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55
55화
‘스튜디오가 필요하다.’
꽤 예전부터 한 생각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모노의 스튜디오를 본 순간부터 생각했다.
‘캐릭터 구축은 환경부터 시작된다고 했던가.’
모노는 자기 캐릭터를 ‘옆집 친구’로 설계했다고 했다.
그래서 돈을 얼마를 벌든 원룸 같은 인테리어를 고집한다고 했지.
그 말이 옳다.
방송인은 캐릭터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이 등장한다고 해서 캐릭터가 전부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어디에서 방송하는가.
이 환경이 곧 나라는 방송인의 이미지 구축으로 이어지는 셈이었다.
“갑자기?”
고희범의 반응에 내가 답했다.
“안 그래도 슬슬 필요하던 참이었잖아.”
나는 하던 말을 이었다.
“이스케이프에서 언제까지고 방송할 것도 아니고. 거긴 너무 좁고 장비도 불편해. 보안도 그렇고.”
이스케이프 자체는 훌륭하다.
하지만 만인에게 공개된 공간이기에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었다.
인테리어를 자유로이 꾸밀 수가 없으며, 장비도 마찬가지.
“악기는커녕 간식 하나 보관하기도 어렵잖아.”
무엇보다도 방송 환경 세팅 문제도 있었다.
“방송 킬 때마다 세팅에만 몇십 분을 쓰는 거야. 남들이랑 시간 예약 문제로 신경전 벌이기도 슬슬 지친다. 그 시간도 다 돈인데.”
“음, 돈이 돈이기는 한데.”
“마침 계약 갱신일도 조만간이잖아. 떠날 때가 됐어.”
냉정하게 말해서 처음 계약했을 때부터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
임대 사무소 사업과도 같았다.
직원 수가 적은 소규모 사업장일 때는 괜찮지만, 조금만 매출이 늘어도 자체 사무실을 찾아 나가는 구조.
‘어차피 스튜디오를 만들 거라면 미룰 필요가 없다.’
이르게든 늦게든 해야 했을 일을 할 뿐이었다.
그런데 고희범은 움찔하더니 내 눈길을 피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굳이 서두를 필요가 있나?”
“네가 만들자고 했잖아.”
“그렇기는 했는데, 정산일까지만 미루면 안 될까?”
“그건 너무 멀어.”
정산일이 이제 한 보름 남았나.
“뭐든 할 거면 빨리하는 게 낫지. 시간이 돈인데.”
그렇게 말한 다음 순간이었다.
“잠깐!”
고희범이 이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사람의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가면서 정리하자.”
“형님! 잠깐, 잠깐만! 잠깐만 시간을 주십쇼!”
어느새 겁쟁이로 돌변한 그가 급히 나를 멈춰 세웠다.
이상하다.
지가 먼저 스튜디오를 만들자고 해 놓고서는, 왜 이렇게 질질 끌지.
……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저건.’
책상 위에 놓인 고희범의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화면도 보였다.
[+5 사자심왕 리처드(썸머 에디션).] [등급 : 울트라 슈퍼 레어.]뽑기 게임 속 캐릭터.
붉은 머리 여자 캐릭터가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옆으로 보이는 장비창에는 별이 얼마나 많은지 눈이 부실 만큼 반짝였다.
“…….”
화려하네.
딱 보니까 알겠다.
나는 그걸 바라보기를 잠시, 이내 고희범에게 물었다.
“희범아.”
“네, 형님.”
“저거 뽑는 데 얼마 들었냐?”
그 말에 고희범은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피하더니 말했다.
“……저거 때문에 아니야.”
“진짜로?”
“……돈이 좀 들긴 했는데, 이벤트로 싸게 뽑았어.”
아하.
방송으로 번 돈을 어디에 다 날렸나 했더니, 여기에 날렸구나.
장하다 고희범.
유감이다.
……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진짜라니까! 야! 왜 사람 말을 안 믿어! 이거 봐 봐.”
고희범이 핸드폰으로 쇼핑몰 어플을 키더니 내게 보여 주었다.
그런데 그곳에 적힌 구매 리스트가.
[스카페이스 프로dx 오디오 인터페이스.] [테크로지 C1090 웹캠.] [오디오랜드 ks72 전문가 마이크.]하나같이 돈이 팍팍 드는 것들이었다.
모조리 방송 장비들.
나는 그걸 보고는 놀라서 물었다.
“뭐야, 게임에 쓴 거 아니었어?”
“아니라고 했잖아. 내가 무슨 게임에 미친 사람도 아니고.”
맞잖아.
너 게임에 미친 사람 맞잖아.
물끄러미 바라보려는데, 고희범은 찔리는지 몸을 뒤로 빼고는 말했다.
“나도 알아. 내가 그렇게 보이는 거. 그래도 사리 분별 정도는 할 줄 알거든?”
“흠.”
“흠은 개뿔이. 이제 스튜디오 이전하면 장비 이것저것 필요하잖아.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 몸만 가게?”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였다.
하긴, 방송을 진행하려면 장비가 다 필요하지.
“지금까지는 이스케이프에서 장비를 다 빌려줘서 어떻게든 됐지만, 이제 우리 장비로 맞춰야지.”
안다.
나도 당연히 사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놀란 건 달리 있었다.
저 모든 장비를 고희범이 자기 돈으로 사려 했다는 것이었다.
“왜 네가 샀어? 같이 사도 될 텐데.”
“내가 사서 내가 쓰려고.”
이유가 어설프다.
원래 이런 장비는 편집자가 전부 구매하는 게 아니었다.
충분히 내게도 분담을 요구할 만했다.
하지만 고희범은 사비로 구매했지.
그 말인즉슨, 그가 이 방송에 애정뿐만이 아닌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특하네.’
이걸 어떻게 따지나.
다른 이유라면 모를까, 이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장비병은 프로의 기초 소양이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야.”
“왜요.”
“우선은 내가 낼 테니까, 나중에 정산 나오면 다시 이야기하자.”
“네, 주인님.”
* * *
대전 여행을 마치고 모처럼 방문한 카페 이스케이프.
“음.”
사장님은 우리를 앞에 둔 채, 한참이나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
비로소 입을 열었다.
“결국에는 이런 순간이 왔군요.”
“이런 순간이요?”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았습니다. 김한영 채널의 구독자 수가 한창 상승세를 타던 참이었으니까요.”
아무래도 그는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애초에 카페 이스케이프의 수수료가 그렇게 저렴하지 않다.
‘구독자 수가 적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조금만 떠도 수지가 안 맞지.’
물론, 그동안 잘 쓰기는 했다.
감사하기도 했다.
나는 이 마음을 담아서 말을 이었다.
“그동안 사장님 덕분에 방송을 잘 운영할 수 있었어요. 저희끼리만 했더라면 많이 어려웠을 거예요.”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카페 이스케이프에 문제가 있어서 떠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저희도 이제 슬슬 방송 시간의 문제가 있어서요.”
“백 번 이해합니다.”
사장님은 어찌 된 일인지 한 마디의 반대조차 없었다.
너무나도 이 상황을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눈치.
그게 눈에 걸렸다.
‘슬슬 말이 나올 때가 됐는데?’
이상하다.
한 번쯤은 붙잡아야 정상 아닌가.
그래도 우리가 고객인데, 너무 쉽게 보내주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따로 제안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사장님이 입을 열었다.
그다음으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도 대강 예상했던 말이었다.
“이름만이라도 남겨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름을 남기는 것이었다.
‘역시, 이런 말이 나올 것 같았지.’
이런 가게는 누구를 보유하고 있는지가 곧 업장의 신용과 마케팅으로 이어지는 법이었다.
왜, 지금 당장도 그렇다.
벽에 카페 이스케이프를 이용하는 방송인들의 명단이 우후죽순으로 걸려 있지 않은가.
[박카치노.] [구독자 수 : 1.4만.] [분야 : 먹방.]-[BJ카보.] [구독자 수 : 2.1만.] [분야 : 게임 정보.]
저들의 이름을 보고 이 가게와 계약하는 사람이 한둘일까.
하물며 내가 이곳에 몇 달 다니며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생각보다 자주 오는 사람이 드물어.’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있었다.
바로, 대부분 구독자 수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
이건 마치 입시 학원과도 같았다.
‘실제로 안 다녔어도 이름만 빌려주는 대가로 장학금을 받기도 하지.’
이 사실을 내가 어떻게 아는가.
바로 김한영이 그렇게 했기 때문이었다.
‘인생에 별 목적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효심은 있었다.’
중경대는 나름의 명문이다.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 드리기 위해 한두 곳에 이름을 내놓았지.
이 모든 기억으로 추측하건대, 사장님이 다음으로 꺼낼 말도 대충 짐작은 됐다.
나는 이 사실을 모른 척하며 물었다.
“여기에서 방송은 안 하지만, 그래도 이름만 기재해 놓는다는 건가요?”
“예.”
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이곳은 이미 방송하고 있는 방송인의 이름값으로 장사를 하는 게 있어서 말입니다.”
역시.
앞서 계산해 온 대로 진행된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을 빌려드리면, 그 대신 저희한테 도움을 주시겠다는 건가요?”
“정확합니다.”
사장님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다만, 아무래도 업종이 업종이다 보니 가끔은 오셔서 실제로 방송을 진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느 정도가 될까요?”
“주 1회, 아니, 정 어렵거든 월 1회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한 번 올 때의 방송 시간은요?”
“잠깐씩이라도 괜찮습니다.”
생각보다 조건이 여유롭다.
하지만 저 대신 어떤 대가를 받을 수 있는가가 정말로 중요하겠지.
지금부터가 본론이다.
“그럼 저희는 어떤 걸 얻을 수 있을까요?”
나는 솔직하게 나가기로 했다.
사장님은 내 질문을 예상했다는 듯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한영 씨가 앞으로 방송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어느 게 필요할까 생각해 봤습니다. 저희 업장을 떠난다고 해도 이 근방에서 새로 스튜디오를 꾸리시겠지요?”
“네.”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스튜디오를 꾸리기는 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우리 명의로 말이지.’
언젠가 MCN과 계약하거든 그쪽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꺼려지는 부분이 있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아직 확신이 없고, 아무래도 너무 깊게 엮이고 싶지 않은 게 있었다.
쭉 갈 게 아니라면 나중에 관계를 청산해야 할 것 아닌가.
그렇다면 적어도, 업무에 한해서는 다소 드라이한 관계가 나았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그 순간 사장님이 입을 열었다.
“새로 구한 스튜디오의 임대료를 저희 측에서 전액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
생각보다 화끈한 제안이 단번에 튀어나왔다.
하물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임대료를 포함해서 내부 공사 비용, 이사 비용도 일부 분담하겠습니다. 다만, 이렇게 진행할 경우 투자 비용이 있으니 계약은 당분간 유지해 주셔야 합니다.”
달달하다.
후자를 고려하더라도 전자가 달달하다.
‘이렇게까지?’
우리 이름값이 그렇게 컸던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을 돌아보자, 고희범의 눈은 이미 갈 곳을 잃고 금욕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것 봐라.
이미 반쯤 넘어갔네.
“조건이 너무 좋네요.”
떨떠름한 기분에 중얼거린 찰나였다.
“좋을 것도 없습니다. 당연한 겁니다.”
사장님이 말을 이었다.
“전 싱어송라이터 김한영 채널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보고 있습니다. 이미 한영 씨의 방송을 보고 찾아와서 계약한 사람도 있을뿐더러,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앞으로 훨씬 더 크게 될 것 같습니다.”
“음.”
“보통 5만부터 시작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인 예상으로는, 앞으로 50만 이상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순간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우리 방송의 가치가 생각보다 많이 올라갔구나.’
슬슬 어느 단계에 저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계인들이 우리 방송의 가치를 알고, 먼저 숙이고 들어오고 있다.
불과 몇 달 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일 아닌가.
‘광고도 많이 들어왔지.’
고작 구독자 5만짜리 방송인데 말이다.
보컬 강의를 제외하고는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거의 다 거절했지만.
흐름이 좋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뜸 받아들이는 건 금물이었다.
‘계약서 도장 찍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지.’
전생의 김진산 사장님이 내게 한 말이 있었다.
[계약 때문에 미팅을 할 때, 모르고 계약하면 3류다. 알고 계약하면 2류고.] [그럼 1류는 뭐예요?] [모르는 척하고 진행하는 거.]자랑스럽게 말하는 것 치고는, 정작 본인도 저렇게 하질 못해서 손해를 볼 때가 많았지.
하지만 저 가르침 자체는 내 가슴속에 남았다.
나는 그 마음을 담아서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만들 스튜디오에 관해 이야기를 먼저 드리고 싶은데요.”
협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내가 사장님이 할 말을 예상했다는 건, 그다음으로 할 말도 전부 계산해 왔다는 것이었다.
“스튜디오를 어디에 차릴까 생각을 조금 해 봤는데, 여기는 어떨까요? 그리고 시공 업체는 이쪽으로.”
그렇게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를 잠시.
사장님의 표정이 점차 변화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얼굴에서 여유가 살짝 벗겨졌다.
“……많이 알아보고 오셨군요?”
아.
이 기분에 협상하는구나.
나는 속으로 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방송 환경은 소중하니까요.”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