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50
50화
“꼰대 트리오요?”
뭔가 이상한 말이 나왔다.
그 레게머리 남자를 필두로 한 삼인조, 트라이디엇이 꼰대라는 건가.
되게 자유분방한 사람들로 보였는데.
[아, 몰랐어?]그런데 한윤태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왜, 그런 애들 있잖아. 라떼는 말이야~를 입에 붙이고 사는 애들.]“음.”
[또 자기 잣대가 너무 심해서 남한테 자기들 방식 강요하고 그러는 사람들 있잖아.]“음.”
그런 사람이 다 있나.
‘어지간히 세상 불편하게 사는군.’
내심 익숙한 성격에 공감하는 참인데 한윤태가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도 요즘 신인들 보면 질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인정한 사람만 사람대접하고. 걔들이 딱 그렇거든. 홍대 바닥에서는 흔히 음악 하느라 수고가 많으신 분들이라고 하는데, 트라이디엇이 딱 그렇지.]짧은 몇 마디였지만 트라이디엇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대충 감이 왔다.
하지만 그게 초면에 시비를 걸 이유는 되지 않지.
나는 눈을 깜빡이다가 물었다.
“혹시 그 사람들이 절 싫어할 만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야.]한윤태.
그가 수화기 너머로 씨익 웃는 얼굴이 그려지는 사이 입을 열었다.
[당연히 있지. 너 미튜브 하잖아.]미튜브?
그게 왜.
[홍대에서 음악부심 심한 애들이 주로 싫어하는 게 딱 너 같은 애들이야.]“내가 뭐 어때서…… 요.”
[아니, 네 이야기 아니니까 진정하고, 겉보기에는 뭔가 어중간한데 왠지 팔리는 애들 있잖아. 실력보다는 마케팅으로 뜬 것 같은 애들.]아, 들으니까 딱 떠오르는 부류가 있었다.
희범이가 좋아하는 거.
‘그 뭐야, 우타이테라고 했나?’
일본 인터넷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들인데, 대개 실력이 어중간했다.
아마추어치고는 괜찮다.
하지만 본격적인 프로 씬에는 모자라는 수준.
그런데 그 실력으로 팬덤을 끌고 다니면서 이래저래 문제를 일으킨다고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나.
‘미튜버랑 비슷하네.’
그러고 보면 요즘은 둘이 뭐가 다른가 싶기도 하다.
그게 그거 아닌가.
괜히 잡생각에 빠졌는데 한윤태가 말을 이었다.
[뭐, 음악에 좀 과몰입하는 애들이 미튜버 싫어하는 일이 좀 흔해. 그래서 나는 네가 미튜버 하겠다고 했을 때 놀랐다.]“제가 미튜버들 싫어할까 봐요?”
[남 말하기는. 잘 생각해 봐. 네가 처음 음악 시작했을 때 그랬잖아. 요즘 TV에는 가짜들만 가득하다고.]“…….”
내가 그랬었나.
기억 안 난다.
아무튼, 기억 안 난다.
“이야기가 좀 자세한데.”
나는 헛기침을 뱉고는 마저 물었다.
“비슷한 사람이 좀 많았나 봐요.”
[이 바닥에서 살다 보면 이런저런 피해망상이 많아지거든. 곳간에서 여유 나온다고 했나, 원래 먹고살기가 팍팍하면 세상 모든 게 미워지잖아. 특히 유명한 사람은 표적이 되기 좋고.]그 말에 정의선이 한 말이 떠올랐다.
내가 요즘 기타 커뮤니티에서 네임드가 됐다고 했나.
단기간에 뜬 재능충이라는 타이틀로.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런 나를 좋게 보는 사람만 있진 않았으리라.
오히려 반감을 품는 사람이 훨씬 많았겠지.
이번 일도 그 연장선이라고 보면 금방 이해가 갔다.
[그래도 싸우지는 마. 잃을 거 없는 애들이랑 싸우는 거 아니다.]“그쪽은 잃을 게 없나 봐요?”
[이 바닥에서 오래 구르면서 계속 못 뜨는 애들 특징이 뭐냐. 쥐뿔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쓸데없이 강하다는 거지. 마,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이후로 뭐라고 더 말한 것 같은데 안 들렸다.
사실 그런 것보다는, 답답했던 머릿속이 환하게 트였다.
‘실력으로 나를 얕보고 있단 말이지.’
자기 포장이 과한 미튜버라서 나를 싫어한단 말인가.
좋다.
굳이 반박하지 않겠다.
‘너희들이 허접한지, 우리가 허접한지는 무대가 말해줄 것이다.’
나는 인터넷에서 봤던 구절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번 무대에서 이기고 돌아가면 맛있는 거 살게요.”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고희범이 감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와…… 사망 플래그…….”
*생각을 정리하기를 잠시.
“옛말에 그런 말이 있어요.”
나는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손가락을 들고는 말했다.
“그노티 세아우톤.”
“…… 게임 대사?”
조은솔이 눈을 좁게 뜨고 묻길래, 나는 고개를 가로로 흔들고는 말했다.
“아뇨,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에요.”
“그런데 왜 굳이 그걸 외국어로 말해?”
“교양 시간에 교수님이 말했는데 멋있더라고요. 한번 해 보고 싶었어요.”
“음.”
홍윤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1학년 때는 그럴 수 있지.”
마치 노련한 현자와도 같은 목소리였다.
전역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1학년을 아주 먼 옛날처럼 말씀하신다.
“아무튼,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어요. 무대 순서를 조금 바꾸죠.”
“그래서 네가 처음에 올라가게?”
“네, 맞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쪽이 저희보다 먼저 올라간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첫 순서는 제가 맡을게요.”
“음, 무슨 생각인지는 알 것 같네.”
성민아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 거 아니야? 저쪽에서 실력 차이를 확 보여줄까 봐.”
“맞아.”
합동 공연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앞의 무대에서 실력을 보여줘서, 뒷무대를 묻어버리는 거.
‘음악은 상대적이지.’
사람들은 노래를 들을 때 결코 절대적으로 듣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서 감상이 바뀌기 마련.
누구와 듣는가.
어디서 듣는가.
어떻게 듣는가.
이 노래를 알고 듣는가, 모르고 듣는가.
모든 요인이 정교하게 맞물려서 노래의 감상을 결정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걸 딱 하나만 꼽으라면 말할 것도 없다.
앞에서 어느 노래를 들었는가였다.
‘무대 순서만큼 적나라한 것도 없지.’
당장 [나는 보컬이다]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객관적으로 보기에 아무리 인정받은 뮤지션이라고 해도, 앞서 공연한 사람이 파격적인 무대를 내놓으면 묻혀 버릴 때가 많았다.
‘트라이디엇이 먼저라고 했지. 그럼 우리가 조금만 모자라도 묻힐 거야.’
잘하던 애들이 점점 폼이 떨어지는 건 괜찮다.
하지만 첫인상이 나빠 버리면 끝이다.
그때부터는 뭘 해도 아마추어로 보이기 마련.
적어도 첫인상은 지켜야 했다.
“흐음, 뭐 나쁜 생각은 아닌데.”
그녀는 뭔가 걸리는 게 있는지 눈을 깜빡거리다가 말했다.
“어렵지 않을까?”
회의적인 발언이 나왔다.
동아리 내에서는 그나마 듣는 귀가 있으니 내 실력을 알 법한 그녀인데, 그녀가 반대했다.
“왜?”
“일단 저쪽이 프로라서 실력이 좋은 게 있는데.”
“나도 프로야.”
“한영이, 네 실력이 부족하다고는 안 할게. 나도 본 게 있고 들은 게 있으니까.”
“그런데 왜?”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어.”
그녀는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잘근잘근 꼬더니 말했다.
“숫자가 너무 적어.”
숫자 이야기였다.
“저쪽은 셋이잖아. 게다가 보컬이 둘이야. 아마 소리의 밀도부터가 다르겠지.”
당연한 지적이었다.
라이브에서 숫자가 가지는 힘은 파괴적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솔로 가수가 아무리 훌륭한 무대를 보여준들, 몇 배나 되는 숫자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았다.
“무대의 수준과는 별개로, 세 명이 뿜어내는 소리를 혼자서 이기기가 쉽지는 않을 거야.”
그래서 락 밴드가 라이브에 강하다는 말을 듣지 않았던가.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나 했더니.’
남한테 딴지를 걸 거면 말이라도 끝까지 듣고 할 것이지.
하지만 뭐, 괜찮다.
나름대로 날 걱정해서 한 말이겠지.
다만, 내게도 생각이 있다.
무대를 많이 올라본 만큼 대책도 함께 준비했다.
“지금부터 작전을 설명할게.”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기를 잠시.
성민아가 눈가를 꿈틀거리더니 말했다.
“지금 그걸 나한테 하라고?”
저건 올바른 반응이다.
나는 묘한 즐거움을 느끼며 말했다.
“응.”
*본격적인 공연 준비가 시작되었다.
장소는 펜션 야외 공연장.
마치 옛 그리스 시절의 토론장을 보듯, 무대를 중심으로 부채꼴로 뚫린 계단식 무대가 인상적이었다.
‘소소하니 이런 것도 좋네.’
매번 무대에 설 때마다 즐겁다.
기대된다.
상대가 누구든, 무대를 관찰할 때만큼은 가슴 속에 기대감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번 무대는 내 기억 속에 어떤 무대로 남을까.’
이 마음만큼은 관객들도 같은 걸까.
어느새 차곡차곡 들어온 관객들이 저마다 기대감에 찬 목소리를 중얼거렸다.
“왜 이런 행사를 한대.”
“사장 딴에는 화합이니 뭐니 하는 거지. 그러는 지는 불참했으면서.”
“아이, 사장 자식이 꼴받게 하고 있어.”
“끝나고 숙소 가서 2차 콜?”
“좋지. 한 잔 말아 줘.”
응.
기대감이 없으시구나.
그렇게 중간에 끼어서 앉아 식구들과 함께 기다리기를 잠시.
이내 무대 위로 세 명의 남자가 올라왔다.
저마다 다른 기타를 손에 쥔 세 남자.
트라이디엇이었다.
‘시작이다.’
부웅-.
마이크 부밍이 올린 순간.
세 남자 중 리더로 보이는 레게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음악, 음악이란 과연 뭘까요?”
진중한 한 마디.
무대 첫인상을 질문으로 끊었다.
‘무슨 의도지?’
무대를 훈화로 시작하려는 걸까.
인사 멘트가 지루한 무대는 싫은데.
내심 기대감과 의구심이 반반 섞여 기다리고 있으려니, 레게 남자가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저도 모릅니다.”
“푸훕.”
관객석에서 작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저 짧은 두 마디가 내 머릿속에 인상적으로 박혔다.
‘무대가 능숙하네.’
어찌 되었든 홍대 바닥에서 오랫동안 굴렀다는 걸까.
저 남자의 전신에서는 긴장감이라고 불러 마땅할 것이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머리를 닮은 느긋함이 엿보였다.
“솔직히 음악이라는 게 듣기 좋으면 장땡 아닌가요? 뭘 하든 듣기 좋으면 그게 곧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의한다.
꼰대라는 당신들이 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저건 동의한다.
짧은 문장으로 공감을 얻어놓고 시작하고 들어간다.
“멤버가 두 명이든, 세 명이든. 음악은 듣기만 좋으면 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기타만 세 명입니다. 음악이 뭔지 계속 찾아가고 있는 세 남자, 트라이디엇입니다. 첫 곡, Y 들려드리겠습니다.”
짧은 소개 멘트가 끝나기를 잠시, 이내 레게 남자가 공연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솜씨가.
“음악이 하고 싶었네. 엄마 아빠 나 음악 할래. 다리 몽둥이가 부러질 만큼 두들겨 맞았지.”
무난했다.
무난하다 못해 싱거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뭘 기대했나 실망스러울 정도.
“아버지 말씀하셨지. 음악 하고 싶으면 들어간 학원비 뱉어. 어머니 말씀하셨지. 네가 드디어 부모 가슴에 못을 박는구나. 그런데 나도 할 말은 있네. 엄마 미안해 내가 공부에 재능이 없어. 말했더니 한 대 더 맞았네.”
능숙하기는 하나 특출난 요소는 없다.
보컬도 기타도 무난할 뿐.
‘가사는 재밌네.’
하지만 진짜 변화는.
타다다다닥.
손을 놓고 있던 나머지 둘이 합세한 순간 시작되었다.
“엉엉 울고 있으니 사과 깎아다가 내주신 우리 어머니. 아빠 몰래 학원비 내 주셨네.”
“좋아, 좋아.”
“나 어린 마음에 엄마 손 잡고 말했네. 엄마 나 성공해서 효도할게요.”
“슈비두비두비두빠빠.”
달라졌다.
갑작스럽게 곡의 힘 자체가 바뀌었다.
‘셋이 하나가 됐군.’
호흡이 다르다.
각자 다른 세 가지 가닥의 연주가 절묘하게 섞이며 완성된 한 곡으로 뻗어 나갔다.
나는 비로소 느꼈다.
‘트리오 맞네.’
세 기타로 뭐든 표현한다.
이건 마치 스마트폰의 RGB 액정이 R(빨강) G(초록) B(파랑)의 삼원색으로 온갖 색깔을 띄우는 것과도 같았다.
압도적인 호흡.
세 사람을 합쳐서 곧 트라이디엇이었다.
“아아, 이 나이 돼서 마음을 전할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그런데 조금만 더 말려 주시지 그랬어요.”
“왜 안 말려 주셨어요.”
“나 돌아가면 공부할래.”
노래에 말장난이 가득하다.
이것 또한 홍대 음악의 특성이었다.
굳이 대중적인 요소에 얽매이지 않고, 가사부터 말하고 싶은 걸 하는 것.
재밌다.
‘이런 느낌이라 이거지.’
그래도 이 바닥에서 오래 버텼을 만큼의 관록은 있다는 건가.
저 사람들의 인성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 따위야 둘째치고, 무대 자체는 인정해 줄 만하다.
하지만.
저들의 실력을 인정했기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꺾을 맛이 나겠어.’
이기는 것이었다.
트레몰로의 아마추어들은 깔끔한 연주를 자랑했지만, 색깔은 없었다.
반면, 이 사람들은 어떤가.
프로임에도 연주가 거칠다.
하지만 색깔이 진했다.
‘불순물이 가득하지만 매력적인 색깔이다.’
어느 쪽이든 내게는 이기고 싶은 대상이었다.
“김 대리! 넘어지지 마라! 토끼 같은 마누라 여우 같은 자식들을 생각하며 오뚜기처럼 버텨라! 휘날리는 서류 뭉치에 가슴이 시큰해도 두 다리로 아스팔트 바닥을 박차고 일어나. 명퇴하는 그날까지!”
그렇게 감상에 빠진 사이 그들의 차례가 끝났다.
‘프로가 맞네.’
흥에 취한 사이 40분에 가까운 무대가 순식간에 끝났다.
그리고.
이제 우리 차례가 왔다.
“흠흠, 아아.”
무대 위로 올라간 조은솔이 쭈뼛거리며 마이크를 체크하더니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중경대 밴드 동아리 팅입니다.”
“미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김한영입니다. 마찬가지로 팅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 순간 관객석에서 짧게 감탄을 터뜨리는 사람이 한 명 보였다.
나를 아나 보군.
하긴, 지난번 메들리 연주가 꽤 조회수가 터졌었지.
하물며 구독자 5만이면 슬슬 세상에 알려질 정도가 됐다.
‘이제 시작이겠지.’
고희범식으로 말하자면 레벨 업.
이제 본격적으로 첫 무대를 시작할 차례.
“바로 시작할게요.”
내가 기타를 들며 시선을 보낸 순간이었다.
세 사람이 함께 기타를 들었다.
성민아와 조은솔.
그렇다.
무대 위에는 나 혼자가 아닌, 두 사람이 추가로 함께 섰다.
‘저쪽이 세 명 올라간다면, 이쪽도 세 명 올라가면 그만이지.’
그뿐이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