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
2화
정신을 차린 뒤, 내가 처음으로 한 생각은 이러했다.
‘어이가 없네, 어이가 없어.’
어이가 없다.
죽은 줄 알았는데, 안 죽었다.
아니면 죽고 나서 부활한 건가.
어느 쪽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지금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이었다.
‘후우,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게다가 2021년이라니.
이건 또 뭐야.
잠깐 눈 좀 감았다가 뜬 것 같은데 3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다.
그 공상과학 소설의 냉동인간이 이런 기분일까.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또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대답해 줄 사람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렇게 이도 저도 못 하고 우두커니 앉아 벽만 바라보고 있는 찰나였다.
“으윽……!”
머릿속으로 따끔한 통증과 함께 무언가가 눈앞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이었다.
‘이게 뭐지?’
내가 지금까지 겪어 본 적 없는 기억들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인생을 천천히 조감하는 듯한 광경.
그것들이 겨울철 정전기처럼 빠르고 강렬하게 내 뇌 위에 새겨졌다.
그렇게 몇 초.
나는 곧 깨달았다.
“……돌겠네.”
나는 지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는 김한석이 맞다.
하지만 동시에 김한석이 아닌 또 다른 사람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김한영이라는 이름의 대학교 새내기가 되었다.
김한영.
교과서같이 평범하게 살다가, 성적에 맞춰 적당한 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새내기 대학생.
특별한 거 없이 남들처럼 살아왔던 사람인데 취미는 온라인 게임이었다.
‘온라인 게임이 뭐지?’
그런 게 있었나.
고민하고 있으려니 누가 해답지를 머릿속으로 집어 넣어주듯 곧 떠올랐다.
‘아, 이런 게 있었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김한영으로 살아가던 중 김한석으로 깨어났다는 이 느낌.
아무튼, 이게 지금의 나였다.
양쪽의 정체성이 동시에 느껴졌다.
믿기 어렵지만 의심하기도 어려웠다.
호흡이 자연스럽듯, 내가 나라는 이 기억도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부활했다. 아니, 환생했다.’
굳이 말하자면 전생의 기억에 떠오른 것에 가깝다.
이 사실을 깨닫자, 입에서는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하하.”
웃지 않기가 어려웠다.
‘신이 내게 축복을 준 건가?’
김한석으로 살면서 그동안 크게 아쉬울 게 없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끄러울 게 없는 인생을 살았다.
자랑스러운 삶이었다.
특히 음악에 있어서 그러했다.
통기타 하나만 손에 쥐면 못할 게 없었다.
‘이 세상을 도화지로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자유롭게 그릴 수 있었지.’
살아서 겪었던 무대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행복했던 추억이었다.
당장 지금도 눈을 감고 있으려면 그 무대들이 조금 전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니, 진짜로 떠오르네.
이상하다.
아무리 예전 일이라도 그냥 떠올리려고 하면 번쩍 떠오른다.
김한석으로 살았던 옛날 일도, 김한영으로 살아야 할 이번 삶도 그러했다.
‘자꾸 섞이네.’
나는 두통에 한참을 시달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옛날 생각은 그만두자.’
어찌 되었든 지금의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또 30년의 세월이 지났다는 사실도.
그렇다면 내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도 명백했다.
‘음악을 하자.’
어차피 음악밖에 모르는 인생이었다.
달리 할 일이 있겠는가, 이번 생에도 음악을 할 수밖에.
나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죽기 직전에도 죽음이 아쉬웠던가.
아니다.
일찍 죽어 못 누릴 음악이 가장 아쉽지 않았던가.
어차피 음악 외에 할 일이라고는 없다.
어디 보자.
어느덧 익숙해진 대로 김한영의 기억을 천천히 되새기는데, 이번 삶의 나는 음악과 상당히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듯했다.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악기는 하나도 없고, 노래는 그냥 코인 노래방에 다니는 정도. 코인 노래방이 뭐지? 아, 이런 것도 생겼구나. 다음에 가 봐야겠다.’
세상은 미지의 일투성이다.
고민하기를 잠시.
나는 짐을 들고 일어났다.
지금부터 바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대학생이 할 일이 따로 뭐가 있겠는가.
‘우선은 수업부터 들으러 가야겠다.’
* * *
기억을 되짚어 간신히 강의실에 들어갔더니, 세상은 정말로 다른 세상이 된 듯했다.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사람들의 머리 스타일부터 입고 있는 옷 그리고 가구까지 모든 게 달라졌다.
특히나 신기한 건 모두가 저마다 들고다니는 핸드폰이었다.
‘이 작은 거 하나면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인터넷에서 소통도 할 수 있는 거구나. 옛날에도 저런 게 있었더라면 참 편했을 텐데.’
김한석으로서의 기억과 김한영으로서의 기억이 섞여 혼선이 생겼다.
아직은 전생을 베이스로 이번 생을 되새기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 기억이라는 게 떠올릴 때마다 새롭기 짝이 없었다.
그때그때 사전을 찾아보는 느낌이랄까.
“야, 자리 여기!”
“오늘 과제 뭐였더라?”
“대학생이 과제도 몰라?”
“어제 소주 몇 병 마셨는지는 기억나는데.”
그렇게 적당히 앉아 있으려니 곧 다른 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일까, 학생들의 목소리에서는 아직 어색한 기색이 완연했다.
‘저 학생들은 누군지 잘 안 떠오르네. 나랑 별로 안 친했던 사람들인가?’
기억에 노이즈가 꼈다.
아무래도 내가 저들을 잘 몰랐던 모양.
천천히 기억 속을 더듬다 보니 내가 정말로 가까이 알고 지냈던 사람들의 얼굴만 떠올랐다.
부모님이라거나.
‘그래도 대학생이 학교에 친구 하나가 없을 리는 없을 텐데. 어디 아는 사람 없나?’
그렇게 천천히 기억을 되새기는 와중이었다.
아.
곧 한 명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기억을 곱씹어 보려는 순간이었다.
“야, 어제 멋있더라.”
누군가가 대뜸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남자 학생이었다.
‘얘구나.’
나한테도 친구가 있었다.
그것도 고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가.
‘고희범. 나랑 같이 PC방에 다니던 친구.’
내가 게임을 할 때면 늘 함께 듀오를 짜고는 하는 게 그였다.
고희범은 뭐가 그리 웃긴지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야, 안 들리냐? 너 어제 멋있었다고.”
“뭐가?”
“취해서 필름 끊겼나 보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
고희범에 말에 따라 어제 일을 떠올린 순간이었다.
‘이게 무슨……!’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아!’
어젯밤, 나는 과 학생들과 함께 간 술자리에서 한 여학생에게 대뜸 고백했다.
그리고 단번에 차였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상대가 애초에 제대로 된 대화조차 나눠 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차인 뒤였다.
나는 혼자서 가방을 챙기고는 도망치듯 술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이 친구야, 내가 다 부끄럽다.’
분명 내 일인데, 내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제야 강의실에서 남들이 흘끗흘끗 시선을 줬던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있으려니 고희범이 날 보며 낄낄 웃었다.
“너 걔한테 허세란 허세는 다 떨었잖아.”
“무슨 허세?”
이제는 허탈한 목소리로 되물으려니, 고희범은 낄낄 웃으며 말했다.
“너 기타 잘 친다며, 어쿠스틱 동아리에 들어갈 거라면서.”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무슨 네 이야기를 남 이야기하듯 하네.”
“취했었나 보지.”
나는 손을 대충 휘젓고는 말했다.
“그래서 내가 취해서 뭐라고 했는데? 한번 말이나 해 봐.”
“뭐긴, 걔가 어쿠스틱 기타 좋아한다고 거기 동아리 들어갔다고 하니까, 너도 기타 칠 줄 안다면서 따라서 들어갈 거라고 했잖아.”
다시 한번 얼굴이 화끈 불타올랐다.
김한영.
다룰 줄 아는 악기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주제에 진짜 허세란 허세는 다 떨었구나.
‘아니다, 그래도 캐스터네츠는 제대로 칠 줄 아는구나.’
장하다, 김한영.
하지만 그나마 어쿠스틱 기타를 칠 줄 안다고 허세를 떨어서 다행이다.
왜냐.
어제까지의 김한영은 코드조차 짚을 줄 모르는 초짜였지만, 지금의 나는 정말로 기타를 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으로.
스스로 이런 말을 하기는 부끄럽지만, 나는 업계 전체를 통틀어서 어쿠스틱 기타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그러니 어제의 나와 지금의 나는 은연중에 한배에 탄 셈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고희범이 내게 물었다.
“너 진짜로 기타 동아리에 들어가게?”
“가야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어차피 음악은 할 생각이었고, 음악이라면 남들과 부대껴야 재밌는 법.
자고로 대학생이라면 음악을 시작하기에 동아리만 한 장소가 없었다.
그런데 고희범은 내 말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거기 가면 그 애랑 마주칠 수도 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지?”
“아니, 무슨 상관이기는. 당연히 상관이 있지.”
고희범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너 기타 칠 줄 모르잖아.”
“그런가?”
“그래! 사 놓은 것도 그냥 방구석에 모셔만 뒀잖아. 지난번에 갔을 때는 아주 먼지가 앉아서 하얗더만.”
머릿속을 곰곰이 뒤적여 보니 곧 떠올랐다.
언제 건드렸는지도 기억이 희미한 싸구려 기타 한 대가 외롭게 방치되어 있었다.
유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너 오늘 조금 이상한 거 알지?”
고희범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나라면 가서 수치사하느니 그냥 안 가고 말겠다. 아니면 적어도 연습이라도 좀 하고 가던가.”
“연습은 많이 했어.”
“언제?”
나는 그의 질문에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
고희범은 눈을 좁게 뜨고 나를 바라보기를 잠시.
“그래, 너 알아서 해라.”
이내 설득을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별 신경을 안 썼다.
‘거짓말도 증명할 수만 있으면 거짓말이 아니게 되는 셈이지.’
어제의 김한영이 한 말은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저, 그뿐이다.
나는 당당하다.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그 학생이 대체 얼마나 예쁜 학생이었기에 내가 초면에 반해서는 이런 거짓말까지 했던 거지?’
이거 하나만큼은 기억이 흐릿했다.
애초에 사람 얼굴이라는 게 그렇게 단박에 외워지는 물건이 아니었다.
나는 강의실 전경을 더듬어서 한 명을 찾았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예쁘긴 예쁘네.’
확실히 미녀라고 불릴 정도는 되었다.
이만하면 어디 회사에서도 명함 받을 정도는 되리라. 연기력만 받쳐 준다면 배역 하나는 받을 수 있겠지.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미녀에게 내성이 없는 일반인일 경우의 이야기였다.
‘나도 참 눈이 낮았군.’
전생의 내가 누구였던가.
한국 음악계의 톱스타로서 온갖 여자 배우들을 만나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반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왜냐, 그 사람들 만나느라 시간을 쓰느니 음악이 더 좋으니까!
‘저 학생, 어쿠스틱 기타 동아리에 들어갔다고 했나? 그럼 앞으로 종종 마주치겠네.’
한 번 차인 건 부끄럽다.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남자 자식이 고백 한 번 실패했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서도 고백하지 못한다면 그게 더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대뜸 고백한 건 부끄러운 일이 맞았다.
“…….”
부끄럽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얼굴을 싸매고 있으려니 고희범이 내게 물었다.
“야, 그래서 이번 수업 과제가 뭐더라.”
“잠깐만.”
나는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곧 떠올랐다.
“여기, 이 프린트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외워 오기.”
“오, 땡큐. 너는 안 하게?”
“어.”
“그럼 그냥 나 가져가서 본다.”
“그러던가.”
고희범은 그렇게 과제 프린트 붙잡고 씨름하기 시작했다.
나도 과제 공부를 안 했던 건 마찬가지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영어 과제라 다행이네.’
전생의 내가 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 * *
중경대학교 어쿠스틱 기타 동아리 [팅!].
팅은 예로부터 역사가 깊은 어쿠스틱 기타 동아리였는데, 팅의 현 회장 조은솔은 최근 들어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은 참이었다.
‘이놈들이 동아리에 연애하려고 오나!’
작년부터 시작해 하나같이 연애하러 들어온 놈들투성이였다.
음악 동아리, 그것도 어쿠스틱 동아리니까 연애하기 좋은 환경인 건 인정한다.
하지만 연애를 목적으로 들어오는 건 조금 그렇지 않은가.
대뜸 들이대다가 깨져서는 동반 탈퇴한다.
더욱이 작년 멤버들은 연애 문제에 휘말려서 절반 가까이 탈퇴해 버렸다.
덕분에 올해는 새 멤버를 받을 때 조심해서 받을 생각이었다.
‘잿밥 노리고 온 사람들을 받았다가 난리가 나느니, 처음부터 제대로 칠 줄 아는 놈들만 받는다.’
조은솔은 내친김에 얼마 전에 새로 들어온 신입 회원, 성민아에게 물었다.
“민아야, 너희 과에서 누구 한 명 온다고 했지?”
“글쎄요.”
성민아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답했다.
“걔는 올지 안 올지 모르겠어요. 과에서 일이 좀 있었거든요.”
“일?”
“성격이 나쁜 애는 아닌 것 같은데, 말하기 조금 껄끄러운 일이 있었어요.”
성민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가 기타 칠 줄 안다고 하니까, 자기도 안다면서 동아리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게 왜? 같은 과 동기 중에 취미가 맞는 사람이 있으면 좋지 않아?”
조은솔이 의아한 목소리로 묻자, 성민아는 찌뿌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게요. 이야기를 조금 나눠 봤는데 코드도 제대로 모르더라고요.”
“치는 척만 하는 건가?”
“……아마도요.”
성민아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녀는 어쿠스틱 기타를 상당히 잘 치는 축이었다. 올해 신입 중에서는 가히 최고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
더욱이 외모도 빼어나지 않은가.
이 모든 단서가 한 가지 정황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자 목적으로 온 사람이겠네.’
한순간에 놀라우리만치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한 은솔은 결심했다.
‘어중간한 실력이라면 그냥 안 받고 만다.’
김한영이 모르는 사이에 입부 허들이 대폭 올라갔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