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상황이 뒤바뀌었다.
철저하게 계산해 뒀던 심사가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처럼, 고양이 털이 묻은 스웨터처럼 난장판이 됐다.
이 모든 게 바로.
“잘하시네요. 중간에 목소리 떠셨던 것도 비브라토 맞죠?”
임선우가 범인이었다.
그가 맥였다.
“네? 네 그게 사실…….”
지적이라고 생각한 건지 정호영이 움찔하고는 뭐라 둘러대려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연주하시는 게 지금까지 들어 본 적 없는 스타일이네요. 전 음정은 최대한 지키라고만 배웠는데.”
“…….”
“참 대단하네요.”
그가 참가자를 먹였다.
말 한마디 한마디 칭찬이라는 구실로 먹였다.
“만약 YTG였다면 이런 연주는 상상도 못 했을 거예요.”
순수한 얼굴로 악의를 쏟아 낸다.
어린아이가 돋보기로 개미를 태워 죽이듯, 임선우의 방향 없는 살의가 참가자를 태워 죽였다.
‘지금 나한테 항의하는 건가? 자기 말 안 들어 줬다고?’
그렇다고 보기에는 저거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자기가 잘했다고 뿌듯해하고 있지 않나.
눈을 마주쳤더니 희미한 미소마저 머금고 있었다.
거, 보람을 느끼고 계시는구나.
“그, 그, 선우 말이 맞아요.”
정의선이 풍랑에 흔들리는 돛단배처럼 혼란스러워하며 평론을 이었다.
“저도 호영 씨 노래 듣고 깜짝 놀랐거든요? 한영이가 오죽 곡을 꼬아서 내놓는데 이렇게도 소화할 수도 있구나 해서. 하하, 어제 먹은 참치가 도움이 됐나. 하하.”
말이라고 아주 있는 대로 내뱉고 있는구나.
임선우가 먹이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몰라서 저러는 거겠지.
이쯤 되자 난처해진 건 나였다.
‘포지션이 뒤틀렸다.’
처음에 계획했던 심사 포메이션이 있었다.
내가 비판하고, 임선우가 칭찬하고, 정의선이 대중의 시선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방송에서 왜 하필 심사위원으로 3인 구도를 채용하나 많이 고민했고, 끝내 이 셋이 최적의 구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뒤틀렸다.
이는 심사 자체가 망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절망감에 취해 채팅창으로 눈을 돌린 순간이었다.
놀랍게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
시청자들도 임선우에게 눈치가 없다는 사실 정도는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YTG가 아무리 포장하려고 한들, 임선우의 허당 기질은 차마 완전히 숨길 수 없었던 것.
아니, 이마저도 YTG의 거대한 계산이었을 수 있었다.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눈이 번쩍 뜨였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인간은 언제나 적응하는 동물이었다.
우리 조상님들은 야생의 맹수들보다 육체적으로 열등했기 때문에 손에 돌을 쥐었다.
이어 칼을 쥐었고, 활을 쥐었으며, 끝내 붓을 휘두르셨다.
나아가 키보드를 잡으셨다.
하나하나가 더 나은 삶을 쟁취하기 위한 역사였다.
결국, 모든 건 진보의 연장선이었다.
[즐거운 진보의 날 되세요!]최근 고희범이 본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대사.
나는 그것을 되새기며 말했다.
“호영 씨 노래를 듣고 생각한 건데요. 중간에 감정 표현이 꽤 괜찮았어요. 제가 곡을 만들면서도 아쉬웠던 부분인데, 그걸 표현력으로 커버하셨네요.”
칭찬이었다.
임선우가 비판하고, 정의선이 넋을 잃었다면 내가 칭찬을 하겠다.
“가수라면 누구나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잖아요. 호영 씨가 시청자분들에게 전하려고 했던 말이 와닿았어요.”
오디션 방송에서 칭찬이란 어찌 보면 비판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다.
칭찬을 통해 참가자들의 몸값을 높일 수 있기 때문.
이들의 몸값이 올라갈수록 내 방송의 값어치도 올라가니, 어쩌면 내가 직접 칭찬을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참신하면 설득력이 떨어지고, 머무르면 기대를 저버리죠. 호영 씨는 이 중간에서 위치를 잘 잡은 것 같네요.”
“한영이 말이 맞아요.”
임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였어도 그런 건 못했을 것 같네요.”
너는 그만 좀 맥이고.
쫌.
* * *
[무지성 올려치기 on]오디션 심사의 가닥이 잡혔다.
시청자들이 할 일이라고는 웃는 것뿐이었다.
[김한영 ㄹㅇ 따뜻한 사람인 척 코스프레 오지네]김한영은 자기 자신을 비판이 어울리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칭찬 메타로 바꿨냐고 아 ㅋㅋㅋㅋ] [그런다고 우리가 속을 줄 알죠? 나중에 배신하려고 착한 척하죠?] [그래도 저거 나름대로 진심인 것 같은데] [ㅇㅇ 김한영 노력은 하네]이건 평소 삶의 자세와 연관된 일이었다.
[그래도 김한영이 칭찬할 정도면 진짜 높게 친 거라고 본다]김한영은 숨 쉬듯 까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역으로 그의 칭찬이 빛날 수 있는 법이었다.
열 마디 중 아홉 마디가 칭찬인 사람과, 한 마디만 칭찬인 사람 중 누구 칭찬이 더 가치 있겠는가.
제이미 올리버의 칭찬과 고든 램지의 칭찬 중 무엇이 더 높은 가치를 지녔겠는가.
누구 칭찬을 받은 식당에 더 가 보고 싶은가.
대중은 후자를 택했다.
[기만질 안 하고 기만영 웬일이야] [저게 빌드업일 수도 있음] [ㄹㅇ 방심할 수 없다] [한 번 속으면 몰라도 두 번 속으면 자기 탓인 거 몰라?] [한 번은 속아도 된다는 거네~~~?]어찌 됐든 김한영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평소와 다른 행동을 취했고.
이는 곧 참가자의 재발견으로도 이어졌다.
[확실히 긴장한 거 치고는 소화 잘했음] [곡이 좋은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실력이 좋네] [그립읍니다……. 탈주좌…] [목소리가 거문고 같음. 사람 목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지?] [오 나도 그 생각했음]정호영만 그런 게 아니다.
이후로도 같은 일이 몇 번이고 이어졌다.
[김소연 잘하네] [12시간 훈련하고 이 정도 실력이라고?] [장칼국수도 없는 곳에서 이 정도의 연주를 선보이다니] [김한영이 오열하고 임선우가 감탄했다]누구를 평가하든 같은 과정의 반복.
“소연 참가자님을 보면 옛날에 제가 중학교에 다녔을 때가 떠오르네요.”
임선우가 혼돈/악을 맡았다.
“하하…… 중학교 때는 행복했는데.”
정의선은 정의/선을 선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곡이 틀에 얽매일 수 있거든요. 제 은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성공하는 건 기성이지만, 시장의 변화를 가져오는 건 신인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신인이라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소연 씨가 이런 감성을 앞으로도 잘 발전시켜 주셨으면 좋겠어요.”
김한영이 상황 정리와 칭찬을 맡았다.
전문 MC가 하나도 없는 것치고는, 나름대로 무난한 방송이었다.
* * *
24시간 합숙 방송 촬영이 끝났다.
우선 여기까지 편집해서 아이플러스에 3화 분량을 선공개한 후, 반응을 확인하고 나머지 촬영이 진행될 예정.
서울로 돌아가는 길.
나는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아이플러스가 이건 좋네. 나머지는 쉬엄쉬엄 진행해도 되겠다.”
“너무 자유로운 거 아니에요?”
그에 한여름이 어리둥절한 반응으로 말했다.
“그랬다가 저희가 촬영 그만두고 도주하면 어쩌려고.”
“우리를 믿어 준 거지.”
아이플러스의 배려였다.
OTT 플랫폼치고는 이쪽에 많이 양보해 줬다고나 할까.
다른 회사와는 명백히 다른 일 처리였다.
넷플레이는 전편 촬영을 마친 후 한꺼번에 독점 공개할 것을 요청했다.
다즈에서는 본선 참가자 선정을 비롯해 작품 기획 전체에 입김을 넣으려 시도했다.
피치 TV는 아예 자기네 산하 스튜디오에게 전권을 넘기라고 했고.
‘이렇게 보면 확실히 아이플러스가 호구 당하기 좋을 것 같기는 해.’
투자는 적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간섭도 없었다.
제작 전권은 우리한테 넘겨줬다.
공개 방식도 넘겼다.
사실상 우리에게 허리를 숙였다고 봐도 좋을 정도.
“아이플러스가 착한 기업이네요.”
한여름이 다소 순진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기업에 착한 기업, 나쁜 기업 같은 건 구분하기 어렵다고 봐. 그보다는 아이플러스가 OTT 회사 중에서는 좀 힘이 약하잖아? 그러니까 선택지가 없었겠지.”
예나 지금이나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아이플러스가 과연 지금보다 점유율이 높은 기업이었어도 우리한테 양보했을까.
그건 두고 봐야 할 일이었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라고 생각해야 문제가 생겨도 속이 덜 쓰리다.
“저쪽도 우리의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한 거야. 당장 숙이더라도 앞으로도 떡상하면 이득이니까.”
“그러니까 형 말은, 이게 아이플러스 입장에서는 최선이었다는 거죠?”
“그렇지.”
서로 필요한 걸 얻었으니까 문제 될 건 없다.
하지만 이게 꼭 좋은 것도 아니었다.
“당장은 문제가 없겠지.”
“그 말은, 나중에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거네요.”
“예를 들어, 우리 방송을 공개하고 봤더니 생각보다 성적이 안 나왔다고 치자. 아이플러스에서 과연 어떻게 나올까?”
“으음.”
한여름은 머리가 아픈지 인상을 한참이나 찌푸리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내던지지 않을까요? 애초에 투자한 게 없으면 손해도 없으니까.”
정답이었다.
크게 관여한 게 없으니 책임질 것도 없다.
최소한의 홍보조차 안 해 줄 가능성 또한 존재했다.
“여름이 말대로 될 것 같기는 해.”
조은솔이 운전대를 쥔 채로 말했다.
“그러니까 이번 방송으로 증명해야 하는 거지. 아이플러스가 우리를 공격적으로 팔아 주려면 말이야. 하하. 희범이가 고생 좀 해야겠네.”
“으아아…… 저 지금 멀미 나는데 그러지 마요…….”
“편집자님, 부탁드릴게요.”
“으아아아아…….”
고희범이 배를 감싸 쥐고 시트에 몸을 파묻었다.
‘그러고 보니까 방송 뜨면 우리도 차 좀 좋은 거로 바꿔야겠네.’
말은 저렇게 했지만.
만에 하나 망할 것 같은 생각은 안 들었다.
* * *
약 2주일 뒤.
아이플러스에 한영 아카데미 1~3화 분량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미튜브 채널에 올라가기 전까지 아이플러스에서 단독 선공개.
플랫폼의 생명이 걸린 컨텐츠라서 그럴까, 아이플러스는 네온 엔터와 손을 잡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쏟아부었다.
일개 미튜버의 컨텐츠를 OTT에서 단독 선공개한다니.
그것도 계약상으로는 퍼 주다시피 하면서.
이에 암암리에 반감을 품은 사람도 존재했다.
“마음에 안 들어.”
넷플레이 한국 지사의 담당 PD가 그러했다.
“요즘 좀 떴다고 해서 그렇게 모든 걸 거절하고 자기 맘대로 하려고 하고. 아주 자기들이 갑이라는 거지. 벌써 갑질에 맛이 들여서는.”
김한영의 고자세가 마음에 안 든 것.
그만 그런 건 아니고, 넷플레이의 분위기 자체가 그러했다.
“그러니까요. 자기들보다 훨씬 더 잘나가는 회사들도 통상적인 조건을 따르는데. 무슨 특별 대접을 바라는지.”
“하여간 경험이 없을수록 그런다니까. 시장 물정을 몰라. 그래놓고 기껏 계약한 곳이 아이플러스라니까 웃기지 않아?”
“그렇죠. 하필 아이플러스.”
직원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플러스가 말이 OTT 회사지, 시장 전체를 놓고 보면 3위 안에도 못 들어가는 곳인 탓이었다.
5위는 간신히 턱걸이할까 말까다.
그나마도 독점 컨텐츠가 부족하다 보니 이용자가 줄어드는 추세.
“선독점 기간이 꼴랑 일주일이라고 했나? 아이플러스도 참 구차한 짓을 한다니까. 자존심도 없나. 보니까 강릉에 가서 지지고 볶고 아주 난리였던 것 같은데.”
“커피를 지지고 볶은 거 아니에요? 강릉 하면 커피의 도시잖아요.”
“몰라, 그런 촌 동네 따위.”
PD가 짜증이 묻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가 성을 내는 데는 김한영을 영업하는 데 실패한 책임을 물었던 것도 있었다.
“어디 얼마나 잘나가나 보자고.”
앞서 말했듯, 그들은 김한영의 방송에 그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다.
배알이 꼴려서인 것도 있고.
앞서 이미 잘나가는 스튜디오조차 망했던 사례를 많이 봤기 때문.
‘아이플러스가 경험이 모자라다 보니까 아주 멍청한 짓을 한 거지.’
김한영이 요즘 잘나간다는 건 안다.
그는 진심으로 김한영을 무시할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플러스는 예외다.
김한영에게 홀려 계약에 예외를 둔 건 악수였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한 명한테 예외를 허락한 순간, 다른 곳에서도 같은 예외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칠 테니까.
‘아주 골치 아프겠지. 회사 운영을 판돈으로 사활을 걸려면 다른 쪽에 걸었어야지.’
하지만 궁금하기는 하다.
대체 얼마나 거창한 비전을 목격했기에 저런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인 걸까.
‘혹시 모르니까 퇴근하고 정주행해야겠네.’
PD가 여지를 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지금 뉴스 올라왔는데요?”
퇴근하기 전, 방송보다 뉴스를 통해 먼저 확인할 수 있었다.
“무슨 뉴스?”
“그게.”
PD의 말에 부하 직원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개 6시간 만에 시청자 수가 100만을 넘겼다고…….”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