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도라 마그리트 쇼에 대해 들었을 무렵, 레베카에게서 계속해서 했던 말이 있었다.
[도라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냐면요. 아니지, 어떤 음악이 무난하냐면요.]그의 방송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뭘 하면 그에게 덜 까일 수 있고, 방송 화면에 멋지게 비칠 수 있는가 하는 것들.
연예계에 데뷔하거든 으레 받고는 하는 통신매체 교육 같은 거였다.
카메라 앞에서 코를 파면 안 되고.
나이 있는 선배님한테 편하게 대하면 안 되고.
화를 낼 상황이어도 화를 안 내는 게 좋고.
신인이 카메라에서 분량 몇 초라도 더 챙기려면, 리액션은 과하면 과할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하는 것들.
[우선 한영 씨 발음이 나쁘지는 않아요.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셨네요? 하지만 말 수는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조금만 실수하면 그거 밈 되거든요.]그렇게 교육이 한참이나 이어지던 중, 레베카가 유독 강조했던 게 있었다.
[일단 곡을 연주하게 된다면 포크는 무조건 피하세요.]포크를 피하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유독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강조했다.
[왜요?] [도라는 자기 음악에 자부심이 엄청나거든요. 쇼에 누가 나오든 우선 짓밟히고 보지만, 포크는 그중에서도 좀 심해요. 거의 도라의 장난감으로 전락하죠.]평소 남들 까이던 음악을 하면서 반전을 보여 준다면 어떨까.
한층 대비 효과가 크겠지.
하지만 그런 이론적인 건 부수적인 거다.
내 진심을 말하자면, 그따위 것 아무래도 좋았다.
‘평론가가 무섭다고 좋아하는 장르에서 도망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
애초에 음악성으로 비판을 당한다는 건, 비판받을 구석이 있어서 당하는 거 아니겠나.
도라가 정 나를 까고 싶어서 억지를 부린다면 어쩔 수 없겠지.
깔 거면 까라.
안 말린다.
하지만 내가 아는 도라 마그리트는 방송인이기 전에 뮤지션이었다.
최소한의 자존심이 있다면 그는 내 음악을 무시할 수 없으리라.
왜냐.
‘옛날에 내한 때 자기 손으로 인정했잖아.’
그와 나는 마주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서울에서.
“It’s better then buttered fingers. I’ve been lived from hand to mouse since you cracked my heart.”
그래.
그 시절 네가 칭찬했던 곡이다.
깐깐했던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는 네가.
네 입으로 칭찬했단 말이다.
“I’ll change for you. so pay attention. or perhaps I’ll just fly away.”
그때도 정확하게 이 감성으로, 이 스타일로 연주했지.
빈말로 칭찬했던 게 아니라면 이번에도 인정하겠지.
네가 인정했던 그 실력이니까.
아니, 순수하게 실력만 따지자면 지금의 나는 오히려 그 시절보다 훨씬 더 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손가락이 길어지니까 확실히 편해.’
손가락 길이 문제였다.
예전의 나는 전형적인 손가락이 짧은 뮤지션이었다.
서양인 특유의 기다란 손가락을 살린 곡을 연주하는 데 큰 고생을 겪었지.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손가락 자체가 길어졌고, 그 덕분에 서양의 장신 기타리스트들이 얼마나 편하게 현을 짚는지 알게 되었다.
“Please use a G major chord. I’ll play solo that ready-made for you. The melody that bloomed because of you. It fits us perfectly.”
발성 또한 마찬가지.
옛 20세기의 한국 가수들은 발성의 보급이 늦어 흉성 위주로 노래를 불렀고, 차차 두성과의 조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 둘의 조합은.
“Our love, bloom, bloom, bloom.”
이미 다른 차원에 있었다.
“…….”
“…….”
가볍게 1절을 마쳤을 무렵.
나는 더 곡을 연주하기보다는, 기타를 가볍게 내려놓고 도라 마그리트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앉아만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걸 듣거든 그가 뭐라고 반응할까 궁금했던 참이기 때문.
‘자, 까든 칭찬하든 하나는 해 봐라.’
마냥 기다리는 와중이었다.
도라 마그리트의 안면 근육이 꿈틀거리더니,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말은 없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어렴풋이 짐작했을 때쯤이었다.
“알겠습니다.”
도라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당신은 카피캣이군요.”
* * *
“…….”
순간적으로 눈앞이 반짝할 만큼 아찔한 현기증이 돌았다.
지금 뭐라는 건가.
‘나한테 카피캣이라고 한 거 맞나? 남의 거 베꼈다고?’
영 말이 혼미했다.
카피캣이 어디에 있나.
뭐라 대답하면 좋을지 감이 안 와서 눈을 깜빡거리는데, 도라가 코웃음을 치더니 말을 이었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저도 옛날에는 한국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실력 있는 뮤지션을 만났죠.”
어쩐지, 그 뮤지션의 이름이 뭔가 알 것도 같다는 짐작이 든 순간이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바로, 김한석입니다.”
“…….”
맞네.
맞았네.
나 맞았네.
차마 화를 내지도 못하겠다. 그냥 눈가를 씰룩거리는데 도라가 말을 이었다.
“마침 그 사람이 제 곡을 부른 적이 있었죠. 지금, 당신이 부른 그 곡입니다. 아마도 알고 고른 거겠지요?”
응, 알고 불렀지.
당연히 아니까 이 곡으로 골랐지.
네가 이 노래 듣고 칭찬했으니까, 이걸로 부르면 인정하겠더니 해서 골랐지.
하지만 도라는 나를 인정할 생각이 개미 더듬이만큼도 없는 듯했다.
“다른 사람의 스타일을 카피해서 음악을 하는 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 시청자 여러분들도 모두 알겠지만, 뮤지션에게는 오리지널이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의 고유한 것을 못 내놓는 아티스트란 단지 기술자(Technician)에 불과하죠.”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다.
아티스트라면 모방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그 위에 무엇이 되었든 자기 나름대로 재창조를 곁들여야 하지.
나 또한 전적으로 인정할뿐더러, 종종 말하기도 했다.
아니, 저거 애초에 내 말버릇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찰나였다.
“제 옛날 지인이 했던 말입니다. 그 친구의 이름이 김한석이었죠.”
“…….”
다시 내 이름이 튀어나왔다.
‘기억력이 꽤 좋구나.’
아무래도 내게 관심을 꽤 가지다 못해, 아주 거창하게 가진 모양이었다.
표정 봐라.
설마 이건 몰랐겠지라는 얼굴인데, 아주 의기양양했다.
정곡을 찌른 형사의 그 얼굴이었다.
도라 마그리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말을 이었다.
“제 나름대로 알아봤는데, 김한영, 당신은 김한석을 좋아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고 하지요?”
“뭐, 그렇죠.”
“감히 제가 조언 한마디 하겠습니다.”
그가 목을 다시더니 말했다.
“진짜 뮤지션이 되고 싶다면 레퍼런스를 좋게 다듬는 정도에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넘어서려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응, 매일 넘어서고 있다.
하루하루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김한석의 음악은 달랐습니다. 그 시절의 한국인 뮤지션이라면 대개 미국의 음악을 베낀 수준에 불과했지만, 김한석을 포함해 극히 일부는 나름대로 자기만의 영역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의 입에서 훈계인지 칭찬인지 모를 일장 연설이 이어졌다.
그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내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나를 정말 좋아했구나.’
막상 나는 그에 대해 별다른 기억조차도 없었는데.
같이 공연하고 밥이나 같이 먹은 사이. 딱 그 정도였지. 실력에 비해 안 풀린다는 생각도 살짝 했고.
‘설마 30년이 넘게 나를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
문득, 그가 대기실에서 내게 유독 냉랭하게 굴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뮤지션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카피만 할 뿐 그 이상의 무언가가 없어 보인다면 화가 나겠지.’
리스너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왜, 김한석 시절의 내 음악을 따라 한다면서 그냥 내 음악을 복사 붙여넣기만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런 놈이 있다면, 내가 생각해도 기분 좀 나쁘겠네.’
생각해 보니까 그게 나다.
도라와 나는 친구였다.
우리는 친구, 친구.
“후우.”
어쩌겠나.
여기에서 정체를 밝힐 수도 있고.
애초에 밝힌다고 한들 뭐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한윤태는 그렇다 쳐도, 김진산 사장은 그 이후로도 연락 잘 안 하는데.
이제 그런 거는 좀 안 하기로 결심했다.
해서,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조금 전 그 곡은 김한석에 대한 트리뷰트였습니다. 지금 호스트님의 말씀은 전부 제 의도한 그대로죠.”
그 말에 도라 마그리트가 눈썹을 슬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럼 진짜 실력은 따로 있다?”
“물론이죠.”
“흠? 못 믿겠는데.”
“지금 기회만 준다면 바로 증명해 보일 수 있는데.”
기타를 다시 꺼내 현을 살살 긁으려니, 도라가 턱을 빳빳하게 세우며 말했다.
“안 될 건 없죠. 우리 방송은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요.”
“감사…….”
“하지만 그만큼 더 각오해야 할 겁니다. 제 귀는 꽤 정확하니까요.”
그래, 날카롭기는 하다.
30년 전에 불렀던 노래를 여지껏 기억하고 있을 정도이니 어지간하네.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자, 방청객들이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문득, 저 사람들이 이 방송을 보는 이유를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나라도 숙소 돌아가면 도라 쇼 에피소드 정주행할 것 같으니까.
‘뭐, 됐고.’
나는 다시 기타 줄 위로 손을 얹었다.
그리고.
불과 2분 뒤.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지요. 어설프지만 조금 더 낫군요.”
나는 비로소 도라의 인정 아닌 인정을 받아 낼 수 있었다.
……라고 생각한 찰나였다.
“하지만 고칠 점이 많습니다. 김한석의 장점은 피킹의 깊이였는데, 한영, 당신은 복잡한 연주에 심취해 연주 그 자체의 의미를 잊고 있어요. 김한석의 스타일을 배웠다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순간적으로 혈압이 치솟았다.
저거 봐라.
언제는 오리지널 카피캣 운운하더니, 이제 카피캣 제대로 안 했다고 까네.
진짜 미친놈인가.
아, 저 반짝거리는 이마 한 대만 찰싹 쳐 보고 싶다.
“그리고 또 김한석은.”
오늘은 아주 저걸로 방향 잡았구나.
* * *
미국 인터넷 게시판에 한 스레드(연속 게시글)가 올라왔다.
[1. 오늘 도라쇼 본 사람?] [2. 재밌더라]도라 마그리트 쇼 이야기였다.
특히 김한영이 등장한 에피소드에 관한 이야기.
[3. 그 한국인 나옴. 지난번에 한영 아카데미 나왔던 사람] [4. 나와서 곡 치는데, 그게 사실 카피였나 보더라. 듣기는 진짜 좋았는데.] [5. 아 그거 도라가 되게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보면서 깜짝 놀랐음. 그 사람이 원래 말을 그렇게까지 험하게 하는 사람이 아닌데.] [6. 진짜 도라 막말이 원래 유명한데도 그건 좀 무섭더라] [7. 자기 놀렸다면서 총 꺼내는 거 아닌가 싶었다] [8. 쉿 그거 인종차별이야]김한영이 도라쇼에 출연해서는 멋진 연주를 선보였다.
누가 듣더라도 실력으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연주를.
포크송의 본토라고 할 수 있을, 미국의 뮤지션들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는 그런 솜씨였다.
사실 그게 카피였다는 의혹이 있긴 했지만.
[15. 나는 김한영 자기 오리지널도 좋았음]이내 멋지게 극복해 보였다.
트리뷰트라면 원곡 아티스트의 느낌을 살린다고 한들 문제 될 게 없지 아니하겠는가.
[21. 방송 보니까 레베카 로드리게즈가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더라.] [22. 지금도 SNS에서 김한영 이야기하고 있네] [23. 꾸준하다]그렇게 김한영의 첫 미국 방송계 데뷔는 좋은 반응과 함께 끝났다.
그 성격 더러운 도라 마그리트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말과 함께.
[37. 곡은 낸대?] [38. 미국에서 만들고 낸다던데?]그렇게 화제성이 깊어지는 한편, 김한영의 이야기는.
[저 사람 진짜 무례하네 ㄹㅇ] [당신은 내게 무례하게 대했잖아요] [김한영 저 샛기 어떻게 지구 반대편 가서도 똑같이 기만질하누] [제정신이 아니다] [기만질 시도하다가 실패하니까 사실 트리뷰트였다 ㅇㅈㄹ] [사실상 지구 망신이라고 봄] [미국인들아 같이 고통받자 헤헤] [계속 김한석 김한석 할 때마다 김한영 행복해하는 거 봐라. 딱밤 존나 세게 때리고 싶네]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도 일컬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끝에서는 언제나 같은 결론이 나왔다.
[109. 얼마나 좋은 신곡을 내려고?]– 다음 화에 계속 –
뭘 하든 놀림 받을 테지만, 포크는 유독 더하다는 것.
아마 자기가 그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나 또한 마찬가지다.
여러 장르를 만져 봤지만, 내 뿌리는 엄연히 포크와 맞닿아 있었다.
그렇기에 생각했다.
‘포크로 나가야겠군.’
남들이 어설프게 포크로 실력 과시하는 걸 싫어한다고 했지.
하지만 나는 어설프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