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강릉시장, 송창수.
그가 운전대를 잡은 채로, 룸미러에 비친 김한영을 흘깃 보며 생각했다.
‘오늘도 날이 좋구만.’
송창수 시장은 뭐라고 해야 할까.
기회주의적인 사람이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오히려 유능하다고 볼 수 있었다.
뭐든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않고 살리려 한다는 것이니까.
이번에도 그랬다.
‘젊은 학생이라서 다행이야.’
김한영이라는 기회가 절로 굴러들어 온 게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요즘 대세라고 해 봐야 20대 초반밖에 안 되는 학생이다.
이미 그의 행사를 강릉시에 유치한 것만 해도 소소한 이득이지만, 여기서 더더욱 뭔가를 챙길 생각이었다.
무엇이 됐든, 시에서 이득을 챙길 수 있다면 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하지 않나.
밥이나 적당히 사 주면서 구워삶아야지.
끼익.
곧 차가 멈춰 섰다.
“여깁니다.”
송창수 시장이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 * *
‘갑자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
가볍게 공연도 끝났겠다.
밥이나 먹으러 갈 생각이었는데, 뜻밖에 나타난 사람에게 붙잡혀 버렸다.
“여기가 강릉시에서 제일 잘하는 집입니다. 허허, 경치도 좋지요?”
강릉시장이었다.
강릉시장, 송창수.
그가 넉살 좋게 오른 턱살을 떨며 말했다.
“제가 강릉에서 잘한다는 두부 식당은 다 먹어 봤는데, 여기만 한 두부 식당이 또 없습니다. 20년 동안 한 자리에서 알 박고 장사했으면 말 다 했죠?”
이 가게가 정말로 잘하는 가게인지는 모르겠다.
입지가 별로일뿐더러, 그렇게 특출난 무언가가 있어 보이지 않으니까.
하지만 꽤 가격대에 기둥에서 적당히 연식이 느껴지는 걸 보니, 20년 동안 장사했다는 말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싫은가 하면 그건 아니고.
‘이거지.’
정확히 내 취향이었다.
원래 식당이라는 게 오래 버티는 가게는 버티는 이유가 있다.
관광객 등쳐 먹는 가게라면 대개 미관을 비롯해 마케팅으로 승부를 본다면 모를까, 맛에 승부를 걸지는 않는다.
어차피 한 번 치고 빠질 곳이니까.
‘특출날 거 없이 무난한 메뉴, 높은 가격대, 식사 시간을 조금 지나쳤는데도 사람이 많다. 게다가 어쨌든 나는 손님인데 여기에 데려왔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기대감이 자라난다.
‘다음에는 팅 식구들도 데려와야겠다.’
이번에는 아무도 없이 나 혼자서 왔다. 고희범이 멀미로 속에 뭐가 안 들어간다며 쓰러졌기 때문.
‘그래도 억지로 데려올 걸 그랬나. 매니저라고 자부심이 엄청나던데.’
요즘은 뭐가 됐든 좋은 게 있으면 혼자 누리기가 아쉽다.
요즘 생활이 그만큼 즐거워졌나 보다.
새삼스럽게 생각에 빠진 사이 주문한 메뉴가 나왔고, 그 맛은 내가 예상했던 정확히 그대로였다.
“맛있네요.”
“그렇지요?”
송창수 시장이 털털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시장이라는 직위를 단 것치고는 꽤 털털한 사람이었다.
입고 있는 옷도 동네 아저씨 같고.
“퇴근하셨어요?”
“후딱 일만 보고 나왔습니다. 제가 퇴근해야 직원들도 퇴근할 수 있다 보니. 그리고 또.”
그가 눈을 찡긋하더니 말했다.
“가수님 공연을 직접 보고 싶었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걸 어떻게 그냥 넘깁니까? 흐허허.”
그렇군.
하지만 아부는 아부다.
이리 따로 만나자고 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터.
내가 자의적으로 짐작하기에, 시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내게 할 말이라면 그것이었다.
‘뭔가 방송에 특혜를 달라고 하려는 건가.’
특혜였다.
자기가 아는 사람을 출연시켜 달라고 하거나, 아니면 식당을 방송에 내보내 달라고 하거나.
그런 종류가 아닐까.
단순히 얼굴 트는 겸 사이좋게 맛집 탐방이나 하자고 부른 건 아니겠지.
‘어떤 목적으로 식사 초대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순한 의도를 드러낸다면 컷 한다.’
그런 생각을 굳힌 순간 송창수 시장이 입을 열었다.
“오늘 공연은 정말 훌륭했습니다. 역시 잘 나가는 가수는 다르더라고요. 제가 어렸을 때는 김한석 노래를 듣고 자랐는데, 그때 향수가 팍 느껴졌습니다.”
좋은 사람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송창수 시장에 대한 생각을 업데이트했다.
음잘알.
“제가 어렸을 때는 김한석이 최고였거든요. 임대경도 경쟁자였다고 하지만, 그래도 역시 최고는 김한석이었죠.”
“음.”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두부가 달다.
신김치도 달다.
이 사람의 말은 더 달다.
“김한석이라는 사람을 말하자면 지존이었지요. 소설 속에 나오는 절대지존. 도전자는 나오지만, 결국 범접은 못 하는 그런 사람이 김한석이었습니다.”
“음.”
“그때는 음악 좀 듣는다는 친구들이었다면 다 김한석 흉내를 냈는데 말입니다. 저도 그랬지요. 여자들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칠 줄도 모르는 기타를 없는 돈 모아서 사고. 그래 봤자 막상 연주할 일은 없어서 먼지만 쌓였지만 말입니다. 흐허허.”
“아쉽네요. 하시면 잘하셨을 것 같은데.”
“흐흐, 가수님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아직 안 늦은 것 같기도 한데 말입니다. 집에 가면 창고에서 꺼내 봐야겠습니다.”
응원한다.
진심으로 응원한다.
송창수 시장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와중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순간적으로 그의 눈빛이 바뀌더니 말했다.
“이번에 진행한다는 그 방송 프로젝트 있지 않습니까.”
“한영 아카데미 말씀이네요.”
“예, 그게 들어 보니까 막 해외에도 나오고 그런다고 하던데. 혹시 이미 참가자 모집은 다 끝난 겁니까?”
그렇구나.
언제쯤 본론을 꺼내나 했더니, 슬슬 생각했던 타이밍이 온 모양이다.
아부를 쏟아 냈다면 그다음은 요구지.
절차상으로 상식이다.
나는 한창 달그락거리던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직이요.”
아직이었다.
1차에서 참가자 11명을 모집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시드가 남아 있었다.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하기 전까지, 자질이 있는 사람을 발견하거든 한두 명은 시드로 밀어 넣을 생각이 있었다.
아직 그럴 사람이 안 보였을 뿐.
‘아까 그 박유동인가 하는 사람도 여차하면 끼워 넣을 생각은 하고 있었다만.’
생각을 정리하고 있으려니 송창수 시장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그렇다면, 제가 한 명을 추천해도 되겠습니까?”
이쪽이 본론이었나 보다.
인구 20만짜리 도시의 시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따로 한참 어린 사람을 만나서는 하는 말이, 참가자를 추천하고 싶다는 것.
그래서 이 말을 들은 내 생각은 어떠했냐면.
“안 될 거 없죠.”
추천 자체로는 특별히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이었다.
“오호라, 다행입니다.”
송창수 시장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담겼다.
그가 찢어지도록 웃으려는 걸 간신히 억누르며 말했다.
“얼마 전에 저희 시에서 주최한 음악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친구입니다. 이제 막 스물이 조금 안 된 여학생인데, 나이도 어린 친구가, 어이쿠, 노래를 아주 잘해요. 막 TV에 나오는 아이돌들 못지않다니까.”
아직 스물도 안 된 여학생이라.
그쪽과 송창수 시장한테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지 궁금하기는 하다.
친척이라거나 지인의 딸 정도 아닐까.
“어릴 때부터 좀 특출났거든요. 얼굴도 예쁘고, 하고 싶어 하는 일도 많고. 그런데 요즘은 또 방송을 시작해 보겠다면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있는데. 또 한국에서 방송이라고 하면 곧 김한영 아니겠습니까. 김한영! 음악 방송의 대명사!”
송창수 시장은 자랑과 칭찬을 섞어 가며 설명을 늘어놓기를 한참.
나를 은근슬쩍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가수님 방송에 나올 만한 실력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괜찮아요. 실력 좀 떨어지더라도.”
“아, 역시.”
실력이야 괜찮다.
나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송창수 시장의 턱살을 의식하지 않고, 다시금 젓가락을 놀리며 말했다.
“어차피 테스트 볼 예정이거든요.”
“……예?”
그의 턱살이 잠시 굳었다.
나는 하던 말을 잇기로 했다.
“공평성 문제 때문에라도 그냥 참가를 시켜 줄 수는 없어요. 어떻게든 테스트는 거칠 겁니다. 굳이 말하자면 현장 오디션이 되겠네요.”
“그 오디션이…….”
“시장님께서 좋은 사람을 추천해 주시면 전 감사하죠. 따로 연락처만 주세요.”
인재풀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다.
저쪽에서 내 말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모르겠다.
일단 추천을 넣어만 준다면, 거기에서 내가 합격을 시켜 주겠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신경을 쓰지 않기도 했다.
“시장님 덕분에 방송이 한층 풍부해지겠어요. 감사합니다.”
“……허허, 그렇죠?”
나는 누가 뭐라고 하든 그럴 생각이 없으며, 그럴 의도로 한 말도 아니니까.
저쪽에서 추천을 한 사람이 실력이 정말로 좋으면 감사할 뿐.
나는 이득이다.
실력이 떨어져서 탈락시킨다고 한들 문제는 없다.
손해는 없다.
‘나중에 따져 봤자지.’
내가 애초에 붙여 주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무슨 상관인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것도 아니고, 취사선택이 가능하다.
최신형 구구 밥솥처럼.
나는 겸사겸사 말이 나온 김에 보험 삼아 한마디를 더 묻기로 했다.
“아니면 그냥 합격시켜 달라는 말씀이셨나요? 아무런 오디션 없이 바로? 꽂아 넣는 것처럼?”
대놓고 물어보자 그는 식당 주위를 살피며 황급하게 팔을 저었다.
“아, 제가 또 그런 건 절대 아니고요.”
“그렇죠?”
“허허, 물론입니다. 제가 그런 무리한 부탁을 할 리가.”
게임 끝이다.
이제부터는 내 편한 대로 하면 된다.
“참, 공연 무대도 아직 딱 결론을 내렸다기보다는 한창 알아보는 중인데, 혹시 좋은 장소가 없을까요?”
“큰 행사가 있을 때 쓰는 곳이 있기는 합니다만.”
“다행이네요. 이거 때문에 한창 고민하고 있었는데, 시장님 덕분에 제가 살았어요. 아까 그 추천해 주신다는 분도 그렇고.”
“…….”
그의 표정이 어지간히 긴가민가한 표정이었다.
나는 본래부터 눈치라는 게 전혀 없는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의 바람을 못 읽고 말했다.
“두부가 맛있네요.”
진짜 맛있다.
괜히 데려온 게 아니네.
나는 송창수 시장의 선구안에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역시 맛집이네요. 아, 그런데 양이 적네. 관광지라 그런가 봐요.”
“……잘 드시니까 좋습니다. 더 시킬까요?”
“아, 제가 눈치 드린 거 아니죠?”
“하하, 양껏 드셔도 됩니다. 오늘은 제가 사는 겁니다.”
“오, 감사합니다.”
나는 남은 김치 한 점을 짚다가, 젓가락을 허공에 멈추고는 물었다.
“그런데 이거 밥 한 끼에 3만 원 넘으면 김영란…….”
“에이, 무슨 섭섭한 말입니까. 그런 거 아니래도요. 그냥 제가 개인적인 호의로. 개인 대 개인으로. 예.”
이 집 맛집이네.
* * *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나는 송창수 시장이 운전해 주는 차에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식구들을 마주했을 무렵, 조은솔이 내게 처음으로 꺼낸 말은 이러했다.
“어땠어?”
“좋은 사람이던데요.”
“좋은 사람? 뭔가 이상한 요구는 안 했고? 방송에 개입하게 해 달라거나.”
“전혀요. 오히려 사람 추천받았어요.”
“흐음, 그래?”
그녀의 표정이 어째서인지 불신에 물들어 있었다.
“한영아, 그 사람 추천하는 게 널 속이는 걸지도 몰라.”
“그럼 떨어뜨리면 되죠.”
“그러니까 그게 마음 편하게 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니까. 저쪽에서 나중에 트집 잡으면서 뭐라고 하면 어쩌려고.”
“사람은 좋던데요.”
“후, 한영아.”
대충 내뱉은 말에 조은솔이 한숨을 내쉬더니 안쓰럽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사람 좋다는 사람이 제일 위험한 거야. 사기꾼들이 맨날 듣는 말이 뭐게? 사람은 좋다. 알지?”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걱정이 넘치다 못해 마치 물에 애라도 내놓은 듯 타이른다.
하지만.
“풉.”
홍윤서의 태도는 정반대였다.
“저거 봐라, 김한영을 지금까지 겪었으면서 아직도 모르네. 야, 김한영은 보나 마나 모르는 척하면서 뜯어먹고 왔을 거다. 밥도 자기 돈으로 안 먹었을걸?”
“야, 정치인들이 말로 애 하나 구워삶는 게 하루 이틀이야? 너는 한영이가 이용당했을까 봐 걱정도 안 돼? 그리고 한영이가 무슨 양심 없는 거지도 아니고 진짜로 모르는 척 뜯어먹고 왔겠어?”
뜯어먹은 건 아니지.
사 준다니까 어쩔 수 없이 먹었지.
홍윤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말했다.
“나는 한영이보다 내 앞날이 더 걱정이다. 내가 너무 불쌍해.”
“사람이 못됐어.”
“김한영 이야기지?”
“진짜 죽는다.”
“꺼억.”
“그냥 오늘 죽자.”
두 사람은 어느새 기다렸다는 듯 말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눈길을 돌리려니 숙소에서 고희범이 퀭한 얼굴로 주린 배를 붙잡으며 기어 나왔다.
‘와.’
평소에도 좀비 같은데, 오늘은 한층 리얼하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겠는데.
아니지, 쓰러졌다가 일어난 거지.
‘큰일이네.’
나는 안쓰러운 마음을 가슴 한쪽에 감추면서 말했다.
“희범아, 일감 물어 왔다.”
“…….”
네가 택한 강릉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