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46
46화
미로에게 통화를 걸고 몇 분 뒤.
[한영 씨만 괜찮으시다면 저희는 얼마든지 괜찮습니다.]“잠시만요. 생각 좀 해 보고 바로 다시 연락드릴게요.”
[네-엡. 그럼 기다리겠습니다.]삐익.
전화가 끝난 뒤 쉽사리 결정을 못 내리고 우두커니 서 있던 중.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저쪽 사장님께서 직접 여기에 오시겠다는데요?”
“사장님?”
“네, 채널 테슬라 대표님.”
“뭐?”
그 순간 고희범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잠깐, 그거 강도수 대표 말하는 거 맞지?”
“어, 지난번 공연 때 만난 그 사람.”
“그분이 여기에 왜?”
“여기에 직접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도와주시겠다는데.”
“…….”
고희범이 할 말을 잃었다.
나는 멍한 표정을 지은 그를 뒤로하고 조은솔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조은솔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기를 잠시.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그 사람이 오면 어지간하면 공연도 진행해야겠지?”
“아무래도 그렇죠. 비싼 사람을 이 거리까지 데려다가 놓는 건데, 조건 안 맞는다고 캔슬하면 조금 그렇잖아요.”
“일은 잘하는 사람이래?”
“소문만 들어서는 업계 원탑이라던데요.”
“흐음.”
조은솔은 그 말에 손가락으로 턱을 긁적이더니,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애들아, 너희들 공연 성공할 자신 있어? 아니다. 공연 나가고 싶어?”
그 말에 대다수 회원은 확신이 없는지 머뭇거렸다.
하지만 몇몇은 달랐다.
기다렸다는 듯 손을 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해 보고 싶어요.”
“나도.”
성민아, 그리고 홍윤서였다.
‘역시.’
성민아는 원래 은근한 음악 욕심을 드러낼 때가 잦았다.
프로 세계에 환상도 강하고, 실용음악과 전공생 못지않은 실력도 있다.
그러니 이상할 것도 없지.
홍윤서는 음악에 프로 의식이라고 할 건 없지만, 그에 못지않은 애정을 가진 사람.
“음,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번 공연이 끌리기는 해.”
조은솔은 마침내 마음을 굳힌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한영아, 너는 당연히 하고 싶겠지?”
“네.”
당연하다.
오는 무대 안 피한다.
“그래, 너라면 그럴 줄 알았어.”
결론이 나온 것 같다.
조은솔이 확신한 목소리로 말했다.
“해 보자.”
* * *
한번 결정을 내리자, 행동이 쏜살같이 따라왔다.
[우선 나랑 한영이, 윤서랑 민아는 확정이야. 나머지는 우선 모레까지 최대한 연습해 보고, 그때 될 것 같은 사람만 무대에 오르는 거로 하자. 괜찮지?]이러했다.
배정받은 무대 시간 40분가량을 채워야 하는데, 이 정도는 우리 넷으로도 충분했다.
아니지.
나 혼자서도 충분했다.
그러니 나머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해 보자는 말.
공연료 협상은 전적으로 테슬라의 강도수 사장이 담당하기로 했다.
그가 서울에서 출발했다는 소식이 있고 불과 1시간 반.
“오래간만입니다. 그간 잘 계셨나요?”
그는 순식간에 펜션에 도착하더니, 저쪽 대행업체 사장과의 협상 또한 한순간에 끝내 버렸다.
“저희 사에서 한영 씨 정도의 체급을 가진 미튜버의 행사를 진행할 때, 단가는 보통 이렇게 됩니다.”
특별할 게 없다.
적당한 웃음과 포장, 그리고 정보로 협상을 주도했다.
“단가가 조금 세네요.”
“실력을 고려하면 오히려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선택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아직 학생…….”
“한영 씨는 미튜브에서 상당한 유명세를 가질 분인데,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 인사지요. 이미 총 조회 수로는 천만을 훨씬 넘기셨습니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지요. YTG에서도 눈독을 들일 정도입니다. 어지간한 프로보다도 더 낫습니다.”
아무 말 대잔치다.
하지만 그가 등장하고 몇 분.
결과는 빠릿하게 나왔다.
“그럼 행사 단가는 이 정도로…….”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단가가 예상했던 것에서 2배로 뛰었다.
나는 옆자리에 앉아 그 광경을 천천히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중간업체가 필요하기는 해.’
이번에 제대로 느꼈다.
정말 별것도 아닌 일로 일 처리가 멈췄지.
필요하다.
적어도 내가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 전까지라도, 내 스피커가 되어 내 가치를 대변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어디서 눈탱이를 맞을지 모르겠어.’
고희범이 그 역할을 자처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한참 부족하다.
그는 아직 배우는 단계.
그러니 지금 당장은 내 가치를 알고 설명하며 계약 측면에서 서포트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채널 테슬라는 이번에 상당히 좋은 인상을 남겼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가 웃으며 인사하자, 파마머리 아주머니가 일말의 의심을 못 치운 듯 말했다.
“아까 말씀 주신 거 사실이지요?”
“예! 언제든 말씀 주시면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 앞으로도 편히 말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그가 협상을 잘한 건 굳이 말하자면 당연한 일이었다.
중간업체가 왜 수수료를 받는가.
저런 일을 하라고 받는 것.
수월한 일 처리는 중간업체라면 당연하디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정말로 높게 본 건 다른 부분이었다.
‘어쨌든 나 하나 때문에 여기까지 왔단 말이지.’
그가 여기까지 묻지도 따지도 않고 직접 달려왔다는 사실이었다.
‘행동력이 좋아.’
내가 요즘 뜨는 축이라고는 하나, 엄연히 말해서 채널 테슬라 기준에는 더 잘나가는 미튜버가 바닥의 돌멩이처럼 굴러다녔다.
그런데 여기까지 왔다.
하물며 중계 수수료 같은 대가를 대뜸 요구하지도 않았다.
물론, 아직 말을 안 꺼낸 걸 수도 있겠지.
또 장기적으로 내게 받아낼 이득을 생각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어찌 되었든 중요한 건, 그가 내게 저자세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막 뜬 대학생 미튜버에게 비위를 맞춰 주기가 쉽지 않을 텐데.’
더군다나 나는 한 번 채널 테슬라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도수 사장은 나를 위하고 있었다.
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일이었다.
‘어쨌든 다른 MCN들과는 근본이 다르다는 건가.’
희범이에게 대강 이야기를 들었다.
턱이 빳빳해서 소속 미튜버를 하대하는 곳도 많다고.
실제로, 지난 공연 이후로 컨텍이 오는 곳이 여럿 있었는데 대체로 태도가 불량했다.
‘우리가 널 받아 주겠다 정도의 뉘앙스가 은연중에 풍겼지.’
테슬라는 조금 달랐다.
생각의 여지가 많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아주머니를 돌려보낸 강도수 사장이 환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일이 잘 풀린 것 같습니다! 잘됐네요!”
“…….”
사람이 밝다.
“행사 진행 관련해서 세부적인 사안은 저희에게 맡겨 주시면 됩니다. 혹시 따로 요구하고 싶으신 게 있으시거든, 편하게 말씀 주시면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진심으로 그러는 건지, 아니면 겉모습으로만 저러는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모를 일이지.
보통 에이전시에서 소속 창작자를 대하는 태도는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과 후로 달라진다고 하지 않나.
‘우선 여기까지 왔으니까 뭐라고 계약 이야기 한 번은 꺼내겠지.’
거기까지는 예의상 들어나 보자.
그 다음에 다시 생각하자.
…… 라고 생각한 찰나였다.
“그럼 정말 죄송하지만 전 일이 있어서 이만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강도수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음?
지금 뭐라고 했지.
“즐거운 공연, 그리고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강도수는 그 말과 함께 짐을 주섬주섬 챙기더니, 정말로 일어나서 돌아가겠다는 듯 의자에서 일어났다.
수수료나 대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뭐지?’
이 사람 뭐지.
정말로 봉사만 하러 왔나.
나는 순간 허공에 붕 뜬 기분마저 느끼다가 물었다.
“저기, 혹시 이번 일 수수료는 어떻게 될까요?”
내야 할 돈이라면 내고 싶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빚은 따로 만들어 두기 싫다.
찜찜하지 않나.
그런 마음으로 물어본 순간이었다.
“괜찮습니다!”
강도수 사장은 다시 환하게 웃더니 말했다.
“저희와 계약서를 따로 작성한 것도 아니니 괜찮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그냥 보내기는 죄송한데.”
“아닙니다. 마침 주변에 들릴 일이 있어서 잠깐 방문한 것이니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한영 씨가 저희 채널 테슬라를 좋게 기억해 주신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이 사람 뭐지.
사람이 황당하리만치 흔쾌하다.
이걸 고희범식 표현으로 나타내자면 이러했다.
‘노빠꾸네.’
사람이 빠꾸가 없다.
이 세상에 무상의 호의는 없다.
사업가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강도수 사장이 내게 정말로 아무런 기대도 없이 이러는 것도 아닐 터.
이는 얼마나 마진을 남기느냐의 문제인데, 그가 챙긴 마진은 뭐라고 해야 할까.
고작 내게 호감을 남기는 정도에 불과했다.
“…….”
이상한 일이다.
정말 그 정도로 충분한가.
사업가잖아.
너무 사람을 믿고 막 나가는 게 아닌가 싶은데, 강도수 사장이 말을 이었다.
“부담스러우실 수 있습니다. 제게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우실 수도 있으실 테고요. 지난번의 실례도 있었으니.”
“그건…… 그렇죠.”
부정하기 어렵다.
강도수 사장은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아직 내 마음속에 박혀 있으니.
그런데 잠시 뒤.
“그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강도수는 헛기침을 뱉더니 말했다.
“제 자세가 잘못됐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그럼.”
“이건 채널 테슬라를 책임지고 있는 대표로서의 입장을 떠나, 저 강도수라는 개인의 호의입니다.”
아직도 애매하다.
아직 사업가라는 이미지가 안 벗겨졌다.
그런데 그는 굳은 표정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번 일은, 김한영이라는 싱어송라이터를 후원하고 싶은 그저 한 팬의 도움이라고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
그 말을 들은 순간 깨달아 버렸다.
‘팬이구나.’
나는 뮤지션이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사람을 바라본다고 하지만, 팬에게는 호의를 품을 수밖에 없는 일개 뮤지션에 불과하다.
강도수의 태도가 이 부분을 정확히 찔러 들어왔다.
비겁하다.
다소 치사하다 싶은데 그가 말을 이었다.
“계약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다만, 앞으로도 좋은 음악을 많이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 한 발자국 멀리서 싱어송라이터 김한영 채널이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할지 지켜보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찰나.
내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까지 나를 우대할 MCN이 또 있을까.’
있겠지.
어딘가에는 있겠지.
엄청 작은 MCN이라서 구독자 5만도 안 되는 미튜버의 입맛이라도 맞춰 줘야만 하는 입장이라면 그렇겠지.
아니면, 내가 나중에 성장해서 수십만짜리 미튜버가 된 다음이라면 모르겠지.
하지만.
‘지금의’ 나를 이렇게 우대하는 곳이 있을까.
더욱이 채널 테슬라 정도의 규모가 되는 MCN 중에서 말이다.
‘이 사람이라면 내 종소세도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사장이 이 산골까지 직접 온 건 다분히 퍼포먼스에 가까웠다.
단순 일 처리만 논하자면, 밑에 직원 하나 보내면 충분한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사장이 직접 찾아올 정도로 날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거지.’
따지고 보면 이번 일은 극히 사소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소하기에 그만큼 강도수의 방문이 더 큰 의미로 이어졌다.
큰 자리에서 잘해주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작은 자리에서 힘을 보태려는 사람은 잘 없다.
고민이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그러기를 잠시.
머릿속으로 옛날 어느 사람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야! 이 새끼야!]김진산.
내가 김한석이었던 시절.
나와 계약했던 회사 사장의 목소리였다.
[소통은 사람이 사람이랑 하는 거야. 그 누구도 짐승이랑은 안 한다. 알았어? 널 사람으로 봐 주는 사람을 잘 구분해라.]내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놓치지 말고 잘 대해 주라는 말이었다.
저 말 뒤에 뭐라고 했더라.
[그러니까 내가 널 사람대접해 줄 때 사람처럼 굴라고 이 새끼야!]저건 잊어버리자.
사람이라.
사람이 뭘까.
나는 그렇게 고민하기를 잠시.
‘이건 철학과 학생들이나 할 고민이지.’
마음을 정했다.
너무 생각이 많은 것도 병이지.
가끔은 머리를 비우고, 촉에 의존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나는 마지막 검증을 위해, 고개를 들어 강도수 사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기.”
“네?”
“혹시, 김한석 좋아하세요?”
“김한석이요?”
“네.”
그 말에 강도수는 눈을 깜빡이기를 잠시.
웃으며 말했다.
“두말할 것 없이 한국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아닌가요?”
“…….”
“한국에서 가장 위대한 뮤지션을 뽑으라면, 김한석이 가장 앞 자리에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됐다.
우선은 이렇게 가 보자.
나는 순간의 촉을 믿으며 입을 열었다.
“나중에 시간 괜찮으세요?”
“혹시 어떤 일이라도…….”
“다름이 아니라.”
나는 머리를 작게 긁적이며 말했다.
“MCN 관련해서 설명 좀 듣고 싶어서요. 그.”
그 순간이었다.
강도수 사장의 표정이 지금까지 유례없을 정도로 환하게 뜨였다.
“언제든 좋습니다!”
그래.
당장 계약서에 도장 찍을 것도 아니고, 우선은 이 정도면 괜찮다.
미팅 한 번.
딱 그 정도 일이다.
* * *
작은 해프닝이 그렇게 끝났다.
그렇다면 이제 본업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전세를 낸 실내 공연장.
나는 식구들에게 한 가지를 요구했다.
“50시간이에요.”
“50시간?”
홍윤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사이.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이에요. 지금이 저녁 7시고, 공연 시작하는 게 9시거든요. 그게 정확하게 50시간이에요.”
“그렇지?”
“연습을 최대한 많이 해야겠죠? 아무래도 돈 받고 일하면 그만큼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야 하니까요.”
“응, 그것도 맞지. 공짜 공연은 아니니까.”
대답이 좋다.
그런데 홍윤서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그게 왜?”
나는 그 순진한 얼굴에 작게 웃으며 말했다.
“44시간.”
“44시간?”
“50시간 중에서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
나는 양손의 손가락을 4개씩 펴며 말했다.
“딱 44시간만 노오력해 보죠.”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