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
휘파람이었다.
그저 아무렇게나 흘러나오는 휘파람.
김한영의 입에서 휘파람 한 줄기가 뻗어 나와 제멋대로 허공에서 놀았다.
“――.”
휘파람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곧게 뻗는가 하면, 한 바퀴 말려 뒤집히기도 했다.
위아래로 처연히 흔들리기도 했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처럼 차분하게 흐르는 소리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찾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어느 소리든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다.
후루룩 라면 먹는 소리가 PC방에서 들리면 식욕을 돋우더라도 독서실에서 들리거든 소음공해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김한영의 휘파람은 그리 어울리지 않는 스타디움 한복판에서 울렸고.
그 별거 아닌 휘파람이 관객들의 마음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아니, 별것 아니기에 그러했다.
“저 호숫가의 갈대처럼.”
갈대였다.
중경대 첫 라이브에서 불렀던 갈대.
김한석의 노래 중 가장 수수하다고 불러도 좋을 그 곡이었다.
특별한 보컬 테크닉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흡사 기타를 배경으로 천천히 시를 읽어 주는 듯한 노래.
그렇기에 갈대였다.
“흙냄새 풍기는 그림자는 너무 멀리 누워 노을과 뒤섞이네.”
잔잔하다.
벡 딕슨의 노래가 자극이라는 측면에서 극한에 다다랐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극단은 무엇일까.
김한영은 이것을 고민했다.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다.
여름 더위를 극복하기 위해 뜨거운 음식을 먹듯, 화전민들은 밭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맞불을 놓는다고 한다.
그런데 벡 딕슨의 노래에도 꼭 같은 자극으로 맞서야 할까.
불에 대응할 수 있는 게 불밖에 없을까.
‘아니지. 물도 되고, 소화기도 되고, 흙도 되겠지.’
하여서 역으로 돌아갔다.
벡 딕슨 못지않게 자극적인 곡이 아닌, 그의 곡마저도 잠재울 정도로 잔잔한 곡을 선택했다.
“나는 갈대, 그대는 바람. 우리는 호숫가 위에서 손을 잡고 춤을 추네. 춤을 추네. 오래오래 춤을 추었네.”
그게 갈대였다.
벡 딕슨의 노래가 쇳가루와 불길이 날아오르는 대장간이라면, 그는 강변에 놓인 한 줄기 갈대를 부르기로 했다.
사고의 전환이 먹혀들었던 걸까.
“…….”
“…….”
점차 관중들의 마음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편안해진다.’
극도로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늦은 밤, 뜨겁게 달아오른 라이브하우스를 떠나 선선한 밤공기를 맡으러 바깥으로 나오듯.
관중들의 마음속에 바람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없이 편안해진다.
머릿속이 식으며 휴식이 시작되었다.
벡 딕슨의 음악이 자극적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음악은 극도로 자극적이기에 잠깐은 듣기 좋아도, 오래는 못 듣는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귀를 찌르는 것같이 아프기 때문.
그 통증 위로 김한영이 진정제 한 알이 되어 사근사근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갈대 같은 사람이라도 그대가 보내는 바람이라면 기꺼이 몸을 맡기고 싶네. 아아, 그것이 내 작은 바람입니다.”
언어를 모른다.
그렇기에 더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칙.
그렇게 불과 3분이 흘렀을 무렵.
“…….”
관객들은 마치 방금 막 꿈속에서 깨어난 듯 머릿속이 맑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이 편하다.’
‘푹 쉰 기분이네.’
‘하루 종일 스트레스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는데, 잠깐이나마 잊었네.’
마음속에 평화가 찾아온 것.
김한영의 음악은 벡 딕슨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벡 딕슨의 음악이 스트레스를 흔적도 없이 불살라 재로 만든다면, 김한영의 음악에는 부드럽게 삭혀 가라앉히는 마력이 담겨 있었다.
서로 다르다.
하지만.
그 사이 우열은 없었다.
‘뭐야, 의외로 잘하잖아.’
‘듣기 좋았는데.’
‘테크니션은 아닌데, 뮤지션은 맞네.’
불과 곡 하나가 끝나기 전에 2만 명의 관객이 그를 다시 돌아보게 할 만큼 말이다.
아니.
[잘하는데?] [WTF?? WTF?? WTF?? WTF??] [이런 스타일 싫지 않아] [공개처형 당하는 거 보러 왔더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와서 어리둥절한 상황.jpg]자선화면 뒤, 92만 명의 관객들이 함께했다.
김한영의 팬이든 벡 딕슨의 팬이든.
조금 전까지만 해도 김한영의 무대를 두고 갑론을박을 펼치든 이들이 불과 몇 분 사이에 같은 마음이 되었다.
[김한영도 좀 하네]딱히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음악으로 하나가 된 것.
[누적 후원액: 759,612$]후원액은 덤이고.
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번 무대의 주최자, 벡 딕슨은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길 바빴다.
‘내 음악에 어떻게 맞부딪치나 기대했더니, 오히려 가라앉힌다고?’
쉬어 가는 무대를 만들어 버리다니.
이론적으로는 어려울 게 없지만, 실제로 해내려고 보려면 말도 안 된다는 걸 깨달을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실력이 필요했다.
앞서 곡을 연주한 뮤지션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실력이.
‘나만큼 한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정말로 할 줄은.’
궁금하다.
그가 젊은 시절이었다면 이 승부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다.
몸이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한편, 레베카 로드리게즈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당연하지. 김한영이 누군데.’
처음부터 그의 실력을 굳게 믿고 있었으니, 결과가 어떻게 되든 알 바가 아니었다.
그렇게 잠시.
김한영은 곡을 시작하기만 해도 판을 쳤던 야유가 깔끔하게 소강된 무대를 천천히 둘러보고는, 비로소 기타를 내려놓고 마이크를 잡았다.
한결 식은 공연장.
김한영이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를 두고 다음 한마디에 수십만 명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
“레이디즈 앤 젠틀맨.”
김한영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코리아 넘버 원.”
“……?”
“……?”
* * *
[생각보다 잘하던데?]화제가 시작됐다.
[벡 딕슨한테도 안 묻히더라] [나 현장에 갔는데 서로 다른 느낌으로 잘함]초원에 불이 붙은 듯 퍼져 나갔다.
[다시 봤다] [이 정도로 라이브를 하는 사람이 또 있었구나] [한국 가수는 아이돌만 알았는데, 저런 싱어송라이터 쪽으로도 은근 잘하네] [비슷하게 하는 사람 또 있나? 케이팝 듣는 애들 답변 좀] [없음] [있었는데, 이제 없어]김한영의 음악은 잔잔했지만, 그 잔잔함이 특징이 되어 한층 퍼져 나갔다.
뭐라고 해야 할까.
슬로우 음악 혹은 힐링 음악이라고 부른다면 적당할까.
미국 시장은 라이브를 중시한다.
아무리 음원이 좋아도 라이브에서 형편없으면 화력이 떨어지는 게 현실.
반대로 라이브를 너무나도 잘한다면, 이미 그 자체로 화제가 되는 게 미국 시장이기도 했다.
이는 마치 격투기 대진표와도 같았다.
김한영은 벡 딕슨이라는 강력한 전투력 측정기 앞에서 선방하는 수준을 넘어, 자기 값어치를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레베카 로드리게즈가 원래 라이브로 막 잘하는 아티스트는 아니니까 그쪽이랑 같이 한 건 그거려니 쳐도 벡 딕슨은 진짜 다시 봤다] [벡 딕슨 한창때 별명이 분쇄기였잖아. 같이 무대 오른 사람들 분쇄해 버린다고.]하물며 단발성이 아니다.
김한영의 무대는 벡 딕슨 LA 투어를 통해 앞으로도 한참 남아 있다.
검증이 끝났다면 남은 건 홍보의 시간일 뿐인데, 그 말인즉슨 앞으로 보여 줄 모습이 많다는 말과도 같았다.
“랄랄라, 커피 한 모금과 치아바타.”
적당히 흥겨운 노래부터 시작해서.
“왜 나는 그런 사람이어야 하나요.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많았는데. 눈에 바느질하고, 귀를 테이프로 막고, 입을 가리고.”
진한 노래.
“대학 노트를 옆구리에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트로트까지.
온갖 장르를 번갈아 가며 무대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이런 것도 잘하네]새로운 매력을 보여 주기 바빴다.
벡 딕슨이라는 거대한 브랜드 뒤에는 따라다니는 귀가 많다.
그 귀가 곧 김한영의 귀가 되었으며.
[신나는 음악도 괜찮다] [영어 발음 꽤 들을 만한데? 눈 감고 들었으면 몰랐을 듯] [주위에 김한영 추천하는 중이다] [이제 한 가족이지]나아가 전광판이 되어 주었다.
역시, 뮤지션에게 있어서 실력파로 인정받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명실상부하게 잘하는 사람과 함께 행동하는 것이다.
아담 램버트를 아는가.
그는 2010년대 초반에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을 통해 조명을 받은 보컬이었다.
가히 21세기 최고의 록 보컬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로.
그런 그는 처음 대중 앞에 섰을 때부터 실력파로 인정받았는데, 거기에서 한발 나아가 아예 전설적인 보컬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아담 램버트, 전설의 밴드 ‘퀸’에 객원 멤버로 합류]퀸의 멤버로 발탁을 받은 것이었다.
물론, 정식 멤버는 아니다.
공연에 한해서 함께 무대를 꾸리는 게스트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퀸의 게스트였다.
세계 최정상의 뮤지션들이 직접 실력을 인정했으며, 나아가 그들의 무대에서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이미 고공행진하고 있는 아담 램버트의 주가를 우주까지 쏘아 올리는 데 충분했다.
지금, 김한영 또한 같았다.
[벡 딕슨이 고른 이유가 있네] [ㅋㅋ 바보야 김한영이 벡 딕슨을 선택한 거겠지] [그건 좀 너무 나갔네] [인정, 하지만 선방하고 있는 건 사실임]벡 딕슨의 공연을 시청하는 수십만, 수백만이 그를 재평가했다.
김한영.
그는 지금, 세계 정상에 향하는 계단을 걸어 오르고 있었다.
* * *
음악은 뮤지션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좋은 음악이 있다고 한들, 그걸 대중의 귀 앞까지 가져다가 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김한영이 아무리 음악을 잘한들 [한영 아카데미] / [도라 마그리트 쇼] / [벡 딕슨 LA 투어]의 힘이 없었다면 미국에서 지금 같은 인지도를 올릴 수 있었을까.
요컨대, 음악 시장에서 마케팅이란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봐도 좋을 물건이었다.
지금 여기.
그 미국 음악 시장의 정점에 선 자들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지금부터 정기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Sound By Roundtable]줄여서 [라운드테이블] 혹은 [SBR]이라고 불리는 그룹이었다.
소속 뮤지션의 수는 서른이 채 안 되지만, 명실상부 현 음악계의 트랜드를 주도한다고 봐도 부족함이 없는 집단.
그게 [SBR]이었다.
그렇기에 이곳에 소속된 자들은 누구 하나 아티스트 중의 아티스트였다.
그중 하나, 검은 피부에 흰 머리를 레게로 땋은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오늘 회의에 참석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왔을 것 같은데.”
“…….”
“김한영, 그 사람 좀 섹시하지 않나?”
그렇다.
오늘, [SBR]은 김한영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모임을 만들었다.
“커리어는 조금 모자라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나머지는 메꿔 주면 될 일이지.”
그의 커리어가 모자란다고 한다.
얼핏 보기에는 헛웃음만 나올 말이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한다면 우스울 이유가 없었다.
당장 지금 신나서 이야기를 떠들고 있는 사람은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다누시아 쿼리. 어지간히 신났네.’
다누시아.
현역으로 활동하는 래퍼 중에서 흔히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벡 딕슨, 그 아저씨 되게 음악 험악하게 하는데 안 죽더라고.”
“나도 신인 때 제대로 밟힌 적 있었는데.”
“그건 네가 모자라서 그렇고.”
“벡 딕슨이면 옛날에 한물간 사람 아닌가? 요즘은 호흡 딸리는지 후반 되면 음정도 흔들리던데.”
“우리도 그 나이 되면 그럴 거야.”
“그럴 리가. 백 딕슨 그 양반은 게을렀던 거야. 더 진보하려는 시도를 멈춘 거지.”
“하긴.”
놀랍게도 이들은 벡 딕슨의 커리어마저도 한 수 아래로 치고 있었다.
바깥에 말이 새어나간다면 거대한 논란이 일 것만 같은 말들이지만, 이 자리의 그 누구도 이의를 두지 않았다.
그렇게 둥근 테이블 위로 이야기가 오가기를 한참.
“좋아, 결정됐네.”
다누시아가 쌀밥처럼 하얀 치열을 드러내며 말했다.
“꼬셔 보자고.”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