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2
22화
“아, 그렇네.”
한윤태는 고개를 돌려 벽시계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너네 선배들이 왜 안 오지? 조금 늦네.”
“연락해 봤는데, 회사 일 때문에 조금 늦는데요. 역 앞에서 만나고 같이 온다던데요.”
그렇게 말이 나온 참이었다.
끼익.
가게 문이 열리더니 몇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유독 선한 인상을 풍기는 사람이 손을 크게 흔들며 말했다.
“어, 은솔이 먼저 와 있었네.”
형님이었다.
“오빠, 지금 왔어요?”
“회사에서 일이 끝나질 않아서…… 많이 늦었나?”
그 질문에는 내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아뇨, 딱 좋은 타이밍에 오셨습니다.”
“아, 지난번에 그 친구구나.”
“김한영입니다.”
“그래, 한영이, 다시 만나서 반갑다.”
저야말로.
* * *
한윤태.
전직 하꼬 뮤지션이자 카페 [플러그인]의 사장.
그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뭐라고 해야 할까, 조금 슬픈 말이 튀어나왔다.
[어중간한 사람.]어중간하다.
한윤태라는 사람 앞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말이었다.
‘안타깝지만 사실이지.’
가까운 사람이었기에 더 부정하기 어려웠다.
그도 전생의 나처럼 통기타 한 대를 들고 라이브 카페 이곳저곳에 기웃거리던 사람이었다.
‘옛날 생각나네.’
당시에는 [디망쉬]라는 이름의 라이브 카페가 신인들의 등용문으로 유명했는데, 한윤태는 거기 오디션에 붙어 보겠다고 20번도 넘게 탈락하면서도 계속 도전했었다.
‘참 근성 하나는 대단했지.’
연습실에 다닐 돈이 없어 길거리에서 기타를 붙잡는가 하면, 그러다가 시끄럽다며 쫓겨나거든 나와 함께 쓰레기장으로 가기도 했다.
공연을 보고 싶은데 돈이 없을 때는 공연장 뒷문으로 슬쩍 숨어들 때도 잦았다.
열심히 하기는 참 더럽게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와 내 차이가 나타났다.
‘뭘 하든 실력 향상이 애매했던가.’
어중간했다.
내가 한 번에 서너 걸음씩 달려갈 때, 그는 반걸음을 걷기 힘들어했다.
어중간한 음색, 어중간한 발성, 어중간한 기타.
아마추어라면 상당하겠지만, 프로의 영역에는 애매하게 닿지 못하는 어중간함.
그게 한윤태라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장점 없는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다.
“좀 자주 좀 와라, 이것들아.”
“회사가 바빠서 어쩔 수 없어요.”
“지금 내 앞에서 염장 지르냐? 나도 좀 바빠지고 싶어!”
한윤태가 크게 윽박지르자 팅의 OB들이 자지러지도록 웃음을 터뜨렸다.
“니들이 자영업자의 슬픔을 알아? 매달 월세와 인건비와 원자재비로 싸우는 내 기분을 아냐고! 요즘 머리에 아주 구멍이 나려고 한다니까. 야, 이것 봐라. 보여? 보이지?”
한윤태의 연이어진 투정에 OB들이 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다.
그렇다.
한윤태의 장점은 타고난 성격이었다.
그 어떤 상황에도 농담을 던지면서 남들과 쉽사리 섞여드는 그 성격.
“푸훗.”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는데, 그가 날 보며 외쳤다.
“야, 너도 내가 우스워?”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말 돌리지 마. 정정당당하게 맞서 싸워!”
“푸흐흐흣.”
말 한마디 한마디에 농담이 섞여 있다.
격식이 전혀 없다고 해야 하나, 구김살이 없다고 해야 하나.
나이 따위는 쥐뿔도 고려하지 않는 넉살이었다.
이게 한윤태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 성격 더러웠던 나한테 맞춰 줄 정도였으니, 참.’
한윤태를 만나기 전의 나는 내가 생각해도 사회성이 모자랐다.
여차하면 선배 뮤지션들과 말다툼을 벌이고 분위기가 험악해질 때가 많았는데, 그런 내게 천연덕스럽게도 달라붙었던 게 한윤태였다.
그때는 귀찮았는데, 지금 보면 나름대로 고맙다.
‘가게 사장이라. 적성을 잘 살렸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한윤태는 습관처럼 턱을 긁적이더니 말했다.
“씁. 아무튼, 이렇게 보니까 또 반갑네.”
나도 반갑다.
“자주 올게요.”
“그래, 너희들이 자주 좀 와야 나도 맘 편히 장사하지. 매일 가게가 한산해서 심심해 죽겠어. 혼자 계산대에 앉아 있으려면 외롭기까지 하다니까.”
그 말이 인상적이라 나는 그에게 물었다.
“요즘은 손님이 별로 없나 봐요?”
“…….”
가게에 정적이 찾아왔다.
아차, 뭔가 이상하다 싶은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거 그거구나. 자기가 농담으로 던지는 건 괜찮아도, 남이 언급하면 조금 그런 거.’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흑인들끼리는 서로 애칭처럼 니거라고 부르지만 타 인종이 그러면 인종차별인 거.
“그러니까, 제가 하려던 말이요.”
질문을 조금 잘못했다 싶은데 한윤태는 헛기침을 뱉더니 말했다.
“크흠, 뭐, 요즘은 이런 음악을 듣는 사람이 잘 없지 않냐. 큼지막한 클럽에 가서 춤추면서 EDM을 듣는다면 모를까. 사실, 요즘은 그쪽도 빈익빈 부익부라 몇몇 곳은 임대료 내기도 벅차다더라. 요즘 사람들은 갈수록 공연에 돈을 별로 안 써서.”
듣자 하니 아무래도 사업 전체의 문제인 듯했다.
“죄송해요. 제가 말을 잘못 꺼냈네요.”
“됐어. 사람이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는 손을 휘휘 젓더니 말했다.
“그래도 말이다. 시장이 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얼마 전에 방송에 막 인디 밴드들 나오고 그럴 때는 여기도 저녁만 되면 만석이었거든? 당장 내일 싱어송라이터 붐이 터지면 여기도 손님이 넘쳐흐를지 또 알아? 언제 어떤 음악이 뜰지는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너희 같은 사람들이 좀 열심히 해 줘야 한단 말이야.”
그가 혼자 말하고는 폭소를 터뜨리는데 조은솔도 마주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저희는 취미 동아리라서요. 프로 데뷔까지 노리는 사람은 잘 없어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한윤태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음악에 아마추어가 어딨고 프로가 어딨어? 그냥 자기가 프로라고 생각하면 그게 프로지.”
자기가 프로라고 생각하면 프로라니.
실로 어마어마한 한 마디였다.
‘자존심 강한 꼰대들이 들으면 재떨이를 던지겠네.’
옛날에는 프로라는 지위 자체가 엄청난 것이라, 실력이 모자란 사람에게는 대놓고 눈앞에서 면박을 주기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게 한윤태의 마음가짐이기도 하였다.
어중간한 실력임에도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프로라는 데 자신감을 가졌던 그다운 태도.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이 되려 내게는 반갑게 느껴졌다.
‘그건 그렇고 슬슬 시간 된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돌려 가게 내부를 바라봤다.
그러자 조금씩 들어온 손님들이 어느덧 10명 정도 모여 여기저기 앉아 있었다.
“이제 슬슬 시작할까?”
한윤태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크게 외쳤다.
“10분 뒤부터 공연 시작입니다! 공연 볼 사람은 인당 마실 거 한 잔씩 구매하세요! 하나 사서 나눠마시는 건 안 됩니다!”
그 말에 몇몇 손님들이 계산대로 다가오더니 간단한 마실 것과 요깃거리를 주문했다.
그러는 사이 팅의 OB들도 익숙한 듯 무대로 가서 의자와 식탁을 치우고 악기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많이 해 봤나 보네.’
은근히 흥미로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으려니, 조은솔이 내게 말했다.
“신기하지?”
“네.”
“여기 시스템은 이래. 평소에는 일반 카페처럼 운영하다가, 공연이 있을 때는 소규모 공연장으로 둔갑하는 거지.”
“신기하네요. 저희가 안 도와드려도 될까요?”
“잘 모르는 사람이 끼어들면 걸리적거리잖아. 우선은 눈으로 배우고 다음부터 도와드려.”
“네.”
재밌는 시스템이다.
진지하게 괜찮다 싶은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가게를 내 활동의 주거지로 삼으면 어떨까.’
연습은 동아리방에서, 방송은 이스케이프에서, 공연은 여기서.
나름 괜찮을 것 같다.
‘미튜브에도 올리고 그러면 좋겠는데.’
발성 연습을 시작하며 그쪽 영상도 조금씩 퍼지기 시작한 탓일까.
한 달 사이에 구독자는 5천 명에 근접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용돈벌이 수준의 수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단계였다.
하지만 슬슬 정체 구간이기도 했다.
5천부터 5만.
가장 많은 미튜버들이 희망 고문을 받다가 방송을 접는 마의 구간이었다.
‘구독자 자체는 꾸준히 늘고 있어. 하지만 희범이 말마따나 우리 방송만의 특색은 없지.’
내게는 꾸준히 무대 위에 오를 장소가 필요하다.
또 가게 입장에서도 스타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람이 잘 없다고 했지.’
그렇다면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의 방문을 유도하면 어떨까.
순환 구조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득이 될 순환 구조를.
그렇게 고민에 빠지기를 잠시, 나는 입을 열었다.
“희범아, 나한테 방송용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는데.”
“아이디어?”
카페에 들어오고서부터 줄곧 쭈그리 자세였던 고희범이 입을 열었다.
“무슨 아이디어?”
“그게 말이지.”
나는 혹시라도 내 말이 이상하게 들릴까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여기서 아예 정기 공연 자리를 얻고, 그것까지 방송해서 콘텐츠로 만들면 어떨까?”
그 순간이었다.
“오?”
고희범이 눈을 크게 뜨더니 말했다.
“야, 나도 그 생각 좀 하고 있었는데.”
“너도?”
“한영이, 네가 김칫국 마시지 말라고 할까 봐 참고 있었지.”
“…….”
희범아.
네 눈에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였느냐.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조은솔도 일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사장님도 정기 공연할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았는데, 민아랑 한영이 실력이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오늘 공연 끝나고 사장님한테 한번 여쭤보면 어떨까?”
아무래도 이 둘은 내 생각에 동의하나 보다.
그렇다면 시도는 해 볼 만했다.
아직 구상 단계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내 생각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 둘 있다는 데 소소한 자신감이 생겼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조은솔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한영아, 네 생각은 어때?”
“흠.”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사장님이 저희를 고용할지 안 할지는 모르는 거죠.”
“그래도.”
“그러니까 하는 말인데요.”
나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단 실력부터 보여 주고 다시 생각해 보자고요. 협상은 그다음에 해도 돼요. 우선은 공연 먼저 멋지게 해 보죠.”
어떤 확신이 생겼다.
방송이 하나하나 다듬어지고 있다는 확신이.
* * *
‘와, 진짜 순식간에 변했네.’
라이브 카페 [플러그인]이 완연히 공연장의 모습을 갖추었다.
조명의 채도가 낮아져 실내에는 아늑한 분위기가 맴돌았고, 얼마 안 되는 관객들은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봤다.
그리고 OB 선배들이 한 명씩 무대 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흠흠.”
그중 한 명이 마이크를 쥐고 말했다.
“오늘 공연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중경대학교 기타 동아리 팅의 OB들이고요. 오늘 와 주신 분들 모두 좋은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무대가 시작되었다.
티딩, 팅.
동아리 이름을 연상시키는 연주와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기를 잠시.
나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생각했다.
‘생각보다 그냥 그렇네?’
OB들의 실력은 크게 특출날 게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평범했다.
‘어라? 내가 너무 기대했던 건가?’
조은솔이나 성민아의 실력이 썩 괜찮길래 OB들이면 준프로급도 꽤 있을 줄 알았더니, 오히려 그들과 비교해서도 뒤처지는 급이었다.
물론, 무대를 즐기는 마음가짐은 충분해 보였다.
“우리 둘만의 카니발. 눈을 감고 날 따라와요. 그대와 나 둘만의 무대. 가끔은 stay easy. 소파 위에 누워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잠들어요.”
기타 실력이나 노래나 다 특출날 게 없다.
하지만 그들의 연주를 보고 있노라면 뭐라고 해야 할까.
한 가지만큼은 알 수 있었다.
‘즐거워 보이네.’
공간을 적시듯 흥이 가득했다.
그 흥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관객들의 얼굴에도 은은한 웃음이 배어 있었다.
취미 수준이라면 충분하겠다.
하지만 묘하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국단대학교 동아리의 수준을 여기서 조금 가늠해 보려고 했는데, 이러면 참고가 안 되는데. 그냥 대학교 동아리 수준에 너무 내가 과하게 의식하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뇌가 팽팽 돌아가는 사이 무대가 곧 끝났다.
친목 동아리에 가깝기 때문일까, 이들의 실력 이상으로 환호성이 쏟아졌다.
어느덧 OB들의 공연이 한 차례 돌았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한영이 파이팅.”
내 차례라는 말이었다.
“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형님에게 받은 기타를 손에 든 채 무대 위에 올랐다.
그러자 익숙한 응원이 쏟아졌다.
“한영이 멋지다!”
“우리 후배 파이팅!”
좋다.
그리고 또 궁금해졌다.
내가 무대를 마쳤을 때 저들은 내 실력을 어떻게 평가할까.
국단대학교 동아리와 비교해서 어떻다고 볼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윤태는 내 공연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구석에서 호프 잔을 닦고 있는 한윤태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직은 한 귀로 음악을 들으면서 여유롭게 공연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기대해라.
너라면 내 연주에서 뭔가를 느낄 수밖에 없을 테니.
여러 가지 의미해서 가슴이 두근거리기를 잠시,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제가 손에 꼽게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부를 노래는 이미 정해두었다.
“김한석의 소년의 일기입니다.”
……끼긱!
잔을 닦던 한윤태의 손이 미끄러운 소리를 내며 멈췄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