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다큐멘터리 영화.
말 그대로 실화를 바탕으로 사실 정보를 나열한 영화인데, 요즘 들어 이 방면에서 급격히 인기를 끌고 있는 장르가 있었다.
뮤직 다큐멘터리.
음악을 소재로 하는 것들이었다.
저예산으로도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을뿐더러,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는 덕분에 몰입감도 충분하다.
소재가 음악이라 지루하지도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아예 업계 거장들도 한 다리씩 걸쳤을 정도.
그야말로 한 번쯤 찍어 봐서 나쁠 게 없을 물건인데.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나는 그걸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예, 저희도 그랬습니다.”
강도수 사장이 민망하다는 듯 헛기침을 터뜨렸다.
“설마 아이플러스 측에서 스튜디오를 찾는데 시간이 이렇게 들어갔을 줄이야.”
그렇다.
나는 예전 아이플러스에게 [한영 아카데미] 독점권을 제공하는 대신, 나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유통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잘하는 스튜디오를 찾아본 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흐지부지되어 까맣게 잊고 지냈다.
아니지, 정확히 말하자면 워낙 바빠서 시야에 둘 여유가 없었다고나 할까.
‘이래서 뭐든 여유롭게 진행해야 되는데. 자꾸 디테일을 놓쳐 버리잖아.’
하지만 상관없다.
그래 봤자 몇 달 기다렸을 뿐이다.
영화 한 편 찍는데 기획 단계에서 몇 년을 방황하기도 한다는데, 스튜디오 찾는다고 몇 달 걸린 정도가 대수인가.
그보다 타이밍이 적절했다.
“마침 필요하던 타이밍인데, 잘 됐어요.”
나는 모처럼 즐거운 기분에 빠져 씨익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 어제 그 기사 보셨죠?”
“……그거 진짜입니까?”
강도수 사장은 아직도 현실을 못 믿겠다는 듯, 좁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옛말에 개가 짖어도 리어카는 굴러간다고 했다.
“네, 참트루. 다누시아랑 차트로 승부 한판 뜨기로 했어요.”
“후우우…… 역시…….”
내 말에 강도수 사장이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 마른세수를 했다.
“재밌겠죠?”
그렇다.
다누시아와 승부를 보기로 했다는 소식이 어제저녁, 언론을 통해 떠들썩하게 알려졌다.
정확히는 그의 SNS에서부터 시작됐다.
[다누시아 오피셜 채널: 한영은 무례하고 오만한 사람이다.내가 이번 신곡에서 세계 무대의 무서움을 그 몸에 제대로 새겨 주겠다. 그가 진정한 남자라면 나와의 승부를 피하지 않을 것.]
선전포고를 질러 버린 것.
이후로도 후속 보도가 이어졌고, 다누시아는 같은 취지의 말을 반복했다.
[다누시아 오피셜 채널: 그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자면 복잡하다.긴말하지 않겠다.
그와 나는 서로 다르며, 우리는 양립하기 어려운 존재다.
둘 중 한 명은 패배를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아마 한영이 될 것이다.]
바이럴이었다.
나랑 음악 견해에서 어떠한 감정 다툼이 있었고 그걸 차트 성적으로 증명해 보이겠다는 것.
[그래서 왜 싸우는 건데?] [사정이 있겠지] [다누시아 성격 더럽잖아]그러는 와중에도 다툼의 실체는 교묘하게 숨겨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도 있고.
‘역시 사업가 기질이 있다니까.’
SNS를 타고 말이 퍼진 말이, 매스컴으로까지 퍼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Q. 한영과 다툼이 있었다고] [A.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좋아하는 것을 무시당하면 슬프다.
한영이 타인에 대한 존중을 갖출 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싸울 것이다.] [Q.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은 어떻게 될까요?] [A. 조만간 새 앨범을 발표한다. 그 시기를 주목하라.]
막상 나랑 상의라고는 없었지만.
‘은근히 막 나간다니까.’
과정이야 어찌 됐든 첫날부터 홍보는 충분히 되었다.
말투가 과격하지만 의외로 상관없었다.
다누시아는 원래부터 매스컴을 활용한 마케팅에 도가 튼 사람이었는데, 그의 팬들도 이미 여기에 익숙했던 것.
[다누시아 또 남한테 시비거네 ㅋㅋㅋ] [안 봐도 뻔한데 다누시아가 먼저 문제 일으켰을 듯]어쩐지 익숙했다.
말 그대로, 대중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좀 익숙했다.
[김한영도 어그로 끄는 건 남한테 안 지는데] [쟤가 미국 김한영임?] [ㅋㅋ 저쪽도 어그로 졸라게 끄나 보네] [야, 너네도? 야, 우리도!]덕분에 네티즌들은 잠시도 식지 않고 밤을 새워 가며 축제 분위기를 이어 갔고.
[어떻게 저놈은 하루도 안 빼놓고 남들이랑 시비가 붙냐] [저놈이 누군지 확실히 해! 김한영이야 다누시아야?] [저놈‘들’은]지금에 다다랐다.
나는 작전 회의를 겸해 네온 엔터 본사로 찾아왔고, 바깥에서는 기자들이 인터뷰 한번 하겠다고 줄을 치고 있고 그런 거.
“머리가 식으면 피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저쪽에서는 진심으로 받아들였나 봐요.”
그런데 어째서일까.
오래간만에 만난 고희범은 두통이라도 일었다는 듯 머리를 싸매더니 말했다.
“야! 이 미친놈아!”
“왜.”
“무슨 종합격투기 선수들끼리 경기 앞두고 바이럴 마케팅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음악하는 양반들끼리 서로 차트로 싸우고 그래! 상대방이 누군지 몰라? 다누시아야! 다누시아! 세계급 인사라고!”
“그래서?”
“……이 상황에 보통 그래서라는 말이 나오냐?”
“뭐가 문제야?”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상대가 누구든 크게 다를 건 없잖아. 누가 잘났는가를 증명하는 거지. 녹다운 없이 포인트제로 승부 보는 거고.”
“……그러니까 보통은 한국에서 복싱으로 대가리 먹었다고 파퀴아오한테 바로 도전하진 않거든?”
“말은 제대로 해야지. 도전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고. 다누시아는 파퀴아오보다는 메이웨더에 가깝지.”
“너 잘났다.”
고희범이 속이 탄다는 듯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말문이 막힌 건 그뿐만이 아니라 강도수 사장도 마찬가지인 듯했고.
“……한영 씨는 언제나 제 상상을 초월하시는군요.”
하지만 몇 초 뒤, 내가 웃으며 물었을 때.
“사장님, 저 잘했죠?”
그는 이내 침착해진 표정으로 한숨 한 번에 잡념을 털어내며 말했다.
“예, 마케팅의 귀재이십니다.”
“후후.”
“이대로 잘만 하면 엄청난 매출을 올릴 수 있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강도수 사장이라면 이럴 줄 알았다.
바이럴 마케팅이라는 게 전문 뮤지션들 사이에서만 하는 것이던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미튜브야말로 바이럴 본진이지.
[누가 누구랑 싸웠다!] [누가 누구랑 내기했다!] [죄송합니다, 사과하겠습니다.] [해명하겠습니다.]이런 컨텐츠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한둘인가.
강도수 사장은 이 방면에서는 한국 한정으로 최고의 전문가라고도 볼 수 있을 사람이었다.
“저희 측이랑 미리 상의하지 않은 게 아쉽기는 하지만, 그건 한영 씨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겠죠.”
“역시 알아주시네요.”
“안 그래도 다음 앨범은 미국에서도 동시 발매할 예정이라 어떻게 마케팅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덕분에 흥행 성적은 깔고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연하죠. 기왕 미국에 진출하면 빌보드 한번 찍어 보고 싶었는데, 오히려 잘 됐어요.”
“그건 그렇고, 자신은 있으시겠죠?”
강도수 사장이 날카롭게 눈빛을 빛냈다.
마치 내 입으로 듣고 싶은 답이 있는 듯했다.
나는 그 답을 주기로 했다.
“자신 없네요. 질 자신이.”
“좋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네온 엔터 최초의 빌보드 1위는 제가 먹을 겁니다.”
그 첫걸음이 지금부터 있을 미팅이었다.
다큐멘터리 제작 스튜디오와의 기획 회의.
그리고.
드륵.
회의실 문을 열고 관련자들이 들어왔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또 뵙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섭섭하네요.”
내 말을 받은 중년 남자가 말했다.
“전 언제나 한영 씨를 만날 날만을 매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김보균, 오중기.
스튜디오 누의 두 사장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뭐라고 해야 할까.
“항해 뮤비 찍고 얼마 만이죠?”
내 첫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준 사람들이었다.
* * *
“두 분 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 모르겠네요.”
“후후, 한영 씨만큼은 안 되지만, 그래도 즐겁게 잘 지냈죠. 일에만 치여 살면서. 참, 그래도 한영 씨만큼 일을 하지는 않았겠지만요.”
부쩍 여유가 늘어난 오중기가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최근에는 너무 뜨셔서 스케줄이 몇 년 단위로 밀려 있으시다면서요?”
그렇다.
나와 대학교수의 소개로 처음 마주했을 때만 해도 일감이 없어 허덕이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급격하게 떠오르더니, 이제 3대 기획사의 일이라도 골라서 받을 만큼 떴다나.
“이야, 차마 부정은 못 하겠고.”
오중기가 쑥스럽다는 듯 헛기침을 뱉더니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게 다 한영 씨 덕분이죠. 항해 찍고 나서부터는 일감이 그냥 말 그대로 쏟아졌거든요. 하늘에서 홍수 쏟아지는 것처럼.”
“제가 뭘 했다고요.”
“어라? 이거 농담으로 하는 말 아닙니다? 한영 씨가 뜨면 뜰수록 저희 스튜디오 주가도 덩달아 올라갔는데. 이제 미국에서도 협업하자고 연락 오는 거 모르시죠?”
그렇게까지 내 영향력이 컸나.
얼핏 보기에는 그냥 입바른 말 같기도 하다만, 스튜디오 누의 실상을 알아본 나로서는 저 말이 사실이라는 것도 알았다.
‘해외 온갖 시상식에서 연달아 수상했다지.’
시작은 뮤직비디오였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사이 스튜디오 누는 손에 잡히는 일감이란 일감은 무엇이 되었든 안 가리고 전부 잡아먹었다.
광고 영상.
쇼트 무비.
여기에 특수효과 하청까지도.
공격적인 확장에 확장을 거듭해서 몇 년 사이 규모를 10배로 불렸다.
그 성장 속도가 흡사 스타트업의 정수를 보는 듯했다.
“대단하더라고요. 스튜디오 누는 작년에만 시상식을 네 개나 쓸어 갔죠. 그것도 전부 다른 분야로요.”
“전부 이쪽 친구 덕분입니다.”
오중기 대표가 김보균 공동 대표의 어깨를 두드렸다.
예나 지금이나 표정이 딱딱한 사람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자기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듯했으며.
또한.
“……지난번에는 면목이 없었습니다.”
부끄러워하는 듯했다.
“어떤 게요?”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되물으려니, 그는 아예 시선까지 피하며 말했다.
“한영 씨 일을 받기 싫다고 그랬던 게, 지금 보면 워낙 철딱서니가 없었어서…… 그때는 제가 자존심이 이상하게.”
아, 그랬었나.
내 코앞에서 대놓고 면박을 줬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까 이 사람 설득해 보겠다고 공연까지 열기도 했었지.
마침 그러다가 당시 숲 뮤직 소속이었던 유리도 만났고.
나는 묘한 그리움에 잠겨서 중얼거렸다.
“다 추억이네요.”
“…….”
“지금도 제가 부끄러우시다거나, 그러진 않으시죠?”
“…….”
말을 하면 할수록 김보균의 몸이 기이하게 배배 꼬였다. 마치 용수철이 눌리는 것처럼, 그의 몸이 정면으로 접혔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놀리면 못 버티고 뛰쳐나가겠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이러는 걸 보고 있으려니 썩 우스꽝스럽다.
슬슬 농담은 이 정도면 됐다는 걸 느끼며 말했다.
“어찌 됐든, 이번 작품에 지원해 주셔서 고마워요.”
“예, 개인적으로 보답이자 설욕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기소침해져 있던 김보균이 눈빛을 번쩍 빛냈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으실 예정이라고.”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사실,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라고 큰 상관 없어요. 방향이 어떻게 되었든 제 새 앨범에 화제성만 챙길 수 있으면 돼요.”
“화제성이라.”
김보균은 잠시 고민하려는 건지 야인처럼 자란 턱수염을 긁적였다.
그러더니.
무언가 떠올렸다는 듯 말했다.
“제 대학 시절 은사님께서 하신 말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호기심이 떠오른 순간.
그가 이 세상에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똥을 싸라. 그럼 유명해질 것이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