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47
47화
학기 중.
나는 줄곧 아쉬웠던 게 있었다.
무엇이 아쉬웠는가 하면, 연습 시간이 너무 적었다는 것이었다.
‘수면 시간이랑 공부 시간 때문에 하루에 기본 5시간은 뺏겼지.’
끔찍한 일이다.
음악 외의 일로 시간을 뺏겨야 한다니.
전생의 나는 어떠했던가.
그냥 살아 숨쉬는 모든 과정이 음악의 일환이지 않았나.
“44시간이에요.”
이번 행사부터는 근본으로 돌아가 볼 생각이었다.
나는 앞으로 다가올 일에 일말의 희열마저 느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오늘 저녁부터 내일 저녁까지, 그러니까 24시간만 채워 보죠.”
“…… 잠은 언제 자고?”
“24시간 채우고 6시간 자면 돼요. 그다음에 14시간 다시 연습하다가 그대로 공연하러 가는 거예요.”
“…….”
홍윤서가 할 말을 잃은 듯 눈만 깜빡거리는데.
“한영아.”
고희범이 손을 들었다.
“발언을 허락한다.”
“응, 고맙다. 다름이 아니라, 잠을 안 자면 연습이 잘 안 되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지.”
“그렇지? 그러니까 수면 시간을 더 챙기는 게.”
“그래, 그럴 수도 있어.”
“역시 한영이 말이 잘…….”
“하지만!”
나는 그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질 높은 수면보다는 질 떨어지는 연습이 더 나을걸.”
“…….”
“잠은 공연 끝나고 몰아서 자도 돼.”
이게 내 생각이었다.
고희범이 할 말을 잃은 상황.
“어차피 공연 끝날 때까지만 버티면 되거든요. 그다음에 쓰러져서 자도 돼요. 지금부터는 음악 연습만 계속 할 거예요. 방법을 설명드릴게요.”
나는 하던 말을 이었다.
“카피 아시죠? 듣고 베끼는 거. 그것만 계속 할 거예요.”
“계속?”
“네, 5분짜리 곡이면 대충 1시간에 12번 칠 수 있으니까? 44시간이면 어디 보자.”
계산해 보니까 기분 좋은 숫자가 나와, 나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충 528번 연주해 보면 되겠네요.”
“…….”
“하지만 이건 극단적인 이야기고, 실제로는 조금 다르게 할 거예요.”
“그렇지? 농담이 재밌다.”
“네, 전체를 한 번에 반복하는 게 아니라, 파트로 쪼개서 무한 반복할 거예요.”
슬슬 팅 회원들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내 말이 진담이라는 걸 느끼는 모양.
그중에는 누군가, 탈주의 의지를 비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공연에 안 나갈 거라서…….”
“아 참.”
나는 그의 말을 끊듯 말했다.
“공연에 안 나가도 상관은 없는데, 이건 공연이랑 별개거든요.”
“별개?”
“네, 이건 제 미튜브에 올라갈 비포애프터 프로젝트에 이용할 거라서요. 빠지시려면 제가 내 드린 행사비용도 전부 내셔야 해요.”
“…….”
그 한 마디에 그의 입이 바늘로 꼬맨 듯 멈추었다.
당연하지만 예상한 바였다.
‘아예 아무것도 안 받았다면 모를까, 받았던 거 뱉기는 힘들지.’
이번 행사 비용은 예산을 짤 때 정신줄을 놓고 구성했다.
어차피 내가 분담할 예정이었기 때문.
그렇다고는 해도 솔직히 그리 많은 돈은 아니다.
하루이틀 빡세게 알바를 하면 메꾸고도 남을 돈.
그런데 생각해 보자.
‘알바 뛸 시간에 음악 연습만 하면 된다는 건데, 이게 더 쉽지 않나?’
이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지.
어차피 할 연습에 수면만 포기하면 달달한 수확이 생긴다.
적당히 수면만 포기하면 된다.
밤샘.
20대 피지컬의 대학생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익숙한 일이었다.
‘쉽다고 생각하겠지.’
물론, 나한테는 쉬운 일이 맞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우선, 기초부터 시작할게요.”
그리고.
곧 지옥도가 펼쳐졌다.
* * *
처음 2시간.
“할 만한데?”
“이 정도는 각오하고 왔지.”
초반에만 해도 식구들의 기세는 나름대로 그럴듯했다.
“나 좀 열심히 하는 것 같다.”
“합숙 느낌 제대로 나네.”
“이게 다 추억이지.”
24시간을 대수롭지 않은 숫자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듯했다.
나름대로 열정을 비추는 사람이 대다수.
하지만 6시간이 되었을 때.
“한영아, 나 손끝에 감각이 안 느껴져.”
점차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원래 그래.”
“연주해도 뭐가 바뀐 건지 모르겠는데?”
“좋은 징조야. 계속해.”
식구들이 점차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기서 더 바뀔 게 있나?”
“잘 모르겠는데.”
누군가는 고작 몇 시간 연습했다고, 자기가 악보를 완전히 파악한 것마냥 착각하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잠깐만 기타 좀 줘 볼래?”
내 손으로 연주를 해 보고 돌려주면 그만이었다.
“…….”
“어때, 들어보니까 조금 다르지?”
“…… 그렇네.”
“계속해.”
당연하다.
연주라는 게 원래 음원으로 들을 때와 실물로 들을 때가 완전히 다르다.
왜.
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 연주도 그렇지 않았나.
음원으로 들을 때는 단순히 정교한 연주로 들리기 쉽다.
하지만 실물로 들으면, 감동하다 못해 그 자리에서 실신하는 사람이 속출할 정도였다.
라이브와 음원에는 그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내가 그 정도는 어렵겠지만, 차이를 보여 주는 정도는 가능하지.’
그걸 직접 알려 줄 뿐이었다.
“한영이가 원래 이렇게 잘했나.”
“잘하는 건 알았지만…….”
“뭐지? 내가 친 거랑 어디가 다르지?”
같은 과정의 반복.
이제 나를 재능충 취급하는 시선이 완연해졌다.
은근히 재수 없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몇 달 치지도 않은 게 실력 좀 빨리 늘었다고 완장 노릇하니까 짜증 나겠지.’
이해한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완장? 재능충? 하지 뭐.’
하면 된다.
이건 내 방송이고 내 콘텐츠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무슨 상관인가.
압도적으로 재능으로 다 해 먹는 사람으로 본다면 뭐 어떤가.
맞는 말인데.
‘세상이 다 그렇지.’
나보다 노력한 사람이 한국 음악시장에 없었을까.
아니다.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꽤 많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던 건, 어디까지나 그만큼 내 재능이 남들을 앞섰기 때문이리라.
천재 소리는 전생에도 지긋지긋하게 들었다.
또 질투도 많았다.
그 살기 어렸던 눈빛을 떠올리면 지금 동아리 식구들의 하소연 정도는 귀엽게 느껴질 정도로.
하물며.
“내가 듣기에도 한영이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렇게 연주해 보니까 느낌이 확 사네.”
“누나까지 그렇게 말한다면야…….”
조은솔이 내 의견을 받쳐 주고 있었다.
그 덕에 부담이 퍽 줄었다.
‘책임자답네.’
그렇게 잠시.
JEM 발성 학원의 장영민 원장이 펜션에 도착했다.
새벽이 다 되어서야 도착한 그가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뭘 하는 건가요?”
피폐해진 식구들의 모습에 다소 놀란 눈치였다.
하기야, 보통은 자고 있어야 할 새벽에 단체로 죽을상을 짓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겠지.
“연습이요.”
나는 그에게 담담히 말했다.
“연습?”
“네, 공연이 모레 저녁이라서 잠깐 열심히 하려고요. 잠 좀 줄이고요.”
설명이 이어지기를 불과 몇 분 뒤, 그는 이내 이해한 듯 말했다.
“무모하군요.”
그 말에 몇몇 사람들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연습을 끝내고 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어림도 없다.
“하지만 동시에 과감합니다.”
장영민 원장이 감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좋군요. 미국 음대에서는 이런 단기 강화 합숙을 자주 진행한다고 합니다.”
“…….”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단기간에 성장을 거두려면 이만한 방법도 없지요.”
어째서일까.
그의 목소리에 묘한 열정이 묻어났다.
“자발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 무엇보다도 아름답습니다. 저 또한 강사로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여러분을 돕겠습니다.”
그 말에 몇몇 식구들의 얼굴에서 실낱같은 희망이 빠져나갔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우선은, 뻡입니다.”
내가 들었던 기초 수업이 개별로 시작되었다.
그렇게 기타와 보컬 레슨을 병행하며 시간을 보내기를 또 몇 시간.
“뻡.”
“뻡.”
“이제 잘하네. 조금만 더 하면 될 듯.”
“뻡 유.”
14시간이 넘었다.
이제 식구들은 반쯤 무의식적으로 연습을 이어나가는 듯했다.
“흐아암.”
“어우, 졸려. 한영아, 커피 좀 사 와도 되지?”
“잠시만요. 저랑 같이 가요.”
“……그냥 나 혼자 다녀오면 안 될까?”
“모기 물려요.”
“모기가 무슨 상관이야…….”
연습의 의미를 못 찾고 그저 시간을 버티듯 연주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괜찮다.
저것도 지나고 보면 다 보탬이 된다.
‘꼭 집중해서 연주할 필요는 없지.’
내가 생각하기에 이곳 동아리 사람들의 대다수는 기타라는 악기 자체와 그다지 친하지를 못했다.
그렇기에 저들에게 필요한 게 시간이었다.
손으로 악기를 만지면서 보내는 시간.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저 시간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극심했다.
한편.
“어때?”
성민아는 그저 끈질겼다.
‘집중력이 대단하네.’
악기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은 채, 계속해서 내게 의견을 물었다.
“아까랑은 좀 다르지?”
그런데 그 모습이 얼핏 나와도 닮아 있었다.
‘평소에도 연주에 굶주렸던 건가.’
학기 중에 연습할 시간이 없어서 아쉬웠던 게 나뿐일까 했더니, 꼭 그렇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나한테 안 들려줘도 되는데.”
“그냥 감상만 말해 줘.”
이것도 끈질기다.
“나보다 네가 더 잘 치…….”
“장난하지 마.”
진지하다.
나와 동갑이니 내 감상을 구걸하는 것도 부끄러울 텐데, 그런 게 전혀 없다.
성민아는 내 실력을 자기보다 한 수 위로 인정했다.
정말 깔끔하게, 한 치의 티끌도 없이.
이게 참 뭐라고 해야 할까.
그녀에게 있어서는 경쟁심보다 향상심이 한참 우선인 듯했다.
“아까보다 낫네.”
“더 구체적으로. 어디가 나아졌는데?”
“잠깐만 기타 좀 줘 봐. 아니다. 이쪽 옆으로 좀 빗겨서 앉아 봐. 그리고 손도 줘 봐.”
“어?”
“얼른.”
“응.”
이러한 모습이 은연중에 다른 식구들에게도 영향을 끼친 걸까.
식구들의 눈빛이 변했다.
‘성민아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대충 넘기려고?’
이런 눈빛 아닐까.
내 눈에 비친 성민아는 평범보다 조금 나은 외모였다.
하지만 동아리의 다른 회원들에게는 아니겠지.
잘 보이고 싶으리라.
그래, 잘 보여 봐라.
“…….”
왜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봐.
이것들아.
* * *
어느덧 20시간.
포기하려면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이제 자존심 싸움이었다.
‘포기할 때는 포기하더라도, 내가 먼저 포기할 수는 없다.’
포기한다면 적어도 남이 먼저 포기해야 한다.
휴식 시간은 알아서 챙긴다.
중간중간 화장실에 가는 빈도가 늘어났다.
손가락이 아린 것도 한참 전 일이었다.
이제 손끝에서 특별한 감각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손가락이 후들거리고 인대가 휘청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인 연주를 이어나갈 뿐이었다.
이제 22시간.
‘2시간만 더 있으면 끝이다.’
모두의 마음속에서 같은 생각이 들었다.
졸리다.
많이 졸리다.
이제 반쯤 몽롱한 정신으로 손가락의 움직임만 이어나갔다.
의식하지 않아도 귓가로 들리는 소리를 흉내 내듯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잠을 잤던 게 32시간 전이었던가.
이만큼 오랜 시간을 깨어 있는 게 처음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음악으로 이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저놈은 제정신이 아니야.’
김한영을 보며 하는 생각이었다.
“자, 집중하세요! 집중! 얼마 안 남았어요!”
쌩쌩하다.
겉모습만 그런 게 아니다.
연주에서 더 확연히 드러났다.
길게 말할 것도 없다.
연주의 질이 달랐다.
그냥 손가락이 가는 대로 치는 게 아니라, 모든 피킹에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졸려 죽겠는데, 쟤는 뭐 잠도 없어?’
그렇게 어느덧.
23시간.
윗 기수 선배들은 생각했다.
‘아, 후배가 저러고 있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도 없고.’
‘민아가 보고 있다.’
김한영의 동기들은 생각했다.
‘고희범도 버티는데, 오기로 버틴다.’
서로가 서로와 눈치싸움을 하는 사이 계속해서 연습 시간이 늘어났다.
그리고.
24시간.
삐리릭! 삐리릭! 삐리릭!
미리 설정해 두었던 알람 시계가 환희에 찬 비명을 외쳤다.
“끝이다!”
그 순간 누군가도 외쳤다.
“나 자러 간다!”
“나도.”
“으…… 졸려…….”
힘겹게 숙소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연습실 바닥을 침대 삼아 곯아떨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흐아암, 나도 갈래.”
“죽는 줄 알았네…….”
성민아와 조은솔, 홍윤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희범은 24시간 알람을 듣자마자 제자리에서 바닥으로 머리를 떨궜다.
하지만.
알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버티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었다.
둘이었다.
“…….”
“…….”
한 명은 김한영.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근성 있네.’
정의선이었다.
그는 이미 의식을 반쯤 놓은 듯 손가락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마치 손가락만 까닥거리는 전동 인형과도 같은 모습.
김한영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유일하게 자기가 한 말을 지켰네.’
처음 이번 기획을 시작했을 때 목표가 무엇이었나.
24시간 무수면 연주를 버티는 것이었던가.
아니다.
정확한 약속은.
[김한영과 같은 연습을 할 것.]이게 처음 정했던 약속이었다.
나머지는 각자 자러 떠났으니, 이중에서는 정의선만 유일하게 달성한 셈이었다.
그리고.
성과는 있었다.
단, 다단.
이제 몽롱한 정신으로 연주하는 것조차, 정신이 또렷했을 때의 연주를 한참 넘어섰다.
24시간 사이에 발전이 찾아온 것.
김한영은 그런 정의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금방 늘겠다.’
한 번 한계를 넘어본 사람은 그 감각을 몸으로 체득한다.
이들이 앞으로 할 연습의 질은.
결코 이전과 같지 않으리라.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