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40
40화
사실, 내가 방송을 시작했던 건 어디까지나 변덕에 불과했다.
버스킹 영상이 인터넷에서 좀 호응이 있었는데, 그냥 그렇구나 하는 참에 희범이가 권유했던 게 시작.
시작이 가벼웠던 탓일까.
딱히 진지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냥 실력 늘 때까지만 잠깐 붙잡지 뭐.’
잠깐 하다가 컨디션만 되찾고 나면 적당한 기획사에 오디션이나 나가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랬던 내 생각이 점차 바뀌었다.
‘인터넷 방송이기에 가능한 일들이 있다.’
하면 할수록 깨닫게 된다.
인터넷 방송이 가진 가능성을, 그리고 그 가능성을 다루는 법을.
기획사와 방송국에 얽매일 때는 절대 불가능했을 시도들이, 인터넷 방송에서라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당장 오지의 퍼포먼스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어딜 신성한 무대 위에서 대뜸 머리를 깎고 있나.
방송국이었다면 돌발행동했다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일감이 뚝 끊겼겠지.
하지만 인터넷 방송이라면 얼마든지 용인되는 행동이었다.
시청자들.
그들에게 재미만 줄 수 있다면, 무엇을 해도 용서받는다.
다소 느슨한 시스템.
그 시스템이 창작자들에게 한 걸음 내디딜 자유를 선사했다.
‘해 보자.’
나도 보여 볼 생각이다.
그냥 방송이었다면 못했겠지만, 인터넷 방송이기에 가능한 무대를.
틱.
테일러 기타 위에 손을 얹었다.
1학기 내내 이리저리 가지고 논 덕분에 슬슬 촉감이 손에 익었다.
기타와 친해지는 과정을 세분화해서 보자면, 나는 지금 기타와 썩 괜찮은 친구가 되었다.
최고의 친구나 애인까지는 아니다.
그건 너무 멀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겠지.
‘그래도 지금 당장은 이 정도의 친숙함으로도 충분해.’
사람이든 악기든 관계에서 서두를 필요는 없다.
차근차근 나아가자.
디링.
가볍게 현을 당겨 보자, 내 손짓에 호응하듯 기타 바디가 부드럽게 진동했다.
감미롭다.
나는 그 흐름을 손끝으로 음미하기를 잠시.
[호흡 위에 소리를 얹으십시오.]장영민 원장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호흡을 나지막히 뱉어 보았다.
“비가 내려요.”
이 곡의 제목은 비 내리는 밤.
내 데뷔곡이자, 내 첫 정규앨범의 1번 트랙이었다.
“밤하늘의 선선한 공기를 타고 빗방울이 떨어져요.”
당시 무명에 불과했던 내가 이 곡으로 기회를 얻었다.
어떤 거목이라도 작은 새싹에서 뿌리를 시작하듯, 내 뮤지션의 삶 또한 이 곡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곡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바로.
단, 다란, 단, 다란.
비슷한 기타 코드가 반복된다는 것.
C – G – Am – F.
현대 음악에서 가장 유명한 네 개의 음이었다.
이 음이 무한정으로 계속 반복되었다.
“내리는 비가 내 마음을 씻겨 주네요. 잠 못 드는 하루도, 발자취도, 함께 나누었던 꿈 이야기도, 모두.”
그런데.
그게 물리지 않았다.
같은 코드.
그 위에 멜로디를 얹는 것만으로도 모자랄 것 없이 충분한 음악이 완성되었다.
‘역시, 이 멜로디는 좋아.’
그런데 이 멜로디 코드 진행의 이름이 썩 유명했다.
머니 코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코드 진행이었다.
“우리 비 그치는 날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전형적인 가사에 노골적인 멜로디.
이 둘이 합쳐져서 내 첫 데뷔곡인 [비 내리는 밤]이 되었다.
그리고.
“나 한 그루 나무가 되어야지. 흔들리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내어주는 나무가 되어야지.”
다음 곡.
[나무]로 이어졌다.아주 조금의 딜레이도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두 곡.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 꿈이 하나 있다면 풍성한 나무가 되어 지친 새들이 앉아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터가 되고 싶다.”
나무의 한 절이 끝날 무렵.
“나는 무엇을 위해 이 먼 길을 떠났나.”
이내 다음 곡으로 다시 이어졌다.
“내 삶을 걸어가는 여행의 끝, 가녀린 소나타에 기대어 목놓아 울고 싶다고.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울음, 그렇기에 가장 순수한 울음, 그 끝에 날 일으켜 줄 팻말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나 믿으리라.”
나침반.
“나는 양초요. 한 몸을 불태워 세상을 비추고, 뒤틀리는 제 몸을 모르고 재가 되도록 춤추는 양초요.”
양초.
계속해서 곡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내 기타는 같은 코드를 반복하고 있었다.
C – G – Am – F.
4개의 코드(4 chords)를 엮어서 만든 코드.
머니 코드.
그 위로 깔리는 내 노랫소리만 달라질 뿐이었다.
계속해서 노래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어색한 감이라고는 전혀 없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그 이유는.
‘편하네.’
머니 코드가 원래 그런 코드이기 때문이었다.
머니 코드는 그 자체로 수많은 대중음악 속에 깔려 있어, 수많은 멜로디를 이어 주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 머니 코드를 실 삼아 수많은 노래를 한 가닥으로 엮어낸 셈이었다.
‘이만하면 화젯거리는 충분히 되겠지.’
오지의 삭발식을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김한석의 곡을 일련의 메들리(medley)로 부른다면, 그것 또한 나름의 효과가 있지 않을까.
적어도 이번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기에 모자라지는 않으리라.
왜냐.
“새장 속의 새는 날아 본 적이 없어 제 날개가 장식인 줄만 안다는데, 나도 내 날개를 펼쳐 본 적이 없어 나는 법을 잊었나 보다.”
나는 이 곡을 10분 이상 부를 예정이니까.
‘곡의 제한 시간은 없었지.’
인터넷 방송의 무서운 점이었다.
컨텐츠만 잘 준비한다면 몇 분을 잡아먹든 제한이 없다.
이게 지상파 방송이었다면 어땠을까.
칼 같이 잘렸겠지.
어지간히 잘난 사람이라 한들 곡 하나를 최대한 4분 안으로 압축해야 했다.
원곡이 그 이상이라면, 새로이 편곡해서라도 곡의 길이를 맞춰야 했다.
왜냐.
그게 방송국의 암묵적인 규정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이라면 어떨까.
‘언제까지고 할 수 있겠는데.’
그런 규정은 없다.
10분이고 20분이고 능력이 닿는 한 얼마든지 연주를 이어나갈 수 있다.
중요한 건 내 능력뿐이고, 나는 능력을 갖추었다.
‘한번 해 보고 싶었지.’
사실, 이 연주는 내가 아이디어가 아니다.
인터넷에서 본 어느 영상이 원조였다.
[4 Chord song].호주의 어느 뮤지션이 머니 코드로 수많은 히트곡을 하나로 연결해 부른 영상이 있었다.
단순하지만 좋은 아이디어였고, 실제로 반응이 좋았다.
나는 그 영상을 보며 생각했다.
‘저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4개의 코드 위로 얹을 수 있게끔 멜로디를 조율하면 되는 거 아닌가.
잘하면 내 곡을 전부 이 위에 얹어낼 수 있지 않을까.
조금 이질감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만 고쳐 보면 또 될 것 같았다.
딱히 해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꽤 공을 들였다.
이건 고희범식 표현을 빌리자면 ‘도전과제’였다.
특별히 의미가 없더라도, 그냥 하고 싶으니까 했을 뿐.
“사랑한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건 내가 겁쟁이라서. 그대가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무서워서. 이 거리감에 나도 모르는 사이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이제 너무 늦어 버린 걸까요.”
남이 했는데 나라고 못 할 이유가 있겠나.
다만, 무대 위에서 부를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왜냐.
나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무대 위에서 부를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지난 내 삶이 내 사고관의 기저에 새긴 선입견 탓이었다.
[너무 많은 곡을 한 번에 엮어서 부르면 저작권 문제가 생기겠지.] [한 곡이면 4분 안으로 압축하는 게 좋겠네.] [방송에서 돌발행동은 금물이다.]이런 선입견이 내 머릿속에서 날 지배하고 있었다.
‘왜 몰랐을까.’
내가 묶여 살았다는 걸 왜 몰랐을까.
나 스스로 80년대 기준으로는 꽤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시대의 속박을 피하기란 어려웠나 보다.
그러던 중.
오지의 퍼포먼스를 보고 깨달았다.
‘저래도 되네?’
된다.
얼마든지 참신한 시도를 해도 된다.
내가 아무리 참신한 무언가를 하려고 한들, 요즘 시청자들의 매콤한 눈높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저작권 문제로 엮이면 뭐 어쩌라고.’
미튜브가 알아서 저작권 협회와 조약을 맺어 뒀는데.
‘저작권 권리자가 존재하는 곡을 부르면 수익을 떼간다고 했던가.’
그게 어떻단 말인가.
가수 김한석은 고아인 탓에 상속인 없이 사망해서 저작재산권이 증발했다.
유감이다.
하지만 그 덕에 내가 불러도 수익을 내가 다 먹을 수 있게 됐다.
‘4분 안에 압축을 왜 하나.’
주어진 시간에 제한이 없는데.
어차피 오지의 퍼포먼스를 이기려면 기술만으로는 부족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있었다.
기행이었다.
기행을 이기려면, 나 또한 기행을 보여야 한다.
이게 나만의 기행이었다.
“차갑게 식은 거리에서 나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하염없이 빈 허공을 쫓네.”
순간의 임팩트를 이길 수 없다면, 시간으로 겨루면 그만이다.
“푸르게 돌아가는 파란, 그 안에서 꽃피는 유채. 우리네 삶은 희망의 행진곡.”
현재 아홉 곡.
앞으로 여섯 곡 남았다.
* * *
모든 노래 시청자 감사제.
그 채팅 창에 파란이 찾아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언제 끝나?]김한영의 연주가 끝날 줄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금 뭘 듣는 거지?] [이래도 되는 건가?] [엄마, 나 무서워. 정신 나갈 것 같아 정신 나갈 것 같아 정신 나갈 것 같아.] [왜 끝이 않나? 왜 이래? 버그야?]다소 과열된 반응.
처음에만 해도 반응은 이렇지 않았다.
[실력 좋다.] [실력만 보면 오늘 최고.] [집밥처럼 든든하네.] [저게 어딜 봐서 스물?]반응이 좋긴 했지만, 오지의 아성을 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는 게 중론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정상적인 무대로 충격을 주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하지만.
그 곡이 다음 곡으로 넘어갈 무렵, 상황이 바뀌었다.
[뭐야, 이래도 됨?]곡이 안 끝났다.
물 흐르듯 다음 곡으로 넘어갔다.
[반칙 아님?] [모노가 뭐라고 안 하잖음.] [한 곡이 맞기는 한 것 같은데, 그냥 이런 컨셉 아님?]그리고.
이어지고 또 계속해서 이어졌다.
[김한석 곡만 계속 나오네.] [김한석 메들리야?] [와, 기타 연주는 계속 똑같은데 노래만 바뀌네.] [편곡 천재 ㄷㄷㄷㄷㄷㄷ] [오늘 무대 때문에 준비해 온 거야?] [ㄹㅇ 준비성 갑이네.] [칼 갈았네.]평가가 계속해서 올라간다.
그리고.
[3만 원 후원!] [실버요양센터 : 우승해라.]후원도 계속해서 올라갔다.
[5만 원 후원!] [강남농장주 : 이 정도면 이겨야지.] [1만 원 후원!] [한양운전면허학원 : 여기서 3곡 더 부르면 10만 원 추가로 쏜다]점차 쏟아지는 공약들.
하지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김한영이 준비한 곡은 고작 대여섯 곡이 아닌, 열다섯 곡이라는 사실을.
[10만 원 후원!] [한양운전면허학원 : 다섯 곡 더 부르면 20만 원 추가함.] [바베큐현장 : 나도 추가로 5만 원 쏜다.]계속해서 이어졌다.
이어지고 계속 이어졌다.
김한영의 연주는 좋은 의미에서 시청자들의 예상을 계속해서 배신하며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1위 : 김한영 261만 원.] [2위 : 오지 248만 원.]격추했다.
오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순간의 임팩트를, 10분을 넘어서는 연주 시간으로 억누른 결과였다.
하지만.
“보지 않겠다. 보지 않아도 될 것은 보지 않겠다. 우리 삶은 좋은 것만 보고 살아가기에도 짧지 않더냐.”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열다섯 곡이 지났음에도 끝날 줄을 몰랐다.
왜냐.
‘이거 하다 보니까 은근 재밌네.’
김한영이 속으로 또 다른 도전과제를 세웠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에게 무대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과의 승부가 남았을 뿐.
당초 계획을 초과하며 무자비하게 이어지는 연주.
무한 도돌이표 앞에 시청자들은 무력하게 갇혀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CH591 : 안 끝나아아아아] [카페도 : 연주 멈춰!] [김히틀러 : 엄마 나 무서워어어어.] [두사123 : 준.] [두사123 : 식.]-두사123(님)이 강퇴당했습니다-
-김히틀러(님)이 강퇴당했습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