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
3화
캠퍼스를 돌아다니기를 한참.
나는 생각했다.
‘시설이 엄청나게 좋군.’
벌써 몇십 번째 같은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감탄을 해도 해도 계속해서 같은 감탄이 나왔다.
‘이게 대학이구나.’
새삼스럽지만, 전생의 나는 대학에 다녀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어렸을 때는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빴던 참에 학비를 낼 환경도 안 되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공연하러 드나든 적은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면 종종 느꼈다.
부럽다.
저기 즐겁게 웃고 떠드는 대학생들이 부럽다.
그랬던 게 이제 내게도 찾아왔다.
‘이런 곳에서 캠퍼스 라이프라.’
머릿속으로 복잡미묘한 기쁨이 차올랐다.
비록 공부를 막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배움을 싫어하지도 않았다.
또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동아리 멤버들과의 끈끈한 우정.
청춘.
그런 거.
‘이제 나도 누릴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동아리 회관 건물에 발을 들인 뒤, 정해진 동아리방에 들어간 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
안에 학생이 한 명 있기에 인사를 했는데, 분위기가 썩 좋지 못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나를 검증하려고 하는 듯했다.
키가 길쭉한 여학생이 나를 보고는 말했다.
“동아리 면접 때문에 온 거 맞죠? 제가 선배니까 말 편하게 해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그래, 나는 조은솔이라고 해. 경영학과 3학년이야.”
“김한서…….”
아차.
나는 급히 말꼬리를 선회하면서 말했다.
“……석을 존경하는 김한영이라고 합니다.”
“김한석을 좋아한다고?”
내 말에 조은솔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네, 김한석이야말로 한국 최고의 뮤지션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타 연주가 대단했죠.”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조은솔은 내 말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요즘 애들 중에는 김한석 좋아하는 사람이 흔치 않은데.”
“…….”
이 사람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싶은데, 조은솔이 말을 이었다.
“김한석이 대단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좀 예전 사람이잖아.”
지금 설마 나한테 선전포고를 하는 건가.
아니야.
참아라. 나 자신.
뭘 모르는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나는 간신히 심호흡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그래도 기타 좀 친다는 싱어송라이터 중에는 김한석만 한 사람이 또 없으니까요.”
“그것도 맞고.”
이번에는 옳은 대답이었다.
조은솔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럼 하나만 질문 좀 할게. 면접 질문이라고 생각해.”
“네.”
“김한석이 평소에 들고 다녔던 기타 브랜드는?”
오.
이건 너무 쉬운 질문이지.
나는 머릿속 기억을 더듬으며 입을 열었다.
“데뷔 초기에는 브랜드 없는 국산 기타를 들고 다녔죠. 그러다가 1집 활동 때 마틴으로 바꾸더니, 2집 때는 마틴에서 커스텀 기타를 선물 받았어요. 3집부터는 마틴, 테일러, 세고비아를 필요할 때마다 번갈아서 썼습니다. 특히 라이브에서는 깁슨을 애용했죠.”
“……정확해.”
조은솔은 내 대답에 어지간히 놀랐는지 움찔했다.
하지만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한석 연주의 장점이라면 핑거스타일 아닐까 싶네요. 김한석은 옛날부터 핑거링 한 번을 하더라도 섬세한 연주를 선호했는데 옛날에는 미국식 컨트리 음악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죠. 김한석의 음악 하니까 김한석이 해외 공연으로 LA에 방문했을 때가 떠오르네요. 그 당시 함께 공연했던 미국의…….”
“잠깐!”
한창 말하고 있는데 조은솔이 기겁해서는 내 말을 잘랐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말해도 돼.”
“네? 하지만 이제 막 시작…….”
“아니, 괜찮아.”
이것 봐라.
도리가 없는 사람이다.
이야기가 이제 막 도입부에 들어선 참인데 사람 말을 자르다니.
‘동아리에 입부하고 나면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내 이야기를 들려줘야겠군.’
그런 결심을 하고 있으려니 그녀는 헛기침하더니 말했다.
“일단 기타에 관심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미안하지만 직접 연주하는 걸 한번 보고 싶어. 우리 동아리가 작년에 사람이 너무 많았어서, 올해는 가급적 연주할 줄 아는 사람만 받으려고 하거든. 미안한데 혹시 기타를 칠 줄 아니? 아니면…….”
“네, 칠게요.”
“어?”
내 말에 그녀가 또다시 한번 눈을 크게 떴다.
“너 기타 칠 줄 알아?”
“당연하죠.”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기타를 칠 줄 아니까 기타 동아리에 찾아왔죠. 당연하지 않나요?”
“그건…… 그렇긴 한데…….”
그녀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참 사람이 이상하다.
‘처음부터 기강을 잡으려 하기에 좀 당찬 사람인 줄 알았더니마는, 얼이 빠진 사람이군.’
상관없다.
너무 딱딱한 사람보다는 적당히 헛점이 있는 사람이 편하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오늘은 기타를 안 가지고 와서요.”
“기타 면접인데 안 가지고 와?”
“강의시간에 늦을까 봐 집에서 급하게 나왔거든요. 혹시 여기 한 대 있으면 빌릴 수 있을까요?”
“어, 안 될 건 없는데…….”
그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소파 위에 놓여 있는 기타를 집어 들었다.
“이거 써.”
“실례할게요.”
나는 그녀의 기타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말하는 것만 보고는 얼빠진 사람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기타를 아낄 줄 아는 사람이군.’
기타 관리가 썩 괜찮았다.
마틴에서 제작한 올 솔리드 모델 같은데, 세월의 흐름이 느껴짐에도 구석구석 갈라진 부분 없이 틈틈이 기름을 먹였다는 게 잘 느껴졌다.
튜닝도 방금 막 새로 한 듯 음이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칠 맛이 나겠어.’
나는 적당한 의자에 걸터앉고는 말했다.
“지금 바로 시작하면 되죠?”
“응, 그런데 어떤 곡으로 하게?”
“김한석 곡으로요.”
딱히 고민할 것도 없었다.
“정말로?”
그런데 내 말에 그녀는 또 놀란 눈치였다.
사람이 새가슴인가.
뭘 계속 놀라지.
나는 이제 그녀의 호들갑도 슬슬 귀찮아져서 물었다.
“왜요?”
“아니, 김한석 곡은 연주하기 좀 어려운 편이잖아.”
“그래요?”
“응, 본인이 워낙 편안하게 연주하니까 쉬운 줄 알고 도전했다가, 초보들이 많이 걸려 넘어지는 거로 유명한데…… 칠 줄 알아도 느낌 살리기는 더 어렵고.”
그런가.
“상관 없어요.”
내 곡은 내가 잘 친다.
더 이상 말로 대화하기 귀찮아졌다.
뮤지션은 백 마디 대화를 나누느니 음악으로 말하면 그만이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기타 현을 튕겼다.
팅!
[팅!]이라는 동아리 이름에 맞게 기타 현 퉁기는 소리가 난 순간이었다.“……!”
조은솔이 눈을 크게 떴다.
나는 개의치 않고 연주를 이어나갔다.
탕! 다다닥, 탁, 탕! 탕!
더불어 이번 연주의 테마는 가을이었다.
가을낙엽이 바람을 타고 흐르듯 경쾌하면서도 공허한 감성이 묻은 연주.
그런데 전생부터 내 연주를 두고 흔히 일컫는 표현이 있었다.
[지판 위를 달리는 마술사.]현란하고 부드러운 연주가 내 장기였기 때문이었다.
어마어마한 속주는 없다.
애초에 속주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연주 속도가 빨라질수록, 피킹 한 번에 깊은 표현을 넣기는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느린 연주도 좋아하지 않았다.
‘느린 연주는 지루해.’
내 개인적인 취향 탓이었다.
나는 적당한 속도감을 즐기는 선에서 악보를 가득 채워 넣으며 그 안에서 비틀고 꺾는 연주를 선호했다.
타당, 탕!
그 안에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 표현한다. 피킹 한 번을 하더라도 3번 4번의 변화를 준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낙엽이 잘게 잘게 부서지듯 피킹을 쪼갰다.
‘속도에 집착하지 않고, 섬세한 표현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
이게 김한석‘식’ 주법이었다.
그렇게 기타 연주 한 번을 마친 순간이었다.
‘구려.’
연주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것도 심각하게.
이유라면 알 것도 같았다.
새로운 몸으로 연주를 시작한 탓이었다.
손가락이 딱딱하게 굳어 있어서 연주할 때 이질감이 드는 건 물론이고, 손가락의 길이도 전생과는 달랐다.
‘손가락이 더 길어진 건 좋은데, 아무래도 손끝의 감각이 달라져서 그런지 현을 짚을 때 집중이 안 되네.’
흔히 기타리스트가 기타를 칠 때, 몸이 기타에 익숙해지는 기간을 두고 하는 말이 있다.
기타와 친해지는 시간.
이 시간이 지나야 기타를 제대로 연주할 수 있게 되는 법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여기에만 몇 년씩 걸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나는 그래도 좀 치던 편이었으니까 남들보다 빠르겠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게 꼭 나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실력이 늘겠네.’
손가락이 더 길다.
몸이 전체적으로 커진 탓인지 기타 바디를 지탱하기도 수월하다.
아마 지금 몸에 적응만 하고 나면 전생보다 더 나은 연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분명 가능하다.’
전생의 나는 언제나 타고난 몸이 아쉬웠다.
기타 치는 사람치고 손가락이 짧아서 서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 연주 스타일도 이 약점을 극복하려다가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손이 멀리 움직일수록 연주 디테일은 떨어지는 법이니까.
그만큼 기타리스트에게 타고난 피지컬은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 이 몸에 적응한 다음이라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을 하니 손가락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다만,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앞을 보자 조은솔이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마치 귀신을 본 것만 같은 표정.
‘정말 얼빠진 사람이다.’
사람이라면 자못 당찬 맛이 있어야지.
유감이다.
나는 그녀에게서 신경을 끄고 내 연주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탕! 타당!
면접이야 아까 그걸로도 충분하겠지만, 내게는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 * *
같은 시각.
‘저거 사람 맞아?’
조은솔은 어이가 없어서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저게 코드도 짚을 줄 모르는 초짜라고?’
성민아는 분명 그녀에게 말했다.
저 학생, 김한영은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줄 모른다고.
하지만 지금 조은솔의 눈에 비친 김한영은 어떠한가.
‘전공생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보통 남의 기타를 칠 때는 좋든 싫든 리스크가 걸리는 법이었다.
손에 안 익은 기타를 연주한다는 건, 남의 몸으로 운동을 뛰는 것과도 같다.
그렇기에 프로 기타리스트들은 해외 어디를 나가더라도 자기 기타를 챙겨나갈 때가 많았다.
현지에서 같은 모델의 기타를 제공하더라도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다르니까.
귀가 다르게 반응하니까.
또 그 사소한 차이가 연주를 망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눈앞의 학생은 달랐다.
‘내 기타로 김한석 곡을 연주하는데, 아주 조금의 실수도 없다.’
물론, 실수 자체는 많았다.
단지 그녀의 귀에 들리지 않았을 뿐.
김한석의 연주는 지나치게 표현이 많이 깃든 탓에, 잘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쉬이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의 조은솔이 그러했다.
‘민아는 제대로 연주할 줄 모를 거라고 했는데, 오히려 너무 잘 알았던 거구나.’
김한영의 연주는 완벽했다.
그렇다면 뭔가 중간에 오해가 있었던 것이리라.
‘이 친구가 던진 농담을 민아가 진담으로 착각한 건가? 아마, 자기 딴에는 농담 삼아서 코드도 모른다고 말했겠지. 민아가 너무 진지해서 오해했던 걸 거야.’
거짓말이 거짓말이 아니게 된 순간이었다.
마침 이 생각을 할 때쯤 김한영이 또 한 곡을 마쳤다.
여전히 완벽한 연주였다.
하지만 김한영의 표정은 여전히 불만족스러워 보였다.
‘얘는 원래 표정이 이런가?’
의심하는데 김한영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만 더 쓸게요.”
“응?”
“이 기타요. 조금만 더 쓸게요.”
김한영은 곧 다시 한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중경대학교 동아리회관에 때아닌 기타 연주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사실, 이 동아리회관은 겉으로는 번쩍번쩍하지만, 그 실체는 부실공사의 향연이었다.
원자재를 아낀다고 방음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조금만 연주 소리가 커져도 내부 소리가 바깥으로 새어나갈 때가 잦았다.
기타 동아리는 그런 이유로 바로 이웃 동아리와 반목을 자아낼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연주가 애매할 경우의 이야기.
“누구야?”
“와, 진짜 연주 잘한다.”
“어디 연주 잘하는 애가 들어왔나 보다.”
이웃 동아리들은 그런 생각을 했다.
물론, 김한영의 귀에는 불만족스러운 연주에 불과했다.
‘연주가 너무 구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