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1
21화
보컬 레슨을 받기 시작하고 3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국단대학교 기타 동아리, 트레몰로와의 교류회까지도 불과 일주일을 남긴 상황.
‘확실히 배우면 배울수록 느낌이 와.’
나는 급격한 실력 상승을 느끼며 한창 연습에 빠져 있었다.
“eleven years have passed so quickly. I feel like time is running out.”
실력이 늘어난다.
매주, 매일 벽을 하나씩 부수는 이 느낌.
‘뭐든 배우고 볼 일이야.’
내 목소리에 내가 만족감이 든다.
그 덕일까.
원래 동아리방에서는 거의 기타만 쳤지만, 이제는 노래를 부를 때도 많아졌다.
“세상은 불공평해.”
그런 나를 두고 정의선이 앓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기타만 잘 치는 줄 알았는데, 노래까지 금방 늘어? 이게 말이나 돼? 이게 인생이야? 왜 너만 이렇게 빨리 늘어?”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연습하니까.”
“너는 그 말밖에 안 하더라.”
“사실이니까.”
착!
나는 기타를 뮤트하며 말했다.
“연습하면 실력은 늘어. 무조건.”
“세상에 연습 안 하는 사람이 어딨어…… 아무리 알려주기 싫어도 그렇지.”
정의선이 길게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은근 미안하다.
하기야, 나라도 옆에 이런 속도로 발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겠지.
‘조금 불쌍하기는 하네.’
하필 비교 대상이 나라니.
객관적으로 말해서, 정의선은 아마추어치고는 싹수가 꽤 푸른 축에 속했다.
아직은 모자라다.
하지만 그의 강점은 타고난 성실함이었다.
팅에 입부하고 지난 시간, 정의선은 매일 같이 연습으로 하루를 불태웠다.
그의 노력은 정직하다.
요령을 피울 줄 모르니 당장은 답답하겠지.
하지만 이대로 천천히 시간을 쌓아가면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
‘뭐, 본인은 답답하겠지만.’
정의선은 툴툴거리면서 자기 기타를 들었다.
“으, 치사한 자식, 내가 금방 따라잡고 만다.”
이를 아득바득 가는 그의 말에 조은솔이 웃음을 터뜨렸다.
“쉽지 않을걸. 한영이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내공이 있어.”
“두고 봐요.”
이에 정의선은 지지 않겠다는 듯 손가락을 꺾으며 말했다.
“끝까지 가 보면 다를 거예요.”
이것 봐라.
날 보고 불이 붙은 모양이다.
‘그래, 이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뭐라고 해야 할까.
지금 팅의 1학년은 나름대로 지켜보는 맛이 있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까 이상하네.’
문득 한 가지 의심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야 잘하는 게 당연하다.
원래부터 잘했으니까.
하지만 성민아의 실력에는 다소 의구심이 들었다.
디링, 딩, 타다다닥, 탁.
성민아가 그녀 특유의 퍼커시브를 현란하게 연주했다.
“한영아, 민아도 참 잘치지?”
“그럭저럭요.”
거의 기타를 현악기가 아니라 타악기 다루듯 하는데, 저 실력이 평범한 인문계 대학생의 그것이 아니었다.
‘저 정도면 조금만 다듬어도 프로까지 생각해 볼 만할 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 저런 실력을 쌓았을까.
단순히 취미 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니까 저렇게 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마침 연주를 마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
“…….”
눈싸움이 시작되었다.
“…….”
“…….”
이제는 서로 마주치면 눈싸움을 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나와 그녀만 그런 게 아니라, 이 동아리 사람들 태반이 그렇게 되었다.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그렇게 눈에 붉은 기가 돌 때까지 서로 눈동자를 째려보는 참이었다.
“한영아.”
조은솔이 입을 열었다.
덕분에 집중이 깨진 나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왜요?”
“너 오늘 저녁에 시간 돼?”
“오늘요?”
이건 또 무슨 말씀이래.
시간이 있는가 없는가를 묻는다면 할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당연히 없죠.”
“너 또 저녁 내내 동아리방에 박혀서 기타만 치려고 그러지.”
“…….”
들켰다.
“공연이 코앞이잖아요.”
뭐라도 변명하려고 입술을 삐쭉 내밀려니 조은솔이 말을 이었다.
“한영아, 그러지 말고 일단 들어나 봐. 너도 좋아할 일이야.”
“무슨 일인데요?”
“지금 막 졸업한 선배님한테 연락 왔는데, 오늘 저녁에 OB 공연이 있었다고 하네.”
“오늘요?”
“너한테 그 기타 준 선배님이야.”
“아, 따거요?”
바로 기억났다.
압도적인 인성과 성품, 인의예지를 모두 갖춘 그분.
존안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려는데 조은솔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그 선배님이 그때 이후로 OB 몇 분이 뭉쳐서 공연 하나를 준비했나 봐.”
“음…… 그거 보러 가자는 건 아니죠?”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거야.”
“그게 뭔데요?”
잠시 뒤.
그녀의 입에서 꽤 재밌는 제안이 튀어나왔다.
“한 분이 야근 때문에 못 온다고, 대타가 필요하다고 하셔서.”
“아.”
감이 왔다.
우리한테 대타를 요청하려는 거구나.
‘그럼 공연을 뛸 수 있는 건가?’
안 그래도 입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다.
발성을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슬슬 김한석 시절 주로 불렀던 곡들이 소화 범주 안에 들어오고 있었는데, 이걸 무대 위에서 소화해 보고 싶었다.
“와, 이거 봐. 벌써 신났네. 그렇게 좋아?”
조은솔은 그게 웃겼는지 입꼬리를 당기더니 말했다.
“가서 한두 곡만 연주하는 건 어떨까? 선배님한테 감사 인사를 할 기회기도 하고, 또 이번에 국단대학교 교류회 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좋을 테니까 한 번 가 보면 좋을 것 같은데.”
“어디서 공연하는데요?”
“좀 본격적인 곳.”
그녀가 씨익 웃더니 말했다.
“홍대.”
홍대라.
21세기 한국 음악의 성지라고 했던가.
안 그래도 마침 한 번 가 보고 싶었던 참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알았어요.”
“그래, 그럼 지금 바로 출발…….”
“잠깐만요.”
나는 그녀에게 확답을 주기에 앞서, 정의선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잠깐만 손 좀 줘 봐.”
“왜?”
“피킹부터 다시 시작하자.”
“…… 아.”
“얼른.”
“응.”
늘 그랬다.
노력하는 사람은 언제나 호감이다.
* * *
홍대.
예로부터 한국 인디 음악계를 뒷받침해온 음악의 성지.
지금이야 90년대부터 시작된 밴드 음악의 시대가 저물고 EDM의 시대가 도래하며 한풀 꺾였다고는 하나, 그래도 옛 낭만은 어디 가지 않았다.
……라는 건 나와는 딱히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이 동네도 많이 발전했구나.’
사방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연인들이 스쳐 지나갔다.
“오빠, 저것 좀 봐.”
“맛있겠다.”
발을 내딛기가 힘들 정도의 인파가 북적거린다.
한국에서 명실상부한 음악의 성지라지.
하지만 80년대에 이곳은 그냥 주택가에 가까웠다.
간간이 미술 좀 한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지만, 음악 관련해서는 특별할 게 없었던 동네.
오히려 종로와 명동이 당시 음악의 중심지였다.
통기타 하나 들고 찾아가서 라이브 카페에 찾아가서 도전장을 내밀던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실력 있는 사람들도 많았어.’
결국에는 내가 다 이겼지만.
아무튼, 지금은 그 당시 라이브 카페 문화도 씨가 말랐다고 하니 감개무량할 따름이었다.
“여기에 라이브 카페가 있다고요?”
“응.”
내 질문에 조은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브 카페는 보통 명동 쪽에 많지 않나요? 미사리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너무 옛날이야기다.”
그녀는 깔깔 웃더니 말했다.
“그쪽은 조금 나이 있는 어르신들이 들리지. 우리 또래가 찾아가진 않아.”
“그럼 여기는요?”
“20대 중심으로 많이 오지. 요즘은 싱어송라이터 열풍이 조금 있잖아. 기타 하나 들고 공연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
“흐음.”
“커피 한잔하면서 통기타 연주 들으면 좋잖아. 아, 이것도 복고풍 유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복고풍이라.
옛날 그 시대의 분위기를 이 시대에 다시 가지고 온다는 말이었다.
‘세상은 참 신기해. 촌스럽다며 옛 시대의 잔재 정도로 치부했던 게 이제는 다시 유행을 타다니.’
음악이라는 건 돌고 도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30년이라는 세월은 내게 각별한 느낌을 주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음악적으로 한 시대를 통째로 건너뛴 느낌.
저벅저벅.
그렇게 걷기를 한참.
우리 발걸음은 어느 낯선 골목 앞에서 멈춰섰다.
“여기야.”
라이브 카페 [플러그인]
그 가게를 외부에서 바라보고 있으려니 얼굴 근육이 절로 꿈틀거렸다.
‘아니, 여기만 시대의 흐름을 피해갔나?’
그렇다.
누가 홍대가 세련된 거리로 변모했다고 생각했던가.
나다.
하지만 이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플러그인]이라는 라이브 카페는 정확하게 30년 전 감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너무 낡았는데?’
안으로 들어가서 둘러보려니 더더욱 그러했다.
‘좀 낡은 간판도 그랬는데, 벽에 걸린 기타부터 전깃줄, 레코드판까지 딱 옛날 느낌이네.’
혼자서 시대의 흐름을 피해갔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가게 주인 취향이 조금 독특하네.’
거의 수십 년 전을 연상시키는 실내에 당황하면서도 묘한 향수를 느끼고 있으려니, 조은솔은 다짜고짜 계산대로 걸어 들어가서 사장님을 불렀다.
“삼촌, 저 왔어요.”
‘삼촌?’
조금 친한 사이인가.
아니면 정말로 삼촌인가.
호기심이 드는 참인데, 곧 계산대에서 한 사람이 얼굴을 드러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돌겠네.’
한 남자가 찌뿌둥한 표정으로 계산대에서 걸어 나왔다.
“은솔이 왔어?”
“오래간만이네요.”
시대가 흘렀지만, 도저히 못 알아볼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덥수룩한 머리에 하나도 정리가 안 된 턱수염.
그리고 헐렁한 옷차림까지.
하나도 안 변했다.
마찬가지로 변하지 않았을 그 이름이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한윤태…….”
“어? 한영아, 너도 삼촌 알아?”
“……아뇨.”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고 왔거든요.”
한윤태.
30년 전, 나와 함께 라이브 카페를 굴러다녔던 사람이 눈앞에 서 있었다.
바지 위로 엉덩이를 벅벅 긁으면서.
‘손버릇 아직도 안 고쳤네. 더러운 놈.’
* * *
“그러니까.”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커피를 쪽쪽 빨며 말했다.
“20년 전에 음악을 접고 공연 사업에 투신하셨단 말씀이네요.”
“누가 음악을 접어! 그냥 분야를 바꾼 거지. 기왕이면 올라운드 플레이어라고 불러줄래?”
한윤태 사장이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쯧, 음악은 원래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한참 어린 사람을 앞에 두고도 위엄이랄 게 없다.
그런데 그게 아무리 봐도 30년 전 내가 알았던 한윤태와 티끌도 변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였다.
‘옛날 생각나네.’
한윤태는 뭐라고 해야 할까.
실력은 애매하지만, 뮤지션으로서의 마음가짐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포크송을 위시한 라이브 카페 문화가 몰락했음에도, 그는 여전히 한 몸 바쳐 30년 전의 그 문화를 지키고 있으니.
‘쉽지 않았겠지.’
어중간한 음악인이 얼마나 힘든지는 나도 잘 안다.
추억에 잠겨 있는데 한윤태가 나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친구.”
“네.”
“은솔이한테 이야기를 조금 들었는데, 네가 그렇게 기타를 잘 친다며?”
“그냥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치는 정도죠.”
“그래, 그 말 습관도 들었다.”
옆을 바라보니 조은솔이 배시시 웃었다.
‘아주 어디 가서 못하는 이야기가 없네.’
어지간힌 도리 없는 사람이다.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 참인데 한윤태 사장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들은 게 있었지.”
“들은 거요?”
“그래.”
그는 씨익 웃더니 말했다.
“네가 김한석을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그 순간이었다.
어째서인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
한윤태는 옛날의 나를 알던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알지는 못한다.
그런 그거 예전의 나를 입에 담았다. 그것도 너무나도 친근하게 언급하는 것이, 내가 예전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만 같았다.
“사실, 내가 그 김한석이랑 친구였거든.”
한윤태가 낄낄 웃었다.
그런데 그 말을 두고 조은솔은 깔깔 웃더니 말했다.
“웃겨. 삼촌이 어떻게 김한석이랑 친구예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야! 내가 걔랑 미사리에서 같이 노숙도 하고, 같이 사우나도 가고, 배도 굶고 다 했어!”
“그냥 미사리에서 같이 있기만 했던 거 아니에요?”
“아니라니까! 저기 봐 봐, 한석이가 나한테 준 거.”
그가 손으로 벽의 서랍장 케이스를 가리켰다.
그 안에는 내가 전생에 잠깐 사용했던 기타가 담겨 있었다.
“…….”
아, 저거.
몇 달 쓰다가 질려서 떠넘기듯 한윤태에게 줘 버렸지.
그걸 한윤태는 지금까지 보물처럼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조은솔은 깔깔 웃더니 말했다.
“그냥 짝퉁 아니에요? 진짜로 김한석 본인이 줬으면 자기 이름이라도 사인해서 줬겠죠.”
“야, 대학교씩이나 갔으면 생각을 해 봐라. 너는 친구한테 물건 주는데 자기 이름을 적어서 주겠냐? 어지간히 자기애에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게 맞지.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한윤태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물론 김한석은 자신감이 과해서 싸가지가 없긴 했어. 좀 많이.”
“…….”
뭐요?
“실력 좀 있다고 눈치 못 읽고 온 사방에 시비를 걸고 다니니까 여기저기서 욕먹고 다녔지. 어우,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나네.”
순간적으로 위장이 울컥했다.
이 인간아.
내가 사 준 밥이 몇 그릇인데 뱉어내.
아무튼, 그렇게 떠들고 있으려니 조은솔이 말했다.
“그런데 삼촌, 놀라지 마요.”
그녀가 내 어깨를 감싸듯 두드렸다.
“얘가 진짜 김한석이랑 스타일이 비슷하거든요. 게다가 완전 찐팬. 김한석 곡이면 다 연주할 줄 알아요.”
“그래?”
그 말에 한윤태는 나를 분석하듯 깊게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김한석은 훨씬 짜리몽땅했는데? 난쟁이처럼 키는 작은 게 성깔만 더러웠는데, 얘는 딱 봐도 인물이 좋잖아. 스타일이 완전 다른데?”
“…….”
지금 칭찬을 하려는 건지 비난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이럴 때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모르겠네.’
하기야.
이렇게 사람이 좀 실이 없어야 내가 아는 한윤태지.
오래간만에 봤으니까 봐 준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저희 공연은 언제부터 시작이에요?”
굳이 말로 할 필요 없다.
김한석 스타일이 뭔지는 무대 위에서 보여 주면 그만이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