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6
6화
간단한 실력 행사가 끝난 뒤 바뀐 게 하나 있었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김한영.”
“그래, 한영이, 아까 연주하는 거 진짜 끝내주더라.”
동아리 식구들의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진짜 잘하더라.”
“올해 신입 회원은 거물이 들어왔네.”
“어떻게 그렇게 연주를 할 수가 있지?”
불과 몇십 분 전까지만 해도 나를 꺼림칙하게 봤던 게 거짓말이라는 듯, 이들의 태도는 살갑기 짝이 없었다.
마치 종이를 한 장 뒤집은 정도의 차이.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들이 고까운가 하면,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뭐, 이게 사람이지.’
전생부터 이런 일은 잦고도 잦았다.
직접 자기 귀로 듣지 않으면 남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한둘이었던가.
확인하고서도 인정 못 하겠다며 악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도 많았다.
특히 방송국 PD 중에서 꽤 있었다.
‘내 음악은 방송에 올리기에는 너무 천박하다고 훈수 뒀던 그 인간들, 지금은 뭐 하고 있을까.’
나 때는 간단한 밴드 음악만 해도 꽤 격한 음악의 범주에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헐벗은 아이돌이 TV에 나와 섹시 댄스를 추는 세상이다.
문득,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바뀌었구나. 이런 생각도 이제 그만할 때가 됐는데, 계속 적응이 안 되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으려니 동아리 식구 중 다소 활달해 보이는 인상의 남학생 한 명이 계속 말을 붙였다.
“어디서 배웠어?”
“독학.”
“진짜로? 혼자서 배운 거야?”
“응.”
“와, 그럼 막 실용음악과 준비했거나 그랬나?”
“아니.”
“그럼 어떻게 연습했어?”
“틈틈이, 짬이 날 때마다.”
내 기타 실력에 대해서 집요하게 물어본다.
‘이름이 정의선이라고 했나.’
정의만 해도 정의로운데, 이 뒤에 선까지 붙었다.
생긴 것도 정의롭게 생긴 게 이름값 제대로 하는 학생이었다.
그는 나와 똑같이 팅의 신입 회원인데, 나한테 유독 달라붙어서는 기타 연습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역시 연습을 열심히 하는 게 최고구나.”
“뭐, 그렇지.”
내게 어떻게 배웠냐고 질문한다고 해서 딱히 해 줄 말은 없었다.
많이, 열심히 치는 게 최선이었다.
굳이 추가로 말하자면, 남의 연주를 한 번 듣더라도 제대로 관찰하는 것 정도일까.
‘좀 귀찮기는 하네.’
좀 너무 달라붙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였다.
“아까 동아리방에서 연주했던 거 김한석 곡 맞지?”
정의선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는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인터넷에서 김한석 라이브 영상 많이 봤거든. 나 김한석 진짜 좋아해.”
오.
넌 이제부터 내 친구다.
“그런데 한영이 너 기타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
“그런데 기타 연습은 어떻게 한 거야?”
“있긴 있었어. 그런데 망가졌으니까 없는 거랑 다를 바가 없지.”
“아하,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그랬나 보다.”
역시 실력 행사는 좋다.
같은 말을 해도 좋게 해석해서 받아들여 주지 않는가.
그렇게 대충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다른 선배들도 말을 붙였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
“한영이 기타 연습 어떻게 했나 하는 이야기요.”
“아, 그러고 보니까 나도 궁금하더라. 어떻게 그렇게 잘 치지? 혹시 막 연습 방법 같은 게 따로 있어?”
“틈틈이, 짬이 날 때마다 열심히 치는 거요.”
같은 레파토리가 반복되었다.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썩 나쁠 것도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랑 친해지려고 말을 붙이려면 이런 화제가 제격이겠지. 자기들 나름대로 나를 받아들여 주려고 노력하는 거구나.’
오히려 이런 순수한 호의가 기쁘다.
처음 시작이 불온해서 그렇지, 동아리 분위기는 여러모로 화목하기 짝이 없었다.
딱 한 명만 빼고.
‘쟤는 뭐 혼자서 따로 노네.’
성민아였다.
그녀는 내게서 살짝 거리를 두고는 홀로 떨어져서 걸었다.
아무래도 내가 불편한 눈치.
‘동아리에 내 안 좋은 이야기를 퍼뜨려 놓았는데, 사실 그게 아니게 되었다. 그런 거 아닐까.’
당사자가 시인하지 않는 이상 내 관심법에 불과하다.
하지만 딱히 확인할 생각도 없었다.
애초에 고백한 사람이랑 찬 사람의 사이가 부드럽기도 어려운 법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다 보니, 어느 순간 눈이 마주쳤다.
“…….”
“…….”
다시 눈싸움이 시작됐다.
그러기를 잠시.
그녀의 눈이 꿈틀거리며 이번에도 내가 이겼다 싶은 순간이었다.
“저기.”
성민아가 입을 열었다.
그러더니 말을 하는 둥 마는 둥 우물거렸다.
“……저기, 그…… 미…….”
“미?”
“그게, 그.”
“그?”
“아니, 그러니까 내가 하려는 말이.”
성민아가 정말로 뭐라 한마디 하려는가 싶은 찰나였다.
“그러고 보니까 너희 둘이 같은 과라고 하지 않았어?”
정의선이 말을 붙였다.
그 말에 성민아는 반은 안도하고 반은 아쉬워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응, 같은 국어국문학과.”
“부럽다. 나도 같은 과에 기타 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텐데.”
“과가 어딘데?”
“나? 법학과.”
이야.
법을 공부하는구나.
생긴 게 정의롭고 이름도 정의선인데 마침 공부하는 것도 법이란다.
‘닉값 제대로 하네. 닉값? 닉값이 뭐지? 아, 이런 말이 있구나.’
아직 좀 꼬인다.
아무튼, 그렇게 떠들면서 걷는 와중이었다.
“저기야.”
조은솔이 대학로 로데오 거리의 중앙 광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충 밴드 하나가 올라가서 공연할 수 있을 정도로 볼록 올라온 벽돌 무대.
그곳을 바라보자, 이미 몇몇 사람이 붙어서 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같은 동아리 사람들이에요?”
“아니, 쟤들은 다른 동아리 애들. 오늘은 우리만 공연하는 게 아니거든.”
처음부터 다른 동아리랑 같이 버스킹을 하는구나.
기왕 같은 무대를 공유하는 거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
내심 그런 생각을 하는데, 조은솔은 어딘가 심히 불편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쟤들보다는 잘해야 해.”
어딘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궁금한 건 참을 수 없다.
“왜요?”
“저쪽은 우리 동아리에서 나간 애들이 차린 동아리거든.”
“흐음.”
어쩐지 저쪽도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있더라니, 뭔가 미묘한 감정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왜 같은 무대에서 버스킹을 하는가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굳이 내 알 바는 아니었다.
‘아, 얼른 무대나 뛰고 싶다.’
그보다, 슬슬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 * *
무대라는 건 참으로 복잡하면서도 난해하다.
좋은 무대란 무엇일까.
훌륭한 연주력을 선보인 무대일까.
아니면, 관객들에게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인 무대일까.
말하는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기에 딱 정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내 기준은 이러했다.
‘내가 재밌는 무대가 최고지.’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진심으로 즐길 수 있어야 관객들도 즐길 수 있다.
그렇기에 우선은 내가 즐기는 게 최우선이었다.
그런데 지금 분위기만 보면 즐기는 것과는 꽤 거리가 있는 모양이었다.
“은솔아.”
저쪽 동아리의 회장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오래간만이네. 처음 보는 얼굴도 많고. 다 올해 새로 들어온 애들인가 봐?”
“아무래도 그렇죠. 올해는 실력 있는 신입회원들이 많이 들어와서 좋네요.”
“이야, 팅은 늘 인재복이 넘친다니까. 우리도 그러면 좋을 텐데.”
“에이, 아르페지오야말로 잘하는 사람이 많죠.”
“우리가 뭘. 그냥 재밌게 하는 거지.”
두 사람은 서로가 반가운 듯 웃는 얼굴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하지만 정겹게 흘러가는 대화 내용과는 달리, 두 사람 사이에서 흐르는 기류는 썩 심상치가 않았다.
‘왜 저런데.’
미묘한 기분으로 저 대화를 엿듣고 있으려니, 한 선배가 내 옆으로 다가와서는 말했다.
“쟤들 사이 안 좋아 보이지?”
이 선배 이름이 뭐였더라.
홍윤서였나.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 선배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쪽이 작년에 우리 동아리에서 나간 애들인데, 저쪽 문제로 중간에 피곤한 일이 많았다.”
“원래는 팅이 좀 컸나 봐요?”
“지금 인원의 2배는 됐지. 지금은 반쪽이지만.”
“그 반이 나가서 세운 게 저쪽이고요?”
“응, 눈치가 빠르네.”
딱히 눈치가 빠르다기보다는, 대화 맥락이 그냥 그랬다.
그렇다면 저 두 사람의 반목도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A라는 밴드에서 나간 사람들이 모여서 B 밴드를 만들었다 치자.
사이가 좋기가 더 어렵지 않겠는가.
“그런데 저쪽 동아리 회장이 좀 그래.”
“왜요?”
“난봉꾼이야.”
“난봉꾼이요?”
의외의 말에 되묻자, 홍윤서가 말을 이었다.
“막 여자한테 들이대는 거 좋아하고 그런 사람 있잖아. 기타 잘 치면 인기 많으니까. 저쪽은 또 나름대로 잘생기기도 했고.”
“흐음.”
그 말을 듣고 보니까 여자한테 인기가 많은 스타일이기는 했다.
서글서글하니 좋은 인상에 키도 커 보인다.
윤서 선배의 말을 안 들었더라면 마냥 좋은 사람으로 보였으리라.
‘여자에 미친 사람이라. 나 때도 많았지.’
그리 좋아하는 인간 군상은 아니었다.
그렇게 여자 문제가 따라다니는 사람치고 끝이 좋은 사람을 별로 못 봤기 때문이었다.
내가 여자를 멀리했던 데는 저런 사람들을 반면교사 삼았던 것도 있고.
나는 확인차 윤서 선배에게 물었다.
“혹시, 저쪽 사람이 여자회원들한테 들이대다가 동아리가 터졌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정확하게 아네. 잘못하면 해체될 뻔했던 거 은솔이가 고생해서 살려 냈지. 누가 알려 줬어?”
“그냥 들으니까 대충 감이 와서요.”
그렇게 잡담이나 나누려는 순간이었다.
“민아야, 민아 맞지?”
저쪽 회장이 우리 쪽 회원에게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지난번 신입생환영회 때 연주하는 거 봤는데 진짜 잘 치더라.”
“진짜요? 감사합니다.”
성민아는 나를 대할 때와는 대조적으로 나긋나긋 웃으며 대꾸했다.
“나중에 시간 나면 우리 동아리에도 놀러 와. 동아리는 여기저기 경험해 봐서 나쁠 거 없거든. 따지고 보면 팅이랑 우리는 자매 동아리이기도 하고, 서로 친하게 지내면 좋잖아. 나도 작년까지는 팅에 있었거든.”
“아, 그래요?”
“그럼, 무대 기대할게.”
저쪽 회장은 그렇게 웃는 얼굴로 자기네 패거리에게 돌아갔다.
어딘가 사람 대하는 게 능숙한 모습이었다.
‘흐음.’
딱히 저런 사람이 싫은 건 아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 동아리에 피해를 끼치는 사람이라면 그건 또 다른 문제였다.
‘딱 보니까 세상 참 피곤하게 사는 사람 같은데. 혼자만 피곤하게 살지, 꼭 저런 사람들이 남들까지 피곤하게 만든다니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윤서 선배에게 물었다.
“저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뭔데?”
“저쪽 회장이요. 평소에는 어떤 곡을 많이 연주해요?”
“음, 그렇네.”
윤서는 고민하는 듯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너랑 비슷하다.”
“저랑요?”
“응.”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저 인간도 김한석 좋아하거든. 너도 아까 김한석 곡 연주했잖아.”
오.
생각보다 취향이 맞았구나.
인간성은 몰라도 듣는 귀는 있군.
‘이거 참 유감이네.’
나는 다시 한번 윤서에게 물었다.
“혹시, 저희 무대 순서가 어떻게 되나요?”
“보통은 신입생이 먼저 오르고, 그다음에 순서대로 선배들이 하는 게 관례지. 실력순이라는 느낌? 저쪽도 비슷하게 할걸.”
“그럼, 아까 그 인간이 마지막 순서일 수도 있겠네요.”
“그럴 확률이 높겠지?”
“흠.”
나는 손가락으로 턱을 긁적이다가 말했다.
“오늘은 저쪽 동아리가 저희보다 먼저 연주하는 거 맞죠?”
“이번에는 그러기로 했어. 대신 다음에는 역순이고.”
“한 번씩 주고받나 보네요.”
이쯤 되면 확인할 건 다 확인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제가 첫 순번으로 나가도 될까요?”
– 다음 화에 계속 –