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42
42화
싱어송라이터 김한영 채널이 개국한 게 어느덧 3개월.
그사이 내가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미튜브는 홍보 효과가 오진다는 것.
[JEM 발성 학원].내가 주 3회 출석하는 학원인데, 이곳의 장영민 원장이 내게 제안한 게 있었다.
[수강료를 무료로 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학생이 학원의 홍보 모델로 활동해 주길 바랍니다.]홍보였다.
당시만 해도 나는 생활비가 모자랄 정도로 하꼬였던 탓일까.
저 제안을 감사히 받아들였고, 내 채널의 영상마다 JEM 발성학원의 홍보를 짧게 덧붙였다.
[모두를 위한 올바른 발성, JEM 발성학원이 함께합니다.]공짜 수강료치고는 썩 후한 대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여기 원장이 SR 발성법의 창시자인 세스 로버츠의 직계 제자라는데, 그 사람에게 직접 배울 수 있다니.
거리낄 이유가 없었다.
사실, 처음에는 날로 먹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연했다.
그 당시에만 [싱어송라이터 김한영]은 구독자 몇천도 안 되는 하꼬 채널이었다.
하루 수입이라고 해 봐야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데, 수강료 몇십만 원을 감면해 주겠다니 이 얼마나 달가운 일인가.
그래.
‘그 당시에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최근 들어 상황이 역전되었다.
싱어송라이터 김한영은 불과 한두 달 사이에 급성장을 반복하더니, 이제 구독자 2만 명을 훌쩍 넘겨 초신성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JEM 발성학원이 그 낙수효과를 제대로 봤다.
[요새 수강생이 많이 늘었네요?]모든 강의실에 학생들이 가득했다.
수강생이 없다고 수업 개설조차 망설이던 전과는 완전히 다른 광경.
장영민 원장은 더없이 해맑은 웃음으로 말했다.
[사람을 더 받을 수가 없어서 강사를 모집 중입니다. 전부 학생 덕입니다.]내 덕분에 홍보가 이루어졌다는 것.
하기야.
실력이 너무 급격하게 늘었지.
내가 봐도 발성의 기초도 없는 사람이 이렇게 빨리 성장하면 혹하겠다 싶은데, 여기서 장영민 원장이 다시 제안했다.
[슬슬 시기가 무르익었습니다. 비포 애프터 영상 한 번 찍고 진행하는 것 어떻겠습니까.]비포 애프터 영상.
실력이 늘기 전후를 비교하는 영상을 찍어 보자는 것이었다.
이는 장영민 원장이 개강 초기 내게 요구했던 것이기도 하였다.
주기적으로 비포 애프터 영상을 찍을 것.
좋지.
비포 애프터 영상 좋지.
나도 재밌어서 종종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기왕 재밌는 일을 할 거라면 더 알차게 쓸 방법이 있지 않겠는가.
하여, 내가 지금 이 자리, 팅의 정기 회의에 섰다.
“제안?”
조은솔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비포 애프터 영상 한 번 찍죠.”
“비포 애프터?”
“네, 다 같이 합숙 전후로 실력이 늘었나 안 늘었나 확인하는 거예요. 또 이걸 저희 채널에 올리고요.”
이게 내 제안이었다.
기왕 찍을 비포 애프터 영상이라면, 아예 동아리 전체로 확대하는 것.
그래, 이건 프로젝트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득이 될 프로젝트.
“으음, 솔깃하기는 한데.”
조은솔은 그동안 내 방송에 몇 차례 출연했어서 그럴까, 제안이 나름 마음에 들면서도 걸리는 구석이 있는지 물었다.
“그렇게 단기간에 실력이 늘기는 할까? 합숙이 길어 봐야 며칠일 텐데.”
“강사님을 모시려고요.”
“강사님?”
“저 노래 가르쳐 주시는 분인데요. 엄청나게 대단한 분이에요.”
“어떤 분인데?”
“그 혹시, SR 발성이라고 아세요?”
“아! 들어는 봤어.”
조은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SR 발성이다.
보통 일개 발성법이 일반인에게까지 알려지는 일은 잘 없지만, SR은 예외였다.
[SR이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어요.] [잘못된 발성으로 성대결절에 걸려 좌절했던 무렵, SR 발성을 만났어요.] [한국 대표 소프라노 이리온, 매달 미국으로 건너가 세스 로버츠에게 강연을 들어.]온갖 가수들이 방송에서 SR 발성의 우수성을 설파하고 다녔던 덕일까, 아예 발성의 대명사 수준으로 인지도가 높았다.
‘발성이 브랜드가 된 거지.’
나는 내 선택에 묘한 뿌듯함까지 느끼며 말했다.
“그 SR 발성 개발한 게 미국에 세스 로버츠라는 사람인데요. 아는 강사님이 그 사람 직계 제자예요.”
“진짜?”
성민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그냥 동네 음악학원 다니는 거 아니었어?”
“그냥 동네 음악학원 맞는데. 학교에서 걸어서 5분 거리.”
“…….”
이거 딱 보니까 내 방송에서 홍보 부분은 스킵하고 봤네.
아무튼, 그러했다.
나는 성민아를 뒤로하고 하던 말을 이었다.
“바란다면 그분이 이번 합숙에 참관해서 직접 도와주실 수 있대요. 약속을 받았어요. 수강 기간이 짧아도 괜찮다네요. 원래 그런 단기 교정 전문이라고 하셨어요.”
그 말에 몇몇 동아리 회원들의 표정이 변했다.
“오.”
“그래서 한영이 실력이 빠르게 는 건가?”
“확실히 너무 단기간에 늘기는 했지. 역시 다 이유가 있었네.”
“동네 학원에서 기연을 만난 셈이네.”
“선생님이 너무 잘 가르침.”
벌써 들뜬 눈치다.
하기야,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발성에 로망을 가질 수밖에 없지.’
그럼에도 학원비의 부담, 그리고 사기꾼에게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발을 멀리하기 마련이었다.
기회를 줬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라고 생각한 찰나 정의선이 손을 번쩍 들더니 물었다.
“다 좋은데, 그럼 초상권은 어쩌게?”
“흠.”
합당한 지적이다.
우리 채널에 비포 애프터 영상을 올린다는 건 신상을 드러낸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지.
잠깐 내 말에 홀렸던 동아리 회원들도 정신을 차린 듯한 마디씩 보탰다.
“맞아, 그래도 방송에 바로 얼굴을 비추는 건 조금.”
“미튜브는 또 악플 심하다고 하잖아.”
“윽, 노래 못 부른다고 저격당할 것 같은데.”
다들 걱정이 많다.
이해한다.
얼굴을 까는 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니까.
‘누구나 살면서 부끄러운 행동을 한 번쯤은 하기 마련이지.’
모든 사람이 떳떳한 삶을 살아가는 건 아니다.
방송에 얼굴을 비추면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고, 이는 곧 과녁이 된다는 것과도 같았다.
‘그래, 결정이 쉽지 않겠지.’
물론, 이들이 반발하리라는 것 정도야 미리 예상했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예상했다는 건 그 대안을 마련했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 말이 맞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가리고 싶으면 가려 줄게요. 출연하기 부담스러우면 촬영할 사람만 해도 되고.”
“그럼 나는 빠지.”
누군가가 손을 든 찰나였다.
나는 그의 말을 못 들은 척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출연하는 사람에 한해 합숙에 들어가는 비용은 전액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
그 순간이었다.
비용 부담이라는 말에 동아리방의 공기가 살짝 흔들렸다.
모두가 움찔한 걸 확인한 순간 나는 말을 이었다.
“숙박비, 식비, 교통비 전부 다 내 드릴게요. 필요하다면 대회 출장에 필요한 비용까지 전부. 당연하지만 보컬 강의 비용도.”
이게 내 제안이었다.
쪼들리는 대학생들을 돈으로 후려치는 것.
‘MT 비용이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까지 비싼 비용은 아니다.
비싸야 몇십이겠지.
하지만 낼 돈을 안 낸다는 건 생각보다 크게 와닿는 법이었다.
‘방송에 출연하는 게 그렇게까지 마냥 꺼릴 일도 아닐뿐더러, 전문 강사 채용에 MT 비용에 전부 부담해 준다면 솔깃할 수밖에 없겠지. 이미 은솔 선배가 방송에 여러 번 나왔으니까 내심 신뢰도 쌓였을 테고.’
물론, 동아리 회원이 10명이니 내가 부담해야 할 금액도 어지간하리라.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인가.
‘내면 그만이지.’
지난 방송이 잘 풀린 덕에 근래 여유가 생겼다.
전체 상금 천만 중에서 우승자 몫으로 받은 금액이 무려 오백.
대학생 용돈으로는 조금 과분할 정도의 액수인데, 내가 달리 돈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술 담배 안 하고 딱히 놀지도 않는다.
매일 악기만 만지고 노니까 돈이 차곡차곡 쌓일 수밖에.
‘애초에 이건 버리는 돈도 아니지.’
이게 다 투자다.
콘텐츠가 잘 풀리거든, 어차피 다 회수할 돈.
나는 그 마음을 담아서 마지막 미끼를 던질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기왕 가는 김에 숙박을 좀 길게 잡아도 되겠네요. 한 일주일?”
“…….”
반응이 없다.
오랫동안 숙박 다녀올 생각이 없나 보군.
유감이다.
미끼를 바꿔야겠다.
아, 그게 좋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기왕 가는 MT인데, 한우 먹어야죠?”
그 순간이었다.
“……!”
식구들의 시선이 흔들렸다.
물어볼 것도 없다. 아무래도 이번 떡밥은 먹힌 듯했다.
“나 할래.”
“나도.”
“숙박비 다 내준다는 거지?”
모두가 동의했다.
반대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이 말끔했다.
전원 찬성.
나는 그 결과를 확인하고는 조은솔과 홍윤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되죠?”
그 말에 홍윤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만 깜빡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한영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응.
안 그래도 다 하려고요.
빙그레 웃는데 조은솔이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우리 동아리 이래도 되나?”
되고 말고요.
* * *
본격적인 MT 계획이 잡혔다.
그리고 싱어송라이터 김한영 채널은 모처럼 휴식기를 맞이했다.
왜냐.
1학기 기말고사 기간에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공부하기 싫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한영 채널의 성장이 멈춘 건 아니었다.
미리 심어 두었던 씨앗을 수확할 순간이 다가왔다.
[모노 감사제 클립.]앞서 출연했던 방송의 편집이 끝났다.
약속했듯 일제히 미튜브에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그 반응이 썩 화끈했다.
[중경대 김한석, 싱어송라이터 김한영.]내 무대가 시청자들에게 강력한 호응을 얻었다.
화제성이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그것 이상으로 기행이 여기에서 힘을 발휘했다.
15분짜리 영상에서 김한석의 노래만 근 스무 곡을 연달아서 연주한다.
그것도 잠시도 쉬지 않고.
이게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실력 진짜 뭐냐.] [가사는 어떻게 외웠음?] [이거 라이브에서 한 거잖아. 어디 악보 띄워두고 부른 거 아님?] [15분짜리 영상이 이렇게 술술 넘어가는 건 처음이네.]압도적인 반응.
무대 자체가 좋았을뿐더러, 앞서 모노 방송에 출연해 빌드업을 쌓아둔 것도 큰 효과를 발휘한 덕일까.
조회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조회 수 : 11만.]첫날에 10만을 넘겨 버렸다.
모노 방송에 처음 나왔을 때 기록이 첫날 3만이었는데, 그 4배에 달하는 수치.
하물며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맛집은 한 번 찾는 게 아니라 여러 번 찾아야 맛집이라고 하였던가.
내 영상도 마찬가지였다.
[19만.] [25만.] [39만.] [51만.]그리고.
불과 2주일 뒤.
[101만.]100만을 돌파했다.
양질의 콘텐츠.
빌드업.
미튜브 알고리즘의 선택.
그 모든 걸 골고루 챙긴 결과, 그것이 100만이었다.
같은 시각.
싱어송라이터 김한영 채널의 구독자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구독자 수 : 4.8만.]이제 중견 미튜버의 상징인 5만을 코앞에 둔 상황.
하지만 이것 또한 시간문제로 보였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다만.
[오지 삭발식.] [조회 수 : 353만.]오지는 이기지 못하였다.
그는 다른 의미에서 전설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하지는 않았다.
저걸 어떻게 이겨.
* * *
며칠 뒤.
“아…….”
나는 하얗게 불태운 마음으로 하늘에서 내리치는 뜨거운 햇살을 한껏 받아들였다.
‘여름이다.’
이제 슬슬 여름이다.
6월의 햇살은 살갗을 불태울 듯 뜨거웠지만, 딱히 부담스럽지 않았다.
왜냐.
시험이 끝났으니까.
‘역시 공부는 적성이 아니야.’
못 해 먹겠다.
하기 싫다.
하지만 하기는 해야 한다.
대학생의 삶을 아예 내던질 수는 없기에 최소한은 해야 한다.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어른이다.
……라고 생각한 순간.
‘가만, 어른이라는 건 사회가 규정한 틀 아닐까?’
교양 수업 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20세기만 해도 요즘이랑은 어른의 기준이 달랐다잖아.’
사람의 정신연령은 자신의 실제 연령이 아닌, 주위에서 자신에게 기대하는 연령에 맞춰 성장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아이처럼 굴면 주위 사람들도 나를 아이처럼 대할 테고, 나는 아이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갑작스럽게 떠오른 이론에 우두커니 서 있기를 잠시.
눈앞으로 고희범이 지나갔다.
‘아니다. 그냥 어른으로 살자.’
유감이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그에게 말했다.
“짐 싸자.”
슬슬 [비포 애프터] 프로젝트를 실행할 순간이 왔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