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3
23화
전생의 나는 세 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정식으로 내놓은 곡의 숫자만 총 서른한 곡.
무엇 하나 소중하기 짝이 없는 곡들이지만, 그중에서도 각별하게 좋아하는 곡들이 몇 개 있었다.
[소년의 일기] 또한 그런 곡 중 하나였다.“열여섯 어리지만 빛나는 나이. 나는 고래만큼 커다란 꿈을 꿨죠.”
내가 가사를 지을 때면 언제나 한 가지 신념을 담고는 했다.
바로, 이야기를 담는 것이었다.
꼭 내가 겪은 일이 아니더라도 좋다.
그저, 내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가사 속에 투명하게 담고 싶었다.
그래야 내 노래에도 울림이 담기리라고 믿었다.
“선생님이 되어 칠판을 두드리고 싶어. 오늘 밤 파일럿이 되어 지평선 저 너머로 날아가고 싶어.”
이 곡의 컨셉은 그러했다.
설레발.
한 사람이 미래를 꿈꿀 때, 혼자 마음속에 품고는 하는 설레발을 가사로 나타내고자 했다.
‘설레발은 부끄러우면서도 가슴이 설레지. 풋풋할 때만 가질 수 있는 감성이다.’
어린 내가 고아원에서 본 또래들은 저마다 자그마한 설레발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다.
꿈이라는 것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바뀌어 간다.
그러니, 어린 소년들의 꿈은 그 나이이기에 가능했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나를 기다릴까.”
이 노래에는 그런 감성을 담았다.
흔히, 이 노래를 두고 사람들은 내가 소년의 감성으로 작곡했다고 평했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소년 시절에 만든 곡이 맞으니.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비밀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정작 나는 설레발을 품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노래는 철저하게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본 노래였다.
‘나도 남들처럼 설레발을 느껴 보고 싶었지.’
그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내가 성장해 훗날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노래로 만들어서 내 것으로 만들려 했다.
이 곡, [소년의 일기]는 그 결과물이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그들의 마음으로 그려 보았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나를 기다릴까.”
즐겁다.
짧은 기간이지만 발성 레슨을 받은 덕분일까, 편법 없이도 아슬아슬하게 음역이 소화되었다.
다소 가벼워진 목소리가 천천히 흘러나왔다.
전생의 무거웠던 내 목소리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만지는 재미가 있는 소리였다.
‘목소리를 가볍게 낼수록 다룰 수 있는 표현의 폭이 넓어진다고 했나.’
선생의 말에 의하면, 발성이란 지극히 상대적인 물건이라고 하였다.
평소 5의 힘으로 노래를 부르면 하이라이트에 10의 힘을 실어야 충분한 대비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2의 힘으로 노래를 불렀다면 중요한 순간에 3 혹은 4 정도로도 충분한 파괴력을 낼 수 있다고 하였다.
‘나 때는 목소리를 최대한 힘차게, 진하게 뽑는 게 유행이었는데,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네.’
신기한 일이다.
나는 노래를 부르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타당, 탕.
테일러 기타가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소리를 뱉는데, 이것도 예전의 내 연주와는 조금 달랐다.
최근 들어, 내가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가볍게 내는 만큼 기타 연주도 가볍게 가져갈 수 있다.’
전체적으로 힘을 뺀다.
목소리의 힘을 빼니 기타에서도 힘을 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곡이 가벼워진다는 말은 아니었다.
곡 자체의 힘은 강해졌다.
그저, 듣기 편해졌다.
발성을 개선했을 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기타 연주의 개선으로마저 이어졌다.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잠든다.”
어느덧 한 곡이 끝났다.
그리고 희미하게 눈앞을 바라봤을 때, 그곳에는 OB들이 온통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느낌이 좋다.
나는 씨익 웃으면서 다음 곡을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이젠 아예 한윤태 사장이 뚫어지도록 여길 바라보고 있었다.
“김한석의 곡입니다.”
* * *
한윤태 사장은 지금 기묘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이걸 데자뷰라고 하던가.
아니면 향수라고 하던가.
지금 눈앞의 어린 학생에게서 그것이 느껴졌다.
‘김한석이랑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게 이 말이었나.’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무슨 말인가 했더니마는.
그는 바보가 아니다.
저 스타일이라는 게 외모가 아닌 음악 스타일을 말하는 것이라는 사실 정도야 당연히 알았다.
그저, 알면서도 말을 흘렸다.
왜냐.
어중간하게 김한석을 카피하는 사람을 보면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더라도 속으로는 은근히 싫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저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기타 좀 친다고 자기가 김한석 스타일이라고 하니 흔한 애송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무대가 달랐다.
‘확실히 비슷하네.’
사실, 따지고 보면 많이 달랐다.
손가락은 길고 목소리는 훨씬 부드럽다.
힘이 많이 빠졌다.
닮은 구석이라고는 나이에 비해서 많이 좋은 연주 실력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학생의 무대에서는 김한석의 그것이 연상되었다.
‘이유가 뭐지?’
마치 환영이 겹쳐 보이는 듯했다.
눈을 감고 듣는다면 순간적으로 착각했을지도 몰랐다.
그가 아는 김한석은 성격이 몹시 더러웠으며 생긴 것도 평범했다.
기타리스트라고 보기에는 다소 아쉬울 정도로 작은 몸집부터가 그러했다.
덩치도 작은 게 자신감은 엄청나고, 할 말 못 할 말을 잘 안 가리니 시비를 걸리는 일도 많았다.
덕분에 그가 중재한다고 얼마나 고생했던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윤태는 김한석을 가까이했다.
다름 아닌, 음악 때문이었다.
‘그 녀석의 음악에는 진심이 녹아 있었지.’
평소 대화할 때는 진심 한마디도 못 뱉는 녀석이, 무대 위에만 오르면 그 누구보다도 솔직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은근히 짜증 나다가도 녀석의 무대만 보면 기분이 풀리고는 했다.
그 시절이 떠올랐다.
눈앞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그 무대가 떠올랐다.
‘갑자기 울적해지네.’
김한석을 떠나보낸 게 벌써 30년이나 지났다.
그게 괜히 신경 쓰여서 카페에 김한석의 노래를 틀어놓을 때가 잘 없었다.
“……후우.”
무대를 가만히 보고 있기를 잠시, 한윤태는 선반에서 양주 하나를 꺼냈다.
기분 좋은 날에 마시려고 아껴두었던 물건이었다.
아무래도 오늘이 그날인 듯했다.
꿀꺽.
간신히 한 모금 마신 뒤 한윤태는 짧은 기침을 뱉었다.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네.’
* * *
공연이 끝났다.
그리고.
“이야, 올해 농사는 아주 대박이 났네.”
왁자지껄해졌다.
“어디서 이런 애가 들어왔대?”
“진짜 장난이 아니더라. 어디 실용음악과 전공한 애 아냐? 너 편입생이지?”
“긴장한 것 좀 봐.”
선배들이 껄껄 웃으며 내 등을 두드렸다.
팡! 팡!
악, 아프다.
그만 때려라.
퍽!
지금 주먹으로 두드린 사람 누구야.
따질 틈도 없이 선배들은 자기들 할 말만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나는 무슨 콘서트 온 줄 알았다.”
“진짜로 어지간한 가수보다 더 나은데?”
“이거 신입생 아니라니까.”
“내가 이만큼 잘 쳤으면 이미 자퇴했다.”
칭찬이 과해지다 못해 별 해괴한 칭찬이 다 쏟아지려는데, 난데없이 조은솔이 입을 열었다.
“그만 좀 하세요. 애가 부담스러워하잖아요. 얼굴이 죽을상이 된 것 좀 보세요.”
오.
드디어 선배로서의 위엄을 보여 주는구나.
그렇게 생각한 참이었다.
“누가 뽑은 신입인데 당연하죠.”
“…….”
“제가 손수 공들이고 심혈을 기울여 정성스럽게 뽑은 신입한테 함부로 하지 마세요.”
시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거,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오디션을 정성스럽게 볼 수 있는 겁니까.
아니, 그보다.
‘휴먼, 왜 당신이 자랑스러워하세요?’
그녀는 선배들이 나를 두고 하는 칭찬이 꼭 본인을 두고 하는 칭찬인 양 으쓱했다.
어처구니가 없으려니 한 선배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은솔아, 우리가 잘못했다.”
“반성하세요.”
“우리가 잘못했다. 사과할게. 미안하다.”
이 양반들 좀 보소.
사과를 왜 내가 아니라 조은솔한테 해.
어이가 없으려니 가까이 온 이들의 얼굴이 살짝 붉게 달아오른 게 보였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사이에 취했구나.’
어쩐지 묘하게 신나셨나 했더니.
“…….”
나는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그냥 말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조금 휘둘리는 감은 있지만, 사랑받는 후배가 되었다는 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한 번 봐줬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옆에서 기묘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히히히.”
고희범이었다.
친구야, 너는 왜 그렇게 신났니.
“한영아, 이거 느낌 왔다. 개꿀!”
아하.
돈 벌 생각에 신난 거구나.
게다가 붉게 달아오른 귀를 보니 이 녀석도 선배들 틈바구니에서 한잔 걸친 모양이었다.
‘이 자식, 팅에 안 들어온다 뭐다 하더니마는 그 누구보다도 동아리를 즐기고 있잖아…….’
어처구니가 없는 놈이다.
아무튼, 나는 분위기가 적당히 가라앉을 때까지 커피만 홀짝이다가 말했다.
“저기, 형님, 한 가지만 여쭤도 될까요?”
“오, 뭐든 물어봐.”
“네,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뭐야, 다음 주에 국단대학교 애들이랑 교류회가 있거든요. 그쪽 동아리 이름이 트레몰로라고 했나?”
그 순간이었다.
시끌벅적하던 선배들이 갑작스럽게 조용해졌다.
“…….”
“…….”
아무런 말도 없다.
조금 전까지 들떠서 시끌벅적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종이에 빈 구멍이 뚫린 듯 이질감이 느껴지는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은근히 콤플렉스가 있긴 했구나.’
그만큼 국단대학교가 이들에게는 민감한 이야기였나 보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다음 한 마디를 뱉었다.
“그쪽 실력이 좀 괜찮다고 들었는데요.”
“음…… 그쪽이 조금 그렇지.”
OB 중 한 명, 큰형님이 입을 열었다.
“교류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들었어?”
“음.”
고민하기를 잠시.
나는 조은솔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망신을 좀 자주 당했다는 정도요.”
“…… 야!”
조은솔이 식겁해서 말리려는데, 큰형님이 다시 그녀를 저지하며 말했다.
“은솔아, 됐어.”
“오빠.”
“뭐, 따지고 보면 딱히 틀린 말이 아니기는 하잖아?”
그는 멋쩍은 듯 목을 긁적이더니 말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학교도 대학교 동아리 수준에서는 꽤 나쁘지 않은 편이거든. 대학교 연합 행사에서 꿀릴 것도 없고.”
“국단대학교는 조금 다른가 봐요.”
“거기는 이미 프로급이라고 봐도 좋을 애들이 자갈처럼 굴러다니니까.”
“프로급이요?”
“한국예술원이나 한양예대 같은 진짜 천재들만 가는 곳을 제외하면, 거기가 실용음악과 중에서는 탑이라고 봐야겠지.”
이건 안 그래도 인터넷에서 확인했다.
한국대는 학문적인 취지로 음대를 유지하니까 제외하고.
대중 예술로서 실용음악을 취급하는 학교 중에서는 한국예술원이 최고.
그다음이 이인자 격인 한양예대.
그 뒤를 잇는 게 국단대학교라고 했던가.
‘실용음악과 중에서는 흔치 않게 종합 대학 산하라서 경쟁률이 엄청나게 센 편이라고 했지.’
국단대학교 실용음악과 입시 경쟁률은 무려 200대 1을 넘긴다고 했나.
그렇게 뽑힌 학생들이 한두 명만 트레몰로에 들어가더라도 이미 레벨이 다를 수밖에.
“사실, 거기는 일반적인 동아리라고 보기도 어려워. 전직 프로 선수가 섞인 축구 동아리 느낌이라고 하면 좀 이해하기 쉬울까?”
프로 선수가 섞인 축구 동아리라.
그렇게 말하니 체감이 확 와닿았다.
‘확실히 일반적인 동아리 수준에서는 경쟁하기 힘들겠네.’
오히려 어떻게든 교류회를 이어나가고 있는 팅이 이상한 것이리라.
극단적인 실력 차이가 나면 자괴감이 느껴지기 마련인데, 질리지도 않고 매년 교류회를 이어나간다니.
단순히 전통이니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다소 멍청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왜 굳이 사서 망신을 당하나.
그래서 그게 내 눈에 어떻게 비치는가 하면.
‘맘에 드네.’
지극히 마음에 들었다.
임대경이 내게 경쟁심을 불태우며 수없이 도전했듯, 팅은 트레몰로에게 도전했다.
실력이야 둘째치고 마음가짐만큼은 칭찬받아 마땅했다.
“그러면요.”
나는 새삼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저랑 그쪽을 비교하면 어떨까요?”
“흐음.”
큰형님이 입을 열었다.
“글쎄.”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