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4
24화
“글쎄.”
큰형님은 확답을 내리지 못하고 잠시 주저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주저할 정도인가.
일개 대학교 동아리가 나와 비견될 수준이라는 데 일견 놀라려니 그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네 실력이 괜찮기는 해. 우리도 깜짝 놀랐어. 평균적인 트레몰로 부원이랑 비교하자면 네가 훨씬 더 낫겠지.”
호평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비수를 숨긴 말이기도 하였다.
‘평균이라. 어디까지나 평균보다는 낫다는 말이군.’
나는 그 부분을 강조하듯 물었다.
“그럼 트레몰로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랑 비교한다면요?”
“그러니까, 이게 조금 장담하기 어려운 부분이야.”
큰형님은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딱히 네 실력이 별로라는 말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형님 말씀은 전부 달게 듣습니다.”
“말은 잘해요. 아무튼, 네가 궁금해하는 부분에 대한 정답을 말하자면.”
그는 헛기침을 뱉더니 말했다.
“나도 몰라.”
“…….”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굳었다.
분위기만 잔뜩 잡더니 자기도 모른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이야.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은데 그가 말을 이었다.
“그 누구야, 한영아, 너 혹시 심규홍이라는 가수 알아?”
“방송에서 본 것 같아요.”
심규홍이라.
나도 몇 번 들어본 이름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TOP 8까지 올라가고 이후 2인조 듀오로 데뷔하더니, 차트 역주행으로 유명해졌다.
‘실력이 꽤 괜찮았던 것 같은데.’
나는 근래 들어 현대식 발성의 위대함을 실감하고 있는데, 심규홍은 그러한 발성법의 대표주자라고 말해도 좋았다.
압도적인 발성을 바탕으로 어떤 노래든 편안하게 소화하는 사람.
‘학원에서도 심규홍 발성은 아주 극찬을 했지.’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비평도 많지만, 이미 발성에서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하고도 남는 부분이 있었다.
“그 사람이 왜요?”
내가 그 목소리를 떠올리며 물어본 찰나였다.
“걔가 트레몰로 출신이야.”
“…….”
좀 무거운 대답이 떨어졌다.
큰형님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머쓱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심규홍만 그런 게 아니야. 트레몰로에는 프로 지망생이 꽤 많거든. 아예 학부생 때 프로가 되는 사람도 많고. 애초에 실용음악과는 학부를 다니는 도중에 데뷔하고 휴학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그는 한 차례 뜸을 들이더니, 곁눈질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알겠지?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야.”
그렇군.
설명을 듣고 있자니, 트레몰로의 특징을 대충 알 것도 같았다.
‘천장이 없군.’
트레몰로의 실력에는 상한선이 없었다.
동아리 자체가 반쯤 프로의 영역에 걸쳐 있다 보니, 그 실력이 천차만별인 듯했다.
당연히 일반인 수준으로는 범접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 달로는 부족합니다.]JEM 발성 학원의 장영민 원장이 했던 말이 있었다.
[아예 초심자라면 소리를 내는 법만 가르쳐도 단기간에 큰 성취를 거둘 수 있지만, 프로의 영역을 노린다면 목 자체의 강화도 필요합니다. 성악 발성에서는 이 과정에만 10년을 투자하기도 하지요. 표현력과는 별개의 영역입니다.]나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사이에는 시간의 벽이 꽤 두꺼웠다.
나는 연이어 물었다.
“혹시, 그쪽에서 많이 연주하는 곡이라면 어떨 게 있을까요?”
“트레몰로에서?”
“네.”
큰형님이 의아해하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쪽 동아리의 성향을 좀 알면 갈피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잖아요.”
“성향이라…… 그쪽에 학생이 한둘이 아니라서.”
그렇게 회의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순간이었다.
“아.”
줄곧 가만히 있던 여자 선배 한 명이 뭔가 떠올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까 거기 신입생 중에 괴물이 하나 있다던데?”
“괴물이요?”
솔깃해서 물어보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거기 애 중 한 명이랑 친한데, 동아리에 월척이 들어왔다면서 난리였거든. 갑자기 연락해서 막 자랑했다니까.”
“그게 누구길래요?”
“그 뭐야, 임대경 알지?”
“YTG 엔터 대표요. 그리고 국단대학교에 투자 엄청 많이 한 사람.”
“그래.”
그 다음 순간이었다.
그녀는 씨익 웃더니 말했다.
“그 사람 아들이야.”
“신입생이 임대경 아들이라고요?”
“응.”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눈을 크게 떴는데 그녀가 말을 이었다.
“마침 올해 대학교에 입학했다고 했거든. 그것도 자기 부모 따라서 국단대학교에. 트레몰로에 들어간 것도 자기 부모 따라서 들어간 거 아닐까? 임대경도 트레몰로 출신이잖아.”
그 순간 나는 그녀가 말하려는 바를 깨달았다.
“자기 부모 성향을 배웠을 수도 있겠네요.”
“응, 걔가 어려서부터 음악 영재로 유명했다더라. 자기 아빠 노래를 그렇게 잘 부른다나. 오죽하면 별명이 임대경 주니어잖아. 자기 부모한테 재능 물려받았으면 어지간하지 않을까?”
그 말을 들은 순간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임대경이랑 취향이 비슷하다 이거지?’
임대경이라면 이미 전생에 몇 번이고 이겨 보지 않았던가.
그 자식이라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게 꼭 해답이 될지는 모르겠다만, 한 번쯤 시도해 볼 만은 했다.
‘재밌네. 여기까지 찾아온 보람이 생겼어.’
의도치 않게 정보 하나를 얻었다.
그렇게 조금이나마 만족한 순간이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까 이 가게에 찾아와서 얻은 의도치 않은 소득이 하나 더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윤태는 지금 뭐 하고 있지?’
그렇다.
줄곧 시끄러웠던 한윤태 사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놈이 조용할 사람이 아닌데.
고개를 돌려서 가게 안을 둘러본 순간이었다.
계산대에서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엎드린 채로 잠들어 있었다.
얘, 술 마셨나.
술도 더럽게 못 마시는 애가.
‘할 이야기가 좀 있었는데.’
* * *
OB 동창회는 그렇게 끝났다.
“그럼 우리는 먼저 들어갈게. 내일도 출근해야 해서.”
“사장님 부탁해.”
“또 보자. 다음에 또 공연 있으면 부를 테니까 놀러 와.”
선배들은 먼저 자리를 떠났고, 함께 온 식구들도 각자 일정이 있는지 돌아갔다.
“얼른 가서 편집하고 올려야겠다.”
특히 고희범은 얼굴이 희희낙락한 것이 어지간히 신난 눈치였다.
참 알기 쉽다.
그리고 나는 가게에 남았다.
“괜찮겠어?”
조은솔이 조금 걱정된다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 한 명은 남아서 봐 드려야죠. 여기 알바생도 없는데.”
“저녁에 가족 일만 없었으면 나도 같이 있는 건데.”
“괜찮아요.”
“응, 그럼 내일 학교에서 보자.”
그녀마저 떠나자, 가게에는 끝내 나 혼자만 남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한윤태 사장과 이야기를 한번 나눠보고 싶다는 이유였다.
왜, 그래도 옛 인연 아닌가.
짧게나마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저쪽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한윤태에게 찔리는 구석이 많았다.
전생에 나름 잘해줬다고는 생각하는데, 워낙 속을 벅벅 긁지 않았던가.
내심 그가 나를 싫어하면 어쩌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에이, 그래도 설마 내 악기까지 가게에 소장하고 있는데.’
저게 내가 친구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냥 김한석의 악기라서 그런 걸까.
복잡한 심경으로 앉아서 기다리는 순간이었다.
“드르렁…… 흡! 쿨럭! 쿨럭!”
“앗, 씨, 깜짝이야!”
사장님이 혼자 기침을 하더니 갑작스레 깨어났다.
그는 사레라도 들린 듯 요란하게 숨을 토해내기를 잠시,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야, 가게가 왜 이렇게 조용해? 지금 몇 시야? 어? 너는 안 갔어?”
질문이 많다.
나는 순서대로 말했다.
“손님들 다 갔고요. 가게는 지금 닫기 직전인 것 같네요. 저는 사장님 깨어나는 거 보고 가려고 남았고요.”
“아, 그래? 그럼 나 대신 가게 봐 준 거네? 고맙다. 흐아암.”
그는 기지개를 켜더니 습관처럼 바지 위를 벅벅 긁었다.
더럽게.
참 저 습관만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안 바뀌었다.
꿀꺽꿀꺽.
“크흐! 좋다.”
그는 작은 생수병 하나를 통째로 비우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학생, 이제 가도 돼. 가게 보느라 고생 많았어. 다음에 오면 뭐라도 서비스해 줄게.”
“…….”
나는 뭐라고 대답하는 대신 그를 그냥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게 참 뭐라고 해야 하나.
꺼내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막상 이야기를 꺼낼 순간이 되니까 머릿속이 백지가 된 듯 아무런 말도 안 나왔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하지.’
내가 김한석이라고, 환생했다고 다짜고짜 말해 버릴까.
그러면 어떻게 반응할까.
미친놈 취급할까, 아니면 정신병자 취급할까.
아, 저건 카테고리가 겹치나.
아무튼, 말없이 고민하고 있으려니 한윤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야, 그러고 보니까 아까 공연하는 거 봤는데, 진짜 끝내주더라. 다시 봤다.”
“……그래요?”
한윤태가 먼저 화두를 던졌다.
마치 전생의 그 느낌을 받고 있으려니 그가 말을 이었다.
“김한석 스타일이라고 해서 솔직히 안 믿었거든.”
“왜요?”
“김한석 좋아한다고 입으로만 말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말이야. 잘해야 겉핥기고. 그런데 너는 그중에서 조금 다르더라고.”
“어떻게요?”
“그냥 달랐어. 딱 들으니까 알겠더라. 김한석 곡을 많이 듣고 연구한 것 같던데.”
그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네가 부른 곡 말이야. 소년의 일기. 그걸 제일 좋아한다고 했나?”
“그렇죠.”
“사실, 한석이도 그 곡을 제일 좋아했거든.”
“…….”
아니야.
딱히 제일 좋아하진 않았어.
“히트곡은 많지만 딱 하나만 고르라면 그걸 고르더라. 솔직히 말해서 네가 그 곡 고르는 거 보고 놀랐다. 보통은 김한석 하면 다른 곡을 더 좋아하잖아. 연어 같은 거.”
연어.
그것도 내 대표곡 중 하나였다.
내가 즐거웠던 시절로 연어처럼 돌아가고 싶다는 그런 마음을 담은 곡.
‘돌아간다라.’
그 말을 들은 순간이었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어지럽히던 고민이 사라졌다.
‘돌아가자.’
결심을 했다면 행동만이 남았다.
질질 끌 필요 없다.
언젠가 할 행동이라면, 미리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두려울 거라고는 없다.
“사실은요.”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김한석이에요.”
“……뭐?”
한윤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저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재차 말했다.
“김한석이요. 그러니까, 내가 김한석이야. 네가 말하는 김한석.”
“…….”
그러기를 한참.
분위기가 좀 잘못 꼬였나 싶은 순간 그가 입을 열었다.
“그 농담은 별로 재미없다.”
시종일관 유쾌하던 그답지 않은 목소리였다.
살짝 짜증이 섞인 목소리.
하지만 나는 재차 입을 열었다.
“제가 김한석 맞는데.”
“학생, 일절만 하는 게 좋겠다.”
한윤태가 그답지 않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죽은 사람 가지고 농담하는 게 조금 그렇네.”
“저는 진지한데…….”
“친구.”
그가 내 말을 끊더니 말했다.
“네가 얼마나 한석이를 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존경한다고 해서 그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야. 어른한테 혼나요.”
그의 농담 뒤에는 은은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말하면 당장이라도 가게에서 꺼지라고 할 것만 같은 느낌.
‘말이 안 통하네.’
하기야, 나라도 누가 대뜸 찾아와서 이런 말을 하면 안 믿겠다.
애초에 그가 내 말을 한 번에 믿으리라고 기대하고 말했던 것도 아니었고.
당연히 다른 방법을 준비해 뒀다.
나는 더 뭐라고 입으로 말하는 대신, 기타 한 자루를 가져왔다.
내가 전생에 한윤태에게 줬던 기타였다.
“야, 너 그거…….”
“잠깐만 봐요.”
그가 나를 말리려는데, 나는 그걸 손에 쥐고 입을 열었다.
“나 돌아가리.”
내 대표곡, 연어의 첫 가사였다.
그런데 흔히 알려진 그 연어가 아니었다.
“나 한 마리 연어가 되어 돌아가리.”
처음으로 연어를 만들었던 시절.
정식 음반을 내기도 한참 전, 한윤태와 함께 미사리 바닥을 굴러다닐 때 불렀던 연어였다.
“이 한 몸 불태워 갖은 아픔과 기쁨을 가지고 돌아가리. 가진 것 없지만 부족한 것도 없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리.”
“…….”
한윤태의 눈이 점차 커졌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