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54
54화
잘 생각해 보면, 내가 부모님을 마주하고 아직 반나절조차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체감하기에는 그 10배 이상의 시간이 지난 듯했다.
조금 지나치게 아등바등했다.
그 이유를 조금 전이 되어서야 간신히 깨달았다.
‘나를 감추려고 했어.’
김한석으로서의 내가 김한영의 바깥으로 배어날까 두려웠다.
하지만.
부모님은 애초에 그런 것에는 별 관심도 없으셨던 듯했다.
내가 어떻게 되든, 나란 사람은 그저 두 분의 자식일 뿐.
‘나는 나다.’
오랫동안 품어 왔던 고민의 답을 비로소 해소했다.
이 결론을 내자 속이 홀가분해졌다.
‘뭘 그리 구분하려 했는지. 평생 그러고 살 것도 아니고.’
3개월이나 걸렸다.
참 지지부진한 시간이었다.
뭘 그리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숨기는 데 급급했는지.
자칫하면 한평생 내 자랑이었던 음악이 남부끄러운 물건이 될 뻔했다.
그런 나를 부모님이 가만히 응시하시기를 한참.
아버지가 팔짱을 낀 채로 입을 열었다.
“음악을 한다고?”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계속 음악을 했어요. 친구랑 같이 팀을 꾸려서 방송도 하고 그랬어요. 동아리에도 들어갔고요.”
“원래 안 했잖아.”
“하기는 했죠.”
방구석에 놔두었던 낡은 기타.
손이 닿지 않아 먼지가 선명하게 내려앉았지만, 어찌 되었든 하기는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는 척만 했지.”
저 말도 사실이다.
말 그대로 사 놓고 몇 번 만지작거리다가 버리기 아까워서 모셔 두었을 뿐, 제대로 파고들었다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취미로 하겠다는 거지?”
아버지가 물었다.
취미라.
저 말에 긍정하면 당장은 편하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금 불편할 순간이 올 터.
어차피 몇 분 뒤면 밝히게 될 사실이다.
맞을 매라면 먼저 맞는 게 낫다.
나는 내친김에 조금 더 과감해져 보기로 했다.
“조금 더 진지하게 하려고요.”
“진지하게? 어떤 의미로?”
“그냥 간단한 취미 수준이 아니라, 직업적인 의미에서요.”
“…….”
“당분간은 음악에 시간을 많이 투자해 보려고 해요.”
아버지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아들, 솔직히 말하면 엄마가 당황스럽네. 기타를 왜 가져왔나 했는데.”
“이해해요.”
“엄마도 이해하고 싶어. 아들이 뭘 하든 응원해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지. 그런데 음악을 취미로 하는 게 아니라면 걱정이 되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않겠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내가 부모라도 자식이 트라이디엇처럼 될까 봐 걱정되기는 할 터.
“그리고 방송이라는 거 말인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방송이라면 요즘 막 미튜브인가 하는 그거지?”
“네.”
“사방에서 난리라더라. 그쪽이 부익부 빈익빈이래. 버는 사람만 벌고 나머지는 생활비도 못 벌어서 부모한테 손 벌린다더라. 엄마 친구 아들 중에서도 그런 애들이 있어.”
“그래도 그렇게까지 못 나가지는 않아요. 나름대로 성과가 보여요.”
“아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을 때가 제일 위험하다는 거 알지? 그렇게 주식 하다가 망한 사람이 많다잖아.”
조금만 더 하면 뜰 것 같은 상황이라.
나는 저 말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사람을 알았다.
이상혁이었다.
[싱어송라이터 김한영] 채널이 구독자 수 5만을 코앞에 둔 지금도, 그의 채널은 제자리걸음이었다.‘여전히 5천 정도였나.’
지난 3개월간 별다른 발전이 없었다.
‘쉽지 않은 업계인 게 사실이기는 해.’
적당한 입담과 훤칠한 외모, 나름 괜찮은 실력을 갖췄는데도 그 정도다.
따지고 보면 내 채널이 빠르게 발전한 게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구독자 5만으로는 부모님을 설득하기 어려울 것도 잘 알았다.
‘우리 부모님은 인터넷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지.’
아직도 종이 신문을 매주 구독하는 분들이다.
미튜브는커녕 블로그조차 다루기 어려워하시는 분들.
이게 생각보다 중요했다.
자동차 공장에서 어느 부품의 조립 오차를 1㎜ 미만으로 줄였다는 게 일반인에게 와닿기나 하겠는가.
사람마다 설득 방법은 다른 법이다.
“엄마 걱정하게 할 거야?”
이럴 때는 보편적인 공감대가 필요했다.
그래서 준비했다.
“잠시만요.”
나는 가방 속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그것을 꺼냈다.
그리고는.
펼쳐서 부모님에게 보여드렸다.
“지금까지 모은 수입이에요.”
통장이었다.
최근 3개월간 열심히 끌어모은 수입.
그곳에 적힌 액수가.
무려 천만을 조금 넘겼다.
“…….”
그 통장을 마주한 부모님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게 방송으로 번 돈이라고?”
“네.”
물론, 살짝 양념을 쳤다.
‘아슬아슬하게 맞췄네.’
전부 방송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아니다.
모노 시청자 감사제에서 받은 상금이 절반 가까이 될 터.
아직 [싱어송라이터 김한영]은 큼지막한 돈벌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카페 이스케이프에 떼 주고 희범이한테 떼 주다 보니, 월평균 수입으로 치자면 200에서 300을 간신히 버는 수준.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일반인이 구독자 5만의 의미를 잘 모른다면,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으니.
“당장 이쪽으로 전업하겠다고 하면 불안하실 거 알아요.”
“아들.”
“천천히 할 거예요. 학교는 계속 다닐 거고, 성적도 유지하려고요. 적어도 취업에 큰 문제는 없을 정도로.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막무가내로 달려들지는 않을 거예요.”
부모님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마음이 복잡하시겠지.
그래서 나는 준비한 다음 한 마디를 말했다.
“어차피 제가 음악을 안 했더라도 그 시간에 뭔가 생산성 있는 일을 하진 않았을 거예요. 게임이나 열심히 했지 싶어요. 희범이처럼.”
고희범이 게임에 미쳐 사는 건 고등학생 때부터 유명했던 일.
그 말을 들은 어머니의 뺨이 미묘하게 씰룩였다.
‘됐다, 성공이다.’
그 광경을 확인한 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리고 앞으로 학비는 제가 낼게요.”
“뭐?”
어머니의 눈이 커졌다.
나는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지금 추세만 보면 당분간 등록금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미튜브인지는 수입이 불안정하지 않니?”
“저도 이제 어른이잖아요. 책임질게요.”
“아들이 책임이라는 말도 할 줄 알게 됐어?”
“그게 어른이니까요.”
이만하면 대충 준비한 말은 다 한 것 같다.
음악에 미쳐서 인생을 걸지 않으리라고 약속하는 것.
또 지금 당장 내가 즐길 수 있는 취미를 하는 거라고 말하는 것.
이 이상 또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싶은데,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아들이 뭔가를 열심히 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
“공부도 하라고 하니까 하고, 기타는 사 줬더니 건드리지도 않고. 학과도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성적 맞춰서 가고.”
그렇게 살기는 했지.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되는 대로, 내 기준을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두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다.
‘김한영이 그렇게 살았지.’
김한영이다.
내가 나라는 걸 인정한 게 몇십 초 전이지만, 잠시 나 자신을 타자화해 보기로 했다.
이걸 메타인지라고 하던가.
‘대학 교양 수업도 가끔은 쓸모가 있군.’
고희범이 아는 메타라고는 덱이나 챔 메타밖에 없을 것 같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네 나이에 천만 원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통 안심할 수가 있어야지. 이걸로 영원히 먹고살 것도 아니고. 자영업자잖아. 네 엄마도 나도 자영업자야. 그래서 알아.”
아직 불신이 남은 기색이 완연하다.
설득이 모자랐나.
내 기억에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훨씬 더 딱딱한 사람이었다.
이건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순간.
“딱 너만 할 때 김한석은 이미 가수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음악으로 성공하겠다면 그 정도는 해야지.”
사실상 포기하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이 내게는 다르게 들렸다.
동아줄이었다.
김한석.
그 이름을 들은 찰나, 나는 미리 챙겨온 기타를 꺼내 들었다.
“너, 뭐해?”
아버지의 말에 나는 현을 퉁기며 답했다.
“해 볼게요. 김한석처럼.”
* * *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들에게 김한석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지금의 아버지 세대.
그들에게 있어서, 김한석은 추억 그 이상이었다.
‘사람은 10대에서 20대 사이에 들은 음악을 평생 기억한다고 했나.’
마침 우리 부모님들이 김한석 때 저 나이셨지.
그렇다면 두 분에게 있어서, 김한석의 음악은 현재진행형이리라.
‘왜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아버지의 입에서 김한석이라는 이름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떠올렸다.
생각해 보거든 아버지의 차를 타면 언제나 김한석의 CD가 돌아가고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아버지가 가장 좋아했던 곡도 떠올랐다.
사계(四季).
김한석의 1집 앨범 8번 트랙이자, 심히 어중간한 위치답게 어지간한 사람들은 모르는 곡이었다.
이 노래가 왜 아버지에게 각별할까.
그 이유도 이내 떠올랐다.
[아빠는 왜 맨날 이 노래만 들어요?] [네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 이 노래를 듣고 있었거든.]각별한 상황에 들었기 때문이다.
‘공연 보러 가서 만났다고 하셨나.’
그의 인생의 한 조각에 김한석의 음악이 깃들어 있었다.
한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
그것이 내 음악이었다.
디링.
테일러 기타가 찰랑거리는 소리를 부드럽게 흘렸다.
“너 지금 뭔…….”
“들어주세요.”
역시, 말보다는 음악이 편하다.
나는 기타 소리를 음미하기를 잠시, 호흡을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봄이 오네요. 그대를 닮은 봄이 오네요.”
난 사랑 노래를 별로 부르지 않았다.
애초에 연애라는 것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
하지만 이 곡은 예외였다.
“이 세상의 가장 흔한 거리도 그대와 함께 걷는다면 내게는 가장 특별한 순간이에요.”
그냥 그랬던 시기였다.
괜히 싱숭생숭했던 시기가 있었다.
나도 사람이니까.
“여름이 되면 낡은 자동차를 고쳐 타고 그대와 떠나요. 계곡, 바다, 공원, 어디든 좋아요. 그대와 함께한다면 그곳이 내가 있을 곳이에요.”
부르다 보니까 괜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가사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네.’
내가 미쳤지.
흑역사를 드러내는 것 같아 순간적으로 부끄러워졌지만, 그냥 꾹 참았다.
‘나는 김한영이다. 나는 김한영이다. 나는 김한영이다.’
김한영이 옛 가수 김한석이 만든 노래를 부르고 있을 뿐이다.
조금 부끄러운 곡.
하지만 이게 부모님에게는 특별한 곡이겠지.
왜 이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을까.
지금의 나를 장식하기에 급급해, 정작 부모님이 어떤 사람인지를 놓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겨울이 와요. 첫눈에 반한 그대와 함께 겨울 첫눈에 안녕하며 이 모든 순간에 감사해요. 내년에도 같은 눈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이 노래를 부릅니다.”
그렇게 낯뜨거운 노래를 부르기를 잠시.
스륵.
기타를 내려놓았을 때였다.
“왜 이 노래야?”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나는 잠시 침묵했다가 답했다.
“많이 들어본 곡이라서요. 아버지…… 가 아니라 아빠가 많이 들려주셨잖아요.”
“그래?”
잠시 뒤.
아버지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잘하네.”
칭찬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는데, 아버지는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언제부터 연습했어?”
“3개월 전부터요.”
“3개월치고는 잘하네.”
“하다 보니까 재밌길래 열심히 했어요.”
“남들도 몇 달 하면 다 이만큼 하나?”
“아뇨.”
“그래?”
아버지는 그 말과 함께 다시 숟가락을 들며 말했다.
“사람이 잘하는 일 해야지.”
“……!”
놀라서 눈을 크게 뜬 참인데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사내자식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해야지.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부모 허락까지 받으려고. 네 인생은 네가 알아서 살아.”
말은 투박하다.
하지만 나는 이게 아버지 나름의 허락법이라는 걸 알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게 뭐가 있다고.”
“그래도.”
나름대로 격식을 차려 보려는 순간이었다.
“할 말 다 했으면 밥이나 먹자.”
아버지가 내 말을 끊으며 말했다.
“네 엄마가 기껏 차려 줬는데 다 식겠다.”
아.
어쩐지 계속 눈길로 식탁을 흘끔흘끔 바라보시더라니.
“알았어요.”
나도 이내 숟가락을 들었다.
그렇게.
부모님과의 첫 면담은 된장찌개 냄새와 함께 끝났다.
아직 설득이 충분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그때는 또 다른 설득 수단이 생기겠지.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라고 생각하면서 밥술을 뜨려는 순간이었다.
“아들, 그 방송한다는 거 이름 좀 알려 줘라.”
음.
이건 조금 부끄러운데.
많이 부끄러운데.
왜 부끄럽지.
* * *
‘생각보다 알찬 시간이었어.’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결말이 좋았다.
내색은 안 했지만, 그간 내 정체성을 두고 혼란이 있었다.
김한영인가, 김한석인가.
그게 이번 기회에 나름대로 정리가 된 느낌.
썩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부모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서울로 다시 올라온 나는, 곧 바빠졌다.
‘지금까지의 싱어송라이터 김한영 채널은 튜토리얼에 불과했지.’
다시 시작하자.
음악 경연대회를 앞두고 프로젝트 발표도 남았다.
기왕 부모님에게 인정도 받았겠다, 이제부터는 [싱어송라이터 김한영]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 순간이 왔다.
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고희범에게 말했다.
“야, 스튜디오 차리자.”
그 말에 고희범이 눈을 씰룩거리더니 말했다.
“……스튜디오? 갑자기?”
“상남자 특.”
나는 그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음.”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