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에필로그 #2
“왜 굳이 그랬어?”
“뭐가요?”
“알면서 물어보네.”
조은솔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왜 부캐를 팠냐는 말이야. 저거, 카이라는 캐릭터 있잖아.”
“음, 카이 말이네요.”
카이.
내가 익명으로 활동을 시작하며 만든 가상의 캐릭터였다.
파란 머리에 검은 라이더 슈트를 입고 있다.
종족은 청호족.
분노하면 눈빛이 빨간색으로 달아오른다.
……라는 건 홍윤서가 만든 설정이고, 내가 굳이 저 인두겁을 뒤집어쓴 이유는 이러했다.
“누나가 말했잖아요. 김한영이라는 뮤지션은 김한석이 존재했기에 성립할 수 있었던 거라고.”
“그렇지? 아무래도 둘을 떼어 놓을 수는 없으니까.”
“맞아요. 제가 뭘 하든 김한영을 분리해서 보기는 어렵겠죠.”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카이]가 그려진 판넬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분리한다면 어떻게 될까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
그렇다.
카이라는 캐릭터 또한 내가 이 시장에 던질 수 있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왜, 지금이니까 가수의 비주얼이나 목소리나 그런 게 중요하지.
당장 십몇 년만 지나면 메타버스니 뭐니 하면서 가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주류가 될지 누가 아는 일인가.
“덕분에 김한영 명의로는 다루기 어려웠을 음악도 잔뜩 하고 있고요. 랩이나 일본 애니송이나 하는 것들.”
“네가 그런 거 눈치를 봤나? 그냥 하면 되지 않아?”
“할 수는 있죠. 하지만 사람들이 순수히 곡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김한영이라는 선입견을 씌워 둔 상태에서 들었겠죠?”
“그것도 그래.”
“무엇보다도.”
나는 말을 잠시 뜸을 들이고는, 고개를 돌려 홍윤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윤서 형이 하는 게 재밌어 보이기도 했고.”
“……그 여자 캐릭터로 활동하는 거?”
성민아가 눈가를 씰룩거리더니 바퀴벌레를 보듯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야, 민아야, 사람 상처받게 왜 그러냐. 나한테도 순정이라는 게 있다.”
“오빠가 저한테 먼저 상처를 줬잖아요.”
“나는 상처받으라고 한 일 아니거든!”
홍윤서는 발끈한 눈치다.
하지만 저건 어디까지나 자업자득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 버튜버라는 건 나보다 홍윤서가 한발 앞서서 시작한 건데, 그는 무려 분홍 머리 여자 캐릭터 흉내를 냈으니까.
‘두렵다.’
방송에서 골반을 좌우로 퉁기며 제로투 댄스를 추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버렸다.
탁.
신속히 관자놀이를 타격해서 기억을 제거했다.
‘큰일 날 뻔했네. 뇌가 썩을 뻔했어.’
한숨을 돌리려니 김예담이 입을 열었다.
“요한이가 한몫했다면서.”
“딱히요.”
그 말에 옆자리에 앉은 공요한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평소 박혀 살던 집구석에서 나와, 아예 작업실 옆 건물에 자리를 튼 그였다.
“전 그냥 목소리 변조만 조금 도와줬죠. 나머지는 한영 씨가 알아서 한 거예요.”
“그래? 근데 왜 너희들은 서로 반말 안 해? 나이도 비슷하지 않나? 한영아, 뭐라고 말 좀 해 봐.”
“원래 만남이라는 건 시작이 중요하죠.”
사람이라는 게 처음에 어떻게 만나는가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팅 식구들도 그렇다.
대학생 때 만났으니까 이렇게 서로 허물이 없지, 내가 어느 정도 뜬 상태에서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거리감이 느껴졌겠지.’
왜, 그 친근했던 김진산 사장조차 아직 찾아가면 은근히 선을 긋지 않나.
‘마음의 벽이 덜 열린 거지.’
그래도 말동무 정도는 아닌 척 받아 주는 걸 보면, 같이 술 한잔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다다랐다.
“근데 카이가 확실히 편하긴 해. 한영이는 막 굴리기 좀 그런데, 카이는 굴리기 편하잖아.”
대학을 휴학하고 전업 편집자로 직종을 변경한 고희범은 내 부캐를 두고 어떻게 다룰지 즐거워하고 있으며.
“이거 나중에 공개하면 팬들 깜짝 놀라겠지?”
“마시멜로처럼요?”
“어? 마시멜로 정체 공개했어?”
“원래부터 그럭저럭 잘나가는 DJ였다던데요? 다 알아요. 본인도 이제 안 숨기고 농담거리로 쓰던데요.”
“으…… 분해.”
한편, 조은솔은 대학원에서 최근 석박사 통합 과정을 밟고 있는데.
“나중에 한영이 정신상태로 논문 하나 내야겠다.”
논문 주제를 두고 이런저런 방향을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참, 민아 이번에 싱글 낸다며. 네온 엔터랑 같이.”
“패키지 업체 고민하고 있어요.”
“후후, 민아는 언젠가 이렇게 될 것 같기는 했어.”
“저 아직 완전히 정한 거 아니거든요.”
성민아는 최근에 아예 음악으로 방향을 고치고, 앨범 작업에 열두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학업과 음악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더니, 이제 아예 마음을 굳힌 모양.
“야, 김한영.”
“왜.”
“고맙다고.”
왜 갑자기 감사 인사를 하는지 모르겠네.
원래부터 말주변이 모자란 편이었니, 이번에도 그런 셈 치기로 했다.
홍윤서는.
“야, 한영아, 여기 면접 보러 온 사람들 좀 봐라. 스펙 개쩐다. 와, 이런 사람들이 나한테 면접을 봐야 한다니.”
“세상이 말세네요…….”
“왜?”
“저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입사했더니 부사장이 방구석에서 제로투 댄스…….”
“야!”
직함 상 부사장을 맡게 됐다.
[KHY 컴퍼니]의 부사장.말이 부사장이지, 다 수평적인 관계라서 위아래는 없다시피 하지만 말이다.
“의선이는?”
“요즘 로스쿨 준비한다고 바쁘대요.”
정의선은 원래부터 존재감이 희미했는데, 로스쿨 준비한다며 아예 증발해 버렸고.
노력해 보니 실없이 웃는 얼굴이 아슬아슬하게 떠올랐다.
“참, 나 독일 쪽 차트 20위 올라갔다.”
예담이 누나는 유럽에서 좋은 반응을 얻다 못해, 기록을 세워 버렸다.
내친김에 아예 그쪽에 터를 잡고 국악 교육기관을 만들 생각을 하는 듯했다.
한편.
“선우는?”
임선우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그간 우리 작업실 내에서 금기에 가까웠던 이야기였다.
민감한 이름에 식구들이 은근히 말을 아끼며 분위기를 보는 사이, 내가 입을 열었다.
“슬슬 작업한다던데요. 조만간 싱글로 음원 하나 낼 수도 있겠네요.”
“……반발이 많겠지?”
“네.”
본인은 무고하다지만, 범죄자의 아들이라는 게 그리 좋은 타이틀은 아니리라.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도와줘야죠.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조금 그렇더라도.”
이 정도는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꾸준히 대화를 나눈 끝에, 조금이나마 서로를 다시 이해할 수 있게.
누구나 다 사정은 있는 거니까.
영원히 미움받아야 할 사람은 드물다.
또 본인 말에 의하면.
[이제 아버지 영향이 없으니까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YTG에서 해방되어 홀로 선 게 오히려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나 솔직히, 임선우 주니어라는 말 싫었거든. YTG의 황태자라는 말도 싫었고.]YTG가 그의 든든한 뒷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오히려 그를 억죄는 족쇄가 아니었을까.
역시 사람은 까 보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다.
‘조만간 차트에서 다시 맞붙을지도 모르겠네.’
자유로워졌으니 음악도 자유로워졌을 것이다.
한층 더 강해졌겠지.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상념에 취해 있으려니 조은솔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참, 윤태 사장님은?”
“이번에 지점 낸다고 바쁘셔요.”
“지점?”
조은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짜?”
“네, 얼마 전에 놀러 갔다가 이야기 들었는데요. 홍대입구역 코앞에 엄청나게 크게 하나 차리려나 보더라고요.”
그렇다.
한윤태는 [플러그인] 2호점을 차린다고 정신이 없었다.
“요즘 핫플레이스라고 장사가 엄청 잘되나 봐요.”
내가 싱어송라이터 컨셉으로 뜨고 나자, 날 추종하며 비슷하게 음악을 해 보겠다는 사람이 전국적으로 속출한 탓이었다.
플러그인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와 나눴던 대화가 그대로 이루어졌다.
[당장 내일 싱어송라이터 붐이 터지면 여기도 손님이 넘쳐흐를지 또 알아? 언제 어떤 음악이 뜰지는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너희 같은 사람들이 좀 열심히 해 줘야 한단 말이야.]축하한다.
넘쳐흐르게 됐네.
그게 좀 과했다 보니, 요즘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장사할 때 일손이 모자랄 지경이라나.
‘그동안 고생한 걸 한 방에 돌려받네.’
하지만 이번 열풍이 과연 언제까지 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단다.
힘내라, 한윤태.
그래도 요즘 들어 함재원(기타리스트)이 간혹 방문해서는 도와주고 있다는 게 다행인 일이었다.
‘은근 삐딱선 타는 것 같으면서도 정이 있다니까.’
장서균(옛 후배, 장서균 음악 경연 대회의 개최자)도 플러그인에서 행사를 자주 연다고 하고.
플러그인의 미래는 장밋빛까지는 아니더라도, 핏빛도 아닌 듯했다.
그들을 생각하고 있으려니 고희범이 재차 물었다.
“부사장님도 같이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한영아, 뭐 아는 거 없냐?”
“대표님, 요즘 미국 출장 가셔서 바쁘시다더라. 요즘 한국 거의 안 오신다던데.”
강도수 대표님은 네온 엔터 해외 업무 관리로 바쁜 모양이었다.
또 누구 있더라.
‘잘됐네, 잘 됐어.’
이래저래 나도 너도 우리도 쟤네도 다 잘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내가 잘됐다는 게 가장 잘된 일이고.
암, 그럼.
옛말에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하지 않았나.
내가 내 한 몸을 잘 관리해야 이 지구도 우뚝 서는 법이다.
그렇게 대충 근황 풀이는 다 했다는 생각에 생수를 홀짝거리는 찰나였다.
“참.”
조은솔이 뭔가 궁금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근데 한영이는 저 기타 언제까지 쓸 거야?”
“아.”
“저거 팅에서 임대한 건데, 학교에 도로 안 가져다 둬도 되나? 이거 횡령인데.”
“…….”
아, 저 기타.
학교 축제 때 동아리 선배한테 40만 원 주고 매입한 테일러 기타.
‘생각해 보니까 아직 내 거 아니었구나.’
뒤늦게 깨달았다.
저거 생각해 보면 아직 팅의 비품을 내가 빌려서 쓰고 있는 상황인데, 어쩌다 보니까 휴학하고도 쭉 쓰고 있었다.
‘음.’
어쩌지.
내가 정식으로 매입하는 게 맞을까.
하지만 그건 뭔가 좀 아닌데.
뭔가 좀 아닌데.
‘동아리 물건을 돈 주고 사는 건 그림이 좀 이상한데.’
돈이 없는 건 아닌데, 묘하게 싫다.
공짜로 쓸 수 있는 걸 내가 왜 돈까지 줘 가며 써야 하나.
‘이 오묘한 기분은 대체 뭘까.’
처음부터 지적이 안 나왔더라면, 할 필요도 없었을 고민이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순간 결론짓기 전까지는 멈출 수 없다.
공짜로 쓰고 싶다.
아니, 지금까지 써 왔으니까, 앞으로도 공짜로 써야겠다.
어떻게든 공짜로 쓰고야 말겠다.
‘참, 이 방법이 있었네.’
나는 왼쪽 두뇌와 오른쪽 두뇌를 한껏 짜내 나름의 결과를 도출해 낸 뒤 말했다.
“학교에 건물 하나 세워 주는 대신, 거기에서 동아리실이랑 비품을 임대해서 쓴다는 컨셉은 어떨까?”
“……건물 하나?”
고희범이 눈가를 꿈틀거렸다.
“건물을 세워 준다고?”
“응, 건물.”
“이 무자식아?”
저 눈빛 저거, 익숙한 눈빛이다.
하지만 나는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올 사람이기에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학교에 기부 많이 하면 건물에 개인 사무실 내주고 그러잖아. 무슨 무슨 라운지라면서. 건물 하나 세워 주면 동아리 하나 정도는 내 맘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한영아, 돈은 어떻게 쓰는 네 맘이기는 한데. 솔직히 말해서 그냥 돈 주고 새 걸로 하나 사는 게.”
“새 거는 길들이기 귀찮아.”
“그럼 쓰던 거 돈 주고 사.”
“건물 하나만 세워 주면 공짜로 쓸 수 있는데 내가 왜?”
“…….”
고희범의 말문이 막혔다.
논리적으로 허점을 찾지 못한 탓이겠지.
좋아, 결정했다.
중경대학교에 건물 하나 세워야지.
이 기타는 내가 명예 회원 자격으로 영구 임대해야겠고.
청사진을 펼치고 있으려니 아이디어가 하나 더 떠올렸다.
“아, 생각난 김에 명예 학위도 덤으로 하나 달라고 할까.”
“잠깐, 한영아, 그건 아니야.”
조은솔이 급하게 가로막았다.
“학위라는 건 그렇게 쉽게 딸 수 있는 물건이 되어서는 안 돼.”
“네?”
“넌 지금까지의 내 삶을 모욕했어.”
“네?”
조은솔이 급발진한다 싶은데 김예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건 선 넘었지.”
“제가요?”
“한영아, 사람이라면 감히 해서는 안 될 게 있는 법이란다.”
내가 그랬나?
혼란스럽네.
영문을 모르겠는데 홍윤서도 말했다.
“어우, 저거 진짜 남 마음도 생각 안 하고 말 함부로 하는 것 좀 봐라. 희범아, 저런 게 네 사장이다.”
“어쩌겠습니까. 현명하고 착한 제가 참아야지.”
저 사람들은 또 왜 저러나.
아무튼.
팅은 앞으로도 이렇게 굴러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 사는 음악천재
진짜로 완(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