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5
25화
이번 생에 눈을 뜨고 줄곧 했던 생각이 있었다.
‘전생의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나름대로 나오기는 나왔다.
이미 죽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금 음악계에서 나름대로 유명해진 사람도 있었다.
또 검색해 봐야 안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만나려 하지 않았다.
내가 살아 돌아왔다고 말해 봐야 증명하기만 어렵다. 그러다가 혹시라도 신인 주제에 김한석의 이름을 사칭했다고 욕을 먹을 게 차라리 더 걱정이었다.
애초에 환생이라는 게 말도 안 되는 일 아니겠는가.
‘새로운 삶이니까 새롭게 살면 그만이지.’
그런 생각이었다.
나는 김한석이 아닌, 김한석을 좋아하는 대학생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려고 했다.
하지만 한윤태를 본 순간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한 명쯤은 인연이 닿아도 나쁠 거 없잖아.’
가족도 없이 살았다.
그렇다면 한 명 정도는 욕심을 부려도 되는 거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답답한 거 이야기할 사람 한 명 정도는 있어도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었다.
“기슭 너머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몸에 달라붙은 비늘을 털어내며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 부르고 있는 노래, 연어는 내 대표곡이었다.
누구에게나 있을 장소.
돌아갈 장소.
그것을 내 나름대로 상상해서 작곡해 보았다.
고아원에서 자라난 내게 돌아갈 장소라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뿌리라는 게 부러웠다.
그래서 이 곡을 만들었다.
조심스레 부르고 있으려면, 마치 내게도 돌아갈 장소가 있는 것만 같아 기분이 한결 나아지고는 했으니까.
‘돌아갈 장소도 방법도 없어. 그래도 사람 한 명쯤은 괜찮잖아.’
나도 내심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너라면 이 곡을 알겠지.’
연어는 내가 성인이 되기도 전에 만든 곡.
정식으로 발표하기 전까지 수년에 걸쳐 고치고 또 고쳤다.
지금 부르고 있는 건 그중에서도 극히 초반부에 불렀던 연어였다.
나를 아주 먼 옛날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이어야만 간신히 알 수 있는 연어.
또한, 내가 한윤태에게 건네는 언어였다.
“…….”
한윤태가 아니라면 못 알아먹을 언어였다.
그는 성내던 것도 잠시, 그저 말없이 내 연주를 듣고만 있었다.
“움츠러든 어깨를 펴고, 조마조마한 가슴도 펼치고 나 새로이 돌아가리라.”
어느덧 1절이 끝났다.
기타 위에 팔을 얹은 채 가만히 있으려니, 한윤태가 중얼거렸다.
“왜 그만해?”
“아까 말했잖아요.”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일 절만 하라고.”
그 말에 한윤태가 피식 웃었다.
이어서 자지러지듯 배를 붙잡고 웃었다.
“이 가사도 오래간만에 듣네. 누구한테 배웠어?”
“내가 만들었는데.”
“농담은 이만하면 됐다.”
아직도 믿을 생각이 없나 보다.
‘흐음. 그래도 분위기가 누그러진 걸 보면 믿을 여지는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은 다른 수단이 필요하다.
그 순간이었다.
아.
나는 문득 한윤태의 추억 하나가 떠올라서 입을 열었다.
“사장님, 예전에 디망쉬에서 처음 오디션 봤을 때 기억하세요?”
“그래, 내가 그랬던 때도 있었지. 어디서 들었…….”
“너무 긴장해서 가사 까먹었잖아요.”
“…….”
그 순간이었다.
한윤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나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며 연이어서 말했다.
“접수처 직원한테 고백했다가 차여서 오디션 보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또 난리였고.”
“야, 야, 잠깐만.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제가 김한석이니까요.”
오.
이거 반응이 좀 먹히는 것 같은데.
나는 속으로 낄낄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또 뭐가 있더라. 아, 그게 있었네. 레코드에서 사장님이랑 처음 미팅할 때 술 마셔서 책상 위에 토했었죠.”
“야, 잠깐.”
“그리고 김두영 옹 만날 때 초면부터 뭐라고 했더라. 나는 트로트는 음악 취급 안 한다고 했다가 나중에 사무실 찾아가서 머리 박고…….”
“그만! 그만해!”
마침내 한윤태는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한석이 맞네.”
“맞다니까.”
“…….”
그가 의심이 덜 가신 눈으로 나를 바라보길래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같이 제주도에 여행 갔을 때 흑돼지 고기라고 잘못 먹었다가 공연에…….”
“그만!”
응.
안 그래도 이제 충분한 것 같아서 그만하려고.
“부산에서 술 먹다가 팬티 바람으로 쫓겨나서…….”
“야!”
* * *
두 명만 남은 가게 안.
한윤태는 맥주 한 병을 가지고 오더니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마셔.”
“싫어.”
“왜?”
“술 마시면 노래 부를 때 안 좋아.”
“……안 낚이네.”
당연히 안 낚이지.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진짜로 김한석이라고?”
몇십 분 씩이나 검증을 거쳤으면서도 아직 모자란 눈치였다.
하지만 이제 더 뺄 것도 없다.
“그래.”
“죽었다가 살아난 거냐?”
“나도 몰라.”
나는 한윤태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교통사고가 났던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갔다가 눈을 뜨니까…….”
“살아 있었다.”
“그래, 지금 이 몸이 되어 있더라고.”
나는 내가 말하면서도 현실성이 전혀 안 느껴져서 머쓱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정신을 차린 것도 한두 달밖에 안 됐고. 그냥 음악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지.”
“왜 안 찾아왔어? 아직도 너 그리워하는 사람들 조금은 있는데.”
“말해 봤자 안 믿을 것 같아서.”
“나는 믿을 것 같고?”
“지금 믿었잖아.”
“……후우, 나는 지금도 긴가민가하다.”
그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엉덩이 긁었던 손으로 머리카락을 긁다니. 더러운 놈.
인상을 찡그리고 있으려니 그가 입을 열었다.
“죽었던 네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것도 안 믿기고, 나는 이렇게 늙었는데 너는 새파랗게 젊은 것도 안 믿기고.”
“그럼 너도 한번 죽어 봐. 혹시 알아? 너도 젊은 몸으로 환생할지.”
“나는 무교라서.”
이게 믿음의 영역이었구나.
게슴츠레 쳐다보고 있으려니 한윤태가 말했다.
“앞으로는 어쩔 생각이야?”
“뭐 어쩌기는.”
나는 품에 안은 기타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다고. 하던 음악이나 마저 해야지.”
“예전이랑 지금은 시장이 많이 변했다.”
“그게 좋은 거야.”
“네가 생각하는 거 이상일 거야. 그때는 뭐 쥐뿔도 없는 사람도 기타랑 목소리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 볼 만했잖아. 내가 그랬고, 너도 그랬고.”
대충 기억났다.
종로나 명동에 라이브 카페가 널려 있었는데, 주말만 되면 오디션에 참가하려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그중 가장 유명했던 [디망쉬]의 참가비는 100원 동전 하나.
동전 하나만 들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줄을 섰었지.
“지금 세상은 안 그래.”
한윤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말했다.
“음악을 시작하려면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소속사에서 채가서 전략적으로 키우지. 모든 환경이 갖추어진 곳에서 조각을 다듬듯 음악하는 기계로 만들어.”
“그게 나쁜 건가?”
“딱히. 그냥 옛날이랑은 출발지점이 조금 다르다는 거지. 뭐, 저것도 그냥 한 예시에 불과하고 오디션 방송에서 뜨는 가수들도 꽤 있다만.”
“나도 그렇게 못할 거 있나?”
“이게 문제야. 옛날이랑 지금은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어.”
한윤태는 내 눈을 직시하더니 말했다.
“기타 하나 들고 들이박는 건 너무 성공률이 낮아.”
나는 그 말에 피식 웃고는 말했다.
“언제는 싱어송라이터 붐이 올지도 모른다더니, 갑작스럽게 사람이 현실적으로 변했네.”
“현실적인 게 아니라 합리적인 거야.”
“차이가 뭐야?”
“내가 좀 도와줄 수 있다면 모르겠지. 너도 내심 이걸 좀 바랐겠지? 하지만 지금 난 가게 하나 유지하기도 벅차다고.”
아까 했던 말이 마냥 농담은 아닌 모양이었다.
정말로 가게 운영이 벅찬 모양.
“사람을 소개해 주기도 어렵겠지?”
“사기꾼 취급이나 안 받으면 다행이겠다. 그래도 이름은 알리기 좋겠네. 김한석의 옛 친구, 돈 벌려고 김한석 이름 석 자를 팔아먹다. 기사 제목 좋지 않냐?”
말투 자체는 유쾌하지만, 내용만 보면 회의적이기 짝이 없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한윤태를 통해서 어디에 소개를 받으려고 한들, 이게 먹힐 가능성은 작겠지.’
그의 말이 옳다.
한윤태는 내 바로 옆 지인이었으니까 내 말을 아슬아슬하게 믿어 줬던 거지, 어지간한 인간관계로는 어림도 없다.
‘애초에 그런 인맥을 기대했던 적도 없었고.’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말을 이었다.
“나도 그 정도는 알아. 생각 없이 되는 대로 들이박자는 게 아니야.”
“그럼?”
“새 술은 새 부대에 부으라는 말이 있잖아. 나도 새로운 방식을 생각해 봤지.”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인터넷 방송이라는 걸 해 보려고.”
“방송?”
“사실, 지금도 이미 하고 있어. 아까 나랑 같이 왔던 애 기억하지? 고희범이라는 애. 걔가 내 편집 맡아 주는 애야.”
내 말에 한윤태는 눈을 깜빡이더니 물었다.
“……너 돌아온 지 몇 달 됐다고 했지?”
“이제 막 한두 달.”
“그사이에 벌써 일을 벌였어?”
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데 나는 낄낄 웃고는 말을 이었다.
“해서 손해 볼 게 없는 일이라면 빨리 시작할수록 이득 아니겠어? 그래서 그런데, 뭐 하나만 부탁하자.”
“부탁? 무슨 부탁? 돈이라도 달라고? 미리 말해두겠는데, 나도 먹고 죽으려고 해도 없다.”
“누구를 속물로 아나.”
“그럼?”
한윤태가 한쪽 눈을 게슴츠레 떴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상체를 뒤틀어 가게 안을 한 차례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서 공연 좀 하려고.”
“……공연을?”
한윤태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고작 그게 전부야?”
“고작이라니. 지금 나한테 제일 중요한 게 그건데.”
“야, 우리 까놓고 말해 보자. 네 실력에 공연할 장소가 아쉬운 건 아니잖아. 어느 라이브 카페, 그러니까 요즘 라이브 클럽에 가서 공연 좀 시켜달라고 하면 안 해 줄 곳이 없을 텐데.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해도 될 테고.”
“나도 알아.”
“그런데 왜?”
“나한테 맞춰 줄 공연장이 필요해서 그래.”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여기서 방송을 할 생각이야.”
“방송?”
“공연하고, 그걸 촬영해서 올릴 거야. 사람들한테는 여기에 찾아오면 내 라이브를 볼 수 있다고 매주 유도하고.”
“생각 자체는 그럴 듯하다만…….”
의외로 한윤태는 내 생각에 큰 거부감이 없는 듯했다.
그는 턱을 긁적이더니 말했다.
“요즘 길거리 노래방이다 뭐다 시청자들 참여하는 방송이 조금 있기는 하지.”
“그러니까 바로 그게 내 말이야.”
그 다음 순간이었다.
“그런데 다 좋은데 말이야, 너 그래서 지금 구독자가 몇 명이냐.”
짧은 침묵 뒤.
나는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5천 명 정도.”
“…….”
짧은 침묵이 긴 침묵이 되었다.
한윤태의 표정이 점차 조금씩 바뀌었다.
‘이놈이 그래도 계획은 있었구나’에서 ‘그럼 그렇지’ 정도로 바뀌었다.
“아, 왜, 뭐.”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못 견뎌서 헛기침을 뱉었다.
그리고 말했다.
“옛날보다는 낫잖아.”
“옛날?”
“너랑 나랑 맨바닥 돌아다니던 시절 말이야. 그때는 노래 하나 들려주려면 별짓을 다 했어야 했는데, 지금은 내가 일단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들어줄 사람이 수천 명씩 있잖아. 온라인에.”
“수천 명은 너무 적어.”
“한 명이 내 노래를 듣고 두 명한테 소개해 주면 돼. 이렇게 딱 열 번만 하면.”
나는 물컵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1억이야.”
“…….”
잠시 뒤.
한윤태는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네가 김한석이 맞기는 한 것 같다.”
“갑자기 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철철 흘러 넘쳐서.”
“그게 나니까.”
“푸흐하하하.”
그 순간 한윤태가 웃음을 터뜨렸다.
더없이 시원시원한 웃음.
마치 가슴속에 쌓여 있던 걸 전부 토해내는 듯한 웃음이었다.
‘뭘 잘못 먹었나?’
그러기를 잠시.
한윤태는 눈가에 맺힌 물기를 닦아내며 말했다.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진짜로?”
회의적인 뉘앙스와는 정반대로 시원스레 떨어진 대답에 은근히 놀라는데, 그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그래, 어차피 여기서 잃을 게 뭐가 더 있겠냐. 이대로 늙어 죽는 것보다는 낫겠네.”
“그렇지. 늙어 죽는 것보다는 낫지.”
“…… 지 혼자 젊어졌다고 아주 말을 막 하네.”
끝까지 농담이기에 나는 피식 웃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얼굴에는 잔주름이 가득했다.
내 아버지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는데, 이미 50대니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잠시 뒤.
한윤태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래도 다시 보니까 좋다. 자주 놀러 와.”
“봐서.”
“짠 해.”
그가 맥주병을 들이밀었다.
나도 쨍 부딪쳤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병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한윤태도 마찬가지로 마시는 척만 하면서 슬쩍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씨, 안 낚이네.”
“…….”
이 친구야.
아직도 의심을 안 치웠느냐.
* * *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본격적으로 교류회 날이 다가왔다.
“와, 누나 운전도 할 줄 알아요?”
“당연하지.”
국단대학교까지는 조은솔이 차를 몰아 태워다 주었다.
물론, 캠퍼스가 걸어서 몇십 분 거리에 있는 만큼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끼익.
“여기가 음대 건물이야.”
주차장에 내려서 본 국단대학교 캠퍼스의 정경은 뭐라고 해야 할까.
부티가 철철 흘러넘쳤다.
‘돈 많이 썼다더니, 진짜로 많이 썼네.’
누가 이걸 보고 대학교 건물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이미지 하나로 먹고사는 소속사 아니랄까 봐, 학교 건물에도 아주 금칠을 해 놨다.
‘이거 공연장 건설기금의 대부분을 댔다고 했었나.’
음대 부속 건물들만 퀄리티가 남달랐다.
여기 동아리방은 방음도 잘 되겠지.
은근히 감탄하고 있는데 고희범이 입을 열었다.
“파밍하고 싶다.”
“…….”
깜빡이 좀 켜라.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