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내 죽음.
그러니까 김한석의 죽음은 엄밀히 말해, 사고사로 알려져 있다.
교통사고라던지 뺑소니라던지 그런 것.
사유가 어느 정도 베일에 가려져 있는 걸 넘어, 막상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말이다.
증거 따위.
이미 수십 년 동안 지지부진했으니 그사이 다 지웠겠지.
설령 증거가 있다고 해도 문제였다.
‘살인의 공소시효는 15년이라.’
2007년에 한 차례 형사소송법을 개정해서 공소시효를 늘렸지만, 그전에 일어난 범죄에 관해서는 소급 적용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2015년에도 개정됐다고 했다.
하지만 2015년 7월 31일 시점에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에 관해서는 이미 끝이라는 것도 알았다.
즉, 뒤늦게 증거를 발견한들 처벌하기란 불가능했다.
김한석의 죽음은 완전히 무덤 속에 묻혔다.
‘찝찝한 결말이네.’
죽은 당사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세계가 그렇다고 말했다.
결론이 무엇이냐.
‘살인마를 밝히더라도 내가 뭘 어떻게 하긴 불가능하다는 거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사적 제재라도 해야 할까.
저쪽에서 날 사고사로 보내 버렸으니, 나도 함무라비 정신에 입각해 갚아 줘야 할까.
이것도 문제였다.
옛말에 남을 저주할 때는 무덤 두 개를 파라고 했다.
티끌만큼이라도 흔적을 남겼다가는 역으로 내가 당할 수도 있지 않나.
하여, 나는 결론을 냈다.
고민해서 답이 나올 일이 아니라면, 애초에 고민하지 말자고.
어차피 고민한들 스트레스를 받을 일, 스트레스라도 받지 말자고.
‘라고 생각했는데.’
눈앞의 임선우가 밥을 우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잘도 먹는다.”
“……아.”
말 한마디에 그가 움찔 떨며 젓가락을 멈추기에 나는 숟가락을 마저 놀리며 말했다.
“눈치 주려는 거 아니니까 먹어.”
“응.”
그는 다시금 김치찜을 향해 젓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입맛에 맞는 모양이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슬쩍 물었다.
“김한석 그거는 자발적으로 밝히겠다고?”
“그게.”
“야, 김한영 이 미친놈아.”
홍윤서가 내 등을 짝 치더니 말했다.
“눈치 주려는 거 아니라며.”
“아니, 피해자한테 왜 그래요. 가뜩이나 서러워 죽겠는데.”
“뭐가 그렇게 서러운데?”
“선우 좀 보세요. 김치찜에서 돼지고기만 쏙쏙 집어 먹고 있잖아.”
“……진짜네?”
홍윤서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려니 고희범도 가세했다.
“저건 선 넘었지.”
그렇게 팅 식구들끼리 밥을 먹다 보면 늘 그렇듯,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드리프트를 꺾어 헛소리로 빠져나가려는 찰나였다.
“내가 책임지고 다 말할 거야.”
임선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아버지한테는 말해 뒀어. 일이 다 마무리됐는데도 만약에 끝까지 안 밝히거든, 내가 다 밝히겠다고.”
그 목소리에서는 어떤 신념마저 느껴졌다.
차마 수치스럽지만, 그게 도리이니 어떻게든 마무리를 보겠다는 그 굳은 신념까지.
“못 믿겠다면 증거를 다 남겨서 다 넘겨줄 수도 있고. 아니다. 이따가 가서 다 보내 줄게. 내가 지금 말하는 거 녹음해도 되고. 아니면 방송을 켜 주면, 지금 당장이라도 증언해 줄 수 있고.”
마음은 알았다.
하지만 굳이 당장 그럴 필요는 없을 듯했다.
YTG의 몰락은 이미 반쯤 결정된 일이고, 그 말인즉슨 임대경이 평생 쌓은 유산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는 걸 의미했다.
음악인으로서의 임대경.
그는 이미 죽었다.
‘음악적으로는 잘한 친구였는데.’
열정에 너무 불타오르기는 했다. 그 불길이 오히려 자기 자신을 잡아먹은 건가.
결국에는 시간문제였다.
나는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말했다.
“그럼 좋고. 지금 녹음기…….”
“와, 김한영 이 돌은 자 거절은 안 하네.”
짝!
홍윤서가 다시금 내 등짝을 쳤다.
“아니, 또 왜 때려요.”
“거절할 타이밍이었잖아.”
“본인이 해 주겠다잖아요. 왜 거절을 해.”
“전 오히려 부담을 덜어 주려고 그랬던 건데.”
“잘났다.”
이번에는 헛소리로 빠져나간 말이 본론으로 돌아올 일이 없었다.
애써 화제를 피하는 건지 뭔지, 길이길이 헛소리를 떠났다. 평소 팅에서 밥을 먹다 보면 그러했던 것처럼.
하지만.
“참.”
감정이 복잡할 때 반드시 말로 대화를 나눠야 할 필요는 없는 법이다.
가끔은 그런 게 있다.
직접 의견을 나누는 것보다, 한 바퀴 돌아가는 게 더 통할 때가.
“기타?”
“네, 갑자기 생각나서.”
밥을 먹고 있으려니 멜로디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대신 구석에 고스란히 놓여 있던 기타 한 대를 손에 쥐었다.
중경대 대학로 첫 버스킹 이래, 여태껏 쭉 가지고 있었던 그것이었다.
‘어디 보자.’
복잡할 때면 괜히 이런 게 당긴다.
팅――
단순 명쾌한 스트로크 한 번에 마음속 근심이 씻겨 나가는 게 느껴졌다.
타다당――
살짝 복잡한 코드를 연속으로 짚어 보자, 이번에는 머릿속이 고민으로 가득 찼다.
실시간으로 작곡을 하다 보면 멜로디가 너무나도 복잡해, 다음으로 어떤 음을 짚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순간이 왔다.
그럴 때면.
드르륵.
슬쩍, 자세가 불편해 의자 한 번 고쳐 앉는 척하며 머릿속을 환기하면 그만이다.
‘아, 이렇게 해 봐야겠다.’
불과 몇 초 사이에 길이 보였다.
리듬 자체를 바꿔 보자.
슬로우락이었다.
창―창창――창―창창――
너무나도 쉽고 간단한 나머지, 초심자가 아무렇게나 후리는 게 아닌가 의심마저 생기는 그 리듬.
70~8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던 그 리듬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이어 나가는 와중이었다.
“…….”
“…….”
머뭇거리는 눈길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임선우의 시선이었다.
‘왜 또 저러지? 뭐 마려운 개처럼.’
오늘 종일 머뭇거리기는 했지.
하지만 저 눈빛은 지금까지의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뭐라고 해야 할까.
“아.”
나는 떠오른 직감에, 벽에 걸려 있는 기타 한 대를 집어 와서는 임선우에게 던졌다.
“……!”
“세션이 없네. 아, 아쉽다. 세션이 없어. 같이 칠 사람이 필요한데. 어쩔 수가 없네. 아이고, 이걸 나 혼자서 어떻게 하냐. 아이고, 서러워.”
그렇게 중얼거리기를 잠시.
눈앞에서 소소한 멜로디가 조금씩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임선우의 손에서 시작된 소리였다.
애벌레처럼 꼬물거리던 그 소리가 점차 근사하게 자라나, 나비의 날갯짓처럼 기세를 잡았다.
‘진즉 이럴 것이지.’
임선우가 메이저에 데뷔한 이래, 도통 찾아볼 수 없었던 멜로디였다.
그가 평소 연주했던 곡은 임대경을 닮았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 그의 취향이었을까.
이건 나로서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다소 고민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오히려 이게 더 산뜻하네.’
더 세련됐다.
굳이 레트로에 집착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완성도가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멜로디를 한쪽 귀에 담으며 스트로크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몇 초.
그리고 또 몇 초.
이제는 임선우라는 사람에게서도 신경을 끄고, 대충 손이 가는 대로 연주를 하기를 잠시.
턱.
본능적으로 연주의 끝을 맞이하고 기타를 내려놓은 순간이었다.
“역시, 네가 나보다 더 낫네.”
임선우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전에는 몰랐는데, 다시 해 보니까 알겠다.”
“내가 더 낫기는 낫지.”
“응, 그렇네. 예전에는 봐줬던 건가?”
“아니.”
“빨리 늘었네.”
“그때는 손가락에 굳은살도 덜 잡혔던 때라.”
“천재네.”
“내가 조금.”
지나치게 당연한 말이었다.
굳이 나눌 필요가 있었나 싶은 그런 대화.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공간의 분위기가, 대화를 나누기 전후로 명백히 달라졌다는 것.
“실력 좀 늘려야겠다.”
나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이번 일은 더는 언급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옛날에 했던 약속 기억하지?”
“약속?”
“너 데뷔하기 전에, 다 같이 버스킹 뛰고 말했잖아.”
“아.”
임선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답했다.
“언젠가 다 자리 잡히면 네가 곡 하나 줄 테니까, 같이 듀엣으로 음원 하나 내자고 했던 그거.”
잘 기억하네.
바쁜 와중에도 잊지 않았나 보다.
나는 다시 기타를 벽에 걸어 놓으며 말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내자.”
과거의 작은 부스러기 하나가 음율에 실려 저 개울 아래로 내려갔다.
그와 함께, 내 안에 얹혀 있던 부담감의 정체도 깨달을 수 있었다.
임대경의 자식 임선우.
그리고 팅의 임선우를 구분해 볼 생각이다.
‘당장은 잘 안 되겠지만, 천천히.’
그게 내가 10년 뒤 추구하는 모습일 테니까.
* * *
한 달의 시간이 추가로 흘렀다.
그사이, 이 세상에는 몇 가지 변화가 찾아온 한편,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김한영 – 미발표곡 (#1)]먼저 내 신곡은 2달 가까이 변함없이 차트 1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YTG 소속 그룹 전체가 활동 중단] [쇄신하겠다 밝혀]YTG는 소속 연예인들의 계약 해지 관련하여 바쁜 눈치였다.
검찰의 공격뿐만 아니라, 온 사방에서 걸려 오는 광고 소송 처분으로도 곤란한 눈치.
임대경, 권종욱 두 사람을 포함해 얽힌 몇몇 사람은 검찰의 기소를 받았다.
[YTG, 멸망의 기로에 서다] [임선우,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출국한 정황 포착] [잠잠해질 때까지 도피하는 건가?]대강 마무리가 되었다 싶다.
한편, 팅에서는 몇 가지 변화 하나가 나타났다.
“너 자퇴 언제 하나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내 자퇴였다.
남들 수업 들을 시간에 작업실에 와서 홀가분한 심정으로 기타를 챙강챙강 치고 있는 참이었는데, 조은솔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학교 안 가서 좋겠네?”
“좋죠. 그런데 누나는 이 시간에 왜 학교에 안 계시고.”
“몰랐구나? 내 연구 과제가 너인 거.”
“지금 고백하시는 거예요?”
“……우리 한영이, 돌았니? 되게 능글능글해졌다.”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농담이야. 아니다. 넌 진짜로 연구 과제로도 쓸 수 있겠다는 게 문제네.”
“제가 조금 특별하기는 하죠.”
“그래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언제는 학교 끝까지 다니겠다고 했잖아. 이렇게 관둬 버리기 있어?”
그녀의 말대로였다.
엄밀히 따지자면 자퇴는 아니고, 휴학.
오늘 아침, 나는 학교 과 사무실에 방문해 정식으로 휴학을 신청했다.
그뿐이었다.
“필요하면 해야죠.”
“후회는 안 하고?”
“얻을 건 충분히 얻은 것 같아서요.”
나는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답했다.
“인간관계나 학교 경험 같은 거. 그리고 동아리 생활.”
“나중에 10년 지나서 졸업 안 한 거 아쉬울 수도 있어.”
“그럼 그때 돌아오면 그만이죠. 석유 학번으로.”
“그때 학번 애들이 놀아 줄 것 같아?”
“지들이 저랑 안 놀아 주면 어쩔 건데요.”
“그건…… 그렇기는 하지.”
조은솔은 뭐라고 반박하려다가 말문이 막혔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걔들이랑 안 놀면 그만이긴 하지.”
“그렇죠?”
솔직히 말하자면 학교를 더 다니기 어려워진 게 맞았다.
원래 그간 쌓인 인기 탓에 학교에 다니려면 정신이 없었는데, YTG 사건 이후로 더더욱 사람 수가 늘었다.
수업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내가 동물원 우리 속 영장류도 아니고.’
그래도 조은솔은 워낙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던 사람인 탓일까, 못내 아쉽다는 듯 물었다.
“한영이 너, 자퇴한다고 말하면 막 총장이 와서 막는 거 아냐?”
“어떻게 아셨어요?”
“……진짜?”
“네, 사무실 찾아와서 난리던데요. 혹시 누가 못살게 괴롭혔냐고. 아니면 학점 따기 어려워서 그렇냐고.”
내게 음악 활동에 문제가 있냐느니 불편한 게 있다면 전부 지원해 주겠느니 난리였다.
하지만 저쪽에서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뿐이었다.
“장학금은 기본에 그냥 출석만 해도 졸업까지는 어떻게든 시켜 줄 기세더라고요. 유학이나 해외 행사 관련해서도 추천 필요하면 전부 해 주겠다나.”
“기껏 챙겨 준다는데 받지.”
“특혜받으면서 다니기 싫어요. 그런 건 받아야 할 애들이 받아야죠. 누나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들.”
“아부해도 이미 늦었거든요.”
“농담 아니에요.”
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게다가 캠퍼스 안을 걸으려면 언제나 시선 수백 개가 쳐다보는 기분인데 남들처럼 학교생활을 어떻게 해요. 그리고 또.”
“그리고 또?”
조은솔의 이제 따지기를 포기했다는 표정에 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이제 해외 일정도 자주 잡힐 텐데, 학교생활 하면서 다니기는 어렵잖아요.”
그렇다.
해외 일정이 문제였다.
“해외에서도 공연해 달라는 말이 워낙 많았잖아요. 앨범 작업 이야기도 많이 올라오고. 당장 레베카 로드리게즈랑 한 약속도 있고.”
“흠, 해외 나가면 당분간은 한국 들어오기 어렵겠네?”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아쉽다는 듯한 감정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하지만 할 일은 할 일이기에 말을 이었다.
“그렇게 오래는 안 걸릴 거예요. 일만 마치고 나면 후딱 돌아올 거라. 아무리 길어도 1달도 안 걸리겠네. 잠깐 휴가받았거니 생각해 주세요.”
“방송은 쉬게?”
“저 혼자 하는 방송이 아니잖아요. 몸은 떨어져 있어도, 미국에서도 방송할 거예요. 합방하면 되죠.”
해외 출장이 말이 출장이지, 잠깐, 아주 잠깐만 미국 다녀올 일정이었다.
기러기 아빠 되기에는 아직 한참 어리지 않나.
나는 기지개를 켜며 입을 열었다.
“빌보드 맛만 보고 금방 다시 올게요.”
과거는 털어 냈다.
이제, 조금만 더 미래로 가 보자.
참 그리고.
‘다시 돌아올 때, 식구들한테 선물 하나는 가져다줘야지.’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