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49
49화
40시간의 준비가 끝났다.
이제 무대까지 단 4시간만 남은 상황.
“이제 됐어요.”
나는 기타를 손에서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점검하고 무대 준비하죠.”
모든 준비가 끝났다.
적어도 40시간 동안 이들을 관찰한 내가 두 귀로 판단하기에는 그러했다.
‘예상보다 빠르게 늘었네.’
중간에 낙오자가 한 명쯤은 발생할 줄 알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모두가 끝까지 따라왔다.
내가 이들을 과소평가했던 걸까.
나는 기분 좋은 배신감을 느끼면서 말했다.
“조금 쉬었다가 해요.”
“벌써?”
그 말에 조은솔이 놀라서 물었다.
“나머지 시간 다 채울 줄 알았는데.”
“그래도 되는데, 우선은 휴식 시간을 조금이라도 챙기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집중력 모자라서 무대에서 실수하면 조금 그렇잖아요.”
나라면 그냥 가도 충반하다.
이런 연습 방법에 익숙하니 당장 들이박아도 되겠지.
하지만 식구들은 달랐다.
‘내색은 안 해도 많이 지쳤네.’
이들의 안색을 보면 알았다.
아니, 연주를 들어보면 알았다.
집중력이 끊길 듯 이어질 듯 아슬아슬하다.
무대 위에서 실수를 안 할 정도의 체력이 필요했다.
“휴식도 훈련의 일환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몸 만드는 거랑 똑같아요.”
고희범식으로 말하자면.
“우물 다녀오는 거네.”
지가 먼저 말해 버렸다.
그런데 조은솔은 내 말에 어딘가 기분이 싱숭생숭한지 중얼거렸다.
“음, 어제오늘 느끼는 건데.”
“네.”
“한영이가 되게 기타 강사 같다.”
아, 그렇네.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나도 모르게 강사 마인드가 되어 있었다.
그냥 이번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정도만 하려고 했는데, 식구들이 생각보다 잘 따라오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감정을 이입해 버렸다.
그런데 조은솔이 하소연을 하듯 중얼거렸다.
“이게 선배 체면이 아닌데…….”
아, 그런 이유구나.
3개월짜리가 실력 좀 있다고 동아리 행사를 주도해 버렸으니.
‘은근히 미안하네.’
그래도 조은솔이 동아리에서 회장이기는 한데.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조금 마음의 부담을 덜어줄 방법 없을까.
나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누나, 음악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노래 들을 때 아티스트 나이 생각하고 듣는 거 아니잖아요.”
“…… 한영아, 너 지금 나 놀리니?”
아무래도 내가 말실수했나 보다.
“MT 끝나고 올라가서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기억해 둔다.”
“네.”
아마도 까먹을 것 같다.
한편,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성민아가 어딘가 찜찜한 듯 물었다.
“그럼 다섯 명에서 올라가는 건가?”
“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래야지.”
그렇다.
이번 무대에는 총 다섯 명이 올라가기로 했는데, 그 마지막 멤버가 정의선이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넷이고 정의선은 어디까지나 보너스로 오른다는 컨셉.
“긴장되네.”
정의선이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실수하면 어떡하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왜? 불안해?”
“중간에 어려운 부분이 자꾸 걸려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고민이었다.
정의선이 곡을 완벽하게 마스터한 건 아니었다.
연주 자체에는 나름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아쉬운 부분은 남았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고작 하루 이틀 열심히 연습했다고 곡을 정복하기를 바란다면, 그건 욕심이지.’
실용음악과 학생들이 무대를 어떻게 준비하던가.
입시곡 한두 곡을 완성하려 1년, 2년 이상의 시간을 쏟아부을 때도 잦았다.
하물며 이것도 예선전에 불과하다.
프로가 될 때까지 몇 년의 시간을 더 갈아 넣고서야 비로소 싱글 앨범 한두 장을 내지 않았던가.
오죽하면 어느 천재 가수는 그런 말을 했다.
[마지막 후렴구 10초 있잖아요. 거기만 적어도 1만 번 넘게 연습했어요. 거길 살려야 곡이 사는 거라서.]프로들마저도 이러하다.
그러니 정의선의 고민은 사치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생각을 모두 속으로 감추며 말했다.
“지금까지 수십 번 넘게 반복하면서도 실수 없었잖아. 그럼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
연습할 때는 무거운 마음으로.
무대 위에 오른 순간부터는 가벼운 마음으로.
어느 동료 뮤지션이 내게 했던 말이었다.
“연습할 때는 무겁게, 무대 위에 올랐을 때부터는 가볍게 하는 게 최선이래.”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누가 한 말인데?”
“…….”
성민아가 캐물었다.
이것 봐라.
꼭 이런 거 하나하나 다 따져야 하나.
나는 그녀를 흘겨보다가 말했다.
“함재원.”
“함재원?”
함재원.
전직 락 밴드 기타리스트로 시작해, 지금은 한국 3대 기타리스트 중 하나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다.
또한.
‘그립네.’
내 옛날 지인이기도 하였다.
앞서 한 말은 그의 말버릇.
“함재원이라면.”
그런데 그 이름에 성민아가 눈을 비스듬히 뜨더니 말했다.
“그 사람 연습 안 하는 거로 유명한 천재잖아.”
“…….”
함재원이요?
아니야.
걔 그런 사람 아니야.
나는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실제로는 연습 열심히 했을 수도 있지.”
“아닐걸?”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성민아는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인터뷰에 나올 때마다 자기는 딱히 연습도 안 했다고 하던데? 스튜디오에서 녹음할 때도 원테이크로 끝냈다고.”
아니야.
그거 아니야.
새빨간 거짓말이야.
내가 옆에서 봤는데, 걔 나랑 같은 과야.
연습벌레야.
‘그 자식 거짓말이 이렇게 퍼졌구나.’
내가 기억하는 함재원은 남들에게 천재로 보이고 싶어 하는 노력파였다.
요즘 말로 기만질이 심하다고나 할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백 시간을 연습해 놓고, 남들 앞에서는 아무런 연습도 안 한 척 시치미를 떼는 게 특기였다.
남들 눈에 천재처럼 보이는 게 좋다나.
일명 천재 코스프레.
그런데 그 거짓말을 수십 년을 넘게 일관적으로 친 모양이다.
‘대단하다.’
어쩌면 그는 거짓말의 천재 아닐까.
그래, 나도 솔직하게 말해 보자.
“내가 사실 함재원을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라서 아는데, 그 사람 연습 엄청나게 많이 한대.”
그 말에 성민아가 말을 이었다.
“누구를 건너서 아는데?”
“한윤태 사장님.”
성민아의 눈에 불신이 더 짙어졌다.
“……너 은근히 거짓말을 막 하는데, 그런다고 내가 다 속을 것 같아?”
그래.
너는 불신의 천재구나.
그냥 믿지 마라.
그렇게 대충 성민아를 마음속으로 외면하고 기타나 더 치려는 순간이었다.
덜컹!
공연장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는 한 사람이 몸을 드러냈다.
파마머리 아주머니, ㈜휴먼체인의 담당자였다.
“아이고, 학생들 어디 갔나 했더니 다 여기 있었네.”
그녀는 내부를 돌아보기를 잠시.
뒤를 향해 말했다.
“들어오세요.”
의아한 말이었다.
‘누구 오나?’
그 말로 세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자 등에 악기를 짊어지고 있는 세 남자, 그들을 보는 순간 떠올랐다.
‘아, 저 사람들인가.’
파마머리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사전에 한 설명이 있었다.
[학생들한테는 미안한데 혹시 모르니까 한 팀을 더 섭외했거든. 이번에는 그쪽도 같이 공연할 거니까, 학생들은 너무 부담가지지 말고 편하게 해. 편하게.]어찌저찌 수소문해서 한 팀을 추가로 더 구했다나.
변명은 있었다.
[이쪽에서 먼저 연락해서 사람 구해달라고 한 건데, 갑자기 모르쇠 할 수가 없어서 그래. 학생들이 이해해 줄 거지?]말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우리가 좀 못 미더웠다는 말이었다.
‘뭐, 만에 하나 문제라도 생기면 자기네 잘못이니까 걱정될 만도 하지.’
아쉽게도 우리는 대학생이니까 그럴 수 있다.
보너스 무대 취급하겠다는 말이겠지.
어찌 되었든 이번에 함께 오를 팀의 정보는 들었다.
[트라이디엇].홍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3인조였다.
‘셋 다 기타를 친다고 했나.’
이들의 특징은 그러했다.
세 사람이 모두 기타를 치고, 그중 두 명이 노래를 부른다.
인터넷에서 이들의 노래를 찾아봤는데, 실력이 썩 괜찮은 축에 들었다.
편하게 하라고 했던가.
그래, 편하게 하는 거 좋지.
같은 음악인이니까 사이가 나쁠 필요도 없겠고.
‘친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네.’
라고 생각한 찰나였다.
“아, 이 친구들이에요?”
트라이디엇의 멤버 중, 가장 앞에 선 레게 머리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조은솔이 밝게 웃으며 인사하려는 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중경대 기타 동아.”
“아 뭐야.”
그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도착하기 전에 연습실 좀 치워 달라니까. 아줌마도 참 말 안 듣네. 뮤지션이 무슨 용역으로 보이시나. 가뜩이나 급하게 불려와서 시간도 없는데.”
뭔가가 일어났다.
“……네?”
조은솔이 멍하니 입만 벌리고 서 있는데, 레게머리 남자가 그녀에게 힐끔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거기, 우리 쓰게 방 좀 비켜 줘요.”
* * *
예약한 보람도 없게 수면실로만 사용했던 숙소.
‘천장에 모기 붙었네.’
축 처진 분위기에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찰나였다.
조은솔이 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사람들, 대체 뭐야?”
어딘가 화가 난 눈치.
그녀는 한층 더 입술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초면에 사람이 밝게 인사하면 받아주는 게 정상 아니야? 인사하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그래? 사람 무안하게.”
그렇지.
무안하겠지.
그저 오뚜기 인형의 심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녀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한영이 때문에 싸울 뻔했어.”
그래.
싸울 뻔했…….
“잠시만요. 그건 아니죠.”
싸울 뻔하진 않았지.
정정을 요구했는데 조은솔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무슨 말이래. 네가 그 사람들한테 대놓고 따졌잖아. 늦게 온 주제에 왜 시비냐고.”
“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는데.”
“비슷하게는 말했지.”
그랬었나.
하지만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저들이 초면에 턱이 빳빳하길래, 그냥 상식적인 대응을 했을 뿐이었다.
왜.
연습실은 선착순이니까.
[대기해 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대기?] [우리 연습 아직 안 끝났어요. 끝나면 그때 다시 와 주세요.] […….]단지 그뿐이었다.
나는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그냥 할 말 한 건데요.”
“한영아, 보통은 그걸 따졌다고 한단다. 아주머니가 안 말렸으면 큰일로 번졌을걸.”
“그럼 제가 잘못한 건가요?”
묘하게 늘어지는 말에 찔러 본 순간이었다.
조은솔은 언제 따지고 들었냐는 듯, 갑자기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아니, 엄청나게 잘했어.”
이윽고 킥킥 웃더니 말했다.
“초면에 예의 안 차려 주는 사람한테 예의를 차려 줄 필요는 없지.”
“그렇죠?”
“응, 잠깐 정신이 없었는데 대신 나서 주니까 좋더라. 내가 후배 덕을 다 보네.”
“그럼 됐어요.”
조은솔이 나쁘게 보지 않았다면 됐다.
굳이 잘 보일 필요 없는 사람에게 이미지가 깎였을 뿐.
문제가 될 건 전혀 없었다.
“한영이가 안 나섰으면 집에 가서 이불킥할 뻔했네.”
“그러게, 억울할 뻔했다.”
이내 식구들도 긴장을 푼 듯 웃으며 떠들기 시작했다.
“의선아, 아까 그 사람들 좀 까칠했지. 안 그래?”
홍윤서가 웃으며 말하는데 정의선이 질색하며 답했다.
“음악 하는 사람들은 다 그런가 봐요. 음악이 사람 성격을 더럽게 만드는 뭔가가 있나?”
“이 시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
“경찰 지망생의 촉으로 말하는 건데, 그 레게 머리 한 사람이 조금 약쟁이 같기는 했어요.”
“나 혼자 약으로 강해진 SSS급 음악천재가 되었다?”
“형, 요즘 웹소설 읽으세요?”
어느새 분위기가 풀어졌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가슴 속에 의문이 남았다.
‘우리한테 악감정이 있는 눈치였는데.’
이게 이상했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성격 독특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분노조절장애라는 뜻은 아니었다.
고작 연습실 가지고 싸우면 매일 싸우게.
그런 사람 잘 없다.
음악인들은 그저 가치 판단 기준이 일반인들과 다를 뿐인데, 그렇다면 우리의 가치가 저들의 기준에서 벗어났다는 걸까.
‘딱히 잘못한 거 없는 것 같은데.’
고민이 이어지는 찰나였다.
위이잉.
핸드폰이 울렸다.
그런데 그 전화를 건 대상이 조금 독특했다.
[한가].한윤태의 전화였다.
‘갑자기?’
왜 전화했지.
일이라도 생겼나.
나는 의아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전화를 받았는데, 건너편에서 곧장 걸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야!]“……!”
[전화했더라! 왜 전화했냐!]요란하다.
나는 갑작스러운 볼륨에 핸드폰에서 귀를 뗐다.
‘그냥 부재중 전화 보고 연락했구나.’
내가 전화를 걸었던 게 거의 이틀 전 같은데, 참 빨리도 답장했다.
시간도 없겠다.
대충 끊으려고 생각한 찰나였다.
‘가만.’
머릿속으로 단서가 스쳐 지나갔다.
트라이디엇, 걔들 홍대를 중심으로 활동한다고 했지.
그렇다면 한윤태가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가능성은 있었다.
원래 한윤태의 유일한…… 은 아니고, 가장 큰 장점이 마당발이라는 거니까.
나는 생각을 굳히고는 입을 열었다.
“윤태…… 사장님, 뭐 하나만 여쭤도 될까요?”
[여쭤?]그 순간 윤태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야, 네가 여쭌다는 말을 다 하네. 그래, 존댓말도 쓸 줄 알고 기특하네. 야, 야, 뭐든 여쭤봐. 어르신께서 뭐든 알려 주마.]눈치 한번 더럽게 빠르다.
나는 미묘한 굴욕감에 입술을 살짝 물고는 말했다.
“저 혹시, 트라이디엇이라고 아세요?”
그렇게 물어본 순간이었다.
한윤태의 입에서 완전히 예상외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아, 걔들? 꼰대 트리오잖아.]–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