얼굴에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한편, 강도수 사장이 옅은 쓴웃음을 얼굴에 띄웠다.
‘저거 쉽지 않지.’
당해 봐서 안다.
피해자라서 공감할 수 있다.
김한영이라는 사람을 협상 상대로 보면, 얼마나 턱턱 막히는지 안다.
그렇기에 그저 안쓰러운 기분만 드는 순간이었다.
“글쎄요.”
김한영의 입에서 의외인 말이 튀어나왔다.
“선공개 기간을 그렇게 짧게 묶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네?”
“3일은 아무래도 너무 짧네요. 선공개 조건으로 저희도 지원받는 게 있을 텐데. 그래도 일주일은 돼야 독점을 건 효과가 있지 않겠어요?”
“…….”
김 부장과 최 대리가 일제히 정적에 감싸였다.
조건을 더 챙겨 가려는 건가 했는데, 설마 다른 말이 나오다니.
하지만 다음 말을 들은 순간, 그들은 김한영이 그들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걸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신에 부탁을 하나 드리고 싶은데요.”
김한영이 그답지 않게 자그맣게 웃으며 말했다.
“힘든 부탁일 수도 있지만, 제가 음악 소재 다큐멘터리를 하나 찍어 보고 싶어요.”
“다큐멘터리라면…….”
“옛날 어떤 뮤지션에 관한 다큐멘터리인데요.”
다음 한 말이 가관이었다.
“김한석이라고.”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