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53
53화
몇 가지 준비를 마친 뒤, 나는 대전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가는 길에는 솔직히 뭐라고 해야 할까.
‘여유롭네.’
모처럼 여유가 느껴졌다,
이번 생에 들어서 나는 늘 숨 가쁘게 살아왔다.
눈을 뜨고 있을 때는 언제나 학교생활 아니면 음악으로 바빴지.
그랬던 것이 지금 이 순간, 처음으로 여유를 찾았다.
‘아무리 그래도 기타 내에서 기차를 연주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니지, 기차 내에서 기타를 연주할 수는 없지.’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너무나도 목적의식이 뚜렷하게 살아온 나머지, 여유가 찾아왔을 때 쉬는 법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나 또한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음악 없이 살아가는 법을 몰랐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며 흡사 소크라테스가 된 기분에 취한 순간이었다.
“대전 별명이 뭐게?”
“뭔데?”
“빵역특별시.”
옆자리 사람들이 즐겁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대전 시청을 성심당 옆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생각해.”
“음, 오늘은 국물 있는 거 먹고 싶은데 칼국수 먹자.”
“칼국수에다가 빵을 같이?”
“이 정신병자야, 제발 좀.”
빵이라.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잠시 머물렀다가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트라이디엇, 나름대로 잘했었지.’
인성 평가는 둘째치고, 그들의 말에서 옳았던 게 하나 있다.
뭐든 듣기 좋으면 음악이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 공간은 음악으로 가득 찬 공간이 맞았다.
‘창밖의 광경, 덜컹거리는 기차,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머릿속으로는 음악이 가득했다.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슬슬 때가 왔다.’
또다른 나를 일깨울 순간이 왔다.
그동안의 나는 전적으로 연주자로서의 일에만 집중해 왔다.
눈을 뜨고 있을 때는 언제나 연주에 매진하는 것.
그러한 일에 3개월이라는 시간을 꼬박 갖다 바쳤고, 비로소 작은 성과를 얻었다.
‘사용법을 익혔다.’
내 몸의 사용법을 슬슬 익혔다.
운전자가 새로운 자동차를 뽑으면 두세 달 굴리며 점차 두 다리처럼 다룰 수 있게 되듯, 나도 이 몸의 소리를 점차 깨달았다.
전생보다 얇은 목소리.
하지만 그렇기에 더 범용성을 갖춘 목소리.
손가락 또한 전생의 테크닉을 어느 수준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전생이 비하자면 티끌도 안 된다.
하지만 그 티끌조차도 지금 당장은 만족스러웠다.
‘20년 넘게 쌓은 걸 3개월 만에 따라잡으려면 그건 욕심이지.’
서두를 것 없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이 몸에 맞춘 음악을 만들어 볼까.’
작곡이었다.
싱어송라이터가 어째서 싱어송라이터인가.
곡을 만들기에 그러하다.
더불어 나 자신이 판단하기에 내 음악인의 실력이란 실연(實演)보다는 작곡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려야 한다.
내 목소리와 손의 참된 역할이란 그림을 그려내기 위한 도구이지 않았나.
지금, 싱어송라이터 본연의 자세로 돌아갈 순간이 왔다.
어떤 소재가 좋을까.
주위를 잠시 둘러보자, 곧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있었다.
“성심당부터 들리자.”
옆자리 사람들이 질리지도 않고 빵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놈의 성심당. 또 가 봤자 튀소나 먹겠지. 지겹지도 않냐?”
“아니, 튀소는 대전 하수들이나 먹는 것. 진정한 고수는 보문산 메아리를 먹는다.”
“보문산 메아리? 그런 게 어딨어.”
“먹는 만큼 보이는 법. 우매한 자는 그 입을 다물라.”
“미친놈아.”
지겹지도 않은가.
하지만 저 빵 예찬론자의 빵 사랑이 지극했다.
“창피하니까 제발 그만 좀 해. 오빠는 내가 좋아 빵이 좋아?”
“당연히 네가 좋지.”
“그런데 왜 자꾸 그래?”
“킹치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네가 날 돌아봐 주지 않는걸.”
“뒤진다 진짜.”
드디어 두 사람의 대화가 빵에서 벗어났다.
빵이라.
대전이 빵의 도시라는 사실 정도야 나도 익히 알았다.
‘빵, 빵, 빵.’
하지만 나는 전적으로 한식 파라서 빵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매력이 느껴졌다.
‘빵이라.’
그래, 빵이다.
빵을 소재로 곡을 만들어 본다면 어떨까.
다소 밝은 멜로디가 되겠지.
전생의 내 목소리라면 어울리지 않았을 소재다.
울적하니 진지한 곡은 찰떡같이 어울리는 반면, 밝은 곡은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라면 어떨까.
‘둥근 빵, 따뜻한 빵, 커다란 빵,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빵.’
오래 지나지 않아 머릿속이 빵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손가락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기타를 치고 싶어서 참을 수 없을 정도.
아, 이 이상은 못 참겠다.
‘어디 보자.’
이런 위급 사태를 위해 준비해 온 게 있다.
취향이 아니라서 그동안은 고려조차 안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어쩔 수 없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는 수밖에.
띵!
곧 내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거친 기타 소리를 튀어나왔다.
하지만 기차 내부는 그저 조용했다.
지금 내가 연주하는 기타의 정체는 바로.
‘모두의 세션 pro. 깔아두길 잘했다.’
핸드폰에 깔린 어플 기타였다.
‘이것만 있으면 어디서든 연주할 수 있다 이거지.’
역시 기술 발전이 좋다.
그렇게 대전까지 가는 기찻길은, 딱히 심심하지 않았다.
* * *
그렇게 나름의 성과를 얻고 역에서 내렸을 무렵.
내 내면에는 어느새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드디어 이 순간이 왔구나.’
피하고 피했거늘, 결국에는 이 순간이 왔다.
대전역에서 나와서 4번 출구 광장.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를 30분.
나는 나 자신도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동해 어느 한 주택에 다다랐다.
‘익숙한데 어색하네.’
구도심 외곽에 자리 잡은 2층 벽돌 주택.
그 앞에 돌처럼 단단한 인상의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50대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굉장히 탄탄한 몸을 자랑하는 이 남자.
그의 정체는 바로, 내 아버지였다.
‘호흡 조절하자.’
아들이 부모 만나는 게 이상할 일이 뭐가 있나.
긴장할 거 없다.
긴장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
……라고 생각할 뿐, 내 심장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김한석과 김한영이라는 두 정체성이 여전히 내 안에서 대립각을 세웠다.
‘말을 붙여야겠지.’
그렇게 결심을 굳힌 순간이었다.
“아들.”
“……!”
아버지가 먼저 나를 눈치채고는 말을 걸었다.
“언제 도착했어?”
“지금 막이요.”
“왔으면 말을 해야지. 왜 가만히 서 있어?”
묘하게 속내를 떠보는 말투다.
사소한 말이 걸렸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머뭇거리기를 잠시.
전생과 이번 생을 합쳐 아마도 200이 넘을 IQ를 짜내 답했다.
“그냥 오래간만에 뵈니까 좋아서요.”
“좋아?”
“좋죠. 너무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 것 같아서 더 좋은데요. 누가 보면 30대라고 해도 믿겠어요.”
“…….”
그 말에 아버지는 눈을 깜빡이다가 말했다.
“대학에서 아부도 가르치더냐?”
“진심으로 한 말이에요.”
“안 어울린다.”
그러시단다.
실패했나 보다.
“네 엄마 기다린다. 얼른 가자.”
“네.”
나름대로 잘 넘긴 것 같다.
아마도.
그렇게 집에 들어가니 주방에서 식기 부딪치는 소리가 한창이었다.
“여보! 아들 왔어!”
아버지가 우렁차게 외친 순간이었다.
어머니가 즉시 고무장갑을 벗더니 달려와 나를 껴안으며 외쳤다.
“아들!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네!”
“…….”
기쁘다.
한편, 어색했다.
“오늘은 실력 발휘 좀 해야겠네. 앉아서 기다려.”
곧 어마어마한 찬이 차려졌다.
그리고.
질문 공세가 시작되었다.
“학교생활은 할 만하고?”
“그럭저럭…….”
“밥은 잘 먹고 다니는 거 맞지?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누가 보면 굶고 다닌다고 해도 믿겠네.”
아니다.
더럽게 잘 먹고 다녔다.
인생의 몇 안 되는 취미가 식사다 보니, 버는 돈은 족족 식비에 쏟아부었다.
“안 되겠다. 엄마가 갈 때 반찬 좀 싸 줄게. 가져가서 먹어.”
“감사합니다.”
“뭐야, 손에는 왜 이렇게 상처가 많아?”
“이건.”
“어디서 험한 일 하고 다니는 거 아니지? 아들, 그러면 엄마 마음 아파.”
“학교 과제 때문에 그래요.”
“누가 괴롭힌 거 아니지?”
“고등학교도 아니고, 대학교에서 누가 괴롭혀요.”
“왜, 요즘 뉴스 보니까 사발식인가 뭔가 해서 사람도 죽고 그랬다던데.”
“저희는 안 그래요.”
어쩌다 보니 단답만 흘러나왔다.
무작정 쏟아지는 호의, 끝을 모르고 쏟아지는 호의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탓이었다.
딱히 할 말이 안 떠오른다.
사실, 지금 내 행동이 어색하게 비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오죽하면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어렵다.’
식사가 어렵다.
가족과의 식사인데, 마치 높으신 분을 대동한 회식 자리처럼 복잡하다.
이런 건 내가 아니라 윤태가 잘하는데.
내가 이상한 걸까.
가족과 단순한 식사를 하는 것뿐인데, 뭐가 이렇게 잡생각이 많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맞서 싸우다 보니.
어느 순간 나 혼자 우주 한가운데 붕 떠 있는 것만 같은 고립감이 느껴졌다.
‘나는 왜 여기에.’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가 현기증에 휘청한 순간이었다.
“요즘 힘들어?”
아버지가 진지한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따라 아들답지가 않네.”
“……아.”
어색하게 보였나 보다.
딱히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려는 찰나였다.
“여보.”
아버지가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거 줘.”
“벌써?”
“어서.”
“좀 더 봐서 말하려고 했는데.”
“어차피 주려고 한 건데 미룰 거 있나.”
그 말에 어머니가 호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리고는.
“아들, 학교 다니면서 일이 많지?”
내게 흰색 봉투를 건네었다.
이게 뭔가 싶은데, 어머니가 웃는 얼굴로 채근하듯 말했다.
“이게 뭐예요?”
“열어 봐. 얼른. 어서.”
어머니의 말을 못 이겨서 안을 열어 본 순간이었다.
“…….”
그 안에는, 갓 뽑은 듯 빳빳한 새 지폐가 여러 장 담겨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할 말을 잃은 참.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많이 못 넣어 줘서 미안해.”
“이 사람아, 미안할 게 뭐 있나. 사람이 있는 형편대로 사는 거지.”
“애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어.”
“한영이도 이제 어른이야.”
“얼씨구. 챙겨주라고 한 게 누군데?”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는 헛기침을 뱉더니 말했다.
“아들, 뭘 더 풍족하게 해 주는 건 어렵겠지만, 나중에 못 해 줬다는 말도 듣기 싫다. 쓸 때는 쓰고 살아. 사내자식이 꿍하니 있지 말고, 당당하게. 고개 들고.”
얼핏 거친 말.
하지만 그 말이 한순간 가슴을 울렸다.
‘그렇구나.’
나는 내가 자식답지 않게 보일까 걱정하느라 말이 없었을 뿐인데, 그게 두 분의 눈에는 다르게 비쳤나 보다.
돈을 달라고 말하기 어려워서 말이 없어진 그런 태도.
죄인의 태도.
그게 지금 내가 보이는 태도였다.
또한, 할 말을 못 꺼내서 소극적으로 변한 사람의 태도이기도 하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답지 않게.’
내가 언제부터 할 말을 못 하는 사람이었나.
마음을 감추는 게 나다웠나.
아니다.
직설적이다 못해 어딜 가나 사고를 몰고 다니던 게 나였다.
그런 내가 지금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거야말로 죄인이 되는 행동이었다.
정작, 부모님은 날 의심하기는커녕, 순수히 걱정만 하고 계시지 않았나.
갑자기 다가왔다.
호의.
이유가 없고, 조건이 없는 호의.
의심조차 없는 호의.
그게 부모의 호의거늘 답답한 심문처럼 느껴졌던 건.
김한석으로 살아왔던 내가 가족이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탓이었다.
“…….”
또한, 남으로 보일 게 두려웠던 것.
그렇다면 이유는 두 사람이 아닌 나 자신에게 있었다.
굳이 눈치 보고 숨길 게 있나.
숨기지 않아도 될 것을 굳이 감추려 했기에 본질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나를 숨기려고 하지 말자.
이제부터는.
“저요.”
할 말을 하자.
“음악 해요.”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