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흔적이라는 게 있다.
음악을 하다 보면 뮤지션의 몸에 서서히 자리를 잡는 흔적.
고양이를 오래 길러 본 사람이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칠 때 자기도 모르게 윙크를 하는 것과도 같다.
본인조차도 모르는 사이에 생기는 흔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면 이렇다.
후두의 위치가 잡힌다.
평소 노래를 부를 때가 아니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안정적인 발성을 구사하게 되며 후두의 위치가 자리를 잡게 된다.
‘자기도 모르게 성대접촉이 잡히지.’
또, 기다란 물건을 잡을 때 마이크를 쥐듯 사뿐히 잡게 된다.
기타리스트라면 건초염과 손가락 끝의 굳은살.
행동을 보자면 작은 물건을 집을 때 피크 집듯 엄지와 검지 사이 90도로 쥘 때가 잦았다.
그렇다면, 가장 흔적이 진하게 남는 악기라고 하면 무엇이 있을까.
그런 바로.
“드럼 좀 쳐 보셨죠?”
드러머였다.
그들의 손은 솔직했다.
세상의 그 어떤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보다도 솔직하게 손바닥에 나타났다.
지금, 에밀리 맥튼의 손 또한 그러했다.
“많이 쳐 봤나 보네요. 적어도 몇 년 이상 꾸준히.”
“…….”
“당장 얼마 전까지도 쳤죠? 아니지, 어제라도 쳤을 것 같네요.”
그림처럼 길게 뻗은 손가락.
그 관절의 구석구석까지 흉터와 굳은살이 촘촘히 박여 있었다.
상처다.
드럼 스틱을 휘두르며 찢기고 밀린 살가죽들이 그대로 죽으며 굳은 것이었다.
청소년의 연약한 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니다.
연약한 손이기에 더 쉽게 다친 거겠지.
그 적나라한 흔적에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고야 말았다.
‘드러머들은 아무리 연주가 숙달돼도 손에 상처가 안 사라지지.’
콘서트를 마친 드러머들의 손을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의 손은 숭고하다.
원심력이 쏠려 손가락이 붉게 달아오르는가 하면, 살갗이 찢어져 피가 흐르기도 한다. 심하면 핏방울이 산탄처럼 튀겨 드럼이 핏빛으로 물들 때마저 잦았다.
하나같이 본 순간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그렇다.
이 모든 고통.
드러머란 고통을 불태워 좋은 소리로 승화시키는 구도자들이었다.
“엄청나게 노력했네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정도였다.
에밀리 맥튼은 언제 손을 내밀기를 꺼렸냐는 듯, 지금은 그저 가만히만 서 있었다.
한편, 그건 그녀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에밀리…….”
올리버 맥튼이 차마 충격을 못 감추고 짧게 그녀의 이름을 읊조렸다.
아무래도 그 또한 몰랐던 모양이다.
이래서 부모와 자식 간에 소통 단절이 위험하다.
‘두 사람 관계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평범하지는 않았겠네.’
남이 봐도 저만큼 노력했다는 걸 단번에 눈치챌 정도인데, 부모마저 모른다면 오죽하겠는가.
어쩌면 부모라서 더 모를 수도 있겠지.
됐다.
음악으로 극복할 수 있다면 그만이다.
“그러고 보니까 변수가 좀 필요할 것 같기는 한데, 리얼 드럼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데, 흠, 세션을 데려오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겠죠? 잠깐 샘플이라도 따게 누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레베카에게 물었다.
“드럼 칠 줄 알아요?”
“캐스터네츠도 못 치는데요?”
“그럼 올리버 씨.”
“…….”
올리버 맥튼이 잠시 아무런 말도 없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칠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기억하기로, 올리버 맥튼이 다룰 줄 모르는 악기는 드물었다.
드럼도 전문 세션급은 아니지만, 기본기는 통달했지.
하지만 그는 그저.
“…….”
말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정답이었다.
“그렇다고 하시니까.”
나는 그의 뒤를 이어 마지막으로 에밀리 맥튼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손 정도는 보태 줄 수 있죠?”
잠시 뒤.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힘찬 목소리로 답했다.
“네!”
* * *
[싱어송라이터 김한영]미튜브에서 구독자 수 200만을 돌파한 유명 채널.
이미 230만이라는 구독자 수도 대단하지만, 실제 위력을 따지면 500만 채널에 비견되거나 그 이상이라는 게 정론이었다.
[김한영은 어떻게 미튜브 시대의 개국을 알렸나] [1인 방송국, 지상파를 넘어서다] [소꿉놀이? 아니, 신세대의 기획사!]그들은 존재 그 자체로 이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기존 기획사 문화가 미튜브 중심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흐름의 상징.
그런데 얼마 전, 이 채널에 모처럼 공지 하나가 올라왔다.
[제목: 잠깐 미국 다녀옵니다.] [김한영입니다.일 좀 보러 미국 다녀오겠습니다.
짧으면 일주일인데 길면 한 달 넘을 수도 있고 그렇네요.
그동안 행복한 시간 보내고 계세요.
선물 가져올게요.
하지만 쉬는 건 저뿐입니다. 채널은 멈추지 않으니 계속 사랑해 주세요.]
김한영 채널의 실질적 주인, 김한영이 해외에 다녀온다는 말이었다.
[??????] [????????] [갑자기 쉬러 간다고?] [우리는 일하는데?] [아니 한 번쯤 쉴 것 같기는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물론, 김한영 채널이 그 하나로 돌아가는 건 아니다.
팅 식구들이 있으니만큼 어떻게든 컨텐츠가 올라오긴 올라왔다.
정확히는 다른 식구들의 컨텐츠가.
[고가놈의 탑신병자 공략 3분 요약] [윤서단에게 밝힙니다. 나 여자친구 생겼다.] [은솔쌤이 알려 주는 핑거스타일 원데이 클래스 1/12]영상 자체만 보면 좋다.
어떻게든 김한영의 공백을 메우겠다는 듯, 순수 퀄리티만 봐도 여타 채널을 압도하는 수준으로 좋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 [홍윤서 미친놈아 2D 좀 그만 빨라고!!!] [???? 서폿으로 탑을 간다고?] [은솔이 음악 잘하는 건 알았지만 가르쳐 주는 것도 잘하네 ㄷㄷ]시청자들의 반응도 충분하다.
호의적이라면 호의적이지, 그에 못 하지는 않은 수준.
그간 팅의 식구들이 김한영 주위에 서 있기만 한 병풍이 아니었다는 것 정도는 증명했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조회 수가 생각보다 안 나오네. 반응도 약하고, 화제도 안 되고.’
아무래도 김한영의 공백이 아예 없을 수는 없었다.
“한영이 나오던 영상 조회 수의 10분의 1도 안 나온다…… 걔 이름값이 진짜 크긴 컸나 봐.”
조은솔이 짧게 한숨을 토해 냈다.
이어서 고희범도.
“그렇네요. 우, 진짜 열심히 방송하는데 왜 반응이 다 이렇게 쌀쌀맞냐.”
“너도 그래?”
“보세요. 게임 생중계하는데 제가 고르는 픽마다 밴 날리는데요?”
“……희범아, 그건 자업자득 아닐까?”
어찌 됐든 달라질 바는 없다.
반응이 약했다.
“후우.”
“후.”
“힘 빠진다.”
“이것도 잘 나온 거기는 한데, 맞는데.”
팅 식구 중 누가 방송을 하든 화력이 안 나왔다.
그나마 고희범, 조은솔, 홍윤서, 성민아 같은 인기 멤버라면 낫다.
정의선이나 김예담, 한여름같이 존재감이 약한 경우에는, 아예 조회 수가 10만도 안 나오는 경우마저 존재했다.
어느 시점부터였을까.
팅 식구들은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한영이한테 너무 업혀 갔구나.’
김한영에게 일방적으로 의지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방송을 꾸려나가는 데 있어서 지분의 90% 이상이 그의 공일 정도로.
왜 그동안은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이유라면 알 것도 같았다.
‘한영이가 은근 잘난 척은 하면서도 티는 안 냈어.’
김한영이 무의식중에 그들을 배려했기 때문이었다.
살짝 재수 없을 만큼 실력을 과시하되, 그들의 가치를 내려친 적은 없었다.
인간의 급을 나누지도 않았다.
남을 낮추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무한한 올려치기를 시전했을 뿐이었다.
‘재수 없게.’
‘한영이 보고 싶네.’
‘……김한영이 진짜 잘하기는 했어.’
‘그 형이 괴물이지.’
아이러니하게도, 김한영이 옆에 있을 때는 느낄 일이 없었던 것이 그가 홀로 미국으로 떠나자 적나라하게 와 닿아 버렸다.
바로 조회 수라는 형태로 말이다.
하물며 이 부분을 대놓고 꼬집는 시청자들도 있었고.
[노잼] [가서 놀아라] [솔직히 김한영 채널은 원래 김한영 원툴 아님?] [팅 다른 멤버들 필요 없다고 본다] [ㅈㄹㄴ] [티키타카할 사람이 있으니까 방송도 재밌는 거지. 김한영만 혼자 방송하면 볼 것 같음?] [난 본다] [임선우 나와서 공개 사죄쇼 한번 하면 보지 아 ㅋㅋㅋㅋ] [진짜 추하네] [희범이 편집 없으면 김한영 방송도 그런 재미 안 나옴] [그럼 희범이만 빼고 다 자르던가 ㅋㅋ]시청자들은 냉정하다.
모니터 건너편에 있을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마음속 날것을 여과 없이 쏟아 냈다.
이쯤 되었다.
팅 식구들의 고민은 점차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더 잘해야겠다.”
기량을 늘리자는 것.
김한영과 대등하지는 않더라도, 그에게 업혀 가는 구색은 아닐 정도로 노력해 보자는 것이었다.
조은솔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힘 빠져 있을 게 뭐야. 한영이 처음 방송했을 때는 시청자 30명도 안 됐다면서. 지금 우리가 방송 켜도 몇천 명은 들어오잖아.”
“그건 맞죠. 조회 수도 어지간하면 10만 이상 뽑히고.”
“남 탓할 게 없어. 그냥 우리가 여태껏 너무 날로 먹었던 거지.”
평소 얌전하던 조은솔이었다.
그녀가 다른 식구들의 몫마저 열정을 불태우듯 말했다.
“당분간은 우리 채널을 키워 보자.”
“우리 채널이요?”
그 말에 고희범이 놀라서는 말했다.
“서브 채널 같은 거 말씀하시는 건가?”
서브 채널.
본 계정과는 별개로, 본 계정 소속으로 활동하는 별도 채널을 의미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싱어송라이터 김한영]을 본체로 그 산하에. [빡겜 고희범] [조은솔의 기타 교실] [윤서월드]등의 채널을 각각 서브 채널로 개설하는 것.
어떻게 보면 기업문화에서 모회사와 자회사의 관계와도 같았다.
“한영이 이름에만 너무 의존하지 말고, 한영이 외적으로도 우리가 한몫할 수 있게끔 더 궁리하고 연습하는 거야.”
조은솔이 차분하게 중얼거리길 잠시.
그 말에 홍윤서도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하긴, 한영이 방송에서는 분위기 때문에 못 하던 거 있었지. 내 채널 만들면 거기에서 해 봐야겠다.”
“그럼 전 정의선의 법학 채널.”
“당장에 큰 반응은 못 보겠지만, 애초에 그런 거 기대하면 도둑놈 아닐까.”
“그럼 전 정의선의 법학 채널.”
“맞아요. 형, 구독자 0짜리 하꼬부터 시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잖아요.”
“그럼 전 정의선의 법학 채널.”
“참, 희범이가 하꼬 생활을 해 봤다고 했지?”
그렇게 김한영과 별개로 개인의 몫을 해 보자는 목표 아래 각자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가지 관건이 남았다.
“한영이가 허락할까요?”
김한영이 서브 채널 개설을 용인할까 하는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싱어송라이터 김한영] 채널은 그의 소유이기 때문.
서브 채널을 개설했다가 화력이 분산되기라도 한다면 본말전도 아니겠나.
그렇기에 꼭 동의를 구해 둘 필요가 있었다.
“크아악, 한영이가 거절할 수도 있겠는데요.”
“걔가 허술해 보여도 공과 사를 구별할 줄은 알아서.”
“은솔이 누나가 물어보면 좀 낫지 않을까요? 그래도 윗사람이니까. 걔 은근 유교맨인데.”
“으, 물어는 보겠는데. 후, 심장 떨리네.”
그렇게 연락을 보내고 불과 1분 뒤.
김한영에게서 돌아온 답장은 이러했다.
짧고 간단한 답이었다.
* * *
‘별거를 다 물어보네.’
한참 일하는 참인데 왜 연락이 날아와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마는.
서브 채널 개설이라니.
‘이런 걸 나한테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나.’
어차피 채널에 내 이름이 붙어 있다뿐이지, 막상 나 혼자서 운영하는 채널도 아닌데.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그러라고 이 채널 만들어 놓은 건데.
‘가만, 이러다가 각자 인기 얻으면 어쩌지?’
재밌겠다.
한번 독립도 시켜 볼까.
분리되고 나서부터는 함께 방송 진행할 때는 게스트 명목으로 부르는 거고.
[싱어송라이터 김한영]의 프랜차이즈화라고나 할까.이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동안 방송에서 소외되던 멤버들도 있었으니까 이게 대안이 되겠네.’
한창 고민에 잠겨 있으려니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그렇게 열심히 생각해요?”
레베카 로드리게즈였다.
그녀가 23도 정도 사선으로 기울어진 고개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한쪽으로 흘러내리는 붉은 머리카락이 개털을 연상시켰다.
‘기타 줄로 써도 되겠군.’
잠시 잡생각을 하기를 잠시, 나는 핸드폰을 다시 호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식구들(Family)한테 연락이 와서요.”
“가족들(Family)이요? 하긴, 외국 나오면 쓸쓸할 만하네요.”
“딱히? 어차피 다 연락하니까요.”
“하기야, 영영 넘어온 것도 아니죠.”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기를 잠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에게도 슬쩍 말했다.
“레베카 씨도 우리 식구(Family)에 들어올래요?”
“……네?”
“그동안 많이 봤잖아요. 슬슬 물어볼 때가 됐다 싶어서. 그리고 레베카 씨도 관심 좀 있으셨던 것 같고.”
한참이나 말을 늘어놓은 와중이었다.
말을 이으면 이을수록 그녀의 안면근육이 기이하게 꿈틀거렸다.
너무 기뻐서 그런가.
의아하려니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전 아직 솔로가 더 좋아서.”
“하긴.”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게 수입 면에서 더 낫기는 하죠. 음악적으로도 더 자유롭고.”
“수입이요?”
그녀가 모르겠다는 눈치로 되물었다.
설마 이것도 몰랐던 건가.
나는 그녀가 정말 음악만 하는 사람이라고 느끼면서 설명을 이었다.
“솔로로 활동하면 돈 먹는 거 다 내 거잖아요. 계약서도 따로 쓰고. 한 식구로 활동하면 수익분배가 어정쩡해서 서로 믿고 넘어가야 할 때가 있거든요. 팅도 그렇고.”
“아.”
“아?”
“아.”
그 순간 레베카가 움찔하더니 말했다.
이상하다 싶은데 그녀가 헛기침을 뱉더니 말했다.
“카흠, 생각해 보니까 가입해도 좋을 것 같네요.”
“아까는 싫으시다더니.”
“그냥 튕겨 봤죠. 바로 받아들이면 매력 없잖아요.”
싫다는 건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싫으면 안 하셔도.”
“사실, 옛날부터 팅에 들어가는 게 꿈이었어요.”
그녀가 대충 얼버무리는 눈치로 말했다.
이상한 사람일세.
사람 마음이 이렇게 실시간으로 바뀌나.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뮤지션이라는 게 원래 갈대 같은 직종이라는 걸 떠올리며 넘겼다.
“그건 그렇고.”
따로 의견을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나는 레베카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잘 알 수 없어서 하나만 솔직하게 답해 줬으면 좋겠는데요.”
“네.”
“에밀리 맥튼, 저 사람 솜씨 어떤 것 같아요?”
“흠, 드럼 말이죠?”
내 질문에 레베카 로드리게즈가 작게 웃더니 말했다.
“천재 맞는 것 같은데요? 누구 딸 아니랄까 봐.”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