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돈 좀 크게 만져 볼 생각 없나?”
다누시아의 입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그 한마디에 나는 그만.
“푸훗.”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돈 이야기를 하러 불렀으리라고 생각한 참이기는 했다만, 너무 대놓고 말하니까 좀 웃기기도 해서.
“왜 그러지?”
“아뇨, 계속 말씀하세요. 듣고 있어요.”
“뭐,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다누시아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을 이었다.
“음악 산업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미래라면 어떤?”
“그냥 그쪽이 생각하고 있는 방향을 말해 주면 돼. 이렇게 될 것 같다. 저렇게 될 것 같다. 그런 거.”
“방향이라.”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기를 잠시.
이내 뇌리에 스친 대답을 입에 올렸다.
“기존의 음악 시장의 질서가 무너지겠죠?”
붕괴.
이게 내가 생각하는 현 음악 시장의 미래였다.
물론, 지금의 음악 시장의 미래일 뿐이다.
다누시아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붕괴된다?”
“네, 기존 시장의 질서, 그러니까 마케팅 중심의 음악 시장은 갈수록 힘을 잃을 것 같네요.”
큰 마케팅 없이도 누구나 만들고 싶은 음악을 자유롭게 만들고, 그 가치 평가를 시장에 맡기는 시장이 도래할 터.
누군가는 헛소리라고 취급하겠지만, 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방향 자체가 이렇게 흐르고 있어요.”
당장 내가 주로 활동했던 70년대를 보거든, 마케팅 없이는 음악을 판다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았나.
그 시절에는 음악 자체보다 마케팅의 비중이 95%쯤은 되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줄어 이제 마케팅이 한 85%쯤 됐을까.
적어도 곡을 만들어 배포하는 단계까지는 자유로워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곡을 만들기만 해도 되겠지. 중간에 기획사니 유통사니 낄 필요도 없어지겠죠.”
해외 몇몇 플랫폼에는 이미 이런 시스템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아직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한층 더 거세지리라고 확신한다.
예를 들자면, 미튜버들이 종래의 연예인들과는 달리 기획사의 통제에서 자유로워진 것처럼 말이다.
‘뭐, 이게 완전히 자리 잡기까지 몇 년, 몇십 년이 걸릴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우스갯소리로 들리더라도 할 말은 없다 싶은데 다누시아는 정말로 우스갯소리로 받아들인 건지, 아주 폭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우핫, 우하핫, 우하하하하하하!!!! 우힛, 우히힛.”
“…….”
“크흐흐흐, 푸흡! 푸흐흐흐.”
설마 저렇게까지 웃을 줄은 몰랐는데.
자기가 물어봐 놓고 왜 저러나.
이 정도면 아무리 나라도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사람이 도리가 없군. 가정교육이 부재했나?’
그의 살아온 환경을 의심하는 참인데, 다누시아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가락으로 스윽 닦아 내리며 말했다.
“아, 실례, 그냥 너무 웃겨서.”
“뭐가요?”
“당신이 하는 말이 말이야.”
그는 아예 코까지 풀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음악 시장의 미래랑 달라도 너무 달랐거든.”
“그쪽은 또 어떤 시장을 생각하셨길래?”
“뭐, 말 그대로 반대지. 내 생각에 당신 말은 완전히 틀렸어.”
다누시아가 어깨를 으쓱하기를 잠시.
자세를 견고히 하더니 지극히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해 주지. 음악 시장에서 마케팅의 힘은 절대적이었고, 앞으로는 이보다도 훨씬 더 거대해질 거다.”
“흠.”
“당신, 벡이라고 그 아저씨랑 같이 돌아다녔지? 그 아저씨 같은 음악이 팔렸던 건 그 시대가 그랬기 때문이지. 요즘 같은 때는 어림도 없어. 누가 듣겠어? 그런 먼지 냄새나는걸.”
누구나 생각하는 건 자기 마음이다.
혐오 식품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없어서 못 먹는 미식일 수 있지 않겠나.
음악에도 취향이 있다.
다누시아의 결론은 저런가 보다 하고 넘기면 될 일.
물론 내가 옳겠지만.
애초에 굳이 반박할 생각은 없었기에 가만히 있는데 다누시아가 입을 열었다.
“당신, 영화 좋아하나?”
“나오는 건 보죠?”
“요즘 영화 시장을 보면, 유니버스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지. 유니버스화가 뭔지는 아나?”
“세계관 하나 만들어서 서로 공유하는 거 아니에요?”
“맞아.”
그가 흡족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미튜브와 OTT가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되면서 개인 창작자들의 힘이 강해졌지만, 역으로 영화 산업에서 마케팅의 힘은 훨씬 더 강해졌지. 그 어떤 쓰레기 영화라도 유니버스를 잘 버무리면 최소 본전은 칠 정도로.”
“대단하네요.”
“이걸 댁의 의견과 비교해 보자고. 내 말을 듣고도 정말로 음악 산업에서 마케팅의 힘이 줄어들 거라고 보나?”
“글쎄요? 제 생각에는 그런데요. 애초에 유니버스가 떴다고 개인 창작자들의 힘이 줄어든 것도 아니고, 같이 큰 거죠. 저쪽은 저쪽대로, 이쪽은 이쪽대로.”
아.
반박 안 하려고 했는데 그만 해 버렸다.
다누시아는 이 상황이 너무 즐겁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 사이로 갓 뽑은 쌀국수처럼 새하얀 치열이 반짝인 순간.
다누시아의 입에서.
드디어 본론이라고 할 게 흘러나왔다.
“음악에서도 유니버스화가 가능하다면?”
* * *
슬슬 물려 가던 대화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음악의 유니버스화?’
음악에 세계관을 구축한다는 건가.
이건 또 들어볼 만하다 싶은데, 다누시아도 어떤 기미를 눈치챈 건지 신나서 말을 이었다.
“음악을 하나의 유니버스로 엮는 거야. 하나의 세계관, 하나의 소속, 하나의 연합.”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각각의 뮤지션에게 캐릭터를 부여하는 거지. 어떤 음악을 하는 캐릭터고,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고. 누구와 친하고.”
“그 정도는 이미 다른 회사들도 비슷하게 하지 않았나요? 한국 쪽 케이팝 회사들은 10년도 더 전부터 비슷하게 해 왔는데.”
“아, 물론 그쪽도 참고하기는 했어. 하지만 규모와 실행력이 다르지.”
다누시아가 폭소를 터뜨렸다.
“다누시아라는 거대한 유니버스에 섞여 있으면, 그 안에 있는 어떤 브랜드와 콜라보를 진행하든 상관이 없는 거야.”
“……OSMU?”
“그래, 상상해 보라고. 신인 하나가 내 유니버스로 들어와서 내 기획을 받고, 내 음악을 받고, 내 상품으로서 팔려나가는 일련의 광경을.”
말하는 걸 듣자 하니 공장 컨테이너를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돼지고기 원육이 들어와서는 돈까스로 포장되어 나가는 그런 거.
다누시아는 원료 공급에서 가공, 포장, 유통까지 자체적으로 다 하겠다는 말이었다.
그 위에 상표는 자기 이름으로 붙일 테고.
“흠.”
나는 짧게 고민하다가 물었다.
“글쎄요? 상품도 상품이지만, 우선 음악이라면 대중 귀에 듣기 좋아야 팔리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그렇겠지. 하지만, 점차 아무래도 상관없을 거야.”
그의 목소리가 어딘가 불길했다.
“음악에도 규모의 경제라는 게 있지. 나 정도 되는 거물 프로듀서가 대자본을 들여서 제작한 음원이 안 팔리기도 쉽지 않아. 대중들도 처음에는 싫어하다가도 금방 울고불고 미칠걸? 그래, 듣기만 좋으면 장땡이지.”
“…….”
“메타버스 세계관을 만들어 그쪽으로 전개하는 것도 좋겠군. 공연장도 가상으로 구축해 보고. 여기에 NFT로 아티스트의 상품을 판매하고. 이제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나?”
다누시아의 입에서 홍수로 터진 댐처럼 계획이 한참이나 흘러나왔다.
어떻게 구상할 거고.
어떤 사람들을 준비해 놓았고.
어떤 음악을 진행할 거고, 콜라보 계획은 어떻게 되고.
파생 상품은 어떻게 팔 거고.
한없이 계획들이 흘러나왔다.
“그 시작이 내 다음 앨범이지. 이미 초호화 피쳐링을 잔뜩 준비해 뒀다고. 내가 다누시아 유니버스의 캡틴 다누시아가 되는 거야. 알겠어? 응? 솔로 뮤비는 충분히 찍었으니까 이제 팀업이지.”
그리고 놀랍게도 내 귀에 들린 다누시아의 계획은 뭐라고 해야 할까.
‘괜찮은데?’
썩 성공할 확률이 크게 느껴졌다.
사업을 연달아 성공시킨 수완이 빌려 온 건 아니라는 걸까, 단순한 망상 환자와는 큰 거리가 있었다.
‘비슷한 시도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성공을 하긴 했네. 다누시아는 이걸 더 키워 보겠다는 거고.’
세상에 아예 새로운 건 없다는 걸까.
다누시아는 아예 참신한 무언가를 창조해 내기보다는, 기존에 성과를 보인 것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아무래도 그는 발명가보다는 사업가가 맞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히어로는 다양해야 좋잖아. 바야흐로 다양성의 시대인데, 한영 씨도 같이 한탕 하자고.”
이 계획 사이에 나를 샌드위치처럼 끼워 넣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다누시아는 웃음이 만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미튜브에서 뜬 슈퍼스타. 캐릭터 확실하지?”
“…….”
“나라면 댁을 세계적인 스타, 아니, 역사적인 스타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노래부터 철저하게 컨설팅해 주지. 이래 봬도 나는 이 시대 최고의 프로듀서니까.”
그렇구나.
내가 음악 시장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그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듯했다.
여러모로 큰 스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행동력도 있는 듯하고.
‘나쁘지는 않겠네.’
흥미는 생겼다.
꽤 재밌으리라는 생각도 들뿐더러, 돈까지 알아서 따라온다면 나쁠 점이라고는 없었다.
이쪽이 나를 꽤 좋게 보는 듯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 전에 확인해 둬야 할 게 있었다.
“SBR인가?”
나는 포크로 스테이크를 쿡쿡 찌르며 물었다.
“제가 거기 들어간다고 치면 거쳐야 할 게 조금 있겠죠? 뭣 좀 물어봐도 될까요?”
“아, 뭐든 물어보라고.”
그의 눈빛을 보거든 이미 그물에 들어온 생선이라도 바라보는 듯했다.
다누시아가 시가를 꺼내서는 불을 붙였다.
나는 미소로 화답하며 말했다.
“전 이미 소속된 회사가 있는데요. 네온 엔터라고.”
“나와야지.”
다누시아는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칼로 자르듯 말했다.
“활동하는 데 걸리잖아. 우리 쪽에 붙은 회사 중에도 유능한 곳은 많아. 이쪽으로 이적하도록 해.”
“그래요? 그럼 제가 지금 활동하고 있는 팅이라는 그룹은.”
“기업을 인수했으면 구조조정도 해야지?”
다누시아가 웃으며 말했다.
“거추장스러운 짐은 홀홀 털어 버리고 산뜻하게 가자고.”
그 순간이었다.
내 가슴속에 확고한 결심이 자리를 잡았다.
“잘 알았어요. 뭘 하고 싶은 거지.”
“그래, 우선 내일부터 바로…….”
나는 더 이상 들어줄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 말했다.
“거절할게요.”
“…….”
말 한마디였다.
그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차갑게 굳었다.
“……당신, 지금 무슨 말을.”
“그쪽이랑 놀기 싫다고 했는데요. 전 지금 식구들이 더 좋아서.”
“…….”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것처럼.
다누시아가 집게손가락으로 눈가를 비비더니 말했다.
“돈 벌기가 싫나?”
“돈이 좋기는 한데, 꼭 돈을 똑같이 벌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음악으로 벌 수도 있고, 의사가 돼서 벌 수 있고, 소설가가 될 수도 있고. 광부가 될 수도 있고. 식당에서 서버가 되는 것도 방법이죠.”
돈은 과정이다.
내 목표는 음악이었다.
다른 무언가를 위해 내 음악을 희생한다는 가정 자체가 무의미했다.
“아직 제대로 놀아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럼에도 다누시아는 아직 미련을 못 버렸다는 듯 말했다.
“조금 더 시야를 넓게 보면.”
“참, 그리고 이 말을 미리 해 두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그의 말을 더 들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중간에 자르면서 말했다.
“저 그쪽 음악, 취향에 안 맞더라고요.”
“뭐?”
“워낙에 성공해서 참고로 듣긴 들었는데, 10번 이상 들은 건 없어요. 그러니까 그쪽에서 곡을 주더라도 제가 받고 싶은 마음이 없네요.”
다누시아가 눈만 깜박거렸다.
말 그대로, 아무런 말도 없이 눈만 깜빡거렸다.
마치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었다는 것처럼. 눈앞에서 유령을 목격했다는 것처럼. 게임하다가 프리징 걸린 모니터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그래서.
“그리고 또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내 쪽에서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해서 하기로 했다.
“그쪽은 벡 딕슨을 썩 깔보는 것 같은데, 전 벡 딕슨의 그 먼지 냄새나는 음악이 당신 잘난 음악보다 수백 배 낫더라고요.”
끝났다.
완만하게 이야기를 마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발끈해 버렸다.
급발진이 늘 문제다.
사람이 필요하다면 고개를 숙일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좀처럼 안 됐다.
‘그래도 뭐, 김진산 사장님도 나랑 똑같이 했겠지.’
그렇다면 그의 잘못이리라.
옛말에 자식 교육은 부모 잘못이라고 했던가.
거기에서 추측건대, 내가 문제 저질렀다면 그건 김진산 사장의 잘못이 맞다.
그러게 처음부터 교육을 잘했어야지.
이게 다 업보다.
‘참, 한국 갈 때 사장님 줄 선물이나 사 가야겠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이었다.
“잘 알았어. 잘.”
다누시아는 마침내 충격에서 빠져나왔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유달리 어두워진 표정으로 뱉은 다음 꺼낸 한마디는, 그야말로 오늘 들은 말 중 단연 최고였다.
“신인 주제에 좀 띄워 줬다고 그딴 식으로 나오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 바닥에서 더 이상 먹고 살 생각이 없는 모양이지?”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